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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정서를 품은 박물관같은 책: 『아키라우터: 안식처』

글
이화연(SPACE 16기 학생기자)
자료제공
남성택
진행
최은화 기자

『아키라우터』​표지

 

 

『아키라우터』의 편집팀은 문화재보존가 같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가치 있는 단서들을 발굴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매만진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중세시대에 출판된 삽화를 이 책의 표지로 삼은 것이다. 건축의 시작이었을 오두막, 즉 인류 최초의 안식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목줄을 한 누군가의 강아지, 젖을 물리는 누군가의 어머니가 쉬고 있다. 처음 안식처를 마련한 인간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키라우터』는 특정 결론에 도달하지 않는다. 다만 안식처의 담론들과 그 속에 깃든 사람의 마음을 느끼도록 박물관처럼 조성해줄 뿐이다. 독자에게 스스로 답을 해보도록 돕는 것이다. 어쩌면 질문하는 마음 그 자체가 건축의 본질인 안식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터뷰 남성택 한양대학교 교수, 조은지 한양대학교 박사과정 × 이화연 SPACE 16기 학생기자

 

 

이화연: 이번에 발행한 책이 이름부터 독특해요. ‘아키라우터’는 어떤 뜻인가요?

남성택: 아키라우터는 건축(architecture)과 무선공유기(router)를 합성한 단어에요. 건축과 전보(telegram)의 조합인 ‘아키그램’과 비슷하죠. 다만 1960년대의 아키그램이 일시적인 순간성을 강조한다면, 아키라우터는 이 시대 건축에 대한 관점을 고민한 결과에요. 현대의 관점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무선 인터넷을 떠올렸어요. 인공지능이나 4차혁명 등 디지털 문화의 공기 같은 조건이 무선 인터넷이니까요. 누구나 쉽게 접속하고 공유할 수 있는 책을 의도했죠. 수평적인 위계 관계로 건축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을 연결시키는 거에요. 다만 인터넷 환경처럼 무작위로 연관검색어로 연결되는 형식이 아니라 건축의 현재 문제를 검색했을 때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포함해서 정리해보고자 했어요.

 

이화연: 『아키라우터』가 스페셜 에디션이라고 들었어요. 어떤 의미에서 ‘스페셜’한가요? 그리고 어떻게 기획된 건가요?

남성택: 오랜 시간에 거쳐 정기적으로 출판되는 형식이 아니라, 일정 기간 동안만 만들어지는 특정 이벤트같은 프로젝트예요. 그래도 한 권은 아니고 최소한 다섯 권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르 코르뷔지에의 「에스프리 누보(L'Esprit Nouveau)」도 1920년에서 25년까지 일정 기간 동안만 출판됐죠. 슬픈 이야기 같지만 모든 일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특히 어떤 문제의식을 통해 나온 출판물들은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소멸되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매순간 새로운 문제와 생각들을 담는 작업이 새롭게 만들어질 테니까요. 그래서 다섯 권을 목표로 잡고 있어요. 하다가 너무 힘들면 세 권이 될지도 모르죠. (웃음) 어찌됐든 다섯 권이 된다면 후회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주제를 선정하고 싶어요. 그리고 한양대학교라는 테두리에 머물러 있고 싶진 않아요. 이곳을 시작점으로 삼아 더 다양한 영역의 분들과 공유하는 연구를 하는 거죠. 마치 무선 라우터처럼.

 

이화연: 『아키라우터』 1호는 ‘안식처’를 주제로 해요. 시리즈물의 첫 번째 호는 그 의미가 남다를 것 같은데, 안식처를 주제로 삼은 계기와 이유는 무엇인가요?

