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MSPACE는 국내 최고의 건축 포털 매거진입니다. 회원가입을 하시면 보다 편리하게 정보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ogin 회원가입
Naver 로그인


[건축유산] 좌담: 건축유산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

진행
김정은 편집장, 박지윤 기자

좌담 SPACE, 윤주선 건축공간연구원 부연구위원, 이광환 해안건축 소장, 최춘웅 서울대학교 교수, 황두진 황두진건축사사무소 대표

진행 김정은 편집장, 박지윤 기자​



건축유산의 정의와 범주

 

SPACE: 최근 김종성이 설계한 힐튼호텔이 철거될 위기에 직면하면서 건축계에서는 건축사적 가치를 들어 보존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비단 힐튼호텔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주변 여러 내일의 유산들이 공통으로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야기를 시작하며 무엇보다 어떤 건축물을 유산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혹은 보존해야 할 건축유산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공감대가 필요할 것 같다.


최춘웅(최): 요즘 전 세계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념비들이 무엇을 기리고 있는가 하는 논의가 많다. 대부분 전쟁이나 소수의 권력자와 관련된 물건들이 많은데, 이러한 ‘유산’에 대한 인식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역사 또한 누가 쓰느냐, 누구를 영웅으로 만드느냐가 굉장히 중요한데,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방향이 과연 맞는지 묻고 싶다. 우리가 생각하는 건축사의 중요한 인물들을 과연 그대로 인정해야 하는 건지, 또 소외된 사람들은 과연 누구였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또한 유산 보존을 법제화한 것이 문화재 제도라면, 그 제도 안에서 무엇이 문화재인지 가려내는 과정이 범사회적인 동의 없이 소수에 의해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다. 19세기, 20세기 초반에 (서구에서) 보존의 원리나 법적 규정이 만들어질 때는 대부분 개발이 완성되어 보존되어야 할 존재가 확실했다. 반면 우리는 무엇을 보존해야 하는지, 어떤 시기를 보존해야 하는지 불확실한 상태에서 소수에 의해 제도화되었다. 약한 기반 위에서 논의를 이어오고 있다. 한편 「건축법」은 도덕법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어떤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이지, 옳고 그름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유동적인 합의를 이루어낼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문화재냐 아니냐를 논하는 것도 우습다. 현재 상황에서는 오히려 환경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건축물 보존 여부를 경제적 논리나 문화적 태도 사이에서 결정한다면, 한쪽은 뻔하게 부셔야 하고, 한쪽은 아무것도 못 건드리게 된다. 범환경적인 태도로 보면 지금 우리가 옳게 선택할 방법인지 과학적 근거를 들 수 있다.

 

황두진(황): 기념비를 대하는 자세의 궁극적 결정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일 텐데, 최근 경향을 보면, 유명 건축가들의 작업을 지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시대나 지역에서 발생했던 건물군을 지정하는 경우도 있어서 시각의 변화를 보여준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의 건축물이라면 대개 고딕성당과 같은 사례를 떠올리지만 요즘은 시대가 많이 올라왔다. 일례로 르 코르뷔지에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건물의 상당수가 지정되었다. 인도 뭄바이에 지어진 1930년대 아르데코 양식의, 주거를 포함한 복합 건물군이 지정된 것도 특이하다. 유명한 건축가의 작업이라서가 아니라, 19세기 이후 뭄바이의 도시계획과 그로 인한 역사적 특징이 반영된 건축물이라 지정한 것 같다. 개별 건물이 아니라 한 시대에 지어졌던 여러 건물이 모두 포함된 것이다.

 

이광환(이): 종로의 YMCA 빌딩 재개발에 관한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현재 YMCA 건물은 오리지낼리티가 있는 게 아니다. 3.1운동을 준비했던 그 역사적인 건물은 없어졌고, 지금은 1965년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그런데 YMCA 빌딩이 포함된 정비구역의 재개발사업이 본격화되면서 본래 그 건물의 도면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재개발사업에 유리하도록 ‘원건물을 복원하고 그 이후의 건물은 없애자’는 의견이 나왔다. 왜냐하면 이 지역은 서울시 재개발 정비계획에서 YMCA 빌딩을 보존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후의 역사에도 오리지낼리티가 있지 않은가? 보존해야 하는 시점을 정하는 것도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사항이다.

