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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班家) 벗 레드: 오괴헌(음악 아티스트 레지던시) | 스튜디오 케이웍스

사진
김용관
자료제공
스튜디오 케이웍스
진행
박지윤 기자
background

「SPACE(공간)」 2025년 1월호 (통권 686호) 

 

 

 

 

 

김광수 스튜디오 케이웍스 대표 × 이종건 作家​

 

 

생명력-자발적 고립

 

이종건(이)​: 오괴헌(음악 아티스트 레지던시)(2024)에서 가장 강렬한 것은 색이다. 한국에서 색의 유무와 색을 쓰는 방식은 큰 논란이었다. 색이 있느냐, 없느냐는 세상을 분리하는 방식이다. 색이 없는 세계는 획일적인 반면, 색을 쓴다는 것은 사물이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보는 세상에서 색을 제거한다면 모두 똑같아 보이지 않을까 싶다. 합천 영상테마파크휴게소(2014)에서도 강렬한 색을 사용했는데, 건축에 유독 색을 도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광수(김)​: 나는 색이 생명력을 준다고 생각한다. 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던 중동초등학교 교문인 색동벽 사이로(2008)는 색동저고리라는 개념으로 작업했다. 전통적으로 갓 태어난 생명을 축복하는 의미도 있고, 특히 무지개 같은 색동저고리는 아이의 생명력과 잠재성에 대한 은유라고도 생각한다. 

 

: 딸이면 빨간 색동저고리를 준비하고, 아들이면 파란 색동저고리를 준비했다는 점에서 그러한 색은 자칫 억압적일 수 있다. 

 

: LGBTQ+의 표현 방식처럼, 색동저고리는 ‘너는 노란색도 될 수 있고, 파란색도 될 수 있어’와 같은 잠재성에 대한 표현이라고 본다. 아이가 커서 출세하면 지위에 따라 관복의 색이 정해진다는 점에서 물론 색이 규정적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있었긴 하다. 하지만 색동저고리는 시초이기 때문에 아이의 잠재성 영역으로 보는 것 아닐까. 색채는 근대건축 개념에 있어서 항상 마이너한 요소였고, 색채가 주는 강렬함 혹은 세속성 때문에 청교도적 근대건축에서 언제나 기피 대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반가(班家) 건축이나 문인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요소다. 하지만 색채는 당대의 민화뿐만 아니라 궁중화, 사찰 건축이나 궁궐 건축 등에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쓰였기에 탈속적이기도 한 양극성이 있다. 오괴헌에서는 반가에 더해 현대에 잔존하는 과거의 민가, 양옥집 등도 참조의 대상으로 삼으며 색채를 중요하게 다뤘다. 특히 음악인을 위한 시설임을 감안해 오래전부터 뮤직비디오에서 번성해오던 색채를 떠올리며 그것을 가상의 모니터에서 꺼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문학이나 인문학 중심으로 운영되는 소전문화재단의 문자 지향성과 음악인들의 색채 지향성 그리고 문인화와 민화의 서로 다른 감각을 혼합해보고 싶었다. 

 

: 오괴헌의 공간과 배치 형식은 반가와 유사하다. 그런데 색을 가진 반가는 통상적으로 상상하기 힘들다. 공간의 형식을 무시한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혁명적이다. 또한 오괴헌의 색은 안과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를 넘실거린다. 공간과 색이 따로 움직이는 것이 이 작업에서 가치 있는 지점이라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건축 안을 넘어 담벼락까지 색이 넘쳐올 수 없었는지 궁금했다. 

 

 

 

 

 

: 양양하나 어린이집(2024)을 포함해 근래 내가 한 작업들의 색은 조금 비집고 나오려는 성격은 있어도 밖으로 넘쳐나진 않는다. 

 

: 합천 영상테마파크휴게소의 색은 우리가 마치 어마어마한, 다채로운 욕망을 갖고 있는데 사회는 경직되어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바깥은 잠잠하지만 안은 단면을 자른 듯 무수한 색들이 존재한다. 색이 우리 안에 억압된 내부처럼 보인다. 오괴헌도 이 연장선상에서 보면 되는가? 

 

: 그렇다. 내부의 균열에 집중하게 된 것은 어느 시점부터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근대성의 내부화가 너무 공고히 돼 외부를 경험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는 생각에서 기인했다. 그래서 나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 관심을 갖는다. 내부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집중했고 외부는 닫힌 세계처럼 다뤘다. 