남성택: 첫 번째인만큼 건축의 가장 본질적인 주제를 다뤘어요. 딱 하나를 얘기하고 끝내야 한다면 가장 기본적인 것, 근본적인 것을 택하고 싶었거든요. 처음에는 불어로 키워드를 정했어요. 안식처가 불어로는 ‘abri’에요. 영어로는 ‘shelter’죠. 그런데 영어의 shelter로 abri를 번역해 완전하게 대체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요. 오늘날의 shelter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난민들을 위한 임시적 피난처로서의 의미가 강하거든요. 반면에 abri는 한국 사회에서 아직 생소한 만큼 의미가 덜 오염됐고 넓은 의미를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뭔가를 품는다, 덮는다, 보호한다는 뜻이에요. 저는 한 때 ‘덮개’로 번역하기도 했어요. 사실 우리 책에서는 육체적 보호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그러한 공간에서 파생되는 정서까지 다루고 있어요. 물리적 보호의 개념으로만 인식될 까봐 심리적 상태까지 담을 수 있는 더 넓은 의미의 안식처라는 단어를 번역어로 선택한 거죠. ‘처음 abri를 갖게 되었을 최초의 사람이 느낀 평온함은 단순한 보호처를 넘어 안식처가 아니었을까? 바로 그것이 건축의 시작이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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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라우터』​ 2~3쪽 

 

 

이화연: 건축의 객관과 주관을 같이 담는 책이네요. 더 구체적으로 안식처를 어떻게 다루는지 듣고 싶어요. 

남성택: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십서(De Architectura)』 중 2권인 ‘주거의 기원’을 『아키라우터』에 실었어요. 그 ‘기원’은 인류의 불의 발견과 건축의 탄생을 연결시켜요. 그는 인간이 불을 발견하며 모이기 시작했고 의사소통을 시작하면서 언어가 만들어지고 사회가 시작되었다고 봐요. 자신감을 획득한 인류는 그렇게 땅에서 솟아 있는 구조물을 만들게 되고 그런 오두막이 건축의 시작이라고 얘기해요. 여기서 오두막은 단순한 집이 아니라 척박하고 위험한 야생의 자연으로부터 나를 드러내도 된다는 인류의 자신감, 그 존재의 선언을 의미해요. 이에 착안해서 안식처의 시작을 먼저 ‘오두막(hut)’으로 소개해요. 우리 편집팀이 만든 이야기는 아니고요, 그런 해석들이 많이 보편화되어 있죠. 한편 비트루비우스의 설명에서는 오두막 이전에 ‘불(fire)’이 먼저 있었죠. 고트프리트 젬퍼도 인간의 삶을 보호하는 지붕, 벽, 바닥이 생겨나기 이전에 먼저 ‘​화로(hearth)’​가 있다고 했어요. 더 근본적으로 인간을 보호했던 건축의 불이었다는 것이죠. 생존의 관점으로 봤을 때 나무로 오두막을 짓거나 아니면 불을 피우는 두 가지 선택이 있고 실제로 이 두가지가 공존하는 것이 건축이라고 생각해요. 안식처를 제공하는 데에는 공간을 만들어서 보호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아니면 화로, 벽난로와 같은 에너지를 만들고 통제해 보호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는 것이죠. 후자는 기계적인 건축 설비로 이어질 수 있죠. 이 두 가지 잣대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걸 토대로 안식처를 정리해보는 것이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이화연: 글을 정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주제가 생긴 셈이네요.

남성택: 네, 그래서 ‘오두막’과 ‘불’로 안식처의 소주제를 정하고 그 두 가지 사이에서 걸쳐있는 글들을 ‘바리아/다양함(varia)’으로 구성했죠. 이를 위해서 자크 뤼캉, 딘 호크스 등 해외 학자 분들과 국내 학자들께 이 주제에 맞게 글을 요청해서 받았어요. 물론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님들이 적극 참여해 주셨구요. 예를 들어 전한종 교수님은 심지어 ‘스마트 홈’을 안식처와 연관된 담론으로 제안하셨어요. 결국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니까요. 이렇게 주제들이 열리기 시작하면, 자칫 심사위원처럼 우리가 주제에 맞는 것이라 규정한 글들을 선별하게 되는데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검색이란 것은 그런 열린 연관성이 가능하니까요. 안식처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을 받아들이고자 한 거죠. 글 뿐만 아니라 이미지들도 담았어요. 이미지의 힘도 중요하게 인식했죠. ‘현재의 우리가 연상하는 안식처의 이미지는 무엇일까?’를 고민하면서 역사 속에서 또 우리 주위에서 수집하고 선별한 이미지들을 우리 나름대로 싣기도 했죠. 독자 입장에서는 엉뚱한 이미지들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인터넷에서 검색할 때 엉뚱한 것들이 나오고 또 그런 것이 뜻밖의 영감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에서도 그런 부분이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죠. 그 엉뚱함, 생경함이 때로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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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라우터』​ 4~5쪽

 

 

이화연: 글들의 위계가 수평적으로 느껴져요.

