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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sit SPACE] 1971년 11/12월호: 공간과 공간의 공간, 보부르센터 계획

박정현(도서출판 마티 편집장)
자료제공
공간그룹
진행
방유경 기자

「SPACE(공간)」는 55년 동안 한국 건축의 현장을 기록한 대표적인 매체였다. 켜켜이 쌓인 기사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조명하기 위해 건축사가 김현섭, 비평가 박정현, 건축가 서재원, 건축사와 미술사를 아우르는 조현정 네 사람을 한 자리에 모았다.

 

 

 

 

 

‘공간이 공간의 공간을 다루었다.’ 또는 ‘공간과 공간은 어떤 공간을 꿈꾸었는가?’ 같은 문장을 누군가 말했을 때 무슨 뜻인지 파악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한국에서 건축 교육을 받았거나 건축계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무척 높다. 여기에 글쓰기(écriture) 장치와 몇몇 한정사를 더하면 뜻은 분명해진다. 

‘월간 「SPACE(공간)」가 설계사무소 공간이 만든 공간을 다루었다.’ ‘「SPACE」와 설계사무소 공간은 어떤 공간을 이야기하고 만들려 했는가?’ 진짜 관건은 말놀이에서 벗어나도, 이 질문에 쉽게 답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삼중의 공간, 여기에 앞의 질문에 대한 표준적인 답으로 제시되는 ‘궁극 공간’이나 ‘모태 공간’ 등을 더하면 ‘공간’의 중첩은 한층 더 두터워진다. 20세기 한국 건축 역사에서 절대적이라고 해도 좋을 중요성과 권위를 지닌 매체, 창업자뿐만 아니라 이곳을 거쳐간 건축가들의 이름으로 굵직한 계보를 작성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설계사무소, 현대건축을 둘러싼 수많은 언어의 더미 속에서 무엇보다 핵심적인 개념. 이 세 ‘공간’의 겹쳐짐은 지난 세기 한국에 어떤 흔적과 건축물을, 담론을 남겼을까? 

아쉽게도 우리는 「SPACE」 창간호에서 김수근(1931~1986)과 그의 팀이 제호로 ‘공간’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들을 수 없다.▼1 창간호 특집기사였던 ‘메이저 스페이스(Major Space)’와 이후의 파편적 논의에서 그 배경을 추적할 수 있지만, 이는 별도의 지면을 요구하는 이슈다. 더구나 이를 공간의 공간 개념을 설명하는 테제로 설정하기도 힘들다. 공간의 공간은 시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1969년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시절의 공간과 1970년 공간의 공간은 극적으로다르다. 이는 김수근의 변화이기도 하지만 윤승중(1937~)과 김원석(1937~)의 차이이기도 하다.

1960년대 김수근 팀의 수장이었던 윤승중은 “70년대 이후에는 그때까지의 내 역할을 김원석씨가 했던 거지요.”라고 증언한 바 있다.▼2 간단히 말해 대형 국가 프로젝트의 상징적인 대공간에서 개인 프로젝트의 휴먼 스케일 공간으로의 이행이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는, 공간의 공간이 가장 구체적이면서 탁월하게 드러나는 건축으로 많은 이들이 손꼽는 공간사옥이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보자. 공간사옥이 공간의 공간 만들기가 가장 잘 구현된 사례라면, 그 전후는 무엇인가? 공간사옥은 어떤 배경에서 등장해 무엇을 낳았는가? 조금 바꾸어 묻자면, 공간사옥은 되풀이되기 힘든 예외적 산물인가? 아니면 공간사옥의 구성 원리는 스케일과 프로그램에 따라 변주되어 적용할 수 있는 모종의 체계인가? 정작 공간사옥과 같은 건물이 흔치 않다는 점에서, 그러나 규모와 용도가 훨씬 크고 복잡한 일란성 쌍둥이가 있다는 점에서, 답은 둘 다일지 모른다. 미스의 공간(Miesian space)처럼 확대되는 체계를 시도했으나 실패한, 또는 기회가 없었던 체계. 그 일란성 쌍둥이는 1971년의 보부르센터 계획안이다.

