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MSPACE는 국내 최고의 건축 포털 매거진입니다. 회원가입을 하시면 보다 편리하게 정보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ogin 회원가입
Naver 로그인


도시의 기억을 담은 환대의 공간: 아트사이트 소제

아뗄리에 장 + 태라공간 건축사사무소

글
장수현
사진
신경섭(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아뗄리에 장
진행
방유경 기자
background

「SPACE(공간)」 2026년 4월호 (통권 701호) 

 

©Bang Yukyung 

 

 

 

철도 도시와 관사촌

소제동과의 인연은 적응적 재사용을 주제로 대학에서 설계 스튜디오를 진행하면서 시작됐다. 학생들과 리서치할 장소를 찾던 중 대전에 있던 건축주를 통해 소제동을 알게 됐다. 세 학기에 걸쳐 학생들과 지역 일대를 연구하면서 소제동에 얽힌 역사와 함께 최근 이슈들을 접할 수 있었다. 대전시 동구에 위치한 소제동은 원래 소제호라는 호수가 있던 동네다. 1900년대 초, 일제에 의해 철도가 부설되면서 소제호는 매립되었고 철도와 평행하게 대동천이 흐르게 되었다. 소제동은 대전역 주변에 형성된 철도 노동자를 위한 관사촌 중 한 곳이다. 국내에 남아 있는 가장 큰 철도관사촌으로 당시 건축적·공간적 특징을 간직하고 있어 역사적·문화적 의미가 깊다. 한국전쟁 이후 급격한 도시 개발에서 주목받지 못한 채 옛 모습을 간직하게 된 관사촌 일대는 2010년대에 예술가들의 활동 거점(소제창작촌)이 형성되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100년이 넘은 목조건물(관사)과 리모델링된 건물들이 어우러지면서 침체되었던 동네는 아트벨트, 빵 축제 같은 지역 행사에 힘입어 하루에도 몇 만 명이 찾아오는 목적지로 변화했다. 2020년에 접어들면서 대전역세권 복합재개발 사업에도 시동이 걸렸다. 소제동 주위에 30~70층의 주상복합과 업무단지 신축 계획이 수립되면서 주변 도로와 트램 라인이 새롭게 정비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속 가능한 도새재생

이런 변화 속에 소제동을 보존하려는 논의도 함께 진행됐다. 개별 건물이 아니라 소제동 전체를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한편 2019년부터 민간 업체 주도로 진행된 상업적 도시재생은 몇 동의 관사를 카페와 음식점 등 특색 있는 콘셉트의 핫플레이스로 리모델링해 일반인의 관심도를 높여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임대료 상승과 부동산 과열로 이어져 젠트리피케이션을 초래했고, 6년이 지난 현재 신상 카페 주위로는 관리되지 않는 폐가가 늘어나고 주거 환경은 급속히 쇠퇴한 모습이다.

대전역세권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소제동을 포함한 대전 원도심 일대는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제동과 인동 일원에서 지역문화 기반 조성사업을 추진해온 건축주▼1는 지역이 지닌 고유한 장소성과 문화유산적 가치를 보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아래 뜻을 모으게 되었다. 이에 공공이 소제동 일대의 도로와 공공시설 등 기반 인프라를 구축하고, 민간은 지속 가능한 문화사업을 유치하는 방식의 협력적 사업 구조가 형성됐다. 마을의 유동 인구를 확대하고 지역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콘텐츠 중심의 문화예술 프로그램과 이를 수용할 물리적 환경이 함께 조성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 속에서 소제동 일대에 군집을 이루고 있던 관사촌을 재해석하여 리노베이션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당시 대전시는 이 지역을 ‘엑스포와 같은 컨벤션 도시’로 발전시킬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었고, 인근의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대전지점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생한 경험이 있었던 건축주▼2는 새로운 문화 프로그램을 수용할 수 있는 가변적인 미디어아트 전시관을 요구했다. 1920년대 조성된 소제동 관사촌은 필지 북측에 건물을 배치하고 남측에 독립된 뒷마당을 두는 공간구성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관사촌의 공간적 특성, 즉 골목과 마당이 만들어내는 연속적인 외부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마을의 골목과 마당을 하나의 전시 동선으로 연결하여,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마을 단위의 가변적 전시 플랫폼 구축을 설계의 목표로 삼았다.