남성택: 그러길 바랐어요. 역사적, 동시대적 글들이 함께 있고, 또 비건축가의 시각을 담고자 했던 것도 그 이유죠. 이를 위해 마지막 부분에 가수 루시드폴(조윤석)의 글을 실었어요. 앞부분에서 역사적 맥락의 거대한 담론이나 상대적으로 현학적으로 보일 수 있는 글들을 소개했다면, 마지막은 지금 우리 시대에서 공유할 수 있을만한 감성적인 안식처로 끝맺었어요. 이 책이 궁극적으로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고 여전히 질문을 던지는 열린 결론으로 마무리되길 바랬거든요.

 

이화연: 마지막 가수 루시드폴의 글은 정말 예상치 못했어요. 어떻게 연이 닿으신 건가요?

남성택: 스위스 로잔에서 공부할 때부터 만났으니 제법 오래된 친구같은 분이에요. 그 때 만난 여러 공학도 중에서 루시드폴은 결이 다른 느낌이었죠. 한때 건축학과로 대학원을 가고 싶어했을 정도로 건축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이화연: 그런데 왜 건축학도가 되지 않으셨어요?

남성택: 제가 건축학도보다는 건축주가 되라고 얘기 했거든요. (웃음) 공부하지 말고 자기 집을 그냥 직접 디자인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랬죠. 좋은 건축을 지으면 공부하지 않더라도 좋은 건축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화연: 책에 실린 루시드폴의 글을 보면 제주도에 오두막을 지은 내용이 나와요. 이게 바로 좋은 건축을 행한 것이니까, 건축가가 되신 거네요!

남성택: 맞아요. 루시드폴이 한국에 돌아와 제주도로 이사하게 되면서 직접 오두막을 지었어요. 그곳에 간 적이 있는데, 너무 느낌이 좋았어요. 귤 밭이 있는데 그 위에 작은 오두막이 떠있는 것 같았죠. 1층에 귤 창고 공간과 2층에 녹음실이 있어 서로 이질감이 있는 프로그램인데 그냥 잘 어울렸어요. 그 사람 삶이 그런거니까요. 1층은 귤을 담고 2층에서는 음악을 담는 재미있는 공간이 된거죠. 1층 매스는 살짝 틀었더라고요. 그 위치에 나무가 있어서 피하려고 틀었다고 했어요. 이런 감수성이 너무 와 닿았어요. 작년에 이 오두막에 대한 이야기를 학교 강연으로 부탁하기도 했죠. 제주도에서의 온라인 강연이었는데 마지막에는 거기서 녹음한 노래를 틀어줬어요. 제목이 ‘밤의 오스티나토’였어요. 풀벌레 소리가 노래 전반에 잔잔하게 깔리더라고요. 귤 농장이 농약을 치지 않아서 온갖 벌레들이 모여서 그런 소리가 자연스럽게 벤 거였어요. 농장은 풀벌레들의 안식처였던거죠. 특정한 환경, 조건, 공간 속에서 만들어진 고유한 음악인 거죠. 건축가가 아닌 사람도 자기 삶을 담아내는 오두막을 지을 수 있어요. 저런 오두막은 다른 곳에 만들어질 수 없어요. 저렇게 사는 사람이 저 사람밖에 없기 때문이죠.

 

 

『아키라우터』​ 22~23쪽

 

 

이화연: 책이 원시의 오두막에서 시작해서 현대의 오두막으로 끝나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긴 여정을 떠났다가 돌아온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글이 참 많고 다양해요. 기원전부터 현재에 이르는 총 23개의 글이 있는데, 어떻게 수집하고 편집하셨나요? 

