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제공 김개천
김개천(국민대학교 교수)의 De빌딩은 건물의 일반적인 형식에 저항한다. 거주자들이 스스로 공간을 만들어가도록 창조의 자유가 허락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지난 10월, 김개천을 만나 이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 초반에는 건축가가 의도한 ‘비유비무(非有非無)’와 ‘증식’의 개념이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인터뷰를 마친 후 그 개념이 곧 우리 삶의 모습 자체임을 깨닫게 됐다.
인터뷰 김개천 국민대학교 교수 × 이화연 SPACE 학생기자
이화연(이): 'De빌딩‘이란 이름의 뜻이 궁금해요. 어떤 의미인가요?
김개천(김): 디자인(design)할 때 ‘de’에요. 여러가지 뜻이 있지만 저는 그 중에서 ‘저항하다’라는 의미를 근본적인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사인(sign)’은 정해진 규칙이고 그 앞에 de가 붙어서 모든 정해진 것에 저항한다는 것이 디자인이라고 볼 수 있죠. 결국 기존의 것들을 무효화시키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이 건물의 외관이 기존의 디자인에 저항하는 것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죠. 제 나름대로는 저항하는 형식이 되고 싶었어요.
이: 예술가는 작품에 그러한 메시지를 담는데요, 교수님께서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담고자 하시나요?
김: 기본적으로 제 작품에는 기존의 것에 저항하는 측면이 있는데요. 특히 이 프로젝트는 상업성과 작품성에 대한 생각으로 출발했어요. 여기는 경의선책거리로 연희동 주요 상권으로 이어지는 소위 ‘핫한’ 길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그런 곳에 임대를 위한 건물을 지은 건데요. 그래서 상업성이 가장 중요한 주제였죠. 그런 상업성과 작품성, 예술성을 어떻게 화해시킬 것인가가 주요 담론이었어요.
이: De빌딩이 들어서기 전에는 이 장소에 무엇이 있었나요?
김: 건축주의 주택이 있었어요. 여전히 제일 위층에 살고 계세요. 집이 두 채가 있어요. 하나는 자녀 분들이 거주하고 계시고 나머지는 노부모 세대가 거주하는 2세대 주택이예요.
이: 이 주변의 맥락을 어떻게 해석하셨나요?
김: 저는 설계할 때 주변 맥락에 관심을 갖는 편이 아니에요. 맥락을 기반으로 뭔가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고유의 맥락에 동화되기보다는 기존과는 상관없는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요. 장소와는 다른 것을 추구하고 싶어요. 광화문이나 종로 같이 중요한 장소성을 갖는 곳에서는 맥락을 고려하죠. 하지만 이곳은 상권이 우세한 곳이잖아요. 그런 왕성한 물질의 교류를 새롭게 선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그런 새로운 거점이 생김으로써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장소성이 필요하죠.

ⓒ이화연
이: 클라이언트와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구체적으로 요구한 사항은 무엇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김: 우선 건축주의 자택을 요구했어요. 그 아래층에는 게스트하우스를 위한 공간을 얘기했죠. 나머지 1, 2, 3층은 임대용 상업 공간을 부탁했어요. 이곳은 경험을 소비하는 MZ 세대들이 주로 찾는 곳이니까 일반적인 오피스 빌딩 같은 건물을 선호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 외에 디자인 측면에서 요구한 부분은 딱히 없었어요. 건축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이제는 보는 눈이 생겼다고 생각하시지요. (웃음)
이: 건물의 규모가 굉장히 크게 느껴져요.
김: 그런데 땅은 180평밖에 안 돼요. 옆 건물들과 똑같이 5층 건물이죠. 지하층 공간에서, 법 조항을 열심히 해석하고 연구해서 1층 상점처럼 보일 수 있도록 신경 썼죠. 경사가 높은 땅이거든요. 일부러 건물이 커 보이도록 만든 장치에요. 큰 건물처럼 보이게 하는 것에 많은 고민을 했거든요. 규모는 상업적으로 중요한 요소이니까요.
이: 공간에 대해서 독자분들께 소개를 부탁드려요.
