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을 실체로 바꾸는 기다림
서울 북한산 자락의 홍은동, 이곳에 한 단독주택을 계획했다. 준공 후 건축주 내외는 이 집을 ‘고도(Godot)’라 명명했다.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빌려온 이름이다. 치솟는 지가와 공사비 탓에 ‘내 집 짓기’가 실현 불가능한 허상을 쫓는 일처럼 느껴지는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주는 오로지 자신들만을 위한 공간을 일구겠다는 용기 있는 결단으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모순을 수용하는 건축
이 집의 초기 예명은 ‘숨숨집’이었다. 외부 시선에 다소 내성적인 젊은 부부와 고양이 두 마리가 함께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여러 층위의 모순적 요구들을 내포하고 있었다. 사적인 은신처여야 하지만 동시에 존재감을 드러내야 했고, 외부로 닫혀 있으면서도 내부는 한없이 밝아야 했다. 작은 면적 안에서 다채로운 행위를 수용해야 했으며, 누군가에게는 아늑한 휴식처가,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작업 공간이 되어야 했다. 고양이와 사람 모두의 행복을 담보해야 하는 이 모순적인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전형적인 주택 구성 방식과는 궤를 달리하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했다.

캣타워: 수직으로 적층된 기능적 볼륨
우리는 공간을 수평적으로 나열하는 대신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방식을 제안했다. 계단을 중심축 삼아 반 개층씩 이동하며 각 층에 명확한 기능을 부여하는 스킵플로어(Skip-floor) 형식을 취한 것이다. 주차장과 현관에서 시작해 작업실, 거실, 주방, 음악실, 침실, 그리고 명상 공간과 옥상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기능들이 수직적 위계에 따라 배치된다. 이는 단순한 '면적'의 분할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연결된 '볼륨'의 입체적 경험을 극대화하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숨숨집: 중첩된 외벽이 만드는 내밀한 풍경
수직적으로 구성된 공간을 감싸기 위해 두 개의 외벽 시스템을 도입했다. 내측의 첫 번째 외벽은 최대한 개방하여 외부 환경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스킨이며, 외측의 두 번째 외벽은 주변 공동주택의 시선으로부터 거주자를 보호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개구부를 설정한 스크린이다. 이 두 벽 사이의 틈에는 작은 조경 공간들을 배치해 집 안 곳곳에서 다채로운 프레임의 풍경을 마주하게 했다. 수직적 보이드(Void)를 따라 올라갈수록 시선은 주변의 간섭에서 자유로워지고, 비로소 북한산의 나무와 능선이라는 광활한 조망을 온전히 점유하게 된다.

기다림의 끝에 마주한 집
천편일률적인 평면의 공동주택 시대에 이 집은 우리에게 ‘왜 집을 지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계획부터 구축에 이르기까지, 집이라는 실체를 기다려온 건축주의 태도와 노력이 공간 곳곳에 투영되어 있다. 정제된 외벽 너머의 공간을 상상하게 만드는 이 집이, 서울이라는 도심 속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꿈꾸는 이들에게 더 이상 허상이 아닌 실재하는 위안의 기록이 되기를 바란다.
1, 2층 평면도

3, 4층 평면도
단면도

정면도(왼쪽), 배면도(오른쪽)

우측면도(왼쪽), 좌측면도(오른쪽)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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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건축사사무소 (김미희 고석홍)
나원창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
단독주택
127.12㎡
73.08㎡
182.08㎡
지상 4층
2대
10.91m
57.49%
148.23%
철근콘크리트구조
스터코 (외단열시스템) , 노출콘크리트(중단열)
친환경 페인트 , 원목마루
㈜한길구조엔지니어링
㈜이래엠이씨
직영공사
2023. 10 ~ 2024. 05
2024. 05 ~ 2025. 03
베르에블랑
소수건축사사무소 (김미희 고석홍)
고석홍은 남서울대학교 건축학부에서 겸임 교수로 출강 중이다. 김미희는 현재 서울시 공공건축가 활동하며, 한양대학교 건축학부에서 겸임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