 

황: 문화재나 건축유산의 가치를 평가할 때도 소위 위계가 있다. 일단 왕조나 지배층과 관계된 건축 등이 가장 높은 위계를 가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경기여자고등학교 부지에 일제가 세운 관사에 대한 보존 논의가 잠시 있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위계상 일제강점기에 식민 지배층이 와서 지은 것과 조선 왕궁터를 비교하면 체급이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보존론이 잠깐 나왔다 들어간 것으로 안다. YMCA 빌딩도 논의가 상충되면 시기가 오래된 것을 추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건물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가치를 부여받기 쉽지 않다.

 

윤주선(윤): 건축유산이 어떻게 태어났는가만큼 어떻게 살아왔나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을지로의 노포 을지OB베어는 이용자들이 나서서 철거 반대 농성과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다. 반면 힐튼호텔은 건축사적으로 대단한 가치가 있지만 이용객이 나서서 뭔가를 하지는 않는다. 건축물도 중요한데 건축물이 존재하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과 애착을 남겼는지도 중요한 것 같다. 힐튼호텔도 이용객들의 추억을 모아보는 절차를 추가해본다면 논의가 더 확실해지고 풍부해질 것이다. 최근 김중업의 유작 중 하나인 군산시민문화회관을 리모델링하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건물 역시 철거 후 주차장으로 만들어 달라고 서명한 이들이 1470여 명에 이를 정도로 존폐의 기로에 있었다. 우리는 지역 상인과 시민들이 충분한 정보를 근거로 건물의 미래를 판단하기를 바랐다. 먼저 추억 사진·사연 공모전을 개최하고 전시했다. 따뜻한 추억들이 모이며 오케스트라 공연뿐 아니라 학생들의 학예회와 DJ 파티까지 담아낼 만큼 일상과 밀접한 공간이었던 군산시민문화회관은 많은 이들의 애착이 담겨 있는 공간임을 확인했다. 또 주차장과 옥상을 일시적 광장으로 활용하는 사회실험을 개최했다. 이를 통해 활력 있는 오픈스페이스가 주차장보다 지역사회에 소중한 자원임을 지역 상인과 주민들이 직접 경험했다. 1년 넘게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며 상호 공감대를 형성해 건물의 재생 방향을 전문가, 시민, 상인, 공무원이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시간을 들여 체험적으로 건물과 공간의 가치를 대중과 공감하는 절차가 확산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 「한옥 등 건축자산의 진흥에 관한 법률」을 입법할 때도 논란이 됐지만, 우수건축자산을 공공에서 지정하는 데 거부감이 있었다. 우수건축자산은 소유자가 신청해서 시·도지사가 검토하고 건축위원회 심의 등의 절차를 거쳐 등록된다. 그 이후 선정된 건축자산에 대해 지원과 관리를 해주는데, 아직은 부족한 측면이 있다. 서울시의 미래유산 제도를 만들 때도, 소유자의 동의와 상관없이 서울시가 행정적으로, 선제적으로 지정을 강제할 수 있을 것인가, 강제했을 경우 어떤 사회적 가치가 발생하는가, 국민 기본권 제한에 따라 어떤 보상이 필요한가 같은 고민이 있었다.

