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PACE」 62호(1972년 3월호)의 표지
1972년 「SPACE(공간)」는 총 5회(62호, 63호, 64호. 67호, 68호)에 걸쳐 초가를 주제로 한 일련의 사진 에세이를 연재한다. 최순우, 김수근이 기획한 이 연재는 마을에 대한 짧은 소개로 시작해서 배치도와 간략한 실측자료로 이어지고 ‘환경-어프로치-엔트런스-안뜰-소-사람’에 대한 설명을 따라 한국의 여느 농가의 풍경을 담아낸다.▼1 「SPACE」의 역사에서 초가를 특집으로 삼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서울 도시계획을 특집으로 내세운 1966년 창간호에서부터 「SPACE」의 관심은 새롭게 부상한 도시적 환경과 삶에 놓여 있었고, 농촌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드러낸 바 없었다. 도심의 현대식 고층 빌딩은 풍요롭고 미래지향적인 근대화의 빛나는 성과로 환영받았던 반면, 농촌의 건조환경, 특히 초가는 비위생적이고 궁핍한 전근대성의 산물로 여겨져 재현의 영역에서 소외된 것이다. 농촌의 건조환경이 새롭게 주목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때는, 역설적이게도 새마을 운동으로 인해 전통적인 집과 건물들이 사라지면서부터였다. 1971년부터 박정희 정권이 농촌 근대화의 기치를 내걸고 시행한 새마을 운동으로 농가의 초가지붕은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슬레이트와 양철 지붕으로 빠르게 교체되었다. 이 시기 「SPACE」에 등장한 초가 연재를 지배하는 주된 정서는 시간이 멈춘 듯한 고즈넉한 정취와 고향의 정겨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애수이다. 아늑하고 정겹게 묘사된 농촌의 풍경은 농촌 생활의 남루함이나 궁핍을 드러내기보다는 파편화된 도시적 삶에 대한 해독제 역할을 하는 듯 보인다. 사진과 병치된 문구에서는 “물이 있어서 좋지 / 소가 있어서 좋지 / 풀이 있어서 좋지 / 태양이 있어서 좋지”라며 농촌을 자연과 구분되지 않는 일종의 이상향으로 노래한다.▼2

SPACE」 62호(1972년 3월호)의 표지최순우·김수근, ‘한국의 초가’, 「SPACE」 62호, 18~21쪽.
초가에 대한 시적이고 낭만적인 재현은 같은 시기 사진가 강운구가 포착한 농촌 풍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강운구의 마을 사진은 1970년대 초중반 「신동아」, 「뿌리 깊은 나무」 등의 잡지나 전시회를 통해 선보였다. 이는 ‘초가의 서정’이라는 표제로 「SPACE」 109호(1976년 7월호)에 실리기도 하며, 도시의 독자들에게 그들이 두고 온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서정성은 같은 시기 소설가 김정한, 이문구 등으로 대표되는 농민문학이 파행적인 근대화로 파괴된 농촌의 비참한 삶에 주목해 농촌 문제를 계급적, 민중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다룬 것과 사뭇 대조적이다. 「SPACE」의 초가 연재는 1970년대 들어 건축뿐만 아니라 민속학, 지리학, 고고학 등 여러 분야에서 동시적으로 진행된 민가(초가) 연구의 동향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제식민지기의 민가 연구가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식민 통치를 위한 사전 조사의 성격으로 진행되었다면, 1970년대 재개된 민가 열풍에는 한국 주거의 기원을 찾는 민족주의적 기획이 자리했다. 전근대적인 농경 문화의 흔적이 멸종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속에서 전통적인 삶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것이다. 민가 붐은 한국보다 한발 앞서 급속한 근대화와 도시화를 겪은 일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54년 개정된 일본의 문화재보호법이 절이나 신사, 귀족의 고급 주택과 함께 민가를 국가 지정문화재로 포함하면서, 민가가 대대적인 연구조사와 보존, 대중적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일본의 민가 붐은 건축 사진가 후타가와 유키오(二川幸夫)가 발표한 열 권짜리 사진집 『일본의 민가』(1959)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1950년대 중반부터 전국 각지를 돌며 촬영한 수백 장의 민가 사진을 수록한 이 사진집은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수상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후타가와를 매료시켰던 것은 험한 자연환경과 당당히 맞서며 적응해나가는 도서 산간의 지방색 강한 민가였다. 그와 함께 전국의 민가를 답사한 건축사학자 이토 데이지(伊藤ていじ)는 민중의 지혜가 반영된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민가야말로 “중국적 영향이 남아 있는 불교건축이나 서양의 영향을 받은 근대건축과는 달리, 일본 건축 본연의 아름다움”이 남아 있는 건축이자, “일본 문화의 순수한 정수”를 보여주는 건축이라고 강조했다.▼3 일본 건축에서 민가는 일본 문화의 진정한 기원으로 여겨지는 조몬(縄文) 시대, 즉 기원전 1만 년부터 기원전 300년 사이에 등장한 역동적인 수렵 채취 사회의 후예로 여겨지며, 일본 전통 논쟁의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4

최순우·김수근, ‘한국의 초가’, 「SPACE」 64호(1972년 5월호), 18~21쪽.
