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12월호 (통권 697호)

©Park Heejun
다시 모여 사는 것
이곳에 한 강인한 여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대가족의 이야기가 있다. 딸이자 며느리, 엄마인 건축주는 남편과 세 명의 자녀, 친정 부모님과 시어머니로 구성된 3세대 대가족과 임대 세대를 포함한 약 10명 이상의 사람이 거주할 주택의 기획과 설계 소통 전반을 혼자 책임지고 있다. 건축주와의 소통은 마치 동네 통장님과의 대화같이 느껴졌다. 각 세대의 요구 조건과 의견을 취합하는 과정이 골목길의 커뮤니티와 닮았다. 그분을 중심으로 주택의 리얼리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3세대가 다시 모여 산다는 것은 각자의 요구 조건을 조율하는 세심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원시적인 가족공동체 그 이상인 일종의 새로운 커뮤니티를 위한 건축을 만드는 일이다.
근대 이후 당연시돼온 개인과 가족의 의미와는 다른 가족의 개념을 재고하고, 보편성을 넘어 지금 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형태를 구현하고자 했다. 집이란 사유물이지만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그 일부가 된다. 작은 건물이지만 도시적이기도 하고, 개개인의 집적이면서 사회적이기도 한 존재로서, 집을 생각했다.


민가와 같은 집
이곳은 산과 개천이 있는 자연과 주택과 텃밭이 뒤섞인 옛 마을, 그리고 대단지 아파트와 상가로 이루어진 신도시가 혼재되어 있다. 주변의 집들에는 크고 작은 텃밭이 있고, 지붕 처마에 각종 농기구와 생활용품들을 보관하고, 외부 계단에는 빨래와 살림살이들을 줄지어 놓았다. 이러한 생활감은 마치 도시의 민가란 이렇다고 정의하듯 아파트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 경계에서 민가의 풍요로운 풍경이 느껴지는 집이 되기를 바랐다.
(왼쪽) Site plan drawing, (오른쪽) Section perspective
살아남은 땅이 가지는 힘
이 땅은 좁고 긴 독특한 삼각형으로, 마치 도시에서 잘려 나온 조각처럼 보였다. 먼 과거에 대지 동측의 격자형 단독주택지 개발, 가까운 과거에 대지 서측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개발에서 살아남은 자투리땅이 아닐까 추측된다. 도시개발 계획의 구멍 같기도 한, 마치 사람의 손길이 미처 닿지 않은 남겨진 자연 같았다. 이웃집은 이 동네에서 가장 오래돼 보이는 커다란 지붕을 가지고 원래 땅의 모습을 지키고 있고, 대지의 전면 도로는 새로 생긴 길로, 이 땅의 모양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땅이 가진 형태의 매력이 단지 외부 공간에 국한되지 않고 내외부 전체를 아우르게 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땅을 꽉 채울까, 어디를 조금 비울까 하는 생각보다는, 잘리고 꺾인 땅의 모양에 반응하는 건축, 땅의 힘이 건축으로 이어지게 하고 싶었다.

집의 모임
용적률을 최대화하기 위해 땅을 꽉 채우고, 법규에 의해 매스를 다듬는 디자인 방식이 하나 있다면, 이 집은 여러 개의 작은 집이 모여 있는 방식이다. 삼각형 땅에 작은 집이 서로 어긋나면서 모여 있고 그 어긋남은 각각을 객체이자 집합체로서 인식되도록 한다. 동시에 집이 마을로 조금 더 열리게 한다. 지면의 작은 마당은, 2층에서 임대 세대의 외부 현관이 되기도 하고, 3층에서는 두 면이 열린 테라스가 된다. 약간 어긋나고 조금 떨어져 있는 집들은 서로를 바라볼 수 있어 마치 스스로를 바라보면서도 타인을 바라보는 듯한 거리감을 가진다.
부분이 모여서 전체를 만드는 형태의 직관성, 즉 여러 채의 집이 모여 있는 형태는 사는 사람에게도 복수의 감각을 부여한다. 하나의 집을 나누어 산다는 감각이 아니라, 각자의 집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다.
세 개의 집, 지붕이 서로 겹쳐진 형태는 여러 집이 모인 것처럼 군체의 형상을 띤다. 하나의 완결된 오브제가 아닌 조직적이며 옆집과 내 집, 앞집이 삼삼오오 이웃한 광경처럼, 마을과 같은 건축, 도시와 같은 건축은 집합체적 집이라고 생각했다.
동적 건축
작은 집 여러 개가 모여서 만들어내는 집합체는 건축에 운동성을 부여한다. 건축은 고정된 존재이지만 운동성이 부여된다면? 마치 움직이는 생명체가 정지되어 있는 것 같은, 스테이블과 무버블의 사이 어딘가의 감각이다. 달리는 치타의 사진을 보면 정지된 상태임에도 달리는 상황이 상상되듯이, 정지된 건물에도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어떤 생명력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건축은 멈춰 있고 움직이는 것은 그 안에 사는 사람뿐이지만 이 안에사는 많은 사람의 다양한 움직임의 배경이 되면서도 또 다른 감각을 가진 배경이 될 수 있지 않을까?

Structural diagram
생활감을 만드는 작은 요소들이 만드는 질서
이 집은 주변 집들처럼 박공지붕과 세 개 층의 낮은 볼륨을 가지고 있다. 적층된 슬래브 사이에 각기 다른 창과 창턱, 밖으로 열리는 곳의 처마와 발코니, 길과 만나는 외부 계단, 교차로를 향해 전망대처럼 튀어나온 테라스 등의 건축적 요소들이 이 주택을 둘러싸고 있다. 동시에 숨길 수 있는 물홈통, 배기구 등도 일부러 드러내 집의 물이나 연기, 냄새 등이 밖으로 흘러나온다. 이 건축적 요소들은 사람의 물건과 함께 집의 생활감을 드러내는 바탕이 되어줄 것이다.

마을과 같은 집
건축은 아름다워야 한다. 민가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있다. 사람의 생활이 형태화된, 마치 숲속에 불규칙하게 피어 있는 야생화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 같다. 우리는 도시와 건축이 반대의 개념이거나 한쪽에 속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성질의 세계를 가지면서도 하나의 틀 안에 공존하고 있어서 마치 양면으로 뒤집어서 입을 수 있는 리버서블웨어 같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적인 공공성’에 대한 탐구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과 만남이 일어나는 생활적 개방감을 가진 집, 불특정 다수를 위한 장르화된 공공성이 아니라, 사적이지만 외부로 흘러나와 일종의 공공성이 뭍어나는 풍경을 이루기 시작한다. 개인의 생활을 밖으로 내보냄으로써 주택과 도시 사이에서 생겨나는 작은 공공장소들이다. 다시 모인 대가족, 작은 질서들의 집합체이자 군체로서 존재하는 건축, 개인의 삶을 발신하는 존재로서 이 집들이 마을에 서 있을 때, 근대 이후 사라진 마을의 공공성을 새롭게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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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헤제 건축(이해든, 최재필)
김동경, 이지영
서울시 서초구
다가구주택
177.7m²
106.1m²
199.7m²
지상 3층
3대
11.27m
59.7%
112.3%
철근콘크리트조, 철골조
노출콘크리트, 스터코, 아연도강판
수성페인트, 우드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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