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9월호 (통권 694호)


로베르트 코니에치니 KWK 프로메스 대표 × 김보경 기자
김보경(김): 플라토 현대 아트 갤러리(이하 플라토 갤러리)는 보존 대상 문화재인 체코의 도축장 건물을 리노베이션 해 미술관으로 활용한 프로젝트다. 설계공모나 보존위원회 측의 지침은 어떠했나?
로베르트 코니에치니(코니에치니): 보존위원회는 전쟁을 겪으며 생긴 큰 틈을 벽돌로 채워 넣고 그을린 벽돌을 깨끗하게 하기를 요청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방식을 택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 ‘구멍’들이 지닌 막강한 잠재력을 직감했다. 그리고 우리는 오스트라바의 복잡한 역사를 감추기보다 기존 서사 위에 우리만의 현대적 레이어를 덧붙이길 원했다.
김: 어떤 부분은 복원하고, 어떤 부분은 다른 재료를 활용해 재현하기로 결정한 기준이 무엇이었나? 이번 프로젝트에서 세운 개입 혹은 복원의 원칙이 있다면 알려 달라.
코니에치니: 디자인 원칙은 단순했다. “보존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보존하자.” 한편, 큰 틈이 생긴 벽의 일부, 무너진 지붕이나 계단처럼 사라진 요소들은 새로운 현대식 소재로 재건축했다. 결과적으로 건물을 보면 무엇이 기존의 것이고 무엇이 새로 추가된지가 확연하게 구분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의도한 바다. 공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건물 일부가 붕괴됐지만, 무너진 부분을 새 벽돌로 수습하지 않고, 새로 지은 부분은 확실하게 현대식으로 짓자는 기존 원칙대로 처리했다. 현대식 소재로 기존 장식을 재현했는데, 이는 모방이 아닌 한때 그 자리에 있었던 것에 대한 의도적 참조다. 회전하는 벽에도 있는 이 장식은 단순히 과거를 향한 제스처일 뿐 아니라 매우 실용적 해법이다. 손상된 벽들을 보존하는 데 기존 장식 모티브를 계속 활용하는 쪽이 미적으로나 기능적으로 가장 단순하면서 가격 대비 효율적 방법이었다. 결과적으로 어느 하나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고 일관성 있게 전체적으로 통합됐다. 또 우리는 기존 벽돌의 ‘더러운’ 상태를 유지하기로 했다. 오스트라바의 상업적 과거를 지우거나 숨기고 싶지 않았다. 낡고 때묻은 창문은 세라믹 스크린 프린트로 마감된 새 창문으로 교체해 살짝 때가 묻은 듯한 독특한 외관을 연출했다. 새 창문은 역사를 반영하면서도 빛을 부드럽게 들이는 실용적인 기능을 한다. 지붕은 기존 어두운 색감의 역청 덮개를 사용하기보다 연하고 밝은 색감을 채택했다. 건물이 도시 열섬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우리 사무소의 친환경적 디자인 지침을 반영한 의도적 개입이었다.

©Juliusz Sokołowski

©Juliusz Sokołowski
김: 플라토 갤러리는 세이프 하우스(2008)에서부터 시작한 움직이는 건축이라는 아이디어를 이어받은 프로젝트다. 움직이는 건축이라는 개념을 그동안 어떻게 발전시켜왔고, 플라토 갤러리에서 어떻게 적용했나?
코니에치니: 세이프 하우스 당시 이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새로 배울 게 많았고, 당시 꽤 복잡해 보였던 기술도 습득해야 했다. 결국 이 모든 노력이 가치 있었다. 이동성은 건물 주변 공간을 일시적으로 변화시키는 특별한 가능성을 가져다줬다. 이어진 프로젝트에서는 열고 닫는 식의 단순한 이동성보다 건물의 기능 그리고 건물이 주변과 관계를 맺는 데 제대로 영향을 끼치는 발전된 이동성을 추구했다. 그러다 마지막 프로젝트에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움직이는 건축을 이용해 예술이 아무런 방해 없이 갤러리 밖으로 나설 수 있게 한다면?” 이 개념은 이후 플라토 갤러리에서 실현됐다.
김: 오스트라바 시가 개최한 국제설계공모에서 3등을 차지했으나 미술관의 설계자로 선정됐다. 심사위원단은 당신의 콘셉트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실제로 구현되기 어려워 보인다는 점에서 당선작으로 선정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보았다. 이를 어떻게 해결했나?
코니에치니: 그런 우려 때문에 우리는 공모에서 우승하지 못했고, 오로지 우연으로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 먼저 해명하고 싶은 것은 이 벽은 완전히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벽이 아니다. 끼움 벽, 새로 추가된 요소, 새 지붕 등 모든 현대식 개입에 경량 구조를 사용했다. 기존 벽돌 구조는 추가 하중을 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상태였다. 그래서 접근 방식은 단순해야 했다. 강철 경량 프레임을 꼼꼼하게 단열 처리한 후 마이크로 콘크리트로 코팅한 시멘트 보드로 마감했다. 움직이는 벽도 마찬가지로 단열 처리하고 완벽하게 균형이 잡힌 강철 프레임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움직이는 건축을 해본 예전 경험은 분명 도움이 됐다. (기술적인 면에서 움직이는 요소는 더 이상 우리에게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플라토 갤러리에서는 내부 공간의 기밀성과 적절한 내부 기후 조건을 보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각 벽체에 통합된 전체 밀폐 시스템을 정밀하게 설계해 모든 것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무엇보다 기밀성이 유지되도록 했다. 약 6m 높이에 5.5m 폭을 가진 가장 큰 문조차 닫히면 완전히 공간이 밀폐되고 전시회를 하기에 적합한 내부 환경이 조성된다. 결국 심사위원단의 초기 우려는 근거 없었음을 입증했다.