그렇다면 한국의 전통 논의에서 민가는 어떠한 위상을 갖는가? 기와를 올리는 것이 한국성을 담보하는 쉬운 방편으로 여겨지던 상황에서 민가, 그중에서도 특히 초가는 한국적인 것을 상상하는 데 있어서 어떤 역할을 했나? 초가 연재가 한국 전통론의 두 주역인 최순우와 김수근에 의해 기획되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질문을 보다 흥미롭게 만든다. 한국 건축사 서술에서 김수근과 최순우의 만남은 대단히 극적인 순간으로 다루어지곤 한다. 국립부여박물관 설계와 관련된 왜색 시비로 홍역을 치렀던 김수근이 한국미의 전도사 최순우를 만나 비로소 전통에 눈뜨게 되면서 한국적인 것을 아는 진정한 건축가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식의 서사가 그것이다. 실제로 최순우는 김수근 개인의 멘토 역할만이 아니라, 「SPACE」 창간 당시부터 주요 필진으로 참여하며 전통 논의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김수근과 최순우 둘 사이에 실제로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이들이 공유한 한국미의 실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거의 알려진 바가 없기에 이들의 드문 공동 작업인 초가 연재에 더 주목하게 된다. 최순우에게 초가는 자연에 순응하며 분수에 맞게 살아가는 한국인의 심성과 자연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메타포이다. 그는 대궐이나 성, 사찰 같은 건물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영위되는 살림집에 진정한 한국적 정서가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 및 중국과의 비교도 빠지지 않는다. 한국의 주택에는 인공적이고 신경질적인 미를 특징으로 하는 일본 집과도 다르고, 과시적이고 번잡스러운 중국 집과도 다른, 조촐하고 의젓하며 분수에 맞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있다는 주장이다.▼5 여기서 ‘자연스러움’은 최순우가 주장한 한국미의 핵심이다. 이러한 미의식은 당연히 「SPACE」 연재에 실린 사진에도 반영되었다. 일본의 민가 사진이 흔히 클로즈업과 크로핑을 통해 모더니즘의 기하학적 구성에 맞게끔 건물을 포착하는 데 반해, 「SPACE」의 사진은 대칭성과 직선 등 인공적인 표현을 의도적으로 자제한 자연스러움을 강조한다. 또한 건물 자체를 조형적이고 독립적인 ‘작품’으로 다루기보다는, 초가를 마을을 감싸 안은 뒷산과 굽이굽이 돌아가는 골목길의 일부로서, 혹은 장독, 지게, 소쿠리 등 농촌 생활의 흔적이 깃든 물건의 배경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최순우에게 민가는 건축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였고, 그렇기에 탁월한 건축에서 오는 조형적 가치와 미적 감동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가 한국 주택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건축으로 꼽은 것은 결코 버섯처럼 자생하는 민중의 초가가 아니라, 사대부의 기품을 간직한 세련된 상류층 주택인 연경당이었다. 심지어 최순우는 사대문 안에 남아 있는 기품 있는 한옥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는다면, 후세의 사람들이 시골의 초라한 흙담 초가집을 한국 전통주택의 전부라고 여길지 모른다고 우려하기도 했다.▼6

강운구, ‘초가의 서정’, 「SPACE」 109호(1976년 7월호), 34, 35, 38, 39쪽.
