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 이미지) 밑미의 3층 공간
사사건건은 오랜 시간에 걸쳐 사용되어 온 사물의 형태와 쓰임새를 탐구한다. 그리고는 깊이 파고들어 찾아낸 발견에 사용자의 습관을 더해 가구를 디자인한다. 두 시간 남짓한 그들과의 대화를 끝내고 나니 악기, 조율, 배치, 연주, 음악, 재즈, 직관 같은 단어가 머릿속에 남았다. 이 조각을 흩뿌려놓고 그들을 만나보지 않은 사람에게 물어보면 사사건건을 음악가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공간이라는 악보를 그리고, 그 위에 음표 같은 가구를 얹는 음악가 말이다.
밑미의 2층 다이닝
인터뷰 사사, 건건 사사건건 공동대표 × 김예람 기자
김예람(김): 날이 상당히 춥네요. 감기 안 걸리셨나요?
사사: 저희는 건강히 지내고 있었어요. (웃음)
건건: 혹시 커피 드세요? 얼마 전에 원두를 새로 구입했는데 맛이 좋아요.
김: 커피 좋아하죠. 그럼 따뜻한 거로 부탁드릴게요.
사사: 매체와 함께하는 첫 인터뷰라서 조금 긴장되네요.
김: 편하게 대화한다고 생각해주세요. (웃음) 먼저, 활동명을 ‘사사건건’으로 지으신 이유부터 여쭤봐도 될까요?
사사: “별걸 다 만든다”, “하찮은 것들도 멋있게 만들어 보자”라는 말들을 서로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이름을 지었어요. 큰 의미는 없지만, 어감도 마음에 들고 저희의 작업방식과도 잘 맞는 것 같아 굉장히 만족하고 있어요.
김: 두 분은 어떠한 계기로 프로젝트를 함께하게 되셨나요?
사사: 예전부터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였는데,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합이 잘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일을 같이하게 된 건 지역축제에 사용할 파빌리온을 설계해달라는 의뢰를 받으면서부터였어요. 아쉽게도 실물로 구현하지는 못했지만, 그걸 계기로 사사건건이 만들어졌죠.
건건: 디자인 성향이 비슷하다는 걸 안 이후, 함께 작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간을 디자인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논리적인 이야기를 꺼내야 할 때가 있는데요. 사실 모든 디자인이 촘촘한 과정을 거쳐서 완성되진 않아요. 때로는 직관적인 게 해답이 되기도 하죠.
김: 인상과 현상을 포착하는 방식은 디자이너 듀오로 활동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건건: 저희는 공간 전체를 구성하는 데 힘을 쏟기보다는 가구 중심의 계획을 세우려고 해요. 흔한 말로는 ‘가구 플레이’고, 저희 표현으로는 ‘기구 플레이’죠. (웃음)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서로 공간과 사용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그걸 가상공간에 펼쳐보면서 기구의 밀도를 조절해나가요. 그다음에는 각자 작업해보고 싶은 기구를 세밀하게 디자인하는 거죠.
김: 가구를 기구로 치환해서 생각하시는군요. 이제야 사사건건의 디자인이 다르게 느껴진 이유를 알겠어요.
건건: 저희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가구를 기구(instruments)로써 바라보려고 해요. 식사를 위한 기구, 컴퓨터 업무를 위한 기구, 식물에 물을 주기 위한 기구 같은 거죠. 저희가 만드는 가구를 기구라고 부르게 된 이유에는 악기(instruments)의 기능과 생김새가 가지고 있는 근사함에 대한 동경이 내재되어 있어요. 특정한 음을 내기 위해 오랫동안 정교하게 다듬어져 온 악기는 여러 가지 면에서 굉장한 밀도를 가지고 있잖아요. 현에 진동을 가하고, 연주자의 숨을 소리로 바꾸는 것에 관한 여러 경험, 지식, 노동력이 악기에 들어가 있는 거죠. 아무리 허름한 재즈 바라도 근사함이 느껴지는 건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 그런 근사함은 어떤 과정을 통해 완성되나요?
건건: 현대의 다양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사용자의 행위는 점점 더 구체적이고 복잡해지고 있는데요. 그런 곳에서 책장, 식탁과 같은 고착된 이름을 가진 가구들은 더 이상 근사하게 사용될 리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는 클라이언트에게 어떤 가구가 필요한지 물어보고 지정된 가구의 형태만을 멋지게 만드는 방식을 지양해요. 그것보다는 사용자가 어떤 일을 할 것인지, 그다음에 수반되는 행동은 무엇인지, 어느 손을 움직이는지 혹은 다른 손에는 무엇을 들고 있는지를 물어보고 그 기능만 수행하는 기구를 만들려고 하죠. 그런 기구가 사용자와 함께 잘 지낼 때 근사함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아이헤이트먼데이 쇼룸의 수납장
아이헤이트먼데이 쇼룸의 테이블
아이헤이트먼데이 쇼룸의 양말 수납 스탠드
김: 공간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최근 양말 전문 브랜드인 ‘아이헤이트먼데이’의 새 쇼룸을 디자인하셨는데, 어떤 계기로 이곳을 설계하게 되셨나요?