 

: 농촌 마을에서 오괴헌은 마치 섬처럼 고립될 것이다. 시각적으로든 공간적으로든 프로그램적으로든, 모든 측면에서 그 마을과 별개인 이질적 존재가 들어선 형국인데, 마을 세계와의 긴장을 다룰 때 어떤 고민을 했는가? 

 

: 작업을 시작할 때 주변에 집이 한 채도 없었다. 그럼에도 주변 필지가 구획돼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집이 들어올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고, 어떤 경우에도 상관없이 적절하기를 바랐다. 주변 집이 없을 때는 접근하다 갑자기 중세 섬을 발견한 것 같은 낯선 느낌을 주려고 했고, 주변 집이 생겼을 때는 이곳이 다른 세계의 영역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담장을 세웠다. 

 

: 선배 건축가들의 모노크롬한 모더니즘 언어로 지었다면, 그러니까 무성의 노출콘크리트로 했다면 마을에 다소 묻혔을 것이다. 그런데 강렬한 색으로 인해 존재감이 생겼다. 주변 집들과 비교해 스케일과 형식이 다르긴 하지만 만약 색이 없었다면 그리 크게 눈에 두드러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멀리서 보아도 이 건물은 색이 언뜻언뜻 비치면서 “여기는 범접할 수 없는 세계”, “헤테로토피아”라고 외친다. 과거 건축이 연속, 관계, 흐름을 대단한 덕목처럼 여길 때 나는 끊김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단속되고, 차별되고, 고립될 때 비로소 대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연결을 심하게 요구하는 사회다. 극단적인 연결을 요구하니 오히려 고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초창기 중세 수도원의 수도사들도 지나친 연결로 닫혀버리는 사회에서 자발적 고립을 선택한 것 아닌가? 지금 시대에도 고립의 욕망이 있는 것 같다. ‘타인은 지옥이다’가 유행어고, ‘나는 자연인이다’가 많은 남자들에게 인기를 끄는 것도 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참조-복화술


: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 건축 사회에는 오브제 건축에 대해 적대적인 경향이 있었는데, 오괴헌의 중문과 페치카 옆 굴뚝은 오브제적이다. 기능과 무관한 아름다움을 갖고 양쪽 건물의 경계선에서 풍경을 만든다. 어떤 의도인가? 

 

: 주방에서 안마당을 통해 바깥마당의 페치카로 갈 때 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경계에 관심이 많은데, 안마당은 빨간색으로 바깥마당은 노란색으로 둘러싸인 와중에 문이 딱 그 경계에 있지 않나. 문을 설치해도 저 문이 쓰임을 위한 문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을 들게 하고 싶었다. 철문에도 삼각형이 있고, 하단부의 콘크리트도 철문의 삼각형과 연결돼 큰 삼각형을 이루도록 구성했다. 동시에 문은 지상에서 띄워져 있어 어딘가 어긋난 문 같으면서도 콘크리트의 조형과 연결돼 어긋나지 않은 것도 같은, 그 어긋남의 경계에 있는 문이라고 생각하면서 장난스러운 형태를 취하도록 했다. 

 

: 우리나라 반가와 사찰에서도 중문과 굴뚝이 굉장히 아름답다. 건축 오브제의 전형이다. 그것을 우리 건축 전통의 흐름 중 하나로 보고 번안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 반가, 사대부 가옥의 중문에 관심이 많다. 어떨 때는 쪽문의 존재감이 강하기도 하고, 그 쪽문을 넘어가면 또 다른 세상이 있기도 하다. 

 

: 그렇다. 우리에게는 건물만큼이나 문이 중요해서 그러지 않았나 싶다. 