 

 

 

 

 

 

아트사이트 소제의 마스터플랜

‘가변적인 건축’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영국 건축가 세드릭 프라이스의 펀 팰리스(1963)였다. 그는 오픈된 큰 홀 안에서 사용자들의 참여를 통해 다양한 문화활동 프로그램이 설치되고 철거되며 진화한다는 아이디어를 반영해, 대규모 트러스 구조의 프레임 안에서 미술, 콘서트, 공예 등 변화하는 프로그램에 내부 구조와 공간이 대응하는 상상의 건축물을 제안했다. 펀 팰리스에서 건물과 사용자의 상호작용이 ‘건물 안’에서 이루어졌다면, 이곳에서는 건물의 경계를 넘어 소제동의 ‘주변 공간으로’ 상호작용의 범위를 도시 스케일까지 확장한다는 방향을 세웠다.

건축주가 소유한 대지에는 오래된 관사와 창고가 있었다. 전시장이 들어설 대지 안에서 최대 볼륨을 확보하기 위해, 전시장에 필요한 공용 공간을 주변 건물로 분산하고 이들을 소제동 특유의 골목과 중정으로 연결하는 마스터플랜을 구상했다. 총 5개 동으로 이루어진 이 프로젝트는 대지 전체가 함께 작동한다는 의미에서 ‘아트사이트 소제’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2024년 중순에 가장 먼저 관사 세 동을 각각 리셉션 카페와 반려견 카페로 바꾸는 리노베이션 공사를 시작했다. 대동천을 마주한 관사의 작은 방을 철거한 뒤 그 자리에 긴 골목을 내어 천변에서 바로 진입할 수 있는 입구를 만들고, 휠체어가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바닥을 경사면으로 처리했다. 어둡고 음침했던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메탈 패널로 골목의 외벽과 캐노피를 조성하고 입구에 아늑한 느낌의 조명을 설치했다. 이 골목을 따라 걸어 들어오면 7×10m 크기의 작은 중정을 만나게 된다. 중정 왼쪽에 위치한 리셉션 카페는 매표와 로비의 역할을 겸한 공간이다. 이 카페를 통과해 반대편으로 나가면 전시장과 마주하고 있는 마당이 나온다. 누구나 머물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조성된 마당은 기존에 있던 두 관사의 뒷마당을 하나로 합친 곳으로, 필지의 고저 차로 인해 생긴 70cm 높이의 기단을 계단식 관중석으로 만들어 행사를 열 수 있도록 했다. 주변 목조건물의 재료적 특성을 살려 긴 목재 벤치들을 계단 중간중간 배치해 공공 공간이 거의 없는 소제동에서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자 했다.

 

 

 

Master plan axonometric 

 

 

 

