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한 이후 우리의 일상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외출할 때에는 마스크가 필수고, 가방에는 늘 손소독제가 있으며, 누군가를 만나야 할 때에는 카페가 아닌 온라인 화상회의를 이용한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지만 이 상황은 빠르게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앞으로는 또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을 살펴보며, 이곳이 아닌 다른 어딘가를 상상한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한 탐구는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다만 오늘날에는 코로나19를 포함한 여러 상황으로 인해 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으로 일어나고 있다.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이러한 현재진행형의 탐구들에 주목한다. 현실의 가장자리를 짚으며 이면의 세계를 탐구하는 동시대 작가들을 초대해 전시 <다른 곳>을 열었다. 김동희, 김희천, 노상호, 손광주, 조재영이 참여한 이번 전시는 설치, 회화, 영상 등 다양한 작품들로 구성됐다. 그들이 상상하는 다른 곳은 무엇일까? 2020년 아뜰리에 에르메스에 부임해 첫 번째 기획전시 <다른 곳>을 선보인 안소연에게 전시의 이면에 놓인 이야기들에 대해 물었다.

조재영, ‘허공의 단면들’, 판지, 접착지, 철제 프레임, 가변크기, 2020

손광주, ‘가위 바위 보’, 싱글채널비디오, 9분, 2020
인터뷰 안소연 아뜰리에 에르메스 아티스틱 디렉터 × 최은화 기자
최은화(최): 이번 전시의 주제는 ‘다른 곳’이다. ‘치열한 현장’, ‘수많은 난관들과 경계로 가로막힌 곳’, ‘여러 공간들이 겹쳐진 일종의 헤테로토피아’ 등으로 표현되는 우리의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어떤 곳을 상상해보는 시도다. 어떤 계기로 이번 전시를 준비하게 되었는가?
안소연(안): 두 면의 그물망이 교차된 결과물로 봐주면 좋겠다. 현재진행형의 작업들을 가능하면 다양하게 소개하고자 했고, 동시대를 조망하는 작가들의 태도 속에서 유의미한 공통점을 찾아 드러내고자 했다. 시스템화되어 가는 사회와 미술 제도에 의문을 가지고 대안의 공동체를 모색하며 인간적 관계를 회복하려는 작은 유토피아 운동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다만, 최근 동시대 작가들에게서 감지되는 무심하면서도 개별적인 태도, 그리고 탐구에 가까운 수준으로 자기 세계를 확보해나가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이번 전시의 경우, 주제를 정하고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작가를 선정하기보다는, 여러 작가들이 이미 공유하는 아이디어를 규정하고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최: 전시 주제인 ‘다른 곳’은 ‘지금, 여기’가 아닌 어떤 곳을 탐구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을 면밀히 살피고 오늘날의 위치를 되묻는 방식이 전제된다. 예술계나 작가들뿐만 아니라 코로나19가 지속되는 지금 우리 모두의 현실을 관통하는 주제인 듯하다. 동시대 미술계에서 바라보는 ‘지금, 여기’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안: ‘다른 곳’의 개념은 예술의 본성과 분리할 수 없을 만큼 근원적이다. ‘다른 곳’에 대한 수많은 상상을 통해 우리는 인식의 지평을 넓혀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세계화 이후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비장소들, 이제는 현실과의 평행 세계라 해도 과언이 아닌 사이버 공간들, 오늘날 팬데믹으로 인해 공간 단절 등이 생겨났고 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기이하게 여겨지는 공간과 장소들은 더 이상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기성세대들보다 동시대 젊은 작가들에게 ‘지금, 여기’의 세계는 훨씬 더 광활하고 복잡한 곳으로 여겨질 수 있다. 작가들은 항상 우리를 실재의 가장 바깥 가장자리로 인도함으로써 우리가 현실을 더욱 넓고 깊게 직시하도록 영감을 준다.


