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튼을 누르면 당신은 꼬리를 물고 커다란 원을 이루는 검정색 뱀(지혜를 의미한다)의 등 위에 있다. 뱀은 구부러진 원통형이라서 방향을 잘 조절하지 않으면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여러 차례 길을 벗어났다가 원점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간신히 반짝이는 목표점에 도달하면 첫 번째 작가의 소개문과 작업 이미지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하지만 거기서 방심하다가는 또다시 미끄러져서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다. 긴장을 늦추지 말고 계속 나아가서 포도(행복을 의미한다)를 먹어야 여태까지의 진행을 저장하고 그다음 목표점으로 향할 수 있다. 하늘에는 구름(진실을 의미한다)과 달(불면 또는 슬픔을 의미한다)과 해(영광과 찬란을 의미한다)가 떠 있고, 멀리 산(가치 있는 야망을 의미한다)과 기둥 또는 야자수(모토를 의미한다)가 보이며, 저 아래에는 푸른 물(평범한 행동에 대한 고요한 힘을 의미한다)이 수평선까지 뻗어 있다.
이것은 ORGD의 로고를 변주한 가상의 삼차원 공간이자 2020년을 결산하는 ORGD의 세 번째 전시 공간이다. 이 풍경을 전체적으로 감상하려면 어쨌든 완주를 해야 한다. 도중에는 굴러떨어지지 않고 전진하느라 바빠서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전시는 눈앞의 것에 집중하기 어려운 시간의 감각을 환기하고 그 속에서 디자인이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한다. 이처럼 잘 안 보이는 지금 시간 속에서 자신의 일을 파악하려는 자세는 “최근 그래픽 디자인 열기(Open Recent Graphic Design)”라는 ORGD의 정식 명칭에도 직접적으로 각인되어 있다. 시간의 장부에서 ‘최근’이라는 항목은 현 순간의 꼭지점에서 이미 미끄러지기 시작했지만 과거와 미래에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들에 할당된다. ORGD의 전시들은 이 말랑말랑한 것들이 역사와 대결하여 미래를 선취했다거나 반대로 그런 족보에 이름을 올릴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기 전에, 부풀어오르는 건포도빵 같은 지금 시간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그 잠재적 영토를 함께 탐험할 사람들을 향해 신호를 보내는 데 집중해왔다.
이런 전시의 이상적인 관객은 완제품의 소비자나 무역 박람회의 바이어보다는 마이크로펀딩 플랫폼의 프로젝트 후원자나 은밀한 공모자일 것이다. 지금 여기가 우리가 있는 자리라면, 이제부터 어떻게 움직여갈 수 있을까? 전시는 불안정한 현재의 위치로부터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공통의 기대와 책임 그리고 권리를 되살리려 애쓴다. 그러니까 전시의 목적은 무질서하게 흩어진 시간을 사용 가능한 공간으로 재구축하는 것, 또는 적어도 그 시간의 지형을 파악하여 활동 가능한 반경과 경로들을 그려 보이는 것이다. 이때 최근의 시간에 집중하는 것의 의미는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미래와 가장 가까운 현재를 전략적으로 선점하려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미래주의를 거부하고 불투명한 현재로 더욱 깊이 파고들려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과거와의 접점을 의도적으로 폭파하려는 시도일 수도, 스스로 원하지 않았으나 과거와 단절된 상황을 반추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 시간은 모든 시간적 관계들이 불확실하게 유동하는 상태로 전시되며 고유한 불안의 감각을 통해 전파된다. 일시적인 이벤트로서 전시는 이런 불안을 가벼운 흥분으로 전환한다. 지금 시점에서 전시는 단순히 주어진 시간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와 다른 오늘을 감각 가능한 형태로 제시하는 일차적인 생산의 장치다. 수많은 전시들이 경쟁적으로 이제는 우리의 시간이라고 선언하면서 현재를 재정의하려고, 또는 적어도 눈에 보이는 현재의 지평에서 누락되지 않으려고 애쓴다. 일정한 시간의 틀이 사라진 곳에서 권위 있는 시간의 지도에 대한 열망은 오히려 더욱 커진다.
그러나 시간은 온전히 공간화되지 않는다. 현재를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무제한으로 확장 가능한 하나의 플랫폼으로 본다면, 그것은 매 순간 갱신되는 대형 스크린처럼 깜빡이면서 앞서 지나간 현재들의 잔상과 뒤섞인다. 그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떤 관측점에서 접근하더라도 존재하는 것, 기록된 것, 보이는 것의 범위에는 한계가 있다. 그 사이에서 지금 시간의 지도를 그리려는 시도들은 대체로 각각의 지도 제작자들이 움직여온 동선의 절충적 종합으로 귀결된다. 그러므로 모두를 실어나를 만큼 거대한 공통분모나 강력한 방향성을 기대할 수 없다면, 지금 시간의 지도 제작술은 바구니 짜기의 기예와 유사한 것이 된다. 각자의 궤적들을 뽑아내고 구부리고 끊어진 부분을 이으면서 안정적이고 확장성 있는 그물망의 형태를 고안하는 것은 ORGD의 장기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2019년 ORGD 전시는 여러 참여자들의 경험과 지식을 하나로 꼬아서 다양한 구간의 시공간들을 거쳐온 한 명의 합성적 개인을 소환했다. 1980년대에 과천에서 태어나 2000년대에 일본의 소도시로 이주하여 청소년기를 보내고 미국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후 2010년대에 서울로 돌아와 1인 스튜디오를 운영한다는 이 가상의 인물은 어떤 세대를 표상했으나 그 얼굴은 명확하지 않았다. 그때그때 유행하는 것은 있어도 일관된 시대 정신이나 양식이 성립하기는 어려운 휘발성의 현재들은 끊임없이 다른 시대와 다른 지역의 잔상들을 빨아들이고 다시 내뱉는 스펀지 같은 구조를 이룬다. 현재들은 계속해서 또 다른 현재들에 접속되지만 과거에 기반한 소속감이나 미래를 향한 목적 의식을 고양하지는 않는다. 흐릿하지만 끈질긴 단절의 감각이 지배하는 이 풍경은 전시를 만드는 사람들의 현실을 반영하는 동시에 이상화한다. 2019년의 전시장에 진열된 다양한 작업들에 관해, 기획자는 “일개인이 감당하기에 많은 양의 작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늘날의 그래픽 디자이너는 이 모든 것을 아무렇지 않게 동시에 해내며 살아가는 사람이기도 하다”라고 썼다.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인 것처럼 다채로운 경험과 그보다 더 풍부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매 순간 모든 곳에서 존재감을 발산해야 한다는 것은 지금 시간의 명령과도 같다. 순순히 복종할 수도 쉽사리 부정할 수도 없는 그 불가능한 지침 아래서 무수한 현재들이 구조적 보강 없이 확장되다가 제풀에 무너지고 다시 지어지기를 반복한다. 이 시간을 뱀처럼 날렵하게 가로지르거나 또는 그 뱀의 등에 매달려 아슬아슬하게 기어가는 묘기를 계속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시간의 형태를 그려볼 수 있을까? 그것을 위해서는 어떤 공간이 필요할까? 이것이 최근의 전시장에서 제기되는 질문이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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