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 이미지) 다주로의 작업실 벽면을 채우는 여러 이미지 ⓒ김예람
자신만의 디자인 정체성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많은 건축학도가 긴 수련의 시간을 설계사무소에서 보내는데, 「SPACE」가 만난 다주로의 세 디자이너는 험난하지만 목적지에 빨리 다다르기 위해 사회초년생의 나이에 본인들의 사무소를 차렸다. 지난해 10월부터 활동한 다주로는 자체 가구 제작 프로젝트에서 시작해 파빌리온, 상업공간 등으로 작업 규모와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중이다. 일 년여의 시간 동안 그들은 어떠한 생각을 토대로 작업을 이어왔고, 앞으로는 어디를 향해 나아갈까?
인터뷰 노우영, 이준형, 정담우 다주로 공동대표 × 김예람
김예람(김):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은 스튜디오는 자신의 디자인을 한 문장으로 설명해야 하는 순간을 자주 맞닥뜨린다. 다주로는 ‘개인적인 기억을 바탕으로 다양한 내러티브를 가진 오브제, 가구, 공간을 디자인한다’로 작업 지향을 설명해오고 있다. 이전에 구상한 내러티브를 살펴보면 종교, 신화, 토속에 관한 내용이 많은데, 지역을 막론하고 오래된 이야기의 일부를 차용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정담우(정): 다주로의 작업이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종교나 신화처럼 이미 친숙한 이야기를 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집에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돌하르방 미니어처나 부처 모양의 향대처럼 말이다. (웃음) 작품의 내러티브를 만들 때 동양 문화권에서 살아온 우리의 기억 속 무언가를 정확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다르게 기억하는 형태를 조합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 익숙한 듯하지만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작업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김: 그렇게 내러티브에 맞는 기억을 편집하며 만든 첫 작업이 ‘스투파’(2020)다. GUVS 가구공모전의 대상작이기도 한 이 사이드 테이블은 보통의 수납 가구와 어떻게 다른가?
정: 개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빈티지 가구 편집숍 GUVS가 지금 시대의 주거에 적합한 가구를 만들고자 공모전을 열었다. 우리는 1~2인 가구 대다수가 겪고 있는 문제를 짚고자 했는데, 그들의 집에는 남기자니 잘 쓰지 않고 버리자니 아까운 물건이 참 많을 것 같았다. 다시는 꺼내지 않을 각오로 물건을 버리듯이 보관하는 가구가 필요해 보여, 장례식에서 사용하는 관을 모티브로 한 사이드 테이블을 만들었다. 핀으로 완전히 결속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수납함과 달리 물건을 뺄 수 없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가구로서의 사용성은 좀 떨어질 테지만 집과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웃음)
김: 첫 작업의 개념을 확장하여 아홉 점의 가구 연작 ‘스투파 시리즈’(2020~2021)를 완성했다. 작품의 면면을 자세히 묘사해 달라.
정: ‘스투파 시리즈’에는 공모전 출품작인 ‘스투파(stupa)’ 말고도 ‘초롱(chorong)’, ‘호롱(horong)’, ‘토오로오(tōrō)’, ‘티안(tian)’, ‘투(tu)’, ‘장롱(jangrong)’, ‘바간(bagan)’, ‘사이센(saisen)’이 있다. ‘스투파 시리즈’의 나무와 철이 교차하고 엉키는 모습이 마치 생명을 지닌 것처럼 보이기를 바랐다. 이 시리즈는 조명과 수납 용도로 구분된다. ‘초롱’은 막대 받침의 위치를 옮기며 빛의 세기를 조절할 수 있는 조명이고, ‘호롱’은 겹겹이 쌓인 목재 플레이트 사이로 빛이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스탠드 램프다. ‘토오로오’는 키가 큰 스탠드 램프로 사잇살에 옷이나 가방을 걸 수 있다. ‘티안’과 ‘투’는 봉과 버클을 사용해 가구의 높이를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스툴이고, ‘바간’은 다양한 크기의 칸으로 구성된 서랍장이자 상판 확장이 가능한 식탁이다. 장신구를 넣을 수 있는 ‘장롱’은 정갈하게 보이지만 문을 열면 무서운 인상을 주는 단면을 가지고 있고, 낮은 높이의 보관함인 ‘사이센’은 신에게 바치는 일본의 공물함 형태를 빌려 가구 시리즈 전반에 리얼리티를 더하는 역할을 한다.
이준형(이): 공모전 수상 이후 다주로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을 지속시키고 앞으로 전개할 이야기를 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세계관을 빨리 구축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가구를 여럿 만들었다. (웃음)

‘스투파 시리즈’의 사이드 테이블 ‘스투파’

