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여성 건축인 모임 ‘소파(Society of Feminist Architect, SOFA)’는 서로 연결되고 연대하는 장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들은 건축에 관한 거창한 메시지를 던지기보다는, 각자의 존재와 활동을 확인하며 직업인으로서 느끼는 불안감을 떨치려 한다. 그리고 상대에게 짐이 되지 않는 선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도모한다. 소파의 멤버인 김다예와 장가연을 만나 그들이 만들어가는 집합의 모양을 어렴풋이 짐작해보았다.

인터뷰 김다예, 장가연 소파 멤버 × 김예람 기자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모였어요
김예람: 다예 님, 안녕하세요. 비가 와서 제가 조금 일찍 들어왔어요.
김다예: 안녕하세요. 다들 길을 못 찾아서 전화를 거는데, 기자님은 한 번에 잘 찾아오셨네요. (웃음)
김예람: 지도 앱이 안내를 잘해주더라고요.
장가연: 원래 약속 시간보다 일찍 와서 이야기를 좀 맞추려고 했는데, 기자님이 문 앞에 계시더라고요. (웃음) 사실 저희가 다른 소파 멤버들의 의견을 잘 수렴해서 전달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김예람: 편하게 이야기 나누는 자리라고 생각해주세요. (웃음) 먼저, 소파(SOFA)가 만들어진 계기부터 들어볼 수 있을까요?
장가연: 누군가의 용기로 세상에 알려진 사건이나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거대한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인 건 아니고요. 건축계에 누적되어 온 문제의식을 스스럼없이 공유하면서 함께하기 시작했어요. 일상에 만연하고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꺼내려는 취지가 자발적인 모임 참여를 지속시키는 데 큰 영향을 줄 것 같았거든요.
김다예: 시각예술 분야의 여성 전문인이 만든 ‘루이즈 더 우먼(Louise the Women)’이나 여성 그래픽 디자이너가 모인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FDSC)’ 같은 네트워크와는 성격이 약간 달라요. 차이점을 더 찾자면, 소파에는 정해진 리더가 없다는 거? (웃음)
김예람: 그럼 소파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나요?
김다예: 멤버들은 기획팀, 편집팀, 홍보팀으로 나누어져 있어요. 각 팀은 해야 할 일을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상황에 맞게 다른 팀에 업무 협조를 요청하면서 활동하고 있죠.
장가연: 지나치게 통일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해요. 메시지를 전달받는 사람에게 너무 경직된 인상을 남기면 앞으로 멤버들이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이 점점 늘어날 테니까요. 서로에게, 그리고 미래의 회원에게 짐을 주고 싶지 않아요. 명확한 시스템이 없어서 불편해 보이지만, 이렇게 굴러가다 보면 정말 좋은 점이 하나 있어요. 몇몇 멤버가 현상 설계나 졸업 전시 때문에 한 달 가까이 프로젝트에 참여를 못 해도, 소파의 활동은 큰 무리 없이 이뤄져요. 되게 이상적이죠? (웃음)
김예람: 뚜렷한 체계 없이 모임이 잘 운영되는 게 신기하네요.
김다예: 처음에는 가이드라인이나 시스템을 잘 짜서 각 멤버가 분명한 역할을 가지도록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분명한 업무 분배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업무 범위를 명확히 구분하다 보니 결국 주어진 일이 또 다른 일을 불러와서 멤버 모두가 힘들어지더라고요. 그래서 공고한 시스템을 만들기보다는 여럿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일을 한 번에 처리하기로 했어요.
김예람: 현재 44명의 멤버들이 활동 중이라고 들었는데, 다들 어떠한 계기로 소파에 합류했나요?
김다예: 모임을 개설한 지 한 달이 채 안 됐을 때 인스타그램에 광고를 포스팅했는데요. 대부분의 멤버가 그걸 보고 소파에 가입했다고 하더라고요.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성 건축인 모임’이라는 문구를 보고 클릭했대요. (웃음) 아직 본격적인 활동을 실행하지 않은 단체이지만, 여기에서 다른 여성 건축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다는 기대가 다들 있었나 봐요. 그때나 지금이나 건축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롤모델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사고나 활동을 아는 것만으로도 일을 지속하는 데 큰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 서로가 서로의 참조점이 되어주고자 만나는 거죠.
장가연: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공부나 실무를 계속하다 보면 익숙한 사람만 만나게 되잖아요. 그럴 때마다 밟고 있는 세계가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함께 하게 됐어요. 제가 소위 고인 물이 되지 않도록 소파가 막아주고 있는 것 같아서 고마워요. (웃음)

