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김종성이 설계한 남산의 밀레니엄 힐튼 서울(이하 힐튼호텔)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1983년 문을 연 힐튼호텔은 IIT 건축대학 교수를 역임하던 그가 1978년 귀국한 계기가 된 작업이다.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사무실에서 일하며 그와 마찬가지로 테크놀로지를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이고 주요 미적 요소로 삼았던 김종성은 힐튼호텔에서 이를 한국의 토양에 맞게 발전시킨다. 당시 국내에서 적용하기 어려웠던 기술과 디자인, 재료를 통해 높은 완성도로 구현된 힐튼호텔은 한국 현대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2021년 3월 즈음부터 이 힐튼호텔의 매각설이 회자되었고, 이후 호텔 측이 매각 계획을 철회했으나, 결국 12월 10일 이지스자산운용이 힐튼호텔을 인수하는 최종 계약을 맺었다. 이지스자산운용 측은 “현재 호텔 건물을 철거한 뒤 호텔·오피스·상업 시설 등을 갖춘 복합시설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언론에 홍보했다. 설계 당시 허용 용적률 600% 중 350%만 써서 지었기 때문에, 부동산적 가치로만 판단한다면 용적률 600%를 채우거나 완화 용적률 800%를 적용해 신축하는 편이 이익이라는 결론이 나오므로, 한 시대의 건축적 성취를 증언하는 힐튼호텔이라도 철거를 피하기 어렵다.


매각 소식을 접하고 건축물의 규모나 위치, 성격 등에서 다른 사례이지만 김수근의 공간사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SPACE(공간) 554호(2014년 1월호)에서는 ‘공간사옥, 그리고 남겨진 쟁점들’이란 특집을 마련했다. 한국 현대건축의 신화로 군림했던 공간사옥이 민간에 매각되면서 보존 여부가 불투명해졌으며, 그 과정에서 공간사옥의 본질적인 가치와 변용에 대한 담론화가 부족하다는 자성에서 마련된 특집이었다. 당시 건축계는 구 공간사옥을 공공에서 매입하여 보존하길 바랐으나, 결국 2013년 11월 아라리오에 매각되었다. 원 소유주였던 공간건축은 매각이 이루어지기 전 문화재 지정 신청을 했으며, 매각 이후 아라리오의 동의를 얻어 2014년 2월 27일 공간사옥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다행한 일이었지만, 등록문화재도 내부의 1/4 이하는 신고만 하면 현상변경이 가능하기 때문에, 당시 한 건축가의 탄식처럼 건축물의 본질이 “세대를 거쳐 보존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SPACE」 554호 특집 서두에서 편집자는 공간사옥의 사례가 한국 건축의 미래유산을 재정의하고 보전의 방법론을 재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염원을 피력했다. 등록문화재 제도 역시 대부분 지어진 지 50년이 경과한 건축물을 지정 대상으로 한다는 점과 특히 민간건축물의 경우 소유자의 동의와 보전 의지가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그 혜택을 입을 수 있는 건축물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면에서 많은 한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해당 건축물의 문화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가 없다면, 의미 있는 현대건축물들이 소멸되는 일은 끊임없이 반복될 문제이기 때문이다.
2022년을 맞이하는 현재, 10여 년 전에서 우리 건축계는 얼마나 나아갔는가? 지난 11월 17일 원오원아키텍스건축사사무소에서 열린 포럼 ‘건축가 김종성과 건축적 유산’에서 건축가 이정훈은 “국내에서 아무런 논쟁도 없이 힐튼호텔의 매각과 철거, 개발 논의가 쉽게 이뤄진다는 것은 사람들이 이 일에 관심이 없다는 방증”이라며,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건축의 가치를 알리고, 사람들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작업”의 일환으로 논쟁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자리에서 건축가 황두진은 민간 소유의 상업건축물인 “기존 건물의 핵심적인 부분들을 잘 유지하면서 용적률도 맞출 수 있는 지혜”를 모아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경제활동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도시에 광장이나 공원과 같은 사회·문화적인 공간이 필요하듯이, 건축물이 지닌 문화적 가치는 무엇이고, 그것이 주는 경험적이고 상징적인 편익이 무엇인지 건축계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소통 가능한 언어로 사회를 설득해야, 소유자의 보전 의지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건축계 내부적으로도 힐튼호텔의 건축적 가치에 대한 담론을 두텁게 생성하고, 변용 범위와 가능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으는 일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2022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힐튼호텔이 건축계에 무기력한 회한이 아니라 건축물의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발전적인 소통 과정을 이끌어낸 좋은 선례로 남길 바란다.
편집장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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