‘스투파 시리즈’의 스툴 ‘투’
김: 공간으로 스케일을 확대해보자. 올해 9월, 푸하하하프렌즈와 함께 파빌리온 ‘의심스러운 발자국’(2021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현장 프로젝트)을 제작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배경과 송전탑 모양의 구조물이 지닌 콘셉트에 대해 설명해 달라.
노우영(노): 푸하하하프렌즈의 한승재 소장이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스툴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첫 미팅 때 작업의 디테일을 보여주기 위해 크게 만든 벤치 모형 하나가 있었는데, 우연히 그 모형 밑에 조그마한 사람 모형이 놓여 있었다. 한승재가 그 모습을 보고 벤치보다는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큰 파빌리온을 만들면 멋있겠다는 피드백을 줬다. 디자인을 발전시킬 때마다 그가 우리에게 계속 칭찬을 해줬고 덩달아 가구의 스케일도 커지고 개수도 늘어났다. 다주로 멤버 전원이 칭찬에 약한 것 같다. (웃음)
이: 현장 프로젝트의 큐레이터인 푸하하하프렌즈는 파빌리온을 통해 세운상가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떠날 수 있기를 원했다. 우리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정을 주는 형태가 그 세계를 오고 가게 만드는 매개체일 거라 생각하고 도시 안에서 그것을 찾으려 했다. 그렇게 발견한 것이 바로 송전탑이다. 도시 운영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기피시설로 분류되어 도심에서 가까이 마주하고 볼 일이 적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도심 한복판에 세워진 허름한 송전탑을 맞닥뜨렸을 때 느끼는 당황스러움과 이질감이 다양한 상상으로 이어졌으면 했는데, 스튜디오 내부에서는 송전탑 모양의 파빌리온이 마치 종교시설을 연상케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만다라의 문양이나 풍경을 가져와 종교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하려고 했다.
김: 같은 시기에 푸하하하프렌즈와 또 다른 협업 프로젝트인 ‘메종 파이프그라운드’(2021)를 진행했다. 이 레스토랑에 적용된 콘셉트와 테이블마다 설치된 조명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
이: 서울숲 인근에 위치한 메종 파이프그라운드의 집기를 디자인할 때는 1호점의 모습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벽돌로 마감된 지하 공간을 경험하고 나니 중세시대의 카타콤을 모티브 삼아 2호점의 조명을 디자인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 중심부에 들어간 LP플레이어 테이블은 대칭성을 강조해 제단처럼 디자인했고, 열 맞춰 놓인 테이블 위에는 조명을 두어 신성한 자리인 것처럼 느껴지도록 했다. 조명은 기존에 만든 ‘토오로오’를 카타콤의 묵직한 무드에 어울리게 변형한 것으로 설치했다. 조명 하단의 얇고 빛나는 파이프가 묵직한 비석 모양의 몸통을 가볍게 드는 모습을 연출했다.
김: 요즘 많은 디자인 스튜디오가 작업 편의성, 제작 단가 등을 이유로 레이저 커팅된 가구를 만들고 있다. 가구 제작의 마지막 공정을 반드시 수작업으로 마무리하는 다주로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이러한 디자인 경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정: 우리도 레이저 커팅 기술의 편리함과 합리성이 제작자와 소비자에게 매력적인 포인트로 작용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특히 간편한 만듦새가 소비자의 가구 구매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점은 부정할 수가 없다. 가격 접근성은 현재 다주로에게 가장 크게 다가오는 과제이기도 하다. 높은 가격대의 가구를 생산한다면 우리가 표현하고 싶은 바를 마음껏 투영할 수 있겠지만, 어필할 수 있는 소비자의 숫자가 극히 적다는 핸디캡을 가지고 가야 한다. 지금 단계에서는 뚜렷한 절충안이 없지만, 앞으로 레이저 커팅 기술을 활용하면서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가구를 만들고 싶다.
김: 12월 중순에 열리는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 참여한다고 들었다. 이 행사가 끝나고 나면 소비자에게 가닿는 방식에 관한 생각이 정리될 수도 있지 않을까?
노: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이 우리를 본격적으로 알리는 시점이 될 것 같아 홍보 부스를 열심히 디자인하고 있다. 현재 우리의 인지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조명 연출에 특별히 신경 써서 주변을 압도할 만한 외관을 만들고자 한다. 체스판 형태의 그리드를 만들어 오브제를 빼곡히 채우는 방식도 검토하고 있다. 그 정도로 극단적인 액션을 취해야 그나마 관심을 얻고 판매가 이뤄질 것 같다. (웃음)

2021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현장 프로젝트 ‘의심스러운 발자국’ ©MH photography

2021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현장 프로젝트 내 파빌리온 ‘파일론’

메종 파이프그라운드에 설치된 LP플레이어 테이블 ©Roh Kyung

메종 파이프그라운드에 설치된 조명 ©Roh Kyung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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