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국제학생건축상의 시작은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간그룹이 ‘공간미술대상’을 제정하면서부터다. 3년 후인 1978년, 상의 이름을 ‘공간대상’으로 변경하여 도예, 조각, 판화 등 미술과 함께 건축까지 포섭하기 시작했고, 1983년에는 공모의 하위 카테고리로 ‘공간학생건축상’을 신설했다. 1984년부터는 이를 독자적인 공모로 전환했으며, 2001년 국제전으로 확대해 ‘공간국제학생건축상’으로 실시하여 현재의 형식을 갖추게 됐다. 공간그룹은 “건축학도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하고 학생들 간에 작품을 통한 적극적인 교류의 장을 제공한다”는 목표하에 공간국제학생건축상을 꾸준히 개최하고 있으며 이 상은 올해로 34회를 맞는다.
위태로운 세계의 건축
제34회 공간국제학생건축상의 심사위원인 조민석(매스스터디스 대표)과 안토니 폰테노(우드버리 대학교 교수)는 올해 공모 주제를 ‘위태로운 세계의 건축’으로 선정했다. 지난 3월 진행된 주제설명회에서 조민석은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팬데믹과 지난 수십 년간 축적되어온 사회, 경제, 생태계 등의 위태로운 상황을 들여다보고자” 하며 또한 “이번 공모를 일종의 연구 조사로도 활용하고자 한다”고 주제 선정의 이유를 밝혔다. 심사위원회는 소득 격차와 사회적 불평등, 해수면의 상승과 잦은 산불 등의 위기로 둘러싸인 21세기 초, 지금 이 시기를 ‘취약함이 널리 퍼진 불안정한 상태’로 정의할 수 있다고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건축이 불안정한 세계를 다룰 수 있는 적절한 도구인지?’, ‘건축이 이 엄청난 과제에 대응하는 데에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 등 근본적인 질문을 고민해야 한다고 짚었다. 심사위원회는 제출안에서 다음과 같은 네 단계를 명확하게 밝힐 것을 요구했다. ‘무엇이 위태로운 상태인가’, ‘건축가로서 어떤 식으로 관여할 것인가’, ‘어디에 개입할 것인가’, ‘의도를 가지고 설계하라’로, 이는 이번 공모의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됐다.
대체자연을 향하여
대상을 받은 이건희+김진구+윤원식 (중앙대학교·중앙대학교 대학원)이 주목한 위태로운 세계는 도시에서 사라져가는 자연이다. “현대사회에서 건축 공간과 도시 구조는 상업의 논리에 따라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형태로 진화해왔고, 자연적인 여지의 공간은 사라져가고 있으며 이로 인한 불평등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음”을 주목했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도심 속 다세대주택지에서 찾았다. 다세대주택의 골목, 건물의 입면, 작은 부분 등에 있어서 ‘여지의 공간’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여지의 공간이란 ‘익명적 덧댐이 축적되고 자라나는 곳’으로, 사람들에게 다양한 공간과 자연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것을 ‘대체자연’이라고 정의했다. 그들이 대체자연을 지속하기 위해 제안한 방법은 ‘현대적 덧댐’이다. 마치 자연이 무성했던 숲에 산책길을 내듯 기존의 것들이 이뤄온 방식을 존중하고 이어가는 태도로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대상지는 서울역 서측에 위치한 청파동과 서계동 일대로, 한옥부터 빌라까지 다양한 주거 유형이 분포한 지역이다. 현대적 덧댐은 플랫폼과 스트럭처로 구성된다. 얇은 철골구조로 프레임을 조성하여 거주민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일부는 공적인 영역으로 활용한다는 방안이다. 그들은 청파동과 서계동 지역의 대표적인 주거 유형 네 가지인 한옥, 2층 다세대주택, 외부 코어가 있는 빌라, 실내 코어를 가진 신축빌라를 예시로 삼아 각기 다른 상황에서 저마다 다르게 현대적 덧댐을 적용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이러한 덧댐들이 도시의 폴리로써 작동하며, 공동의 기억이 쌓여 도시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말했다. 심사위원회는 “해당 지역이 가까운 미래에 재개발되거나 북촌처럼 젠트리피케이션된 테마파크가 될 가능성이 있는 위태로운 상태에 있는데, 이 두 가지 시나리오를 성공적으로 빗겨가는 제안”이라며 “실용적이며 동시에 시적”이라고 평가했다. 특정한 사회적 조건을 야기하는 기존 건축적 요소들을 집요하고 상세하게 관찰하고 이해한 점, 도시 조직의 기존 성격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유형의 공간으로 확장할 수 있게 제안한 점을 특히 높이 샀다.