 

: 이 작업에서는 영역성 측면에서 문이 굉장히 중요했다. 또 사랑채와 앞마당, 안채와 안마당 그리고 담장들로 구성되는 전통 반가나 현재에도 지역에서 많이 보이는 담장과 채의 구성, 담장과 채 사이 혹은 채와 채 사이의 켜와 여분 공간에 대한 변용과 확장 등을 주요하게 참조했다. 특히 지역의 오래된 양옥집 처마와 담장 구성은 이 작업의 구성과 형태에 큰 역할을 했다. 이곳의 벽과 사선 처마는 실내 측으로도 같은 프로파일을 형성하며 일단의 구조체가 되고 지붕은 다른 요소(목구조)가 얹혀져 있는 자세를 취하는데, 이는 실내 공간도 외부라는 감각으로 느껴지길 바라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벽과 사선 처마(혹은 실내의 헌치)가 건물의 내외부와 담장의 구성 및 그 형태를 결정했다고도 볼 수 있다. 작업스튜디오의 거실도 대청마루와 같은 바닥이 실내외로 이어지며 입식의 공간에서 좌식으로 바뀐다. 전체적으로 외곽이 담장으로 구성된 오괴헌은 마당을 내부화하고 실내를 외부화하는 감각으로 접근했다. 

 

 

 

 

 

: 「미로 1: 참조와 인용」(2024)에 글을 쓰기도 했고, 앞서 알도 반 아이크를 언급하기도 했다. 오괴헌 또한 참조가 언뜻언뜻 보인다. 건축가가 의도적으로 하는 참조와 인용은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서다. 참조와 인용을 행하는 관점이 궁금하다. 

 

: 의견 개진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편리하기도 하다. 일종의 복화술이라고 생각한다. 

 

: 발터 벤야민이 인용으로만 구성된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한 것과 비슷하게 들린다. 복화술처럼 자신의 목소리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오게 하는 방법 말이다. 

 

: ‘이것은 내 이야기야’라는 의미 부여를 별로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말을 하는 것이다. 맥락을 참조하는 경우도 있지만 도상만 참조하는 경우도 있다. 판교 케이브하우스(2016) 아치의 경우, 루이스 칸의 킴벨 아트뮤지엄을 참조했다. 칸은 구축적인 건축가지만 나는 선이라는 도상만 가지고 와서 가볍게 다뤘다. 

 

: 선과 색은 물질이 아니라 물질이 현상하는 방식이다. 현상은 붙잡을 수 없는 것이어서 도깨비나 유령처럼 느껴진다. 자크 데리다도 『마르크스의 유령들』(1993)에서 현실계를 구조화하는 상상계와 같은 유령의 막강한 힘에 대해 유령론을 말하기도 했지만, 오괴헌에서 색과 선은 유독 건축의 실체성을 유령화하는 느낌이 든다.

 

 

 

 

 

 

월간 「SPACE(공간)」 686호(2025년 01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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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스튜디오 케이웍스+ 건축사사무소 커튼홀(김광수)

설계담당

김경선, 권혁태, 이혁준

위치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자은리 191-1 /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자은리 191-6

대지면적

783㎡ / 459㎡

건축면적

162.62㎡ / 172.33㎡

연면적

162.62㎡ / 172.33㎡

규모

지상 1층 / 지상 1층

주차

1대 / 3대

높이

5.3m / 5m

건폐율

20.76% / 37.54%

용적률

20.76% / 19.86%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목구조

외부마감

콘크리트 치핑, 컬러대리석 시멘트

내부마감

마이크로 시멘트, 나왕합판

구조설계

(주)밀레니엄 구조

기계설계

(주)주성이엔지

전기설계

(주)동양디앤에스

시공

초록선(배용은)

설계기간

2021.12. ~ 2022. 5.

시공기간

2023. 3. ~ 2024. 10.

조경설계

조경설계 서안(주)


김광수
김광수는 스튜디오 케이웍스 대표이자 건축사사무소 커튼홀 공동대표다. 그는 현대의 사회성과 도시 건축 환경의 변화에 주목하며, ‘방들의 가출’(베니스비엔날레, 2004), ‘달로문학관’(오스트리아국립박물관, 2013), ‘여기에서 여기를’(아르코미술관, 2019), 베이스캠프 마운틴(국립현대미술관, 2024) 등의 작업을 전시한 바 있다. 주요 건축설계 작업으로는 부천아트벙커 B39, 신촌문화발전소, 철원 DMZ 철새타운, 광주시민회관 재조성사업, 판교 케이브하우스, 합천 영상테마파크휴게소, (주)삼덕사옥 등이 있으며, 공저로는 「미로 1: 참조와 인용」(2024), 『제주현상』(2016), 『철새협동조합』(2012), 『Stadebauwelt_vlo9_Wonderland』(2008), 『느림의 도시 순천』(2007), 『패스터 앤 비거』(2007) 등이 있다.
이종건
이종건은 작가이자 건축비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