건건: 이 작업보다 앞선 지난 5월에 리추얼 플랫폼 ‘밑미’를 위한 공간을 설계했는데요. 그곳을 사용하고 계신 대표님이 만족스러우셨나 봐요. 그래서 새로운 쇼룸의 디자인을 고민하던 아이헤이트먼데이 대표님에게 저희를 추천하셨대요. (웃음)
김: 쇼룸은 수납해야 할 물건이 굉장히 많은 공간이잖아요. 혹시 클라이언트가 특별히 부탁한 설계사항은 없었나요?
사사: 양말이 잘 보여야 한다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요구사항이 없으셨어요. 저희가 원하는 대로 디자인할 수 있도록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셨죠. 하지만 이런 대표님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설계에 난항을 겪을 때도 있었어요. 다른 프로젝트에서는 커피를 내리거나 식물을 키우는 등의 사용자 행위가 분명했는데, 양말 쇼룸에서는 어떤 활동이 일어나게 될지 가늠하기가 어려웠거든요.
건건: 저희가 가구를 디자인할 때 형태만큼이나 활용도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듯해요. 아이헤이트먼데이 쇼룸을 만들 때는 브랜드 정체성으로부터 디자인의 출발점을 찾았어요. 이름에서 느껴지듯, 이 브랜드는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을 싫어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있는데요. 이 부분이 노동과 연결되는 측면이 있어 보였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을 디자인의 기본으로 삼고, 오피스 가구가 양말을 보여주는 디스플레이로 작동하는 방식을 고민해나갔죠.
김: 쇼룸 곳곳에 설치된 가구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원형 구멍이 뚫린 수납함이 가장 먼저 보이는데요. 마치 양말의 일부를 미리 보여주는 섬네일 같아요.
건건: 사무실에서 흔히 사용되는 몇몇 사물의 형태를 차용했는데, 그중 하나가 서류함이에요. 서류함의 동그란 구멍 안에 종이가 아니라 양말이 보이도록 만들었어요. 익숙한 형태 속에서 화려하고 귀여운 양말의 패턴이 드러나도록 말이죠.
김: 물건을 결제하는 캐셔도 사무실에서 볼 법한 프린터나 트롤리의 모습을 하고 있어요.
사사: 복합기에는 상당히 많은 기능이 들어가 있잖아요. 용지를 집어넣고, 문서를 인쇄하고, 스캔해서 디지털 파일로 만들어주기도 하고. 사무실에서 가장 밀도 높은 컴플렉스적 요소 중 하나로 보였어요. 상업공간에서는 캐셔가 그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단순한 덩어리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 복합기의 형태와 용지 수납방식을 차용해서 칸마다 문구, 포장지, 전선 같은 갖가지 사물을 넣어 두었죠.
김: 개인적으로 조명 역할을 겸하고 있는 양말 수납함을 참 좋아해요. 여러 칸의 각도를 달리할 수 있는 점이 인상적이더라고요.
건건: 양말을 하나씩 올려놓는 디스플레이가 필요해서 금속 트러스 구조로 수직형 가구를 만들었어요. 양말이 좀 더 두드러져 보일 수 있도록 구조체 바로 뒤에 조명을 설치했는데, 필요에 따라 반사광을 조절할 수 있도록 홈을 몇 개 뚫었어요.
김: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홈이 반원을 그리며 뚫려 있는데 그 모습이 사무실의 벽걸이 시계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사사: 각도를 조절하게 하기 위해서 가운데에 원점을 두고 타공되는 모양새를 조절했는데, 타공부가 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정말 시계 같아 보이네요. (웃음) 가구를 디자인하면서 반복적인 노동의 이미지를 계속 생각하다 보니 톱니바퀴의 모습이 종종 떠올랐는데 그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됐나 봐요.
밑미 2층의 선반ⓒ사사건건
밑미 2층의 수납장
밑미의 3층 공간
밑미의 4층 요가실
김: 아이헤이트먼데이와의 인연을 연결해준 ‘밑미’에 관한 이야기도 궁금해요. 밑미는 개인의 내면을 가다듬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리추얼 플랫폼이잖아요. 이런 성격을 추구하는 클라이언트에게 어떤 공간을 만들어주셨나요?