 

최: 건물의 소유주가 자신의 건축물을 건축자산으로 등재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추가 지원이나 브랜딩, 두 가지 이유밖에 없는 것 같다. 서울 미래유산 같은 경우는,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공공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도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일례로 청파동의 성우이용원은 1927년경 개업하여 3대째 이어져 오는데, 서울시에서 50년 된 이발소 건물을 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그런데 장사가 더 잘 되는 것도 아니고, 보수비를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개발을 하고 싶어도 못하고, 뭔가 애매모호하더라. 사실 피맛골이나 세운상가의 공중보행 데크도 주민들은 보존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 입장에서는 소수의 사람들이 복원이나 재현을 결정한 셈이다. 세운상가 공중보행 데크의 경우 없던 것을 새로 지은 것이니 보존 개념으로 보기도 어렵고, 환경적으로도 좋은 선택은 아니다. 세운상가의 경우는 구간별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모두 다른 것이 현실이다. 물론 도시관리계획에 따라 공청회 등의 의견 수렴 절차가 있기는 했으나, 답을 정해놓지 않은 채로 충분한 범사회적인 토론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현재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는 구 서울역사 ©Chin Hyosook

 


건축유산과 동거하는 방식


SPACE: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여러 유산을 어떻게 개발의 논리에서 지킬 수 있는지, 또 그 보존의 방식도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황: ‘개발이냐 보존이냐’라는 논의가 과연 0과 1의 문제처럼 딱 떨어질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0이면 완전히 철거하는 것이고, 1이면 문화재로서 경복궁 관리하듯이 복원하고 보존하는 것이다. 현실 세계 속 건물들은 0과 1 사이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결국 보존의 목적에 의해 그 수준이나 방식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겠나. 수많은 답이 있을 수 있는 문제다.

 

이: 건축적인 가치가 있는 것을 지켜야 된다는 맥락은 고정태가 아니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바뀔 거다. 그런 면에서 활용의 측면이 중요하다. 활용할 수 없는 보존은 그냥 박제다. 보존이란 그 건축물의 가치를 이어가자는 개념이므로, 좋은 활용에 답이 있을 거라 본다.

 

윤: 건물 유형이 성숙기에 접어드는 순으로 재생 트렌드가 움직여왔다. 상업재생의 대상은 1920~1930년대 가회동·삼청동 근대한옥, 1930~1950년대 군산·목포 일식 가옥, 1960~1970년대 연희동·동명동 2층 양옥주택 순으로 시대를 그대로 타고 넘어온다. 이제는 1970~1980년대 김중업, 김수근 그리고 힐튼호텔의 김종성 차례까지 왔다. 건물 유형이 아닌 건축가가 브랜딩이 되고 이것이 곧 개발 가치나 사업적, 경제적 가치가 되는 시기가 임박한 것 같다.

 

황: 지어진 지 30~40년 된 현대건축물이 전반적인 개보수나 소위 공간 재구성 문제에 직면하는 경우가 최근에 부쩍 늘었다. 일례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 그렇다. 지금 논의하는 공간 재구성의 결과물이 구현될 즈음에는 이 건물이 지어진 지 50년이 되는 시점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 언젠가 문화재로 지정될 가능성을 생각해봐야 하는데, 최소한 원형이 너무 훼손되어 문화재로 지정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하는 상황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근현대 건축물의 상당수가 이제부터 이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비슷한 논의의 대상이 될 거다. 오래된 건물을 활용하기 위한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한다. 일례로 예술의전당 같은 경우는 기존 건물의 지하를 개발해 동선을 연결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또한 우리 사회가 대체 교통수단 등을 논의하고 있으니, 단순히 현재적 기준에 따라 무작정 주차장을 늘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 등이 나오고 있다. 즉 기술의 발달, 사회적 변화 등 고려해야 할 상황이 무척 복잡한 것이다.

 

최: 30, 40년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가 사실은 우리가 지어놓은 건물의 수명이 그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 제도적으로 아파트 재건축이 가능한 시점을 준공 후 20년 이상 경과로 정하면서부터 우리 사회가 재건축 연한에 집착하게 된 것이다.

 

황: 단순히 물리적 내구연한 때문에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미술관의 예를 들면, 시간이 지나며 미술 자체의 개념이 변화하기 때문에 그것을 수용하기 위한 전시 공간으로서 합당한지 같은 본질적인 이유도 있다. 그런 면에서 연차는 꽤 됐는데 개성도 있고 원래 용도로 계속 쓰이고 있는 건물에 흥미를 느낀다. 아직도 은행 건물로 쓰이는 광통관 같은 경우가 바람직한 사례 같다.