김동희, ‘시퀀스 타입: 3’, 합판, 방수도장, 스테인리스 스틸, 인테리어 필름, 실리콘, 450×450×220cm, 2020
최: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과 건축・공간이 긴밀하게 연계되곤 한다. 김동희의 파빌리온 겸 설치 작업인 ‘시퀀스 타입:3’ (2020)는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중정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곳에서 관람객들은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안: 김동희는 주어진 물리적 공간에 개입해 임시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주로 해왔다. 출품작인 ‘시퀀스 타입: 3’는 작가가 평소 눈여겨본 아뜰리에 에르메스에 있는 중정의 장소적 특성에 주목한 작업이다. 정사각형의 중정은 건물의 외벽으로 둘러싸여 우물 같이 깊은데,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극적으로 개방된 하늘이 보인다. 그는 벽을 끼고 걷는 좁은 우회로나 허리를 굽혀 진입하는 출입구 등의 장치를 설치해서 관람객이 이동함에 따라 시지각이 달라지도록 시퀀스를 강조했다. 조형물 내부에 들어서면 아래에 설치된 거울에 반사된 하늘을 내려다 보며 개방된 공간을 경험하도록 했다. 이 독립된 조형물은 건물 내외부의 스킨을 섬세하게 본떠 조합해 의외의 장소특정성을 갖는다.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 매장의 실내 마감, 가구와 벽면 모서리의 곡선, 그리고 무늬목의 패턴까지 각종 인테리어 요소를 끌어냈다.
최: 김희천의 영상 작업 ‘다섯 명의 저택관리인 쓰기’(2020)는 영상의 배경 자체가 전시장인 아뜰리에 에르메스다. 앞서 언급된 ‘지금 여기’에 서서 ‘다른 곳’을 탐구하는 태도가 이 작업에도 녹아있는 듯하다.
안: 김희천은 기술의 변화가 시공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예의 주시해온 작가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자가 격리조치와 휴교령이 내려졌는데 몇몇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본인이 공부하는 모습을 촬영한 ‘스터디 타임랩스’를 공유하며 자기 감시를 하곤 한다. 이러한 현실의 상황처럼, 김희천은 기술이 오늘날 우리의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킬지를 탐구한다. 그는 우리가 코로나19 이전의 세계로 되돌아가지 못하리라는 예상만 할 뿐, 그 실태는 파악하지 못하는 오리무중의 현상태를 ‘밀실 살인의 현장’으로 상상했다. 가상의 소설가 A가 집필 중인 ‘다섯 명의 저택관리인’이란 추리물 속에서 이 세계는 출입이 불가능한 밀실 속의 시체로 상정된다. 건축을 전공한 김희천은 디지털 설계를 통해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전시장과 카페, 그 둘을 잇는 중정을 각각 연회장과 살롱, 야외 테라스의 가상 공간과 치환한 뒤, 소설을 집필 중인 A가 그 공간을 탐사하며 작가이자 독자, 살인자이자 탐정으로서 사건의 단서들을 추적하고 타임랩스 영상으로 기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희천은 전시 공간을 활용할 때에도 주 출입구가 아닌 좁은 통로를 선택했고, 실제로 스크린 이면에 밀실을 두는 등 마치 폐쇄회로에 갇힌 듯한 동시대의 심리 상태를 작업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노상호, ‘더 그레이트 챕북쓰리 - 엘스웨어’, 회화,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0
최: 에르메스 재단은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통해 동시대 작가들을 발굴하고, 다양한 기획전시를 통해 동시대 미술계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다양한 주제와 매체 등을 다루는 행보를 꾸준히 밟아가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지속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안: 에르메스 재단은 예술가와 장인들의 상상력에 주목하여 그로부터 영감을 얻는 전통을 190년간 이어오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이 미술관과 컬렉션을 중심으로 마케팅과 소유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비해, 에르메스 재단은 작가를 발굴하고 후원하는 데 큰 방점을 둔다. 한국에서의 미술계 후원도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기반으로 작가 지원과 전시에 집중해 왔다. 지난 2000년에 출범한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은 본격적으로 현대미술에 주목한 미술상으로, 미술계 전문인들이 협업하여 당대를 대표할 만한 작가들을 선정함으로써 한국의 뛰어난 예술가들이 성장하는 데 일조해왔다. 이러한 활동을 근간으로 2006년에 전시장을 갖게 된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연 3회 전시를 통해 국내외 작가들의 창작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김희천, ‘다섯 명의 저택관리인 쓰기’, 싱글채널비디오, 21분, 2020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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