남성택: 우선 주제에 대한 글을 리스트 업 했어요. 저도, 학생들도 모두 했죠. 한편 저희 편집팀이 새롭게 글을 청탁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전자와 후자의 경우 모두, 자료를 모으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얘기를 나눠야 했어요. 작업량으로 따지면 여기에 투입된 시간이 엄청날 거에요. 일주일에 한 번씩 회의를 하고, 결정한 내용을 번복하기도 했죠.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조은지: 회의록을 매번 작성했어요. 책의 22~25쪽에 있는 이미지는 저희가 회의를 통해 정리한 리서치 내용들을 이미지와 콜라주한 작업들이에요. 엑셀 표를 만들어서 변화되는 상황들을 기록하기도 하고, 이미지 작업들과 함께 펼쳐 놓고 전체를 보면서 매순간 고민들을 해결하려 노력하기도 했어요. 이 내용과 과정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자주 했는데, 그러다 보니 저희 스스로를 ‘링커(linker)’로 부르기도 했어요.

남성택: 표지 이미지 후보 중에는 공유기의 와이파이처럼 물결 모양으로 퍼지면서 온갖 종류의 아이디어들이 연결된 이미지도 있었어요. 

조은지: 실험했던 이미지들이 참 많았어요. 함께 작업한 전태규, 이단비, 조민수, 이주영, 김진형, 소한서 아키라우터 멤버들이 고생했어요. 이 기회를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고민해준 교수님과 멤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남성택: 아마추어리즘이죠.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에요. 프로페셔널한 세계에서는 규칙, 표준 같은 의례적인 것들이 있거든요. 우리도 실제 출판을 위해 출판사와 피드백을 주고 받으면서 포기한 것들이 있어요. 어느 정도는 필요한 것들이니까요. 그래도 시작부터 정해진 틀에 맞춰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확정된 것이 없는 상태에서는 이런 저런 생각해볼 수 있는 것들이 많잖아요. 결과물이 너무 세련된 것으로 완성되기보다는 허술한 부분도 같이 있는 모습으로 보이길 바랬어요.

 

이화연: 날 것들에서 촉발되는 흥미로운 신선함이 있네요. 다음 권이 기대돼요. 어떤 내용들을 다루실 예정인가요?

남성택: 1호 주제인 안식처는 누구나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어서 첫 번째 주제로 건축의 중심을 다루는 주제라고 생각이 들어 좋았어요. 2호 주제로는 ‘토털아트’를 생각하고 있어요. 두 번째 주제는 건축의 경계 이야기들, 그러니까 ‘심지어 이런 것까지 건축일까?’ 싶은 것들을 다룰 예정이에요. 토털아트는 19세기 후반 근대 건축의 주류였죠. 그 정신은 예술수공예운동부터 시작해서 바우하우스까지 이어지죠. 독일공작연맹이 소파 쿠션을 디자인하는 것부터 도시를 계획하기에 이르렀던 것처럼, 건축가들은 작은 오브제로 시작해서 큰 도시까지 건축으로 잇고자 했어요. 그 순간부터 이런 질문들이 생기는 것은 당연해요. ‘왜 건축가가 슬리퍼를 디자인하고자 하는 걸까?’ ‘왜 건축가가 도시를 디자인하는 걸까?’ 두 번째 주제는 이렇게 건축 담론을 확장시켜서 다뤄보는 거에요. 

 

이화연: 흥미롭네요. 염두에 두고 있는 건축가 혹은 아티스트가 있나요?

남성택: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토탈아트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궁극적으로 택한 형식이 오페라였어요. 그런데 오페라는 토탈아트를 선도했던 건축가들이 지향했던 건축과 많이 닮았어요. 이상적 환경을 무대처럼 세팅하고 그 위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예술가가 규정해 연출하는 방식이니까요. 따라서 건축가들은 스푼, 접시, 의자 등의 형태를 모두 통제하고자 했어요. 그런데 현대건축에서도 첨단의 신기술을 응용하는 건축가들이 작은 오브제의 규모로 테스트하는 경우가 있죠. 네리 옥스만의 예를 들 수 있어요. 자연생물체를 이용한 건축의 가능성을 실험할 때 우선적으로는 옷과 같은 것을 만들거든요. 건축적 옷인 거죠. 그런 것처럼 두 번째 『아키라우터』에서는 건축가들이 만드는 옷, 가구 등을 다루고, 가능하다면 더 나아가 도시적 스케일까지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이화연: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은데요, 아키라우터에서 ‘독자들이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 하는 부분이 있나요?