 

  

복원된 도쿄역. 중앙 출입구(옛 황족 출입구) 부분에는 폭 20미터의 경관규제 지역을 두어서 바로 뒤편에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는 것을 억제하고 있다. ©Kim Youngjoon


이: 서울역의 경우, 고속철도 시대의 신역사를 지으면서 구 서울역사의 역사로서의 기능을 어떻게 살려나갈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못하고 문화재 보존 차원에서 역사의 기능과 거리가 먼 문화공간으로 분리시켜 버렸다. 기존 용도로 활용하지 않고 다른 용도로 변환해버렸다. 서울역보다 먼저 지어진 도쿄역은 새로 복원하면서 역사의 기능을 그대로 유지했으며 원래 있던 역사 내 호텔도 그대로 복원했다. 호텔 객실 창을 열면 터미널의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신선한 풍경이 펼쳐진다. 나는 이렇게 원용도로 복원되었을 때 활용이 훨씬 잘 된다고 생각한다. 반면 구 서울역사는 문화공간으로 전환됐는데,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의 로망과는 한참 거리가 먼 느낌이 든다.

 

윤: 도쿄역이 복원될 수 있었던 이유를 건물만 따로 떼서 보면 안 된다. 그 앞에 마루노우치가 함께 재생되었기 때문에 상권이 활기를 찾으며 도쿄역 복원이 수월해졌다. 주변을 재생의 관점으로 함께 본 것이다. 힐튼호텔도 비슷한 상황이다. 서울역, 남산과 이어져 있기 때문에 건축물 하나만 볼 게 아니라 서울역의 상권 자체가 어떻게 재편되느냐가 같이 고민되어야 하는 문제고, 그 맥락에 힐튼호텔이 놓여 있다. 건축사적 관점 이외에 도시설계적 관점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요즘 행정안전부나 국토교통부, 문화체육관광부의 재생사업의 회의에 다녀보면 대부분 정수장, 소각장 이런 곳을 대상으로 한다. 그런 곳들도 이 논의에 들어올 수 있는지 궁금하다. 건축유산 판단 기준을 건축사적 의미만으로 한정 지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황: 너무 당연하게 대상이 된다고 생각한다. 소위 말하는 이름 있는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과 누가 설계했는지 중요하지 않은 건물, 이 두 가지가 대립적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시간이라는 변수가 있고, 시대의 기록으로서 갖는 가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 점에서 인문학적 상상력, 쉽게 말해 대상에 대한 서사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래서 유산의 보존에 관한 문제는 항상 현재형인 것 같다. 출발점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해야 생산적인 논의가 될 것이다.

 

최: 경제적 논리로만 보면 재개발이 항상 정답이다. 그런데 다수가 보존을 합의한다면, 경제적 가치가 성립되지 않는 부분은 공공이 메우는 것이 맞다.

 

이: 일본은 요즘 축소 재건축을 하는 추세다. 가까운 시일 내에 우리도 그렇게 된다고 본다. 기존 500가구를 재건축해 300가구밖에 못 만든다. 거주할 사람이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비용이 추가되면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을 해준다. 그래야 진행이 가능하다.

 

 

힐튼호텔 내부 바닥에는 트레버틴이, 기둥에는 브론즈가 쓰였다. ©Lim Chung Eui 

 

힐튼호텔 내부에 쓰인 녹색 대리석 ©Lim Chung Eui



윤: 힐튼호텔에 가보았을 때 인상 깊었던 것은 추억과 손길이 잔뜩 묻은 내장재였다. 문짝, 가구, 조명, 대리석과 같은 것들을 분리해 인근 건물재생에 활용한다면 동네 전체가 문전성시를 이룰 것 같았다. (웃음) 건물을 못 살린다면 스토리가 남아있는 자재라도 살릴 수 있으면 좋겠다. “이거 힐튼 문짝이야, 힐튼 조명이야”라는 말 하나로 동네 스토리가 확 달라질 수도 있다. 힐튼호텔의 DNA를 동네 전체에 흩뿌려 유산을 지속시키는 것도 멋진 재생 방법이라 생각한다.