김: 저는 형태가 드러나지 않는 형식을 좋아해요. 드러나지 않은 것은 한 마디로 규정하기 힘든 형식을 의미해요. '비유비무(非有非無)하다'는 것이죠. 있는 듯 하면서도 없고 없는 듯 하면서도 있는 것, 그러니까 여러 가지가 혼재된 형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혼재되어 있다 보니까 무엇이라고 규정지을 수 없게 되죠. 이 건물이 바로 그런 형식을 하고 있어요. 사실은 뼈대만으로 설계되어 있거든요. 내부에서 보면 기둥과 빔들만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어요. 따로 건물을 미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 꾸민 것들이 없어요. 사각형의 기하학적 구조만 갖고 있는 건물이에요. 대신, 건물 외관에 와이어 패널을 덧댄 것들이나 유리에 직선을 그어놓은 레이어들이 있긴 하죠. 와이어 패널들은 구멍이 뚫려 있는데요 그것은 물성이 아니고 뒤에 있는 구조를 비추고 있을 뿐이에요. 그래서 밖에서 바라볼 때 관점에 따라서 구조가 보이기도, 안 보이기도 하죠. 시간이나 기후에 따라서는 그림자의 형태들이 달라져요. 와이어 패널들은 구멍이니까 사각형의 점들이기도 해요. 즉, 매스, 면, 직선, 점의 건축이에요. 기하학이지만 기하학적으로 느껴지지 않아요. 형태가 있는 것 같지만 투명하거나 반투명하거나 비어 있어서 구체적인 물성은 또 아니에요. 그래서 사진으로 찍을 때마다 계속 장면이 바뀔 거예요.
이: 한편으로는 규정짓기 어려운 아이러니를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김: 그것도 좋은 말이에요. 그런데 저로서는 내용이 없는 건축이 되고 싶어요. 내용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이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있기를 원해요. 어떤 특정한 것만 주장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에요. 그 속에 녹아 들어 가서 개괄되고 증식되길 원해요. 개괄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개론처럼 설명한다는 것이에요. 증식된다는 것은 건물이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넘어서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 내길 원한다는 뜻이에요. 뭔가에 열중하고 일하면 몸속의 물이 어떤 요소들과 섞여서 땀으로 나오듯이 잠재적 존재가 되길 바라요.
이: 의도된 공백이라는 거네요.
김: 그렇죠. 제 작품이 대부분 그래요. 앞서서 어떤 규칙에 저항하는 것이 'De+Sign'이라고 본다고 말씀드렸던 것처럼요. 기존의 예술의 방식이 어떤 것들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방식을 취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De빌딩이 되는 거죠.

사진 제공 김개천
이: 입구에서도 그런 의도가 느껴져요. 찾기가 어려웠거든요. (웃음)
김: 맞아요. 쓰는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자유로워지는 형식이 좋아요. 입구를 한정 지어놓고 강조하고 싶지 않아요. 때로는 상업적으로 그렇게 하는 게 도움이 될 때도 있죠. 그렇지만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 동선이 특이해요. 카페 테라스에서 위층의 오피스 테라스로 연결되기도 해요.
김: 맞아요. 그 위로 더 이상 연결되지는 않죠. 일부러 비워 뒀어요. 왜냐하면 오피스 공간에 입주할 사람이 어떻게 쓸지 모르잖아요. 내부 계단만 사용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필요하면 언제든지 계단을 설치할 수 있도록 크기를 고려해서 비워 뒀어요. 다시 말하지만, 구체적으로 규명하지 않음으로써 들어오는 사람들에 의해서 증식될 수 있도록 공백을 의도한 거예요. 완결된 건축이면 손대면 안 되잖아요. 이 건물은 얼마든지 손대도 돼요. 그래도 건물은 자신의 힘을 그대로 갖고 있을 수 있는 건축을 바래요. 그래서 계단 한 개만 연결시켰어요. 하나 더 해도 된다는 촉발제 같은 역할인 거죠. 혹시 제가 만든 ‘한 칸 집’을 아시나요?
이: 문으로만 구성된 한 칸의 집이죠?
김: 네. 그 집이 그렇잖아요. 완전히 변화하고 자유로운 집이죠. 이것도 형식에 있어서 자유로운 형식이죠. 한 칸 집만큼 자유롭진 않을지라도 여지가 남아있는 공간이거든요. 나는 건축이라는 것이 완결된 구조 속에 있길 원하지 않아요. 오히려 어떻게 하면 우리 삶을 자유롭게 만들고, 건강하게 만들고, 삶을 고양시키고, 예술적으로 창조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인가에 관심이 많아요. 그러려면 자유로운 의지, 예술적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조해 주어야 하겠죠.
이: 각 층의 관계를 어떻게 상정하신 건가요?
김: 그건 저도 모르는 일이었죠. 누가 어떻게 들어올지 모르잖아요. 앞으로도 계속 있을 보장도 없고요. (웃음)
이: 저기 타공판 같은 바닥도 일반적인 방식은 아닌 것 같아요. 바닥을 디딜 수 있나요? 생각보다 구멍이 크네요.
김: 그럼요, 가능해요. 군데 군데 필요하면 거의 모든 곳에 저렇게 발코니를 만들 수 있어요.

ⓒ이지우
이: 시공의 과정도 궁금해요. 불규칙적인 외피들이어서 다소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김: 그런데 안의 콘크리트 구조는 박스들이 모여 만들어진 규칙적인 구조예요. 다만 말한 것처럼 구멍이 있는 와이어 패널들이 불규칙적으로 부분 부분을 가리며 있기 때문에 시공이 복잡해 보일 뿐이죠. 쉽게 말하면 간단한 박스 구조의 겉면에 타공판들을 붙인 것뿐이에요. (웃음)
이: 카페 테라스에 연못이 있는 것도 흥미로워요. 징검다리처럼 두 개의 디딤돌을 디디고 지나가야 해요. 이러한 장치에 어떤 설계 의도가 있는지 궁금해요.