그리고 수많은 세계들
최우수상을 수상한 홍진원+이학현 (아주대학교)은 전 지구적 생태 순환고리에 인류가 주체가 되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많은 국가들이 직면해 있는 해수면 상승에 주목하여, 사람의 개입은 최소화하고 생태계 순환고리의 균형을 회복하는 유연한 대응 방식을 제안했다. 대상지는 인천공항의 남측에 위치한 시화호로, 해수와 민물이 만나는 곳이다. 갯벌보다 물을 540배 더 머금을 수 있는 테트라 볼, 3×2.5m 크기의 플로팅 웻랜드 등을 이용한 수중 랜드스케이프를 통해 조류, 어류, 미조류, 저서생물들을 위한 서식지를 제안했다. 심사위원회는 “큰 규모의 개입과 제안 전반에 걸쳐 드러나는 복합적이며 다학제적 연구의 디테일”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우수상은 세 팀이 수상했다. 황해승+나경준(삼육대학교·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은 한국 남북분단 관계의 위태로운 상태에 집중해 추후에 통일이 될 경우 경제, 정치, 이념 등의 차이를 완충하는 공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철원-양구-금강의 국경을 따라 배치된 군사시설을 통일 이후에 회복과 완충의 공간으로 전환하는 모듈 시스템을 제안했다. 박지원+최대준(강원대학교)은 해양생태계에 주목했다. 홍진원+이학현과 동일하게 바다를 대상지로 삼고, 비인간 주체들을 살리기 위한 태도를 취하지만, 앞선 팀이 인위적 개입을 최소화했던 데 반해 이들은 해양생태계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고자 한다. 기름 시추를 위해 바다에 건설된 오일 플랫폼을 쓰레기를 수거하는 거점으로 그리고 산호, 물고기, 해초, 물개, 돌고래, 새 등의 서식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생태기계’로의 전환을 발표했다. 고규민+김예솔+박세진(한양대학교 대학원·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은 건축에서 생태계에 주체성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해 서울의 고가도로를 다양한 종을 위한 ‘고가 그린벨트’로 탈바꿈하는 제안을 발표했다. 각 설계안에 대해 심사위원회는 “비극적 장소에 관해서도 새로운 영감을 주는 점”, “20세기 탄소 집약적 기반시설을 21세기의 상황에 맞게 전환하여 황폐한 환경 조건을 완화한 점”, “생물다양성 고속도로라는 도발적인 전략과 노후화된 도시 인프라의 미래에 관한 대안 전략을 보여주는 점”을 선정 이유로 밝혔다.
그 외에도 케냐의 키베라 지역의 인분 처리, 한국의 도시에서 아파트와 저층 주거지의 병치, 학교와 같은 폐쇄적 공간 등이 위태로운 세계로 발견됐다. 심사위원회는 이번 공모가 “지역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도시적 맥락에서, 대규모 자연에서 우리가 직면한 광범위한 긴급 상황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고 말하며 “예리한 관찰과 통찰력 있는 건축적 대응을 통해 우리의 불안정한 세계를 예방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한” 자리가 됐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글 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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