 


 

1969년 프랑스 대통령에 취임한 조르주 퐁피두(1911~1974)는 파리 레알(Les Hallles) 지구와 보부르 일대를 재개발하기로 결정하고 주차장으로 이용되던 보부르에 복합문화시설을 건립하기로 한다. 훗날 퐁피두센터로 불리는 보부르센터 설계공모의 시작이다. 기성 질서에 대한 노골적인 불신을 표출한 1968년 혁명의 여파 속에서, 1971년 2월 전 세계 모든 건축가에게 완전히 열려 있는 국제설계공모로 진행된다. 대지는 조르주 외젠 오스망(1809~1891)의 파리 대개조 계획의 대표적인 산물이자 유리와 철이라는 현대건축의 재료를 과시한 빅토르 발타르(1805~1874)와 펠릭스 에마뉘엘 칼레(1791~1854)의 레알 인근이었다. 오사카 엑스포 ’70 한국관을 끝으로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인간환경계획연구소 시절을 마무리한 김수근이 새로운 스태프들과 함께 이 설계공모에 참여한 것이다. 이 공모전에 참여한 한국 건축가로는 강석원(1938~)과 김종성(1935~)도 있다. 1971년 7월 15일 렌조 피아노(1937~), 리차드 로저스(1933~), 잔프랑코 프란치니(1938~2009), 오브 아럽 파트너스의 안이 당선안으로 발표된다.▼3 「SPACE」에서 김수근(제출 도서 및 모형은 김수근의 이름으로 제출되었다)의 안을 처음 소개한 것은 「SPACE」 60호(1971년 11·12월호)였다. 당선안에 대한 정보 없이 모형 사진과 평면도와 단면도, 엑소노메트릭을 수록했다. 이후 설계공모 전반에 걸쳐 논평한 마르셀 코르뉘(1909~2001)의 글을 미술평론가 이일이 번역해 실은 기사에 딸린 작은 사진을 통해 「SPACE」 62호(1972년 3월호)에 다시 소개된다. 김수근이 타계하고 마련된 「SPACE」 230호(1986년 9·10월호) 추모 특집에서 이 안은 다시 등장한다. 건축물의 규모와 기념비성, 보부르센터 설계공모의 역사적 중요성 등에 비해, 이 작업에 대한 비평가의 분석 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수십 년이 지난 최근까지 보부르센터 계획안은 김수근의 주요 작업으로 남아 있다. 2011년 독일 베를린의 에데스 갤러리에서 열린 김수근, 응축된 모더니티)> 전시에 소개된 20점의 작품 가운데 하나였고, 1971년 모형이 전시되었다. 유일한 오리지널 모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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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르센터 계획안은 7.5m 정방형 그리드 패턴 위에 남북 방향으로 157m, 동서 방향으로 120m에 펼쳐져 있다. 현재 퐁피두센터 앞 광장 전체를 가득 채웠으며, 5×7 그리드의 중정이 있는 ㅁ자 평면이다. 외곽부는 6층 높이였고 중정 쪽은 3층 내외로 중정을 향해 완만하게 내려가는 구성이다. 도면과 모형 사진만으로 짐작해 보아도 보부르센터 계획안은 거대한 미로다. 공간사옥은 보부르센터의 2×4 그리드를 정교하게 다듬은 것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 역으로 보부르센터는 공간사옥 20여 개가 얽히고설킨 구조다. 찬찬히 따져볼 사항이 많지만, 여기서는 몇 가지만 짚어보고자 한다. 하나는 구조이자 공간의 단위인 7.5m마다 실내 공간은 외기와 만난다는 점이다. 30m가량의 두께를 지닌 건물이지만 실제로는 얕은 공간의 연결이다. 프로그램과 동선을 중심으로 한 1971년 계획안으로는 공조 등 설비 시스템을 전혀 짐작할 수 없다. 다만 외기와 면하는 얕은 공간의 중첩으로 환기를 해결하려 한 것은 아닌지 추정할 뿐이다. 좁은 매스의 중첩으로 이루어진 외관처럼 평면 역시 작은 단위의 중첩이다. 그러나 이 단위는 그대로 반복되거나 복제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원리를 가지되 하나하나 별도로 조율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기계와는 전혀 거리가 먼 수공예적 단위다. 

