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미술관 리움이 10월 8일 다시 문을 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 2월 휴관에 들어간 지 1년 7개월 만의 재개관이다. 휴관 이전에도 3년가량 상설전만 열어 사실상 4년 6개월여 만의 복귀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재개관을 맞아 리움은 전시, 공간, 서비스 모든 면에서 무겁고 어려운 이미지를 벗어나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는 변화를 추구했다.

흑백 톤으로 새로 단장한 리움의 로비. 로비 우측에 설치된 대형 미디어월에는 제니퍼 스타인캠프의 ‘태고의, 2’, 60여 명의 작가 인터뷰 시리즈 '리움, 작가를 만나다'를 상영하고 있다. / 사진_리움미술관
변화 속에서도 M1 고미술 전시의 대표작은 여전했다. 관람객을 맞이하는 첫 작품 ‘청자동채 연화문 표형 주자’와 백자 섹션의 ‘달항아리’, 불교미술 섹션의 ‘금동대탑’ 등이 자리를 지킨 가운데, 김홍도의 ‘군선도’,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제작된 유일한 팔각합인 ‘나전 국화당초문 팔각합’ 등이 새롭게 모습을 드러냈다. 2014년 기획전 <교감>에서 시도한 바 있는 고미술과 현대미술의 조화도 다시 선보였다. ‘청자상감 운학모란국화문 매병’ 뒤로 청자 빛깔을 품은 바이런 킴의 ‘고려청자유약 #2’, 분청사기와 나란히 분청사기의 긁어내기 기법과 일맥상통하는 박서보의 ‘묘법 No.14-81’, 겸재 정선의 ‘노백도’ 맞은 편으로 윤형로의 ‘겸재예찬 M.710’ 등을 함께 전시한 것은 시대를 넘나드는 리움의 방대한 소장품에 대한 감탄을 자아낸다.
고미술 전시의 마지막 부분, ‘금동대탑’ 옆에는 요시오카 도쿠진의 ‘워터 블록’이 놓여있다. 관람객이 앉아서 쉬고 갈 수 있는 이 유리 의자 작품은 시공간을 초월한 작품의 조화와 함께 관람객에게 보다 열린 태도를 취하겠다는 조심스러운 제스처로 보인다.

(좌측부터 차례로) '청자동채 연화문 표형 주자, 고려, 13세기, 점토 / 사진_리움미술관
'백자청화 운룡문 호', 조선, 18세기, 백토 / 사진_리움미술관
청자와 바이런 킴의 ‘고려청자유약 #2’ 전시 모습 / 사진_오주연

고미술 상설전 1층의 전시 전경. 고려 시대 '금동 대탑' 옆으로 요시오카 도쿠진의 '워터 블록'이 놓여져 있다. / 사진_리움미술관
한편 M2 현대미술 전시에서는 보다 과감한 변화가 이뤄졌다. 출품작의 절반 이상이 상설전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3개 층에 걸쳐 층별 주제를 가지고 소규모 기획전처럼 구성되어 관람객들에게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지닌 검은색의 세계를 탐구하는 ‘검은 공백’,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를 생각하게 하는 ‘중력의 역방향’, 예술의 무한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이상한 행성’이라는 3개의 주제 아래 스키모토 히로시, 아니쉬 카푸어 등 리움에서 개인전을 연 바 있는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은 물론 최만린, 최욱경, 이승조, 최우람 등 여러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현대미술 상설전 2층 '검은 공백' 전시 전경 / 사진_리움미술관

현대미술 상설전 지하 1층 '이상한 행성' 전시 전경 / 사진_리움미술관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유명 작가의 유명 작품들이 기획전까지 즐비하게 이어진다. 전시실로 향하는 램프에 자코메티의 ‘거대한 여인 Ⅲ’, 안토니 곰리의 ‘표현’, 조지 시걸의 ‘러시 아워’ 등이 무심한 듯 놓여있는 것부터 화려한 작품이 쏟아질 것을 짐작하게 한다.
재개관 기확전 <인간, 일곱 개의 질문>은 유례없는 팬데믹 상황 속 ‘인간’에 대해 돌아봤다. 7개의 소주제를 가지고 2차대전 전후의 실존주의부터 휴머니즘, 포스트휴머니즘의 흐름을 쫓아가며, 인간의 존재 의미와 인간적 가치에 대한 반세기 동안의 예술적 탐구를 선보인다. SNS에서 많은 후기 사진을 생산하고 있는 론 뮤익의 ‘마스크 Ⅱ’를 비롯해 루이즈 부르주아의 '유방', 신디 셔먼의 '부서진 인형' 연작, 그리고 김옥선, 이불, 정금형, 정연두 등 국내외 작가 51명의 작품 130여 점이 전시실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기획전시실로 내려가는 입구에 설치된 조지 시걸의 '러시 아워'. 뒤로는 안토니 곰리의 ‘표현’이 보인다. / 사진_한도희, 제공_리움미술관

