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석, 김건호, 이종철로 구성된 설계회사(SGHS)는 2015년 사무소를 설립한 이후로 미술관의 기획전시와 스무 개가 넘는 설계공모에 참여하면서 꾸준히 건축 활동을 이어왔다. 그들은 ‘설계회사’라는 일반명사를 사무소 이름으로 내걸며 하나의 목소리를 사회에 던지고자 한다. 이번 리포트에서는 비록 물리적으로 지어지지는 못했으나 과거의 현상과 지금의 상황, 이전의 작업과 이후의 작업을 연결하고자 했던 설계회사의 시도를 살펴보면서, 그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내러티브에 대해 들으려 한다.
인터뷰 강현석, 김건호, 이종철 × 김예람
김예람: 설계회사의 작업 목록을 살펴보면 설계공모에 참가하면서 만든 프로젝트의 비중이 크다. 2015년 사무소를 차리게 된 계기도 국제설계공모 때문이라고 들었다.
김건호: 2014년 3월에 열린 서소문 역사공원 및 성지 역사박물관 설계공모에 참여하면서 강현석과 협업을 시작했다. 당시 나는 미국 케임브리지에서 대학원 졸업을 앞둔 상황이었고 강현석은 스위스 바젤에서 다음 커리어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발이 꽤 잘 맞았다. 설계공모가 끝나고 맨땅에 헤딩하듯이 설계회사를 차렸다. 올해부터 공동대표가 된 이종철도 다수의 설계공모에서 협업하다가 서울시문화자원센터 설계공모 당선을 계기로 사무소에 합류했다.
김예람: 설계회사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건축물과 콘셉트 이미지의 일부를 확대한 섬네일이 2열 종대로 배치되어있다. 섬네일을 클릭해보면 구체적 설명 없이 이미지 몇 장만이 나열된다. 건축가가 설계한 프로젝트를 열람할 수 있는 온라인 환경에서 건물의 전경을 바로 보여주지 않는 이유와 글을 통해 위치, 프로그램, 클라이언트 등의 정보를 서술하지 않는 까닭이 궁금하다.
강현석: 웹사이트가 친절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웃음) 우리가 설계해온 프로젝트는 대부분 지어지지 않았다. 준공되지 않은 작업을 강조하기보다는 우리의 고민이 들어간 결과물이 누적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홈페이지의 첫 화면에 프로젝트 제목 대신 작업의 일련 번호를 적었다.
김건호: 가끔은 정보가 작품을 바라보는 고정관념을 심어줄 때가 있다. 텍스트는 이미지보다 직접적으로 프로젝트의 내용을 전달하는 장점이 있지만, 필요 이상의 정보를 제공하면서 공간을 상상하는 경험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가 설계한 공간을 곱씹어보도록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건물을 설명하는 텍스트를 배제했다. 이런 환경은 같은 이미지를 보더라도 매번 다른 식으로 프로젝트를 읽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촉발한다.
‘빌딩’,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 일민미술관, 2016
김예람: 적은 수의 시각자료를 가지고 프로젝트를 이야기하는 일이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다. 효과적으로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이미지 간의 연계를 분명하게 보여줘야 하는데, 설계회사는 그 내러티브를 어떻게 만들고 있나?
이종철: 건축을 설명하기 위해 순차적으로 보여지는 장면들도 내러티브라 할 수 있지만, 과거의 사건이나 건축물을 가져와 지금의 상황과 연결하는 것 자체도 내러티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례를 수집하는 건축가의 일반적 접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거의 사건과 그것이 발생한 이유에서 교훈을 삼을 만한 것을 찾고, 그것을 지금 시대의 프로젝트에 맞게 적용하는 일이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물론 전체 설계과정에서 이 단계에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군더더기 없는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을 들여야 한다.
김예람: 그래서인지 설계회사의 작품 설명문에는 ‘밑바탕’, ‘프레임’처럼 내러티브의 배경이 되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동안 과거의 사건과 접점을 맺고자 하는 전시에 여러 번 참여했는데, 어떠한 사건들을 작품과 연결했는지 이야기해 달라.
