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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 | 과거를 통해 미래를 그리다: ‘비전과 유산: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30년’

글
김보경 기자
진행
김보경 기자

「SPACE(공간)」 2025년 7월호 (통권 692호) 

 

포럼에서 프랑코 만쿠조의 발표를 듣고 있는 관객들. Image courtesy of Arts Council Korea / ©Choi Jinbo 

 

<지성: 자연적. 인공적. 집단적.>: 2025 베니스비엔날레 | 한국관

2025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개막식이 있었던 5월 9일 오후, 베니스의 퀘리니 스탐팔리아 재단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한국관의 건립 30주년 기념 포럼이 열렸다. 20세기 베니스 건축을 대표하는 거장 카를로 스카르파가 리모델링한 이 장소는, 오랫동안 한국관 만찬 장소로 사랑받아왔기에 한국관의 유산을 논하기에 더욱 의미 있는 배경이 되어주었다.

포럼은 ‘비전과 유산: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30년’이라는 주제로, 최춘웅(서울대학교 교수)의 사회, 송시경(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무처장)과 세바스티아노 코스탈롱가(베니스시 경제 담당 부시장)의 축사로 문을 열었다. 

올해 한국관의 예술감독 CAC를 대표해 기조 발제를 한 정다영(CAC 공동 디렉터)은 전시 〈두껍아 두껍아: 집의 시간〉의 기획 의도와 더불어 한국관의 비전을 제시했다. 정다영은 전시 준비과정에서 한국관 건축을 통과한 다양한 작품과 생각을 탐색하며 이를 ‘중립적 기념비’가 아닌 시간의 층위가 겹겹이 쌓여 있는 ‘살아 있는 존재’로 바라보게 된 관점을 전시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관임을 나타내는 건물 앞의 ‘COREA’ 사인에 취소선을 긋는 시각적 제스처를 통해 한국관이 남북 분단의 경계를 흐리는 것뿐 아니라 국경 없는 자르디니 공통의 플랫폼으로 기능하는 미래를 상상했다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그려 보였다. 

 

퀘리니 스탐팔리아 재단의 정원에서 열린 한국관 개막 축하 만찬 현장. Image courtesy of Arts Council Korea / ©Choi Jinbo 

 

먼저 자르디니의 역사를 개괄하기 위해 마르코 물라짜니(페라라대학교 교수)의 발제가 있었다. 자르디니에 건립된 국가관의 건축과 전시 역사를 집중적으로 다룬 『Guide To The Pavilions of the Venice Biennale since 1887』(1988), 『I padiglioni della Biennale di Venezia』(2004) 등을 집필한 그는 베니스비엔날레 국가관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이번 포럼에서도 그는 자르디니가 1887년 베니스 국가 미술전의 개최지가 되고, 1895년 이탈리아관(현 중앙관)이 건립된 후 각국이 국가관을 들이고, 무너뜨리고, 또 새로 지은 역사를 풀어냈다. 발표를 마치며 그는 베니스비엔날레 국가관 전시와 자르디니가 “하나의 기관이자 하나의 장소”로서, 수십 년간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고유한 행사인 만큼 단순히 30주년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를 계승하는 동시에 비판적이고 책임 있는 태도로 새롭게 써내려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르디니의 일원으로서 한국관이 지닌 역사적 무게를 성찰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이어 한국관 공동 설계자인 프랑코 만쿠조(전 베니스 건축대학교 교수)가 마이크를 이어받아 한국관 건립 과정을 회고했다. 자신과 한국 그리고 김석철의 관계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어떻게 한국이 짧은 시간 안에 20세기 자르디니 마지막 프로젝트의 주역이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구체적인 지침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설계를 시작했는지 등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김종성, 리니오 브루토메소​가 발표 중이다.​ Images courtesy of Arts Council Korea / ©Choi Jinbo

 

만쿠조는 자르디니 안에 빈 부지가 없었고, 현실적으로 한국관 건립 허가를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던 1990년대 초, 한국 측의 강한 열의와 당시 베니스 시장 마시모 카치아리의 강력한 의지가 건축 허가를 얻어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1993년 백남준의 황금사자상 수상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높아진 문화적 위상과 국제적 관심도 중요한 동력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베니스시 당국은 자신들이 내세운 조건에 맞게 설계를 해낸다면 부지를 제공하겠다는 조건으로 한국관 건립을 승낙했다.

그는 제한된 공간과 예산, 나무뿌리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시 당국의 까다로운 조건 속에서 건물을 지면에서 띄워 가벼우면서도 열린 공간감을 구현한 최종안이 채택된 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컴퓨터와 손 드로잉을 병행하며 절박한 마음으로 모든 부재를 새롭게 그려야 했던 과정을 생생하게 설명했다. 그리고는 이탈리아 자재와 장인 정신으로 복잡한 공사를 마감 시한에 맞춰 끝냈던, 한국관 개관일을 떠올리며, 여전히 1995년 6월 7일은 자신에게 매우 중요하고 자랑스러운 날이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그는 한국관이 남한만을 위한 것이 아닌 한반도 전체의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담아, ‘남한관(Padiglione Corea del Sud)’이 아닌 ‘한국관(Padiglione Corea)’이라 명명됐다는 것을 강조했다.