<인간, 일곱 개의 질문>, ‘일그러진 몸’ 섹션 전시 전경 / 사진_한도희, 제공_리움미술관

<인간, 일곱 개의 질문>, ‘초월 열망’ 섹션 전시 전경 / 사진_오주연
전시 기획에 크고 작은 변화가 있지만, 변화는 공간 구성 및 운영에서 더욱 가시화됐다.
우선 관람객을 맞이하는 로비의 모습이 크게 바뀌었다.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로툰다를 중심으로 로비 공간을 크게 비우고 매표 데스크, 사물함, 의자 등 내부를 흑백 톤으로 정돈하여 시각적으로 개방감을 선사한다. 또한 측면에 있던 매표 데스크를 정면으로 배치하여 가시성을 높이는 한편, 데스크 또한 숯을 쌓아 올린 작품, 이배의 ‘불로부터’를 설치해 미술관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공간 리뉴얼은 패션과 미술, 무대 설치를 오가는 정구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총괄했다. 미니멀한 그의 평소 스타일을 반영한 검정의 사용이 돋보인 것에 대해 그는 “리움을 설계한 세 명의 세계적인 건축가가 모두 검정을 핵심적인 색으로 사용했다”며 “건축적으로 아름답게 만들어진 공간을 존중하고, 돋보이게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상설전과 기획전을 모두 보는 것만으로도 반나절이 훌쩍 흐를 만한 구성이라 부속 시설을 지나치기 쉽다. 스토어는 전통건축의 모습을 담은 목재 구조물을 만들어 한국적인 분위기를 담았다. 검정이 강조된 세련된 로비 분위기와 다소 어울리지 않는 측면이 있지만, 공간 디자인을 ‘스튜디오 라이터스’라는 젊은 작가와 함께 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스토어에서 판매하는 제품 또한 문승지, 이광호 등 6인의 가구 디자이너가 리움을 위해 특별 제작한 가구 미니어처, 30여 명의 한국 공예작가의 작품 등을 포함해 국제적인 미술관으로서 한국의 다양한 작가를 알리려는 모습이 눈에 띈다.
스토어와 맞닿아 있는 카페에는 좌석이 없다. 대신 렘 콜하스가 설계한 ‘블랙박스’ 기획전시실 상부의 라운지를 음료를 마시며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개방하고 있다. 라운지는 시각예술가 김용관이 네모와 동그라미를 중첩한 패턴으로 만든 가구를 가지고 설치 개념으로 연출했다. 라운지 한편으로 어린이를 위한 교육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이 라운지는 원래 멤버십 행사 등에 사용되며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여러 세대에게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은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이배, '불로부터', 2021, 숯, 고무줄, 100 x 1400 x 110cm / 사진_리움미술관

리움 스토어 전경 / 사진_리움미술관

라운지 전경 / 사진_오주연
4년이 넘는 휴식이 아쉬웠다는 듯 리움은 많은 볼거리와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돌아왔다. 이건희 컬렉션 기증을 계기로 미술계는 물론, 일반인들 또한 리움 재개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전시 예매가 연일 매진되고 있는 이러한 관심의 반향이 미술관의 변화를 향한 의지와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기를 기대해본다. 태현선 학예연구실장은 “이번 전시는 변화의 완성이라기보다 앞으로 보여줄 변화의 태도를 드러내는 것”임을 강조했다. “내후년쯤이면 ’리움답지 않다’고 할만한 전시도 열릴 것”이라며, “전시를 꾸준히 지켜보면서 지속되는 변화를 함께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미술관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상설전은 상시 무료로 운영되며, <인간, 일곱 개의 질문> 기획전도 연말까지 무료로 진행된다. (글 오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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