 

최: 재료 자체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는 건 여전히 경제 논리 안에서 머무는 거다. 앞서 언급했듯이 환경을 보호한다는 차원으로 봐야 한다. 건물을 어떻게 고치든 새로운 재료나 자재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맞다. 2021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게스트시티전 참가작 중 브뤼셀의 ‘ZIN in No(o)rd’ 프로젝트를 보니 가치 없어 보이는 1970년대 오피스 빌딩을 재활용했더라. 그들의 원칙이 자재의 100% 재활용이었다. 새로 들여오는 자재도 모두 재활용 자재였다. 이런 측면으로 보면 힐튼호텔의 경우도 최소한으로 건드리는 게 환경을 지키는 길이다.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베를린 신국립미술관도 하나하나 분리했다가 다시 조립했다.


윤: 일본의 이세 신궁은, 절을 보존할 때 절 자체를 보존하는 게 아니라 절 짓는 기술을 보존하려고 정기적으로 해체하고 옮긴다. 기법으로 가는 거다.

 

황: ‘보존이라고 하면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보존하자는 것인가?’라는 질문도 필요한 것 같다. 경복궁처럼 문고리 하나, 벽지 하나 바꾸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건물을 완전히 해체해서 유전자 퍼트리듯이 그 자재들이 다른 지역으로 간다는 것도 하나의 수사학적 방법이 될 수는 있겠지만 다소 극단적이다. 그 사이 어딘가에 해법이 있지 않을까.

 

제도적 장치와 소통 프로세스

 

이: 개발과 보존의 공존 맥락에서 보았을 때, 공공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 일례로 힐튼호텔의 미래도 재개발구역에 있다는 점에서 지자체의 마스터플랜이나 도시관리계획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최근 삼일빌딩의 리모델링이 끝났다. 김중업의 디자인 의도를 훼손하지 않고 용도가 연장됐다. 기존 건물의 용적률이 1700% 정도인데 철거를 하고 신축한다면 이제는 그 정도 용적률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유지가 된 셈이다. 공평빌딩의 경우는 지하에서 유적이 많이 나와 발굴박물관을 만들면서 용적률과 높이를 제도적으로 완화했다. 그런 경험을 서울시는 충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에 힐튼호텔 같은 경우에도 적용하면 좋을 것이다. 기존에는 개발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져 처리했다면, 이제 선제적으로 이런 논의를 거쳐야 한다. 서울시도 성공 사례가 있으니 이야기할 수 있는 맥락이 있을 것이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 ©Kim Saehoon

 

 

황: ‘누가 결정의 주체냐’라는 문제도 중요하다.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소수라 하더라도 그 사람들의 의견은 여전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하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일종의 인기투표를 하는 것인데, 만약 그런 과정으로 건축물의 가치가 평가된다면 앞서 이야기가 나왔던 다양한 인프라 시설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역시 이 문제도 ‘전문가와 일반인’ 같은 대립적 개념이 아닌, 다양성과 보완의 개념으로 볼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이 보존해야 한다고 했을 때 그 핵심 근거도 조금 더 정확해야 한다. 순수하게 건물의 물리적 질인지 역사적 가치인지, 역사적 가치가 건축적 가치를 뛰어넘을 수 있는지와 같은. 일제강점기에 세계 건축과 직접 소통하는 기회를 잃고 있다가 그 시대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호랑이 굴로 들어간 몇 명의 젊은 한국 건축가들이 있었다. 첫 번째로 김중업이 르 코르뷔지에에게, 그다음으로 김종성이 미스 반 데어 로에한테 갔고, 김태수는 루이스 칸을 찾아갔는데 그가 학교를 옮기는 바람에 폴 루돌프에게 배웠다. 젊은 건축가들이 세계 건축의 중심에서 배운 것을 잘 소화해서 누가 보더라도 국제적인 수준의 완성도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들을 몇몇 내놓았고, 그 사례 중 하나가 힐튼호텔이다. 이러한 관점은 한국의 보편적 근대사와도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 건축물에는 한 시대의 기록이라는 측면이 분명히 있고, 그 서사가 나에게는 매우 의미 있게 다가온다.