 

마르코 물라짜니, 정다영​이 발표 중이다.​ Images courtesy of Arts Council Korea / ©Choi Jinbo 

 

다음으로는 2014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한국관의 황금사자상 수상을 이끌었던 조민석(매스스터디스 대표)의 발표가 이어졌다. 그는 한국관의 유산을 창조적으로 계승한 전시 〈한반도 오감도〉의 전시 기획과 실현 과정을 되짚었다.

당시 총감독 렘 콜하스가 국가관에 제시한 ‘모더니티의 수용: 1914~2014’라는 공통 주제 아래 그는 남북 공동 전시를 기획하고자 했다. 렘 콜하스가 제시한 시점인 1914년부터 1948년까지 지금과 같은 ‘남한’은 존재하지 않았다. 전시에서 남한만을 조명한다는 것은 이야기의 절반을 잃는 셈인 것이다. 이에 그는 특히 1995년 건립 당시 ‘남한관’이 아닌 ‘한국관’이라 명명된 이유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결국 북한과 연락이 닿지 않아 남한과 북한의 ‘공동 전시’는 진행할 수 없었지만, 북한과 교류할 수 있는 외국 국적의 예술가, 건축가, 수집가 등을 중심으로 남한과 북한에 대한 전시를 기획했다. 그는 전시 개막 한 달 후,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가 예고 없이 방문해 전시를 관람하는 사진을 받았을 때가 “황금사자상을 받았을 때보다 더 기뻤다”고 회고하며, 2014년 한국관이 의도했던 포용과 화합의 정신을 상기했다.

 

프랑코 만쿠조, 조민석이 발표 중이다.​ Images courtesy of Arts Council Korea / ©Choi Jinbo 

 

발표의 후미는 한국관의 공동 설계자이나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고 김석철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리니오 브루토메소(전 베니스 건축대학교 교수)는 김석철과의 깊은 우정을 바탕으로 그의 건축 철학을 ‘물의 도시’, ‘신도시’, ‘국제적 차원’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 심도 있게 조명했다. 김석철은 베니스를 이상적 모델로 삼아 서울의 수로를 재활성화하고자 했는데, 이러한 의도는 그가 2000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한국관 전시에 담겨 있다. 2004년에 김석철은 주제전에 참여해 베니스비엔날레 최초로 물 위에 떠 있는 전시장을 직접 고안하기도 했다고 한다. 브루토메소는 고인이 병마와 싸우면서도 중국, 러시아, 북한 접경 지역에 ‘두만강 국제도시’라는 유토피아적 구상을 품었던 프로젝트를 마지막으로 소개했다. 그는 고인이 건축의 힘으로 국제적 갈등을 해결하고자 했던 선구자였고, 늘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마지막으로 2002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를 맡았던 김종성(서울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명예회장)이 모든 발표를 아우르는 코멘트로 포럼을 마무리했다. 그는 2025 한국관 전시가 인용한 ‘두껍아 두껍아’ 노래를 자신이 어릴 적에도 흥얼거렸던 기억이 난다며, 30년 된 한국관의 유산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의 소중함을 이야기했다. 이어 김석철과의 추억 그리고 남한 건축가로서는 이례적으로 북한에 방문할 수 있었던 경험을 나누며 과거와 현재, 남과 북, 건축과 사람을 잇는 따뜻한 연대의 메시지를 전했다.

포럼이 끝나고, 참석자들은 CAC가 주최한 퀘리니 스탐팔리아 재단의 정원에서 열린 만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만찬에서는 올해 한국관 전시추진단과 참여작가들뿐 아니라, 각국의 건축가, 큐레이터, 에디터를 비롯한 건축계 인사들이 파티를 즐겼다. 국적과 분야를 넘어 어우러진 그 생생한 교류야말로 한국관이 나아갈 미래가 아닐까. 단단한 건축물을 넘어, 사람 간의 연결, 세계와의 연대 속에서 한국관의 다음 장이 이미 시작되고 있는 듯하다.​ 

 

만쿠조가 그린 한국관 손 드로잉.​ Image courtesy of Arts Council Korea / From presentation material of Franco Mancuso

 

고 김석철이 설계한 예술의전당을 다룬 이탈리아 건축 저널 「도큐멘티」 지면. Image courtesy of Arts Council Korea / From presentation material of Franco Mancuso 

월간 「SPACE(공간)」 692호(2025년 07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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