모임을 위해 제작한 카드뉴스

소파가 발간한 잡지의 창간호
나눴던 이야기로 잡지를 만들곤 하죠
김예람: 멤버들이 모이면 주로 어떠한 활동을 하나요?
김다예: 제일 참여율이 높은 건 책 모임이에요. 저기 책장에 꽂힌 질리언 로즈의 『페미니즘과 지리학』으로 첫 강독 모임을 시작했죠. 요즘에는 4명 미만인 경우에만 대면 모임을 하고,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경우에는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으로 진행해요. 가끔은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고 군산이나 광주 같은 지역을 답사하러 가기도 해요.
장가연: 답사 갔을 때 걸으면서 건물 구경하고 계속 이야기 나누는데, 이렇게 먹는 데 관심 없고 무언가를 보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들은 처음 봤어요. (웃음)
김예람: 비정기적이지만 잡지도 만드시잖아요.
장가연: 전문지의 편집부처럼 치밀한 구성과 계획으로 잡지를 만드는 게 아니라서 좀 민망하네요. (웃음) 여러 선배 건축가가 “기왕 건축에 대해 말할 거면 제대로 이야기해서 나중에 남는 게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조언하는데요. 저희도 그러고 싶지만 지금 상황은 거의 병아리나 다름없거든요. 이렇게 부족하다 하더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가 의미 없는 게 아니잖아요. 소파 멤버들은 이런 공감대 안에서 각자 말하고 싶은 주제와 써 내려간 글을 공유해요. 잡지의 구성을 먼저 기획한 다음에 글을 쓰는 일반적인 방식과는 다르죠.
김다예: 올해 1월부터 잡지를 만들기 시작했는데요. 창간호의 주제는 '건축학교'였어요. 재학 중인 건축학도부터 여러 조직의 건축 실무자를 만나 교육제도, 커리큘럼, 스튜디오 문화, 취직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죠.
김예람: 지금처럼 감염병이 유행하는 시기에는 활동을 도모하기가 어렵잖아요. 얼마 전에 발간한 「SOFA 2호 - 주거: 표류기와 머무르기」는 어떻게 소통하며 제작하셨는지 궁금해요.
장가연: 직장인, 학생 구분할 거 없이 건축을 다루고 있는 모두가 시간이 없는 것 같아요. (웃음) 틈틈이 작업한 다음에 파일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고 있을 늦은 시간에 슬며시 노트북을 열고 화상회의를 해요. 편집할 때만 오프라인으로 모이고, 그전에는 한 번도 대면한 적이 없어요.
김예람: 2호 잡지를 기획할 때는 어떠한 이야기가 오고 갔나요?
장가연: 건축하는 사람들이 이상적인 주거 만들기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잖아요. 저희 역시 그래요. (웃음) 학교에서 설계를 배우며 가장 많이 접하는 건물 유형이 집이기도 하고, 더군다나 팬데믹 때문에 집 밖을 예전처럼 자유롭게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주거를 2호의 주제로 정하게 됐어요. 1호를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서로 어떠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들으면서 내용을 발전시키려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야기의 성격이 바뀌는 거예요. 처음에는 주거의 미래를 제시하는 선지자의 입장에서 글을 쓰고 싶었다면, 이후에는 집을 설계하는 사람이지만 월세에 사는 현실을 직시하는 글을 적게 되더라고요. 그런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부터 이사나 코-리빙 같은 관련 주제를 떠올릴 수 있었어요. 완전하게 다듬어진 내용은 아니지만, 적어도 집을 둘러싼 현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해요.
김예람: 둔촌주공아파트를 오랫동안 기록하고 연구한 이인규 작가님과의 인터뷰 지면이 주거 문제를 다루려는 2호 잡지의 의도를 잘 살려준 것 같아요.
김다예: 이인규 작가님과는 ‘건축적 잘 살기’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눴어요. 지금까지 살아온 주거와 앞으로 살고 싶은 집에 대해 이야기를 했죠. 그때 작가님이 자신의 실존이 특정한 공간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이야기하셨는데, 그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집을 소유하거나 그 안에서 활동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살고 있는 공간을 자신의 실존과 연결 짓는 경우는 새로웠거든요.
장가연: 차이 작가님이 기고한 ‘손감영댁 주택개조기’도 재밌어요. 비건 관련 모임에서 만난 여자 셋이 홍은동의 한 주택에서 함께 살게 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안방과 작은방처럼 위계가 있는 주거공간을 공유하며 평등한 관계를 형성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맞추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재밌어요. 생활면적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지 방향까지 제시하고요.
김예람: 아직 2호 잡지가 서점에 입고되지 않았어요. 책을 구매하게 될 예비독자에게 한 마디를 전하신다면요?
김다예: 어느 한 꼭지보다는 잡지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살펴 봐주셨으면 해요. 누군가는 저희가 엄밀하지 않은 형식으로 이야기를 엮어내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로는 관심을 여러 갈래로 쪼개서 여러 사람의 미시사를 주목하는 소파의 방식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담긴 이야기를 살피면서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헤아리며 잡지를 봐주시기를 바라요.
게임으로도 건축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예람: 잡지 발행 말고도 다른 프로젝트를 계획하신다고 들었어요.
장가연: ‘준공마블’이라는 보드게임을 준비하고 있어요. 건물이라는 게 건축가가 도면을 그린다고 해서 지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당국에 허가를 받고 시공과 감리를 진행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그 지난한 과정이 공개적으로 이야기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 의아했어요. 그래서 게임의 형식을 빌려 플레이어가 본인이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공유하도록 만들려고요. 현재로서는 보드의 각 칸에 들어갈 수 있는 이야기를 인터뷰 형태로 수집하고 있어요.
김다예: 설계자와 시공자처럼 서로 다른 업역에서 활동하는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김예람: 테스트베드에 참여하지 않은 분들은 언제쯤 ‘준공마블’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김다예: 지원사업을 통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라서 12월까지는 일정 수준의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데요. 그 단계를 거치고 보드 제작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하고 나면, 아마 3월쯤 되지 않을까 싶어요.
장가연: 상황을 살펴보고 일정을 슬그머니 미룰 수도 있어요. (웃음)

「SOFA 2호 - 주거: 표류기와 머무르기」의 표지

「SOFA 2호 - 주거: 표류기와 머무르기」에 기고된 섹션 ‘손감영댁 주택개조기’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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