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을 통과하는 건축 전시의 자세: 2021 베니스비엔날레
불시에 온 세계를 습격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5월 열릴 예정이었던 베니스비엔날레의 제17회 국제건축전은 8월로 한차례 연기되었다가, 2021년을 다시 기약했었다. 그리고 지난 5월 22일, 베니스비엔날레는 팬데믹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개막했다.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이 생긴 이후 「SPACE(공간)」 역시 꾸준히 현지 취재를 해왔지만, 이번만큼은 베니스 땅을 밟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19 이후의 삶을 살며,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건축 전시 역시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변화 앞에 놓여 있다. 이 사태를 통과하며 11월 21일까지 열릴 2021 베니스비엔날레의 대응 모습을 먼 발치에서나마 전체적으로 스케치해보려고 한다.

‘2038 – The New Serenity' of German Pavilion / ©FedericoTorra
코로나19라는 전 지구적인 비상사태를 예견이라도 한 듯, 제17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의 총감독 하심 사르키스가 내건 주제는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How Will We Live Together?)’이다. 일견 팬데믹 시대를 겨냥한 주제 같지만, 질문에 내포된 본래 의도를 다시 한 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 하심 사르키스는 “우리에게는 새로운 공간 계약이 필요하다. 정치적 분열이 확대되고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해결책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구상하도록 건축가들에게 요청한다”고 말하며, 그 지침을 다음과 같이 제공한다.
- 어떻게(How): 건축적 사고를 통한 문제해결의 우선순위를 강조하면서, 실용적인 접근법과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 미래(Will): 건축적 상상력을 통해 미래를 향한 신호를 감지할 뿐만 아니라 비전과 결단을 추구한다.
- 우리(We): 1인칭의 복수형, 즉 다른 인종, 다른 종족을 포함한 ‘우리’가 보다 공감할 수 있는 건축에 대해 이야기한다.
- 살다(Live):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번성하고, 번창하고, 거주하고, 삶을 표현하는 건축의 내재된 낙관주의를 이끌어낸다.
- 함께(Together): 집합적, 공통적, 보편적 가치를 내포하는 집단 형태와 공동 표현의 형태로서의 건축을 강조한다.
- 질문(?): 수사적 질문이 아닌 열린 질문을 가리키며, 건축을 통한 가치들의 발견과 (많은) 답변들을 기대한다.
이처럼 하심 사르키스가 제시한 이 주제는 2년 전 처음 발표되었던 그대로 유지됐다. 또한 전시 방식 역시 큰 방향 전환 없이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 두 장소를 중심으로 개최하되, 코로나19에 대한 이탈리아의 규정에 따라 공공보건 규칙과 위생 절차를 갖추며, 전시 방식과 프로그램을 조금씩 조정했다. 이 과정에서 하심 사르키스는 큐레이터들에게 사람들이 손으로 뒤적거릴 수 있는 책(카탈로그)을 통한 전시 방식을 지양하고, 단순하고 명확하며 접근이 쉬운 디지털 디스플레이를 하도록 권장했다. ‘건축 비엔날레는 이제 전시보다 카탈로그에 더 적합하다는 비평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한 해외 웹진의 물음에는 “건축이 세상에 어떻게 표현되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전시 기획자들에게 경험과 설치를 강조하고 책은 만들지 말라고 했다”고 답했다. “전염병이 이번 전시의 주요 관심사는 아니다. 전염병을 직접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이를 유발한 근본적인 이유를 다루고 있다. 대유행 이후에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할지 답을 내리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는 그의 말에서 이번 비엔날레가 코로나19에 조심스럽게 맞서고 있다고 짐작한다. 그렇다면 그의 지휘 아래 각 국가관들은 어떤 주제들을 가지고 어떤 형식을 취하고 있을까?
먼저, 여느 베니스비엔날레 때와 같이 전시장이라는 공간을 바탕으로, 또 하심 사르키스의 주문대로 경험과 설치에 집중한 몇몇의 국가관을 살펴보자. 미국관은 ‘아메리칸 프레이밍(American Framing)’이라는 주제로 미국관 앞에 4층 규모의 소나무로 지어진 파빌리온을 선보였다. 미국의 초기 정착민들이 건축 자재로 사용하기 시작한 침엽수에 대한 탐구로, 정교한 목공 기술 없이도 값싸게 건설할 수 있으며, 지속가능한 자재로서의 특징을 강조한다. 큐레이터인 폴 프리스너(Paul Preissner)는 “이 파빌리온을 경험함으로써 특권 없는 건축 방법에 대한 태도가 회복되고, 막연하게 친숙했던 요소들이 심오하고 멋진 것임을 알게 되기를 원했다”고 밝혔다.
덴마크관은 ‘con-nect-ed-ness’라는 주제로 전시장 내외부로 순환빗물 시스템을 설계해 선보였다. 외부의 빗물이 전시장 안의 파이프를 따라 순환하는 폐쇄 루프 시스템이다. 관객은 파이프를 따라 전시장을 돌며, 침수된 방을 만나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빗물로 기른 식물 잎차를 마시면서, 이 순환계의 일부가 된다. 이 역시 경험을 통해 지속가능성과 연결성을 재인식하게 되는 전시다.
이탈리아관은 ‘회복적 커뮤니티’를 주제로 기후변화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 연구하는 다양한 실험실을 전시장 안에 구성했다. 그래픽 노블과 게임과 관련된 형태가 즐비한 곳을 통과하면서 관객이 적극적으로 성찰할 여정을 기획했다.
그 외에도 크로아티아관의 ‘공생/함께’, 페루의 ‘플레이 그라운드: 상호 작용을 위한 인공물’, 북유럽관의 ‘우리가 공유하는 것. 공동주택 모델’ 들처럼 ‘함께(Together)’에 대한 재정의와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며, 한국관의 ‘미래학교’, 브라질의 ‘평범한 삶의 이상향’, 핀란드관의 ‘새로운 표준’ 들처럼 ‘미래(Will)’에 대한 모색을 펼치는 전시들이 주를 이뤘다.