파사드로 대응하는 가변형 전시장

이러한 맥락에 맞춰, 마당을 마주하고 있는 전시장은 폐쇄적인 유형이 아닌 내외부 경계를 넘나드는 공간으로 제안했다. 전시장은 높이 11m, 넓이 10m, 길이 20m의 단일 공간을 형성한다. 이상적인 음환경을 위한 비례에 맞춰 공간의 볼륨을 설계했기 때문에 미디어아트나 팝업 등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한다. 특히 외부와 단절된 기존의 미디어아트 전시장과는 다르게 전시장 두 면을 개폐형으로 설계해 다양한 종류의 아트와 퍼포먼스를 담을 수 있도록 계획했다. 전시 상황에 따라 자연광, 출입 동선 등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전시장 파사드를 전면 개방하면 관람객들이 마당과 카페, 측면의 공용 계단까지 골목을 통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몰입된 경험을 제공하는 전시장 내부와 달리 파사드에서는 개방감과 가변성을 두드러지게 보여주고자 했다. 파사드가 건물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길을 지나가는 이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소제동 관사촌에 자주 사용된 콘크리트 기와에서 영감을 얻었다. 기와 단면을 모티브로 삼아 철로의 메탈을 접목한 수직 루버로 지붕이 아닌 입면을 감싼 것이다. 1,800×4,700mm 모듈의 패널 12개로 구성된 파사드는 열고 닫는 정도에 따라 전혀 다른 공간감을 자아낸다. 패널이 전부 닫힌 상태에서는 빛이 들어오지 않아 미디어아트나 몰입감 있는 콘텐츠의 전시가 가능하고, 패널을 번갈아 열면 문 크기의 개구부가 생겨 개방감을 주며, 모든 패널을 열었을 때는 3m가 넘는 파노라마 창을 통해 전시장 안의 풍경은 도시로 확산되고, 소제동의 경치는 전시장 안으로 밀려들어온다. 전시 콘텐츠에 따라 전동으로 움직이는 파사드를 재구성할 수 있기 때문에 건물의 외관 또한 다채롭게 변화하게 된다.

아트사이트 소제는 유기적인 경험들의 집합으로 구성된 공간이다. 골목을 걷고, 중정을 지나 카페에 앉았다가 마당에서 사색을 하고, 전시장에 도착하는 일련의 과정은 다양한 시간과 공간을 경험하는 여정을 선사한다. 관사촌의 기억과 풍경을 간직한 이곳은 지금도 확장 중이다. 대동천변을 따라 전시 공간이 조성되면 개별 건물이 아닌 마을로서의 모습을 더욱 갖추게 될 것이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공존하는 아트사이트 소제가 사람들을 환대하는 열린 문화 공간으로 진화해나가기를 바란다.​ 

 

 

 

 

 

 

 

_

1 건축주인 관사마을(주)은 CNCITY에너지의 자회사다.

2 CNCITY에너지, CNCITY마음에너지재단, 관사마을(주)​ 

 

 

 

 

 

월간 「SPACE(공간)」 701호(2026년 04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계

(주)아뗄리에 장(장수현) + (주)태라공간 건축사사무소(김윤희)

설계담당

신혜영

위치

대전시 동구 소제동

용도

문화 및 집회시설(전시장), 근린생활시설(카페)

대지면적

전시장 ‐ 642m² / 리셉션 카페 ‐ 274m² / 반려견 카페

건축면적

전시장 ‐ 302.6m² / 리셉션 카페 ‐ 72m² / 반려견 카

연면적

전시장 ‐ 302.6m² / 리셉션 카페 ‐ 72m² / 반려견 카

규모

지상 1층

주차

3대

높이

12.7m(전시장)

건폐율

43.35%(전시장)

용적률

47.2%(전시장)

구조

철골조(전시장)

외부마감

전시장 ‐ 스터코, 메탈 루버 / 리셉션 카페, 반려견 카페 ‐ 유리

내부마감

석고보드, 흡음 페인트

구조설계

(주)터구조

기계설계

(주)건일엔지니어링

시공

(주)두성건설, (주)엔지디

설계기간

2024. 1. ~ 2025. 3.

시공기간

2024. 11. ~ 2025. 5.(전시장)

건축주

관사마을(주)

조경

밀알화훼조경


장수현
장수현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에서 건축 학사를,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건축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미국의 미디어랩과 모포시스, 영국의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에서 인턴을 했으며, 스위스 바젤의 헤르조그&드 뫼롱에서 건축가로서 4년 동안 스위스, 영국, 인도, 브라질의 대형 미술관, 스타디움, 문화센터 프로젝트를 설계했다. 2011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아뗄리에 장을 열었고 이후 런던에서 국가유산 건물들의 리모델링과 국내 신축 프로젝트를 이어나갔다. 현재는 사무실을 한국으로 옮겨 국내외 문화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