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번동주택(고안된 장식들)은 집의 이미지, 그 원형을 되짚어 본 작업이었다. 내 친구 정락이네 집에는 주물 대문이 있었고 그 문을 열면 잘 정리된 조경수들과 함께 잔디마당이 펼쳐져 있었다. 큰 개들이 뒹굴었고 대문보다 더 큰 거실 창은 마당으로 열려 있었다. 이건 뭐랄까. 나에겐 판타지, 판타지의 전형. 어릴 적 내가 살던 우리집은 아버지가 일하던 전방을 통해야만 갈 수 있었다. 전방에서는 담배 냄새가 났고 시시껄렁한 양아치 삼촌들이 내 꼬추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기에 잽싸게 통과해야만 했다. 다시 외부로 나가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똘이(콜리+삽사리) 집과 수돗가가 계단참에 있었고 차례로 작은 등나무 퍼걸러와 녹슨 그네가 있던 우리집. 진짜 집의 기억.
나는 창녕 영산 출신이지만 서울 녹번동에선 고향의 냄새가 났다. 대지의 두 면에 접한 담장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좁은 길로 들어서게 된다. 작은 대문이 있지만 변하는 건 없다. 개의치 않고 또다시 좁은 길이 이어진다. 좁은 길은 계단을 지나면 축축한 바닥이 된다. 작업실 유리창에 손바닥 지문을 남기면서 2층까지 난 외부계단을 올라가면 비로소 거실이 나오는 진짜 집의 이미지였다.
Produced by SPACE Magazine
Directed by Rohspace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윤한진
윤한진은 푸하하하프렌즈 공동대표다. 날카로운 눈으로 사물의 이면을 본다. 보통 이면을 보다가 앞면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다소 날카로워 보이지만 실제 성격은 온순한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