김건호: 일민미술관이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2016)를 기획하면서 여러 장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를 모았다. 그 중 한 팀인 우리는 건축가의 시선으로 국내 시각예술계에 대한 감상을 표현해줄 것을 요청받았다. 당시 시각예술계는 독립출판을 통해 재료, 판형, 주제 등이 일정하지 않은 결과물을 생산했는데, 이런 흐름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불규칙하게 변형된 종이를 여러 겹을 쌓은 ‘빌딩’을 출품했다. 건물과 그것을 짓는 행위를 의미하는 이 작품을 보고 관람객이 전시가 다루는 10년의 시간을 각자 다양하게 해석하도록 유도했다.
강현석: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 (2019)에서는 1970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만국박람회를 다뤘다. 당시 한국관을 조성하면서 발생한 국가와 건축가의 입장 충돌을 주제로 내러티브를 구상했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12개의 이미지를 지름 3.6m의 병풍에 담았다. 병풍의 너비는 만국박람회 한국관 기둥의 지름에서 가져왔다.
‘빌딩 스테이츠’,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 아르코미술관, 2019
김예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개관 30주년을 기념하는 〈공간변형프로젝트 - 상상의 항해〉(2016)는 건축가의 드로잉으로 오래된 미술관을 재해석하는 전시다. 이 전시에서 ‘잔존자로서의 미술관’을 선보였는데, 이 작품은 어떠한 이야기를 담고 있나?
강현석: 2013년 서울관이 종로에 생기면서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낮은 과천관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 이 모습을 보고 과천관이 화이트 큐브의 개념으로부터 탈피한 미술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되려면 스스로를 잔존자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았다. 미술관이 주변과의 경계를 지웠을 때 새로운 전시를 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전시 공간으로서의 생명력을 연장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김건호: 개인적으로는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영화 ‘노스탤지어’(1983)에 나오는 장면을 상상했다. 폐허가 된 교회의 모습과 자연이 중첩되는 장면이었는데, 그것이 잔존자로서의 공간에 어울리는 이미지 같았다. 그래서 건물의 슬래브와 기둥만 남겨 주변 환경이 미술관 내부에 들어오는 작품을 그렸다. 드로잉의 배경을 보면 돌과 나무 텍스처가 입혀졌는데 그런 부분에서 자연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김예람: 평면도로 새로운 유형의 미술관을 표현했는데, 이 형식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건호: 평면도는 건물이 대지를, 프로그램이 층을 어떻게 점유하는지를 말해준다. 과천관의 평면은 이미 강력한 기하 도형으로 이뤄져있는데, 우리는 여기에 새로운 도형을 얹었다. 관람객이 이 드로잉을 보고 지금의 미술관과 우리가 재해석한 전시공간을 비교·상상해주기를 바랐다.
김예람: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2017〉(2017)에서도 평면에 새로운 요소를 더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옥상에 파빌리온을 설계하면서 주변 환경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자 했나?
강현석: 파빌리온은 특정한 기간에 설치됐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경험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런 경험을 만들기 위해서는 파빌리온이 지어질 시기의 어젠다를 활용하여 주변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시간이 지나더라도 사람들이 파빌리온을 떠올릴 테니. 우리가 ‘파티오’를 설계할 당시에 사회가 촛불집회, 탄핵, 대선 등의 정치적 사건으로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광화문은 그 혼란의 중심에 있었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옥상은 광화문, 경복궁, 청와대, 인왕산 같은 정치적 상징들을 중첩된 파노라마로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파빌리온이 지어질 쯤이면 많은 것이 정리되어 있을 것이고, 시민들에게는 휴식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다. 사람들이 한 줄로 앉아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그때와 지금의 사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집단기억의 공간을 제공하고 싶었다.
‘파티오’,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2017〉,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17
김예람: 지난 8월 팩토리2에서 열린 〈아넥스 프로젝트: 컷신〉에서는 과거 사건과의 연결이 아닌 설계한 건축물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내러티브를 선택한 듯하다. 이 전시에서 열 개의 설계 공모전에 참가하며 만들어진 부산물을 나열했는데, 그것을 엮기 위해 게임 용어인 ‘컷신’을 사용한 이유가 궁금하다.

서울시문화자원센터 설계공모안의 모형
선유도 보행잔교 및 한강 수상갤러리 설계공모안의 이미지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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