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1월호 (통권 698호)

일탈의 첫 번째 물결
오늘날 건축가들이 직면한 세계는 그들의 스승이 살았던 그곳이 아니다. “경제 위기 이전 공부를 할 때, 학교에서는 우리에게 박물관, 공공건물, 혹은 큰 규모의 건축을 설계하게 될 것처럼 가르쳤다. 그러나 졸업 후 유럽은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갔다.”(팔라, 본지 61쪽) 어디에서 건축을 하고 있든 많은 건축가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기회가 줄어든 사실뿐 아니라 극단적으로 상업화된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건축의 본질을 추구할 수 있는가? 혹은 오늘날 건축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것인가? 아니면 오늘의 건축가에게 이러한 태도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가혹한 생각인가?
「SPACE(공간)」 이번 호 FRAME에서는 알바로 시자의 나라 포르투갈의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며 ‘진지한 건축’의 개념 자체에 도전하는 팔라(공동대표 필리프 마갈량이스, 아나 루이사 소아레스, 아흐메드 벨호자, 레라 사모비치)의 근작을 소개한다. 한국에서 건축하며 가르치고 있는 포르투갈 건축가 페드로 페레이라는 공격적인 부동산 투기의 무대가 된 2010년대 포르투에 등장한 팔라가 ‘값싸고 빠른 리노베이션’을 원하는 실용적 투자자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발명적 전략’을 구사하며 익명의 상품(stock)을 건축적 논쟁이 가능한 장 위로 올려놓았다고 평가한다.
2013년 결성된 팔라는 당시 작은 인테리어나 소규모 주택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에서 생생한 색채와 그래픽 콜라주, 엄격한 기하학적 언어를 통해 대중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건축적 비판성을 유지하며 도발적인 인상을 남겼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그들의 포트폴리오는 종종 대규모 집합주거, 복합공간 등으로 확장되기도 하지만 강력한 구심점으로 빨려 들어가듯 동일한 요소가 집요하게 반복, 변주되며 개념을 두텁게 만들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최근 완공된 네 개의 작업 143(기둥을 둘러싼 집, 2025), 144(세 가지 체계의 집, 2025), 156(쿠키 커터 리트리트, 2024), 171(코멘트로 이뤄진 집, 2024)을 소개한다. 마치 거대한 연작처럼 일련번호가 매겨진 그들의 작업은 벽, 창, 기둥, 난간 등 기본적인 건축 요소들을 생경한 방식으로 조합하고 절개하며 유희적으로 과장한다. 특히 156은 알바로 시자, 이토 도요, 프랭크 게리와 같은 거장 건축가들의 평면 일부를 기하학적 체계 안에 말 그대로 붙여넣으며(copy and paste) 통상적인 인용과 참조의 방식을 배반한다. 지난 몇 년간 팔라와 교류해왔던 서재원(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대표)은 팔라와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독특한 도면, 사진과 건축적 개념 사이의 관계, 재현과 허구에 관해 살펴본다. 또한 “글로벌한 흐름 속에서 태어난 건축가로서, 그들은 자신의 계보를 스스로 선택했고, 먼 곳의 영웅들을 마치 지역의 인물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는 페드로의 묘사처럼, 팔라에게 영향을 준 시노하라 가즈오 같은 일본 건축가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이번 호부터 2회에 걸쳐 소개하는 구마 겐고의 인터뷰에서, 구마는 시노하라 가즈오의 주택이야말로 추상적 방법론이 도달한 극치라고 평하면서도, 좀 더 인간적인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비판적 시선을 드러냈던 것과 비교하면 흥미롭다—「SPACE」 699호 ARCHITECT 섹션 수록 예정.)
팔라는 지난 반세기 동안 알바로 시자로 대표되는 미학을 추구해왔던 포르투 건축계에서 고유한 사고와 건축 방식을 구축하려는 ‘첫 번째 물결’이었다고 스스로를 설명한다. 2026년, 60주년을 맞이하는 「SPACE」의 첫 번째 FRAME으로 소개하는 포르투갈과 한국을 가로지르는 대화가 생산적인 파동으로 독자들에게 가닿기를 바란다.
더불어 「SPACE」의 리뉴얼 소식을 알린다. 폭넓은 건축가들의 작업과 생각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하기 위해 FOCUS와 ARCHITECT 섹션을 신설했고, 더 많은 예술계 소식을 알리기 위해 마련한 EXHIBITION 섹션에서는 전시 기사에 집중할 예정이다. 편집디자인까지 새롭게 가다듬은 「SPACE」의 새해 행보에도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편집장 김정은



「SPACE(공간)」 2026년 1월호 (통권 698호) 목차
004 EDITORIAL
006 NEWS
022 FRAME
엄밀한 유희: 팔라
024 FRAME: CRITIQUE
이미지, 낙관주의, 그리고 현대 포르투갈의 후기 수사학적 적응형 건축_ 페드로 페레이라
032 FRAME: PROJECT
143 기둥을 둘러싼 집
038 FRAME: PROJECT
144 세 가지 체계의 집
044 FRAME: PROJECT
156 쿠키 커터 리트리트
052 FRAME: PROJECT
171 코멘트로 이뤄진 집
060 FRAME: DIALOGUE
생일 빌라의 수학_ 팔라 × 서재원
068 PROJECT
주택 겸 스튜디오 O ‐ 오헤제 건축
078 PROJECT
원당 게이트볼 경기장 ‐ SSK
088 FOCUS
흩어진 중심 : 산대리 주택 ‐ 씨엠엠 건축사사무소
092 FOCUS
담담 ‐ 스튜디오 에스엠에이+그라운드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096 ARCHITECT
관계성에 기반한 건축을 향해 (상): 구마 겐고_ 구마 겐고 × 정인하
106 EXHIBITION
소멸과 축소의 시대, 짓기와 거주하기: 〈2025 부산현대미술관 플랫폼_나의 집이 나〉_ 방유경
114 EXHIBITION
경계에서 유토피아를 묻다: 2025 무각-바스크 국제건축비엔날레_ 마리아 아라나 수비아테, 세바스티안 바요 × 김보경
122 EXHIBITION
리테일, 유산, 전시를 가로지르는: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_ 김정은
126 RELAY INTERVIEW: I AM AN ARCHITECT
지역과 공동체에 순응하는: 문주원_ 문주원 × 김혜린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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