 

윤: 전문가가 보존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은 맞다고 본다. 다만 그 전문가의 폭이 건축·예술 이외에 기후, 소상공인, 디벨로퍼, 젠더와 같이 다양한 분야로 넓어졌으면 좋겠다. 더불어 전문가가 시작하는 논의가 전문가 사이에서 끝나지 않고 대중과의 공감대를 만드는 소통의 과정까지 늘어나야 한다.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공공이 직접 재정지원을 한다면 목록을 만드는 것도 어려워지고, 재원을 마련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공공은 민간이 돈이나 시간이 없어 못하는 지역조사나 법률검토, 건물정보 발신, 지역민들의 기억 아카이빙 등과 같은 부분을 맡으면 좋겠다. 특히 서울 이외의 지역은 자료가 거의 없다. 그러면 사업자가 백지에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쉽사리 손대기가 어렵다. 건물이 가지고 있는 사업적 잠재력이나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 그냥 부서지는 경우도 많다.

 

최: 건축물을 자산이나 유산과 같은 물건으로 보면 굉장히 폭이 좁아지는 것 같다. 생태적인 존재로 보면 그대로 두는 것이 대부분의 상황에서 정답이다. 그 이상의 어떤 공공적 지원이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면 사회적인 이유도 있어야 한다. 보통 역사적 논의를 할 경우 대부분 과거를 이야기하니 어려워지는 것 같다. 역사는 특정인이나 집단의 기억을 통한 회상적 시선이 아니라 역사가가 앞으로 우리가 어떤 사회가 되고 싶은가 어떤 도시가 되고 싶은가 같은 비전을 제시하며 편집하는 거다. 그 역사의 편집 과정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자연스럽게 나오는데, 과거 이야기만 하니 누구의 기억은 더 소중하고 어떤 기억은 소중하지 않다, 이렇게 판단하게 된다. 역사를 끝없이 논의하는 것보다는 앞으로 어떤 도시를 만드는 것이 맞겠는가라는 논의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보존해야 할 건물들이 추가될 것 같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윤주선
윤주선은 건축공간연구원 부연구위원이다. 슬램덩크의 선‘수 겸’ 코치인 ‘김수겸’처럼 연구자(researcher) 겸 활동가(doer)인 연동가(do.searcher)의 삶을 추구한다. 매력 있는 현장 플레이어들을 ‘주선’하는 역할도 즐겨 하고 있다. 민관협력(Public-Private Partnership) 마을재생, DIT(Do It Together) 건물재생, 지역관리회사(Area Management), 지역 기반 스타트업, 운영자 중심 재생론, 온라인 주민참여 등의 테마를 중심으로 현장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광환
이광환은 해안건축 소장으로 활동 중인 건축사다. 서울시립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정림건축을 거쳐 2000년에 해안건축에 합류했다. 건축과 도시 및 정비 분야의 법제와 정책에 관심이 많으며 서울대학교를 비롯 여러 대학에서 건축법규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현재 대통령 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와 서울시 공공건축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춘웅
최춘웅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부교수로 현재 서울에서 활동 중인 건축가다. 매일유업 중앙연구소, 남산 라쿠치나, 그리고 상하농원 등의 준공작을 발표했고, 2018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큐레이터 및 작가로 참여했다.
황두진
황두진은 서울대학교와 예일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김종성, 김태수 등의 사무소에서 실무를 한 후 2000년에 황두진건축사사무소를 설립했다. 『무지개떡 건축』, 『가장 도시적인 삶』 등 건축과 도시에 관한 책들을 써왔으며 국내외에서 광범위하게 강의하고 전시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