©Juliusz Sokołowski


©Lucia Deveckova
김: 완공 후 3년이 지났다. 콘크리트 벽의 유지보수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코니에치니: 3년 동안 매년 메커니즘에 대한 정기 검사가 이뤄졌다. 모터는 바닥 아래 숨겨져 있고, 표준 점검구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주로 정기 점검과 개별 조정이 이루어지는데, 이런 유형의 장치에서는 지극히 정상적 절차다. 덧붙이자면 이런 방식의 경우 정기적 사용이 가장 중요하다. 회전 메커니즘이 계속 작동하는 한 내구성은 계속 보장된다.
김: 파이프로 파사드를 구성한 갬빗 오피스(2024) 등 KWK 프로메스의 작업들은 대체로 하나의 강력한 콘셉트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플라토 갤러리의 콘셉트는 무엇이며, 어디에서 영감을 받았나?
코니에치니: 플라토 갤러리의 핵심 콘셉트는 예술을 기관 밖으로 내보내 도시 일상의 일부가 되게 하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술의 민주화다. 큐레이터나 작가가 필요하다면 움직이는 건축을 이용해 전시를 말 그대로 반출할 수 있다. 그렇게 외부 공간도 전시 공간의 연장선이 되며, 갤러리 문턱 안으로 들어오는 자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밖에서도 전시를 볼 수 있다. 건물 자체가 그런 사고와 방식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Viktoriia Tymonova
Images courtesy of KWK Promes

Image courtesy of KWK Promes

Image courtesy of KWK Promes
김: 회전하는 거대한 콘크리트 벽이라는 개구부를 둠으로써 미술관에서의 새로운 동선을 유도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코니에치니: 기존 도살장 건물의 레이아웃은 새로운 기능에 맞게 크게 변화했다. 예전 아트리움은 지붕이 있는 중앙 공간이자 갤러리의 심장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계단이 추가돼 동선이 위쪽으로도 이어져 열린 아트리움 상층부를 가로지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다층으로 확장된 동선은 전시장 경험을 풍부하게 하고 흥미로운 공간적 관계를 만든다. 또 건물 주위로 펼쳐진 정원은 동선 계획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도시에서 오든 역에서 오든 플라토 갤러리에 입장하려면 정원을 관통해야 한다. 정원은 미술관으로의 접근을 방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원은 이곳을 개방하고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그런 면에서 정원은 전시의 일부가 되며 공간적·예술적 경험의 생생한 요소가 된다.
김: 플라토 갤러리의 정원은, 조경가 데니사 토마슈코바와 협업해 대상지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외부 공간을 녹지로 조성한 것이다.
코니에치니: 사실 처음에 우리는 갤러리 주변에 작가와 지역 주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개방적이고 넓은 광장을 구상했다. 하지만 오스트라바에 대해 알아갈수록 우리는 이곳이 도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끌어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두 번째 변수는 공사 중 닥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팬데믹이었다. 그 무렵, 우리가 앞으로 건축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에 대한 관점을 완전히 뒤바꾼 새로운 기후 보고들이 발표됐다. 이에 원래 계획된 일은 아니었지만, 갤러리 주변의 광장을 새롭게 구상하는 일에 전념하기로 결정했다. 공간 전체를 녹지화하기로 결정했고, 다양한 생물이 공존하는 공원을 만들고, 투수성 표면을 사용하고, 여러 품종의 식물을 심었다. 또 식물을 이용해 이웃 건물들의 흔적을 드러내 이 장소가 전쟁 전에 가졌던 모습을 사람들에게 상기시키려 했다. 당연하게도 우리 의사와 무관하게 결정되며, 본래 의도와 엇갈리는 부분도 생겼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지만, 예상과 달리 오히려 공간에 생기가 도는 것을 확인했다. 사람들이 공간과 관계를 가지고, 기여하고, 관리하기 시작했다. 2024 미스 반 데어 로에 유럽 현대건축상 최종 후보자 5팀에 올랐을 때 오스트라바의 정치권이 바뀌었고, 우리 작업을 매우 환영하는 시장이 당선됐다. 그는 우리가 원래 갤러리에 대해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음을 안다고, 원한다면 자유롭게 바꾸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답했다. “시장님, 저는 아무것도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이대로가 좋습니다.”라고. 왜냐하면 나는 그때 우리가 내세운 개념의 의미를 완전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술의 민주화, 더 광범위하게 민주화란 내가 비록 동의하지 않더라도 타인에게 발언권을 주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덕에 사람들이 미술관에 진정으로 애정을 느끼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도 중요한 배움을 얻었다. 때로는 한걸음 물러서서 다른 이들이 참여할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간이 흐르며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내세운 개념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인생이 우리에게 갈 방향을 제시해준 셈이다.

©Juliusz Sokołow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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