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형 모듈러 건축이라는 현명한 해법
건축물을 설계하기 위해 고려하는 많은 사항 중에서 ‘사후 활용 방안’을 주안점으로 두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건축물들이 그랬다. 한 달여의 행사가 끝나고 난 후 철거하거나, 완전히 다른 용도로 재활용하거나, 최소한의 운영비로 유지관리하거나, 건물이 강원도의 골칫덩어리로 남지 않는다고 설득해야 했다. 포스코에이앤씨가 설계한 평창 미디어레지던스는 그중에서도 단연 획기적이다. 이 건물은 분해해 다른 곳에서 다시 쓴다. 알펜시아리조트 슬로프 한 켠의 이 건물은, 눈이 녹아 없어지는 계절이 되면 이곳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나서 부산, 포항 등 국내 각지로 이동해 사용될 예정이다.
공간 구성과 공정의 특징
평창 미디어레지던스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취재하러 온 언론사 관계자들을 위한 건물로 2018년 1월 개관해 NBC를 비롯한 방송국 직원이 숙소로 사용했다. 각 4개 층으로 된 101, 102, 103동의 세 동으로, 로비, 운영사무실과 하우스키핑 사무실을 포함한 101동의 1층을 제외하면 전 층이 객실로만 이루어진 단순한 구성이다. 300개의 객실은 모두 1인실로 크기와 내부 레이아웃이 같은데, 폭 3,320mm, 길이 7,000mm의 철제 모듈 유닛이 쓰였다. 로비층을 제외한 총 11개 층에 복도를 중심으로 동향 17개, 서향 15개의 객실이 배열됐다. 15개의 객실을 갖는 부분에 엘리베이터, 계단을 배치해 동선을 해결했다. 복도의 채광과 환기를 담당하는 홀과 계단실 또한 폭 3,320mm로 이격이나 모양의 변화가 없다. 계단 모듈 11개, 홀 모듈 11개 이외에 300개의 객실 모듈, 보일러실 모듈 3개의 크기와 형태가 모두 같다. 객실 내부, 계단, 홀의 효율적이고 안전한 사용을 위해 세심하게 결정한 사항으로 보인다.
작업을 공장과 현장에서 동시에 진행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는 2017년 6월 착공 기초공사를 시작했고, 파일향타를 완료한 6월 말 이후 약 세 달에 걸쳐 필로티 공사를 마쳤다. 필로티 공사 기간 동안 공장에서는 모듈 유닛의 골조와 마감재를 차례로 제작했고, 이후 2017년 9월 말부터 완성된 모듈 유닛을 이동해와 현장에 설치하는 데 약 40일이 걸렸다. 현장 설치가 완료된 2017년 11월 이후 엘레베이터, 마감재 등의 부대공사를 한 달간 실시했고 이후 시운전까지 마친 준공일이 2017년 12월 30일이다. 부지 정리와 착수부터 6개월 만에 연면적 10,357m2, 건축면적 2,816.87m2의 지상 4층, 3개 동 건물을 완공한 것이다. 일반 콘크리트 건물에 비해 공사 기간이 짧았을 뿐 아니라 일정관리가 용이했다. 공장은 현장에 비해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훨씬 적기 때문에 시공의 정확도도 높았고 인력과 비용의 낭비가 적었다. 전라북도 군산의 공장에서 유닛을 제작해 강원도 평창까지 이동했다. 이동과 인양, 집하 시 케이블의 부조화, 하중 쏠림 등의 문제에 대해 충분히 검토했고 도로의 과속방지턱, 터널 등의 통과 시 충격영향 안전성에 대해서도 검증해 문제없이 이동을 완료했다.
©POSCO A & C
약 7평 정도 크기의 각 객실에는 침대와 욕실이 있고 외벽을 전체 유리창으로 처리해 개방감을 높였다. 크루즈선에 주로 납품하는 유닛형 화장실의 선도기업 스터코사의 욕실을 넣었는데, 이 욕실을 비롯해 바닥과 벽 등의 마감재, 가구의 디테일이 뛰어나고 세련됐다.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묵는다는 것을 배려해 세탁기와 수납가구도 설치했다. 생활의 질을 결정하는 데 눈에 보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다. 철골 조립형 구조의 건물이라 방문 전 우려했던 객실 내 온도와 분위기는 매우 우수하다. 실제로 벽체접합부의 온도차이비율(TDR)이 0.23 이하, 연간 난방 에너지 요구량 2.0L/m2ㆍa 에 불과한 높은 단열 성능을 자랑한다. 바닥충격음 성능 검사에서는 중량충격음일 때 49데시벨(4등급), 경량충격음일 때 42데시벨(1등급)의 결과를 얻어 문제가 없고 세대 간 경계벽 차음 성능 검사 결과는 평균 1등급(64데시벨)으로 법적 기준 58데시벨을 상회한다. 시끄럽고 춥거나 더울 것이라는 걱정을 완전히 불식할 만큼 아늑한 재실 환경이다.