사사: 2층부터 5층까지 기능이 다 달라요. 2층은 셰프가 주기적으로 바뀌는 다이닝 공간인데, 다양한 타입의 손님을 수용할 수 있도록 분리와 조합이 간편한 테이블을 제작했어요. 3층은 ‘자신을 위한 시간을 선물하기’라는 콘셉트의 편집매장이에요. 거기에는 달력처럼 칸칸이 나누어진 벽걸이 장을 설치했어요. 그날그날 추천하고 싶은 음악이 담긴 바이닐이나 순간의 감정을 기록할 수 있는 편지지를 넣어서 파는 거죠.
건건: 4층은 요가실인데, H빔 하나가 한 가운데 서 있어서 공간을 사용하는 데 불편함을 초래할 수도 있었어요. 그래서 구조물 바로 옆에 인센스 스틱과 개인사물함 열쇠를 보관할 수 있는 수납함을 만들었어요. 운동 시작 전, 공간 중앙에 열쇠를 보관하고 향을 피우는 루틴을 적용해 H빔이 실내활동에 거슬리지 않도록 느껴지게 한 거죠. 5층은 사람들이 탁 트인 야외에서 마음대로 쉴 수 있도록 이동이 간편한 가구를 만들었어요. 그러면서도 기능은 콤팩트하게 담겨 있어야 하니 캠핑 도구의 디테일을 많이 참고했어요.
김: 용산역 인근에 위치한 식물 상점 ‘4t’도 디자인하셨죠. 이곳에서 중요하게 생각하신 포인트는 무엇이었나요?
사사: 설계 의뢰 이전부터 관심이 있던 브랜드라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임했던 프로젝트예요. 공간을 점령하다 싶을 정도로 자리를 차지하는 식물을 돌보기 위해서는 실내에서 물을 주기에 용이해야 했는데요. 클라이언트가 화분을 일일이 바깥으로 가져가 물을 주기가 어려울 것 같아, 식물 관리가 실내에서 가능한 한 많이 이뤄져야 한다는 포인트에서부터 디자인을 발전시켰어요.
김: 그래서 식물이 놓이는 철제 선반과 소파가 기울어져 있었군요.
건건: 물은 중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울어진 곳으로 흘러가잖아요. 사선의 존재가 디자이너의 주관이 아닌 기능에 의존하는 귀한 조건이었어요. 사선이 가구에서 장식적인 요소로 드러나게 적극적으로 사용했어요. 사선 끝에는 물이 타고 흘러내릴 수 있게 체인과 추를 매달아 그 끝을 더 강조했죠. 소파가 움푹 들어가는 부분에는 곡률을 적용해서 화분에서 타고 내려온 물의 방향을 유도했어요. 마치 주전자의 주둥이처럼요. 그 끝에 양동이를 두면 소파 위에 놓인 식물에 바로 물을 줄 수 있는 거죠.
김: 근래에 프로젝트를 여럿 진행하셨는데요. 체력이나 스케줄 관리에는 문제가 없으신가요?
건건: 저희는 MBTI를 신봉하는데요. 둘 다 계획형 인간이 아니라고 나오더라고요. (웃음) 구체적인 계획보다는 가까운 일정에 맞게 일을 하는 편이지만, 둘 다 게으른 편이 아니라서 지금까지 함께 활동하고 있는 듯해요. 그리고 저희가 가구 단위로 작업하기 때문에 비교적 공정을 관리하기가 용이한 부분도 있고요.
김: 바쁜 와중에 모임이나 클럽의 형식을 빌려 다른 디자이너와 대화하는 자리를 종종 가지시곤 하잖아요. 그런 활동이 사사건건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건건: 편히 이야기할 곳이 있어야 저희 작업에 대한 피드백을 들을 수 있다 보니 그런 기회를 계속 만드는 중이에요. 그런 활동을 통해 건축가나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의 사람들과 자유롭게 대화하면서 생각의 축을 늘리려고 해요.
김: 그런 갈증을 가진 디자이너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플랫폼이 되거나 자생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려는 시도 또한 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사: 그런 플랫폼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지면 디자인의 주도권이 클라이언트나 자본이 아닌 디자인 그 자체로 조금은 옮겨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디자인을 통해 더 나은 생활과 문화, 도시를 만들어 가고 싶은 사람이 타인의 자본을 바탕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요즘 많은 디자이너가 한 영역 만을 다루는 것에서 벗어나 여러 영역이 섞일 수 있는 작업 발판을 마련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사사건건도 최종적으로는 그런 의미의 자생적인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작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4tⓒ사사건건
4t의 소파ⓒ사사건건
4t의 화분 선반ⓒ사사건건
4t의 벽걸이 선반 ⓒ사사건건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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