김: 큰 연못은 하자가 많이 생기고 관리도 힘들죠. 하지만 작은 연못으로 간소하게라도 넣은 이유는 그곳에 비치는 장면을 보게 하기 위해서에요. 비올 때 물방울이 떨어지는 파장으로 또 새로운 것을 보게 되겠죠. 즉 새로운 방식으로 공간을 바라보게 하기 위한 장치에요. 저런 사각형의 연못은 우리나라 전통 연못의 형식이기도 하죠. 그것은 연못 자체의 아름다움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연못에 비친 경치를 바라보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예요. 우주를 바라보게 하는 프레임인 거죠. 특별하지 않은 것으로 특별한 것을 느끼게 하고 싶거든요. 그래서 가장 평범하고 무표정 같은 도형인 사각형을 택했어요. 기존에 있는 것으로 기존에 없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질서에 속해있지 않고 해체적이지도 않아요. 알 수 없는 형식이죠.
이: 왜 그런 형식을 하고 싶으신 거에요?
김: 알 수 없는 형식이 될 때 그곳에 사는 사람들한테 다양한 것을 선사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건축주 자녀분께서 자신의 방에서 보는 풍경을 찍어서 보내준 사진이 있는데, 아침마다 같은 각도로 사진을 찍는 대요.

ⓒ이지우
이: 시간에 따라서 보이는 경치가 계속 바뀌나 보군요.
김: 네. 그래서 저 사진 봤을 때 굉장히 기뻤어요. 정해진 형식은 날마다 사진을 찍고 싶게 만들지 않죠. 어떻게 해야 지겨워지지 않을까요? 영원을 바라는 건 아니에요. 다만 새로움을 계속 느끼게 해야겠죠. 여러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 보면 그런 긴장감과 신비감이 지속될 거예요. 더군다나 사는 공간이면 그런 영향력은 더하겠죠.
이: 마치 생물이 성장하는 것처럼 변화하네요. 오랜 시간에 걸쳐 고심하고 이런 건축의 정의를 도출하신 것 같아요. 과거와는 다르게 요즘에 관심을 갖게 되신 것들이 있나요?
김: 젊었을 때는 선의 건축에 관심이 있었어요. 동양의 선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건축을 연구했어요. 지금은 동양의 선이 나의 배경이고, 그 배후에 다시 현대적인 사고를 스며들게 하고 싶어요. 이 두 가지가 아마도 지금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 건축도 그러길 바라요. 선의 형식은 무위의 형식을 얘기해요. 무위라는 것은 가지고 있는 것이 거의 없는 상태예요. 가지고 있는 것이 거의 없는 상태로 지극함에 이르고 다시 평범해지는 것이 선의 형식이라고 할 수 있겠죠. 즉, 저는 건물을 만들 때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건축을 만들고 싶어요. 그것이 제가 말하는 ‘Less’의 상태에요. 미스 반 데 로에는 ‘Less is more’라고 했죠. 차용하여 저는 ‘Less but more’를 말하고 싶어요. ‘Less’한 순간에 ‘More’가 되고, ‘More’한 순간에 ‘Less’가 되는 거죠. 어디에 머무르지 않는 변화의 구조이죠. 그런 것이 되기 위해서 모든 장면이나 형태를 의도해서 만들지는 않아요. 제 의지에서 벗어나 있는 건축을 생각해요. 그래서 저한테 ‘이 건물에서 저런 장면이 만들어질 줄 알았어요?’라고 묻는다면 ‘나도 몰랐어요.’라고 답할 거예요. (웃음)
이: 의도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네요. 그렇게 탄생된 이 건물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으신가요?
김: 특정한 장면을 의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딱히 없어요. 그렇지만 전반적인 변화하는 현상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아요. 기승전결의 형식을 벗어나는 거예요. 의도한 것으로만 완성된 형식은 한 번 보고 나오면 또 갈 필요가 없어요. 누군가가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할 때, 어떤 부분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그 부분이 사라지면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겠지요?
김: 네. 조건이 있는 사랑인 거죠. 이유를 모르겠지만 사랑하게 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건축이고 싶은 거예요. 요구하지않고 바라지도 않는 건축일 때 그 속에서 삶을 자유롭고, 신비롭게 만들겠죠. 우리가 살아있듯이 건축도 생물처럼 살아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아까 얘기했듯이 작은 연못을 하나 둠으로써 빗방울이 떨어질 때 파문이 일고 여러 가지 현상이 생겨나잖아요. 누군가는 거기서 옛사람을 떠올릴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 셀 수 없이 많은 경우의 현상들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삶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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