모듈러 건축의 가능성
모듈러 건축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공기 단축과 경제성 등의 이유로 각광을 받아왔고 포스코에이앤씨를 비롯한 유수의 국내외 기업에서 진행하고 있다. 건축설계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모듈러 건축을 생소하게 여기는 것은 아이러니다. 건물을 ‘짓는’ 것이 건축이라면 철제 모듈을 ‘놓는’ 것은 건축이 아닌가? 유용성과 기능성을 필연적으로 담아야 하는 건축을 어떻게 미학적이고 예술적으로 만들 것인가의 논의는 오래됐다. 고트프리트 젬퍼가 말한 대로라면 건축의 기원은 원시 오두막이었고 짚을 엮어 만든 울타리로 공간을 만든다. 시간이 흘러 재료는 돌과 벽돌이 되었지만 어쨌든 건축의 기원은 이 울타리라는 것이다. 건축에서 예술과 기술을 분리하려던 근대에 대두된 텍토닉의 개념이 2018년 다시 떠오르는 게 무리가 아닐 정도로 지금 건축을 바라보고 대하는 시각과 태도는 고루하고 고정돼 있다. 새로운 기술과 재료를 개발하는 것까지 해내지는 못하더라도, 이것을 습득하고 건축으로 이용하는 것은 분명히 건축가의 역할이다. 모듈러, 그중에서도 이동 가능한 모듈러 건축이라는 기술을 건축가의 영역이 아니라며 외면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하다.
평창의 많은 건축물 중에서도 미디어레지던스에 주목한 까닭은 기술적인 우수함 이외에도 모듈러 건축이 우리에게 지금 꼭 필요한 논의의 대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걸(아이아크건축가들 대표)은 “현장 중심의 맞춤 건설은 산업사회가 누리는 제조기술의 혜택을 멀리한 채 과대한 비용을 절감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건축은 “귀족 취향”으로 “건축을 하나하나 손으로 만들고 있는” 상황을 시대착오적이라고 했다.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건축물은 너무 비싼 재화다. 완성품을 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더불어 일정한 품질을 기대할 수 없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렇게 완성해낸, 거푸집을 세우고 콘크리트를 부어 만든 ‘구축’의 산물들은 과연 만족할 만한 수준인가? 대량생산에 대한 아이디어는 그간의 건축물을 놓고 형태와 효과를 논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기존의 무수한 이론보다 훨씬 시급하고 생산적이다. 전봉희(서울대학교 교수)의 말대로 건축가에게 너무나 많은 자유가 주어진 게 어쩌면 현대건축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건축은 시대별로 가장 적정한 재료를 선택해 적합한 기술로 행하는 것이지, 일회적이고 특이해야 고급스럽거나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아울러 모듈러 건축인 이 미디어레지던스의 실내 환경을 비롯해 로비와 공용 공간, 외관 등은 조형적으로도 빼어나다.
다음 행보를 기대하며
물론 이번 평창 미디어레지던스의 상황은 특수했다. 단기간 숙소로만 이용되는 건물로 정주 환경이 요구되는 대부분의 도시 프로젝트와 매우 다른 조건과 환경이다. 경제성을 장점으로 내세우기에는 콘크리트 건물보다도 비싸게 들었던 공사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동형 모듈러 건축은 혁신적인 개념이 맞지만, 이동과 재설치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시점에서 사후 활용에 대한 기대만을 놓고 좋은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호텔과 기숙사에서는 훨씬 다양한 구성의 공간이 필요한데 고정형 모듈로 이를 얼마나 해결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강릉 실내경기장을 비롯한 숱한 건물이 패럴림픽 대회가 채 끝나기도 전에 대회 후 활용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때, 이동해서 필요한 곳에서 다시 쓰면 되는 이 건물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직 누구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이동형 모듈러 건축의 사례로, 어쩌면 건축가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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