이와 관련된 또 다른 특징은 기둥의 부재다. 짧은 쪽 변의 길이가 120m에 달하는 건물을 벽으로 구성했다. 구조도 벽이고 공간을 분할하고 한정하는 것도 벽이다. 기둥-바닥의 조합이 선사하는 수직적 수평적 확장 가능성, 그 속에서 유동하는 ‘공간’이라는 현대건축의 교리를 여기에서 찾아볼 수 없다. 벽에 의해 수시로 구속되지만 서로 연결되어 거대한 미로를 형성하는 기묘한 ‘공간’이 펼쳐져 있다. 초기 계획안의 상세한 동선 설명은 이 복잡한 ‘공간’에서 정위(orientation)가 문제라는 점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공간의 ‘공간’, 「SPACE」가 여러 기사를 통해 설파하고 싶었던 공간은 보부르센터의 공간이 아니었을까? 얕은 공간의 중첩을 통한 공간 만들기. 이를 한 방향으로 늘어놓고, 외부 공간을 틈이 아니라 마당 규모로 바꾸면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에 공간에서 수행한 여러 박물관 및 문화시설 설계공모의 기본 도식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이를 돔-이노 프레임과는 다른 방식으로 확장될 수 있는 공간의 가능성을 묻고자 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까? 최근까지 외부 공간 없이 두터운 공간이 무척 드문 한국 현대건축에서 보부르센터 계획안은 이미 여러 방식으로 현실화된 살아있는 잠재태가 아닐까? 오해는 말자. 이 계획안의 공간이 한국 현대건축의 어떤 정점이라고 말하려는 것, 공간(앞에서 말한 셋 중 무엇이든)의 신화를 공고히 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얕은 공간의 중첩이 어떤 그림자를 드리웠는지 되묻기 위해, 그것이 가장 극적으로 표현된 시작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환기하기 위해서이다. 아직 우리는 삼중의 공간이 무엇을 만들었는지 충분히 알지 못한다. 굳어버린 해석을 깨고 새로움을 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케케묵은 잡지를 다시 들추어볼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글 박정현 / 진행 방유경 기자)

 

 

 

다음 호에는 서재원이 「SPACE」 31호(1969년 6월호)에 게재된 ‘우산을 주제로 한 주택’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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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PACE」 창간호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 박정현, ‘중앙정보부, 문예와 건축’, 『건축은 무엇을 했는가: 발전국가 시기 한국 현대건축』, 서울: 워크룸프레스, 2020.

2. 목천건축아카이브·우동선·최원준·전봉희, 『윤승중 구술집』, 서울: 마티, 2014, 306쪽.

3. 퐁피두센터 건립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과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는 프란체스코 달코의 다음 책을 참고. Francesco Dal Co, Centre Pompidou,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16. ​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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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현
박정현은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건축은 무엇을 했는가?』를 비롯해, 『전환기의 한국건축과 4・3그룹』(이하 공저), 『아키토피아의 실험』, 『중산층 시대의 디자인 문화』 등을 썼다. 『포트폴리오와 다이어그램』, 『건축의 고전적 언어』 등을 우리말로 옮겼고, 2018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스테이트 아방가르드의 유령>을 비롯해 <종이와 콘크리트: 한국 현대건축 운동 1987~1997> 등의 전시 기획에 참여했다. 현재 도서출판 마티의 편집장으로 일하며 건축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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