최순우의 엘리트 지향의 전통론은 김수근에게도 계승된다. 김수근은 초가를 한국의 풍토에 맞는 크기와 형태, 질감을 지난 휴먼스케일의 집으로 높이 평가했지만, 결코 조형적으로 진지하게 계승되어야 할 한국 전통의 대표 주자로 보지는 않았다. 김수근 건축론의 중요한 형성력으로 작용한 것은 지배 계층의 주거 공간, 그중에서도 사대부 남성의 다목적 문화 공간인 문방(文房)이다. 문기(文氣)로 가득한 이 다목적 공간은 ‘제3공간’이라고 부른 김수근 공간론의 핵심, 즉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여유 공간이자 여가와 해프닝이 있는 창조 공간, 나아가 미래 사회에 요구되는 ‘궁극 공간’에 대한 구상으로 이어진다.▼7 요컨대 최순우와 김수근의 전통론에서 민가(초가)가 갖는 중요성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 초가는 한국적인 것과 전통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가능케 하고 나아가 대안적인 삶과 사회를 꿈꾸게 하는 중요한 자양분으로써, 미미하지만 꾸준하게 그 역할을 수행했다. 1970년대 초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일원으로 전국에 흩어진 민가를 정력적으로 조사해온 건축사학자 김홍식은 초가야말로 민족 고유의 재료와 생산기술을 통해 만든 가장 민족적인 건축이라고 강조했다.▼8 그는 1980년대 부상한 급진적인 민중 담론의 영향 속에서 기층민의 주거 문화에서 구한 교훈을 바탕으로, 기존의 한국성 논의가 갖는 계급적 한계를 극복하고 주류 건축계의 식민성에 도전한 ‘민족 건축론’을 주창했다. 민가(초가)가 김홍식에게 민중 중심의 한국 건축사를 서술하는 실마리를 제공했다면, 정기용에게는 서구 모더니즘을 넘어서는 건축 실천의 중요한 자양분으로 작동했다. 정기용은 프랑스 유학 중이던 1970년대 잠시 귀국했다가 농가의 초가지붕이 얄팍한 산업 재료로 바뀌는 장면을 목격하고, 이를 일종의 건축가로서의 원체험으로 기억했다.▼9 그의 평생의 화두인 ‘흙 건축’은 초가 전통을 지붕 재료가 아니라 벽체의 재료와 공법에 주목해 현대화하려는 시도이다. 여기서 ‘흙 건축’은 극복되어야 할 빈곤한 과거가 아니라 내구성과 경제성, 친환경성을 갖춘 민중적이고 풍요로운 건축의 미래였다. (글 조현정 카이스트 교수 / 진행 방유경 기자)
다음 호에는 김현섭이 「SPACE」 4호(1967년 2월호)에 게재된 ‘특집: 한국현대건축을 위한 심포지움 시리즈1’을 다룬다.
-
1 「SPACE」 64호(1972년 5월호)부터 사진가(김진환)의 이름이 표기되고, 「SPACE」 67호(1972년 8월호)부터는 실측자(김남현 외 2인) 이름도 등장한다.
2 최순우·김수근, ‘한국의 초가’, 「SPACE」 63호(1972년 4월호), 18쪽.
3 二川幸夫, 伊藤 ていじ, 『日本の民家』, 1959 (東京: A.D.A.Edita, 1980), p. 10.
4 白井晟一, ‘縄文的なるものー江川氏旧韮山館について’, 『新建築』, 1956, 8, pp. 4~7.
5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학고재, 2002, 15쪽.
6 최순우, 『최순우 전집 2』, 학고재, 1992, 407쪽.
7 김수근, ‘건축에 있어서의 네가티비즘’,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 길은 넓을수록 좋다』, 공간사, 1992, 240~248쪽.
8 김홍식, 『초가』, 열화당, 1991, 207쪽.
9 정기용, 『사람, 건축, 도시』, 현실문화, 2008, 70~88쪽.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책으로 『1900년 이후의 미술사』(공역)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