남성택: 각 글이 시작할 때마다 붉은 색 배경의 페이지가 있어요. 편집팀이 각자 자신이 담당한 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바라봤으면 좋겠는지를 적은 공간이에요. 개인적으로 느낀 점이나 때로는 외부 리뷰 일부를 발췌하면서 자유롭게 표현했어요. 이 붉은 페이지가 저희 편집팀이 저마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었어요. 그 외의 하얀 페이지에서는 수집한 글을 마치 보존해야 할 문화재처럼 여기고 개인적 견해와 표현은 최대한 배제했어요. 

 

 

『아키라우터』​ 48~49쪽​

 

 

이화연: 개입의 유무에 따라 바탕색의 유무가 있군요.

남성택: 맞아요. 그래서 붉은 페이지에는 글을 맡은 편집자의 이름이 있어요. 작업한 친구들의 이름을 최대한 노출시키고자 했어요. 그래서 다소 과하게 저희 이름들이 들어가 있어요. (웃음) 옛날 지은 성벽 같은 곳을 보면 그 때 지은 노동자들의 이름이 새겨 있잖아요. 일한 사람들의 노고를 흔적으로 남기는 거죠. 또 한 가지는 학생들의 손으로 직접 만든 책이잖아요. 그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학자 정도는 돼야 이런 학술적인 책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학부생부터 대학원생들까지 다양한 학교 구성원들이 공부하면서 스스로 책을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조은지: 저는 이미지도 눈 여겨 봐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역사적 이미지들은 너무 오래돼서 좋은 상태를 얻기까지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로 일일이 작업을 했거든요. 원본 비율로 다 보여줄 수 없는 이미지들도 있어서 구도를 잡을 때도 고민이 많았죠. 대표적으로, 표지 이미지가 그래요. 우측에 강아지가 있는데, 교수님께서는 왼쪽의 오두막이 더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반대로 저는 강아지가 더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죠. 이런 작은 의견 대립도 있었어요. (웃음) 그렇게 의견을 계속해서 조율해 나가면서 표지가 완성됐어요.

남성택: 저희도 작업하며 알게 된 거지만, 오두막 앞에 이런 개를 그린 것이 흥미로워요. 르네상스 때 다시 출판된 비트루비우스의 책에 실려있던 목판화 삽화거든요. 비트루비우스의 문구를 후대가 해석해 그린 이미지인 것이죠. 해외의 유명 건축가들의 강연, 출판물 등을 보면 자주 등장하는 역사적 이미지들이 있어요. 과거의 어떤 이미지를 새롭게 분석하고 재해석하면서 새로운 건축 이론들을 발전시켜나가는 거죠. 우리도 그들처럼 역사적 이미지들을 많이 알고 관찰하며 영감을 받거나 새롭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하겠죠. 어쨌든 그 결과 페이지 수가 너무 많아져 버렸어요. (웃음)

 

이화연: 앞으로의 책들도 기대돼요. 다섯 권 꼭 다 내주세요.

남성택: 노력 해볼게요. (웃음)

 

 

『아키라우터』​ 28~29쪽

 

『아키라우터』​ 30~31쪽​

 

​『아키라우터』​ 44~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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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택
남성택은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마르느 라 발레 건축대학에서 석사 및 프랑스 건축사를 획득했다. 이후 실무를 병행하며 스위스 로잔 연방공과대학교에서 자크 뤼캉 교수의 지도 아래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9년 뉴욕대학교 The Institute of Fine Arts의 방문학자로 연구를 수행했다. 현재는 건축을 중심으로 오브제 디자인에서 도시에 이르기까지, 스케일의 구분 없이 삶을 담는 인위적 공간 환경과 연관된 구성, 구축, 변형 등 총체적 이론 연구와 건축설계에 관심 두고 있다. 『오늘의 건축을 규명하다』(2019)를 번역한 바 있다.
조은지
조은지는 영국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현재 한양대학교 대학원 건축이론역사연구실에서 박사과정에 있다. 건축의 중심과 경계를 연구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Air Environment in Dome Space: Natural Ventilation versus Air conditioning or their Confluence for Purification, The Reinvention and Transformation of the Balconies in response to the sick building syndrome (SBS)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화연
이화연은 예원학교와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국민대학교에서 회화과와 공간디자인학과를 복수 전공했다. 현재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공간·문화디자인학과 문화디자인 랩에서 석사학위 재학 중이다. 문화예술교육사 국가자격증을 취득했으며 한국 문화, 예술, 교육에 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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