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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고 빛이 머무는: 이람

TOOOC

글
윤현식
사진
김용관
자료제공
TOOOC
진행
방유경 기자

「SPACE(공간)」 2025년 6월호 (통권 691호) 

 

 

 

‘이람(而嵐)’은 은퇴를 앞둔 부부가 노후를 함께 보내기 위한 단독주택이다. 건축주는 평창동 비탈진 언덕에 495m2 규모의 대지를 마련한 뒤 설계를 의뢰했다. 북한산과 북악산 사이에 자리한 평창동은 다양한 주택과 크고 작은 갤러리들이 어우러져 있는, 서울에서는 보기 드문 한적한 동네다. 주변 산세에 따라 형성된 동네라 사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자연의 변화가 상대적으로 강렬하게 인지되는 곳이기도 하다.

 

Structural and spatial diagram per floor 

 

건축주는 크게 두 가지를 요청했는데, 첫째는 오래도록 함께할 공간이니 세월이 지나도 지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관리의 편의성이었다. 먼저 원형 필지를 유지하고 있는 대지는 고저 차가 11m에 달해 성토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배치를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지구단위계획상 건물 높이가 2층으로 제한된 터라, 앞동과 뒷동 두 동으로 나누고 그 사이에 작은 정원을 들이는 방법을 택했다. 남쪽에 면한 앞동과 서쪽 담의 높이를 낮춰 정원으로 빛과 바람이 잘 통하도록 했다. 정원을 지날 때 불어오는 기분 좋은 바람은 자연을 한층 깊이 있게 경험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이렇듯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과 주변 풍광을 담아냄으로써 ‘지루하지 않은 집’을 만들고자 했다.

 

 

 

관리의 편의성 역시 중요한 문제였다. 건축주는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주기적으로 집을 청소하며 돌보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집이 사람을 압도하지 않도록 실내 면적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도 안정감과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적정선을 찾아야 했다. 그 결과, 각각의 동은 개별 실로 공간이 분절되지 않은 연속적인 공간, 즉 방이 하나인 원룸과 유사한 구조로 간결하게 정리되었다. 단독주택을 원룸 형태로 제안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공간의 흐름을 고려해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면서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Sketches 

 

동서 방향으로 긴 장방형 평면에서 건물의 수평 방향은 주요 동선으로 공간의 흐름을 이끈다. 반면 구조부는 수직 방향으로 배치해, 정원을 마주한 뒷동 거실과 앞동 서재의 개방감을 확보하고, 수평 동선과의 방향 전환을 통해 시각적 분리를 꾀했다. 일정 비례에 따라 구조 벽체를 평행하게 배열하고, 앞동과 뒷동 모두 동일한 폭으로 맞춰 통일성을 주었다. 그 사이에 조성된 정원은 정방형 비례를 이루며, 공간구성의 중심이 된다.

 

 

 

방이 하나뿐이라는 것은 집이 지나치게 작아 보이거나, 공간이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동선을 가급적 길게 우회하도록 하여 다양한 공간 변화를 유도했다. 현관에서 침실로 이어지는 동선, 전이 공간과 각 기능 공간들의 높이와 폭, 재료에도 조금씩 변화를 주어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구성에서 탈피하고자 했다. 

 

집에 들어서면 현관의 좁고 높은 계단을 지나 탁 트인 정원을 마주하게 된다. 산뜻한 바람이 반기는 정원을 가로질러 집 안으로 이동하면, 어두운 전실을 거쳐 동네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밝은 통창으로 시선이 향한다. 주로 생활하는 뒷동의 거실이 정원을 바라보며 남향으로 열린 2층 높이의 여유 있는 공간이라면, 2층으로 이어지는 동선은 좁고 긴 계단과 복도로 구성된다. 침실은 건물의 장변을 따라 길게 이어진 복도 끝에 위치한다. 이곳에는 가장 좋은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모서리창을 크게 배치해 자연과 주변 동네 풍경을 편안히 누리도록 했다.

 

 

 

 

내외부에 사용된 주된 재료는 노출콘크리트다. 시선의 집중을 피하고 자연을 담을 수 있는 배경으로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상시 거주하는 집이기에, 실내에는 햇빛이 충분히 닿을 수 있는 영역에만 한정적으로 적용했다. 또한 콘크리트 표면을 캔버스 섬유 패턴과 흡사한 형태로 마감하는 특수 공법을 적용해 차갑지 않은 느낌을 주고자 했다. 침실과 욕실, 주방, 서재 공간 등 몸이 닿는 곳에는 심리적 안정감을 고려해 따뜻한 톤의 석재 타일과 목재를 적절히 사용했고, 같은 이유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손잡이 역시 금속 위에 가죽을 덧대 마감했다. 

 

정원을 마주 보고 있는 앞동은 책과 음악을 좋아하는 부부의 취미 공간으로 계획됐다. 적정한 소리의 울림과 아늑함을 조성하는 것이 관건이라 주로 생활하는 뒷동과 달리 내부 전체를 목재로 마감했다. 남쪽에는 직사광선이 바로 들어오지 않도록 긴 수평창을 위쪽에 두었고, 정원과 마주한 북쪽에는 넓은 창을 내어 충분한 개방감과 조도를 확보했다. 내부에는 간접조명만 설치하여 저녁에도 눈부심이나 그림자가 지는 현상 없이 시각적으로 편안하게 책을 보거나 활동할 수 있다. 서재는 취미 활동을 하면서도 가까운 눈높이에서 자연의 변화를 바라보고 경험할 수 있게 바닥 레벨을 정원보다 60cm가량 낮췄다. 산에서 이는 바람과 기운이 이어지는 집(而嵐)이라는 이름처럼, 계절과 시간의 변화를 담아낸 이 공간이 작지만 안온한 보금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월간 「SPACE(공간)」 691호(2025년 06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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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TOOOC(윤현식)

설계담당

이찬용

위치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용도

단독주택

대지면적

495m²

건축면적

116.37m²

연면적

177.54m²

규모

앞동 – 지상 2층 / 뒷동 – 지상 2층

주차

2대

높이

앞동 – 5.8m / 뒷동 – 6.2m

건폐율

23.51%

용적률

29.26%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스토, 노출콘크리트

내부마감

노출콘크리트, 합판

구조설계

TOOOC, 건축사사무소 국전파트너스

기계설계

(주)정도

전기설계

(주)동양디앤에스

시공

웅진종합건설(주)

설계기간

2021. 9. ~ 2022. 3.

시공기간

2023. 7. ~ 2024. 9.

건축주

윤성필, 모성희

조경

방플라워가든(방선)

예산

14.5억 원


윤현식
윤현식은 TOOOC의 대표다. 영국 UCL 바틀렛 건축대학을 졸업한 후, 비야케 잉겔스 그룹(BIG)과 BCHO 파트너스 등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TOOOC는 홍익대학교를 졸업한 후 BCHO 파트너스에서 실무 경력을 쌓은 이찬용 소장과 함께 설립한 회사로, 건축을 넘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하며 실험적 제안과 새로운 해법을 탐구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