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르메스 2021 S/S 여성복 패션쇼
- 날짜 2020. 10. 3.
- 장소 프랑스 파리 테니스 클럽 드 파리
- 아티스틱 디렉터 나데쥬 바니-시불스키
지그재그 산책로
코로나19 팬데믹은 공연예술 전반을 위축시켰다. 온라인은 막다른 골목의 탈출구였다. 패션쇼도 영상 송출 위주의 언콘택트 예술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수단은 결과를 변화시킨다. 전통적 패션쇼들이 직선 런웨이 위에서 왕복 활주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왔다면, 에르메스 2021 S/S 여성복 패션쇼는 새로운 공간을 제안했다. 이번 쇼의 런웨이는 실내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비탈면을 따라 갈짓자로 방향을 바꾸며 완만하게 내려오는 경사로였다. 로돌프 토에프의 책 『지그재그 여행』(1825)의 표지 그림처럼, 알프스 산을 오르내리기 위해 좌우로 가로지르는 산행길을 연상시킨다. 경사로 바닥은 나머지 표면과 모두 연속되어 눈 덮인 스키장처럼 전체가 하얗게 동질화된다. 이 런웨이는 프랑스 보자르 건축가 마르셀 랑베르의 ‘아크로폴리스’ 복원도를 떠올리게 한다. 랑베르는 1877년 아테네의 폐허를 방문해 조사한 결과로 가파른 언덕 위 아크로폴리스의 입구까지 도달하는 방식을 새롭게 제안했다. 이전 건축학자들은 기념비적 크기의 직선 계단에 의해 연결되었을 것이라는 관습적 관념을 의심치 않았다면, 랑베르는 실제 지형상 유리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휘어져 상승하는 경사로를 상상했다. 그의 복원도는 입구 프로필레아까지 이르는 경사로를 분명히 표현할 뿐 아니라, 성지를 향해 경건하게 오르는 시민들의 행렬을 강조하고 있다. 랑베르가 제시한 아크로폴리스 진입로와 흡사한 에르메스 런웨이는 ‘성과 속’ 사이의 공간적 전이를 DNA 속에 내재하고 있다. 경사진 런웨이를 따라 줄지어 내려오는 모델들은, 성스러운 창조의 세계인 아틀리에로부터 세속의 세상을 향해 천천히 하강하는 여신들의 모습이다.
런웨이에서 나타나는 지그재그 방식의 움직임과 경사로에 대한 건축적 의미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토에프의 『지그재그 여행』은 당시 스위스 어린이들의 필독 교양서였으며, 르 코르뷔지에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아크로폴리스를 목표로 삼았던 동방여행도 그 실천으로 볼 수 있으며, 호기심을 따라 자유롭게 전환하며 공간을 가로지르고 순환하는 움직임은 그의 건축 이론들에서 재현될 것이었다. 동방여행의 정점이었던 아크로폴리스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며 각인시켰던 깊은 감동은, 오귀스트 슈와지의 아크로폴리스 해석인 ‘그리스 픽처레스크’ 이론을 통해 얻게 된 깨달음과 시너지를 일으키며 ‘자유평면’ 이론의 정립으로 이어진다. 르네상스 이후 확립된 원근법 전통에 기반한 직선축 중심의 전통적 건축 구성을 전복하고자 했던 자유평면에서는, 풍경화 및 영국식 정원과 더불어 아크로폴리스의 픽처레스크 구성이 촉진하는 자유롭고 연속적인 움직임이 수반된다. 자유평면이 하나의 ‘열린 공간’을 창조한다면, 그 공간 경험은 자유로운 ‘건축적 산책’에 의한 것이다. 이때, 랑베르가 제시한 아크로폴리스의 진입 ‘경사로(ramp)’는 자유평면에 있어서도 필수적이고 보완적인 요소가 되었다. 높이가 달라 서로 끊어진 각 바닥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 경사로이기 때문이다. 오직 경사로를 통해서만 서로 다른 층들이 하나의 공간으로 연속될 수 있다. 르 코르뷔지에가 최초로 ‘건축적 산책’을 설명할 때, 경사로가 최초로 도입되었던 빌라 라 로슈(1925)를 시범적 사례로 선택한 것은 당연했다.
근대적 건축 어휘인 자유로운 경사로가 패션쇼에서 다시 발견되는 것은 흥미롭다. 엄밀히 말해 에르메스의 런웨이는 경사로보다 ‘경사바닥(slope)’으로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하다. 다른 높이의 바닥 두 개를 선적 형태로 연결하는 동선으로서의 경사로가 아니라, 하나의 바닥 전체가 기울어져 연속된 비탈면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기울어진 바닥은 르 코르뷔지에의 후기 건축 계획안들에서도 시도된 바 있으며, 현대건축에서는 서로 다른 높이의 바닥들이 기울어져 모두 연결되거나 건축 자체가 자유곡선으로 휘어진 하나의 바닥 공간으로 되는 등 활발하게 실험, 실현되고 있다. 이렇듯 이번 에르메스 런웨이는 기울어진 바닥의 오래된 건축적 판타지에 공조하고 있다. 런웨이의 기울어진 바닥 전체는 정면의 영상에서 볼 때 하나의 백스크린 역할을 한다. 원근법적 무대에서 중심점이 소실되는 깊은 공간감과 달리, 에르메스의 무대는 모두 가까운 전면으로 인식되며 별자리처럼 흩어진 수직적 요소들에 의해 얕은 공간감의 점진적인 깊이가 은은하게 드러난다. 기울어진 바닥이자 백스크린을 배경 삼아 서 있거나 움직이는 에르메스의 모델들은, 마치 중세 대성당 입면에 장식된 성인상들이나 이집트 벽화 속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 또는 트라야누스 원주의 나선형 행군 장면처럼, 분산된 오브제들과 공간이 밀착된 올오버 표면이 되어 우리 눈을 사로잡는다. (글 남성택 / 진행 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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