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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학생기자] 다시 보는 SPACE '건축가 정수진'

16기 SPACE 학생기자
진행
최은화 기자

16기 SPACE 학생기자단이 ‘다시 보는 「SPACE」’ 시리즈를 선보인다. 이 콘텐츠는 월간 「SPACE(공간)」에 게재된 프로젝트, 이슈, 인물 등을 되짚어보는 인터뷰 시리즈다.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될 예정이다.

 

1. 서재원, 이의행(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오렌지주스맛 단단집

2. 이진오, 박인영(건축사사무소 SAAI): 어쩌다가 건축으로 만난 인연들

3. 정다영(국립현대미술관): 전시, 건축의 일부와 일생

4. 이용주(이용주건축스튜디오): 건축으로 교감하기

5. 한승재(푸하하하프렌즈): 벌거벗은 진솔함 

6. 정수진(에스아이 건축사사무소): 삶과 정서적 공간으로서의 집

7. 윤승현(건축사사무소​인터커드): 비움, 채움, 이음 

8. 임진영(오픈하우스서울): 문화행동이 문화가 되기까지    ​ 

 

 

 

 

 


월간「SPACE(공간)」 2018년 2월 603호 24~25쪽

 

 

 

삶과 정서적 공간으로서의 집

 

인터뷰 정수진(에스아이 건축사사무소) × 안서경, 서아현(16기 SPACE 학생기자단) 

 

16기 SPACE학생기자단: 월간 「SPACE(공간)」에 기고한 에세이 ‘보이지 않는 것들과의 대화’ 중에서 주택과 집에 대해 말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주택과 집, 이 둘은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나요?

정수진: 조금 다른 예로 시작해볼까요? 우리는 뭔가를 가르치는 사람을 일반적으로 ‘선생님’이라고 하지 ‘교수님’이라고 하지 않아요. 저는 그 차이라고 생각해요. 대학교 교수님도 선생님, 초등학교 교사도 선생님, 유치원 교사도 선생님. 그리고 중요한 깨우침을 주는 분도 선생님이라고 하죠. 집도 똑같다고 봐요. 우리는 “집에 간다”고 하지 “주택에 간다”고 하지 않죠. 특정한 형태를 가진 주거의 한 유형을 주택이라 한다면, 주거라는 개념에 담긴 사람들의 삶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집이라고 생각해요. 주택은 건축적인 정의를 나타내는 것이고 집은 사람의 정서나 삶의 의미가 포함된 조금 더 주관적인 의미인 것 같아요. 

 

16기 SPACE 학생기자단: “집은 사람을 담는 소우주이다” 라는 말을 할 정도로 집에 대한 애착이 큰 것 같아요. 왜 집은 소우주인가요?

정수진: 집이 아닌 다른 건물은 공간의 목적이 뚜렷하기 때문에 각각의 기능에 맞는 설계를 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집은 무목적이에요. 언제나 다시 돌아가는 곳이고 쉬러 가는 곳이에요. 돌아와 내 모든 것을 다 털어버리는 곳이죠. 스스로 가장 솔직해지고 자유로워지며 나의 가장 근원으로 돌아가는 곳이기 때문에 집을 소우주라고 말했던 거에요. 우리는 항상 어딘가에 나갔다가 돌아가면서 집에 간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집은 '돌아옴'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어디를 가도 우리가 다시 돌아올 데가 있다는 거죠. 

 

16기 SPACE 학생기자단: 주택을 설계할 때 특별히 신경 쓰는 공간이 있나요? 때로는 주택에서 관습적으로 자리를 차지하는 공간이 있는가 하면, 또 의외의 공간이 중요한 정서적 역할을 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정수진: 제가 집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간들은 화장실, 복도, 계단 같이 일반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최소화되는 공간들이에요. 흔히 화장실은 일을 보고 빨리 나와야 하는 곳, 복도는 가능하면 짧게 만들어야 하는 곳, 현관은 신발을 벗고 빨리 들어가야하는 곳이라는 관념이 있어요. 하지만 그 장소들 역시 개인적인 생활이 일어나는 공간이에요. 화장실은 우리가 용변을 보고 더러움을 씻어내는 곳이에요. 저는 그런 공간이 오히려 더 좋은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관도 문을 여는 순간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얼굴로서 “아, 드디어 집에 왔어”라고 생각하게 되는 그런 의미있는 장소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화장실이라는 공간은 특히 굉장히 중요해요. 저는 화장실을 '실'이 아닌 '방'으로 생각해요. 제가 설계한 집들을 보면 화장실이 대부분 개방적이고, 투명한 유리로 되어있어요. 외부로 열 수 있는 큰 창도 있는데, 그 창은 주변 시선으로부터 안전한 위치와 각도로 열리되, 목욕하면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려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죠. 욕조 옆에는 조금이라도 틈을 내서 와인잔 하나라도 올릴 수 있는 틈을 뒀어요. 화장실이 이벤트를 주는 공간이 되도록 설계해요. 저는 집에서 화장실이 용변을 보는 곳만이 아닌 욕조에 누워서 사색에 잠길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해요. 

 


월간「SPACE(공간)」 2018년 2월 603호 32~33쪽

 

16기 SPACE 학생기자단: 이번 ‘다시 보는 공간’ 인터뷰에서는 교수님의 프로젝트들 중 빅-마마를 집중적으로 살펴봤어요. 빅-마마의 건축주인 노부부가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말했다고 하는데, 설계 당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나요? 에피소드를 들려주세요.