ʻAmerican Framingʼ of American Pavilion / ©Francesco Galli

ʻFuture Schoolʼ of Korean Pavilion / ©Francesco Galli
한편으로 도시∙건축 담론에서 쉽게 배제되었던 식물이나 동물과 같은 비인간적 존재들이 전시의 주인공으로등장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네덜란드관은 ‘우리는 누구입니까?(Who Is We?)’를 질문하면서, 건축이 얼마나 더 다양한 정체성과 종을 포용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고, 종국엔 전체 생태계를 아울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시에 참여한 건축가 아파이나 데 용(Afaina de Jong)은 “우리는 종종 고의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아주 작은 집단을 염두에 두고 공간을 설계한다”며,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뿐 아니라 토양, 식물, 동물 등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와 아티스트 데브라 솔로몬(Debra Solomon)은 ‘Multispecies Urbanism’이라는 제목의 비디오 작품을 통해 생태계 관리와 돌봄을 원동력 삼은 도시 디자인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
주제전에 참가한 스튜디오 오시디아나(Studio Ossidiana)는 ‘새’를 전시장으로 호출한다. 이들은 다른 신체를 가진 종들의 관계를 공간화하는 것을 목표로 이번 전시에서 인간과 새가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을 선보인다. 이들은 손대지 않은 자연이 아니라 사람과 동물이 관계 맺으며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건축물을 고민했다.
스튜디오 슈퍼플럭스(Superflux)는 아예 동식물을 위한 연회를 마련했다. 11종의 다른 종들과 사람이 함께 앉아 식사할 수 있도록 4m 길이의 테이블과 의자를 만들었다. 새, 곤충, 파충류뿐만 아니라 해로운 존재로 여겨지는 쥐, 말벌, 곰팡이와 같은 존재도 초대됐다. 슈퍼플럭스의 공동대표인 아납 제인(Anab Jain)은 “다른 종들과 함께하는 식사에 초대됨으로써 비인간을 동등하게 보기 시작하고, 이 세계에 기여하는 모두의 역할을 인정하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밝혔다.
이러한 전시들이 하나같이 ‘우리(We)’란 인간을 벗어나 보다 다원화된 대명사로 재정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Refuge for Resurgence of Superflux / ©Marco Zorzanello

ʻcon-nect-ed-nessʼ of Denish Pavilion /©Hampus Berndtson

‘Comunità Resilienti’ of Italian Pavilion / ©Andrea Avezz
이렇게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를 중심으로 국가관 전시와 주제전이 펼쳐지고 있는 동시에 온라인에서도 전시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각 국가관들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본전시를 송출하기도 하고, 독립적인 온라인 전시 콘텐츠를 선보이기도 한다. 한국관 역시 ‘미래학교 온라인’을 열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들을 엿볼 수 있게 했다. 그중에도 눈의 띄는 국가관이 있다. 바로 독일관이다. 독일관은 ‘새로운 평온’이라는 주제로 공간을 하얗게 비워두고 오직 벽에 QR 코드만을 새겨놓아 관람객이 바코드를 통해 전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관객이 서있는 공간은 중요하지 않으며, 오직 접속한 2038년이라는 시간만 떠오르는 전시다. 몇 개의 QR 코드가 전부인 독일관은 수천 km를 날아와 전시를 보기 위해 방문한 관객들에겐 오만한 전시가 됐지만, 실제와 허구 사이에서 건축 전시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생각해볼 기회이기도 하다.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 ‘비엔날레파빌리온즈’의 등장도 주목해볼 만하다. 2020년 여름부터 정기적으로 회의를 해온 약 25개국으로 구성된 커미셔너그룹 소속의 6개의 국가관(에스토니아, 핀란드, 룩셈부르크, 리투아니아, 스위스)에 의해 시작된 플랫폼(biennalepavilions.com)이다. 이들은 베니스에 방문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시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자체적으로 마련했다. 현재 이 포털에서 한국관을 포함한 21개 국가관 전시에 대한 주요 정보를 접할 수 있고, 각종 이벤트와 행사를 캘린더로 정리해두어 시청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각 독립 웹사이트의 하이퍼링크가 충실히 연결되어 있다.
한국관의 신혜원 감독의 소집으로 시작된 ‘큐레이터 연합(Curators Collective)’ 역시 큐레이터와 참가국 커미셔너 간의 연합 장소로서 플랫폼(curatorscollective.org)을 구축했다. 큐레이터 연합는 2020년 5월 신혜원 감독이 소집한 화상회의로부터 출발해 정기적인 활동을 통해 되었고 지난 해 8월 공식 공동성명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전시 내용을 공유하고 연대 관계를 지속해나가면서 공동 프로젝트를 모색해나갈 예정이다.

‘2038 – The New Serenity' of German Pavilion / ©FedericoTorra
물리적 현장에서의 전시에 가치를 두고 40여 년을 달려온 베니스비엔날레는 코로나19 앞에서 유례 없는 두 번의 연기를 공표했고, 1년 뒤 기존 체제에서 큰 변화 없이 전시를 개막했다.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라는 전시 주제 역시 코로나19를 정면으로 맞서는 듯하면서도 더 큰 개념 안에 전염병 이슈를 살짝 덮어둔 모양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부터 우리가 어떤 태도로 함께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피할 수 없는 고민들이 각 국가관들의 전시 주제 속에, 혹은 전시의 새로운 공간에 대한 모색 속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다. (글 박세미 기자)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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