정수진: 첫 번째로는 종갓집이다 보니 제사할 때 40명 이상이 충분히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있을 것. 이전에 80평 아파트에 살 때는 거실에 4~5줄로 서서 절을 했다 해요. 그래서 건축주가 처음부터 거실을 포함해서 몇몇 공간의 크기를 정해서 요구했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 모이는 분들 중 일부를 위한 하룻밤 자고 갈 수 있는 공간이 있을 것. 많은 인원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잠자리를 제공할 공간이 필요했어요. 일 년에 제사가 열 번이 넘는데, 다시 말해서 그런 이벤트가 한 달에 한 번 이상인 거에요. 그래서 동선이 얽히지 않을 만큼의 충분한 크기의 부억이 있어야 했죠. 심지어 냉장고가 일곱대였어요. 위층에 4개 그리고 지하에 3개를 두었죠. 그리고 종갓집이다 보니 제삿상에 쓸 큰 상을 수납할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매번 아래층 창고에서 가지고 오기는 너무 힘드니 특정 어느 위치에 넣어달라는 등의 조건이 있었어요. 일반적으로 도심지의 주택 필지는 70~80평(231~264m2) 정도로 구획되는데 저는 이를 보고 엉덩이 돌릴 틈이 없다고 해요. 너무 타이트해서요. 그랬는데 빅-마마에서는 보통 필지 두 개를 합친 만큼인 135평(448.8m2) 크기의 땅을 받았으니 얼마나 여유있겠어요. 그런데 이런 것 들을 모두 맞추려다 보니 “이 집도 엉덩이를 돌릴 수가 없어” 라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웃음) 넓은 만큼 넣을 게 많고 공간에 대한 제약들이 많으니까요. 그리고 거실과 주방이 커졌다 해서 방을 작게 만들면 전체적인 공간의 비례가 안맞죠. 그래서 다른 것들도 다 비슷하게 커져야 했기 때문에 사실 아주 여유롭지는 못했어요. 

 

16기 SPACE 학생기자단: 빅-마마를 설계하면서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정수진: 자신 있게 2층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2층 부분의 설계를 다 끝내지 못하고 완공되었어요. 빅-마마는 설계 기간이 길었어요. 건축주 두 분이 각자 원하는 바가 굉장히 달랐어요. 남편인 남자 건축주는 합리적인 아파트 평면을 원했고, 아내인 여자 건축주는 그걸 원하지 않았어요. 현관, 거실, 안방, 별채, 마당 등 1층에 관련된 얘기를 하다 보니 설계안이 7번째까지 가게 된 거에요. 그래서 2층 설계를 다 하지 못했어요. 사실 저는 1층만큼 2층도 되게 많이 해보고 싶었어요. 땅이 2배로 크고 경제적인 제약도 없었기 때문에 해보고 싶었던 게 되게 많았죠. 지금도 그게 굉장히 아쉬워요. 그래서 저는 빅-마마를 미완성이라고 말해요. 

 

16기 SPACE 학생기자단: 건축가를 꿈꾸는 건축학도들에게 조언의 한 마디를 부탁드려요.

정수진: 잘 놀아라고 말하고 싶어요. 잘 논다는게 그냥 시간을 허비 하라는 말은 아니에요. 건축가는 다양한 상황들을 경험해요. 그 수많은 상황에 잘 대처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가진 게 많아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을 해야 하는데, 설계실에만 앉아 있어서는 어렵죠. 그리고 중요한 건 무엇을 하더라도 최선을 다 하는거예요. 저는 그게 잘 노는 거라고 생각해요. 술을 마셔도 그 시간에 최선을 다해서 찐하게 마시고, 여행을 가도 정말 알차게 열심히 돌아다니고, 잠을 자도 푹자고, 싸워도 치열하게 싸우라는 거에요. 무언가를 하기로 했다면 후회없이 제대로 하라는 거죠. 그리고 스스로 하는 일에서 항상 이유를 찾아야 해요. 그 이유를 반드시 알아야해요. 디자이너는 ‘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왜 이걸 좋아하는지, 왜 이걸 예쁘다고 생각하는지 같은 것들에 대한 이유와 필연적인 답을 달아야 해요. 이야기가 돌고 돌지만, 이러한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이 필요해요. (웃음) 잘 놀면서 가능한 많이 보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어요. 특히 건축가는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보는 것이 힘’이에요. 보는 것, 경험하는 것이 반드시 지적인 것일 필요는 없어요.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 습관처럼 보는 거죠. 예를 들면 책상 위에 놓여진 과자의 노란 포장지의 색에 대해 ‘이것은 어떻다’라는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저는 카피라이터 중에 “생활은 디자인이다” 라는 문구를 굉장히 좋아해요.​ 

 

서아현, 빅-마마 드로잉

 

안서경, 빅-마마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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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
영남대학교와 홍익대학교 대학원, 파리-벨빌 건축대학교(DPLG/프랑스 건축사)에서 건축을 수학했다. 현재 에스아이 건축사사무소의 대표이며, 경희대학교 건축학과의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하늘집, 노란돌집, 횡성공방, 펼친집, 별똥집, 이-집, 빅-마마 등의 주택작업과 붉은벽돌-두번째 이야기, 미래나야 사옥 등 다수의 건축 및 전시 작업이 있다. 경기도 건축문화상, 2015 엄덕문 건축상 및 2017 한국건축문화대상 등 다수의 수상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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