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파주 출판도시의 생성 과정을 돌아보며 도시의 가치를 탐구하는 다큐멘터리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이하 ‘위대한 계약’)가 개봉했다.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의 건축 인생을 다룬 ‘이타미 준의 바다’ 개봉 이후 3년여 만에 장편 다큐멘터리로 관객과 만난 기린그림의 김종신, 정다운 감독과 ‘위대한 계약’, 그리고 그간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기린그림 김종신, 정다운 감독 x 오주연 기자
오주연(오): 파주와 인연이 깊으시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위대한 계약’을 찍게 되셨는지 그 배경을 간단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김종신(김): 2007년 영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친구가 인터뷰 촬영을 좀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누구 인터뷰인지도 모르고 일단 갔는데 서울시립대학교 배형민 교수님이 열화당 이기웅 대표님을 인터뷰하는 현장이었죠. 단순 촬영 아르바이트로 갔는데 너무 재미있었고, 배 교수님과 같이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저는 영국의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영화연출 석사를 했고, 와이프가 케임브리지 건축대학원에서 건축영상을 공부했어요” 말씀드리니 사실 지금 베니스비엔날레에 전시될 영상을 작업하는 건데 같이해볼 생각이 있냐고 물으셨어요. 그래서 정다운 감독이 합류하게 됐죠. 저는 건축의 ‘ㄱ’자도 몰랐을 때예요. 그때만 해도 15년 후에 저희가 파주 출판도시를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들 줄은 생각도 못 했죠.
후에 ‘이타미 준의 바다’를 작업할 때였는데, 명필름 이은 대표님이 그 작업을 보시고 베니스비엔날레 작업했던 인연도 있으니 2019년 파주 3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하셨어요. 마음대로 만들어도 된다고 하시는 거예요. 홍보영상 같은 거 아니라고요. 저희 마음 가는 대로 찍었는데 결국 영화가 홍보영상 같다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요. (웃음)
오: 영화가 유토피아적으로 파주를 바라보는 느낌이 있어요. 사실 출판도시로부터 발주 받은 입장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요.
정다운(정): 저희가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영상 작업 때부터 출판도시가 갖고 있는 이야기 그리고 그걸 실현시킨 정신에 큰 감동을 받은 지점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다큐멘터리를 하려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가게 돼요. 이 사람들이 서로 뜻을 모아서 ‘더 좋은 공간에서 더 좋은 책을 만들자 그리고 더 좋은 공간을 미래 세대에게 남겨주자’는 그 가치에 저희가 마음이 움직였고 결국 그걸 집중해서 담게 된 결과 같아요.
김: 발주를 받은 것이 아니고 파주출판조합과 저희가 공동제작 한 거예요. 영화 크레디트에 따로 나오진 않았지만, 저희가 연출료를 따로 받은 게 아니라 제작 실비용만 지원받고 영화를 개봉해서 수익이 나면 조합과 저희가 나누기로 했죠.
‘위대한 계약’이 41개 극장에서 개봉했는데요. 독립영화로서는 상당히 많은 거예요. 그리고 독립영화는 한 달 이상 상영하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이타미 준의 바다’가 약 두 달 이상 상영했는데 엄청 운이 좋았던 것이고요. 4월 21일에 개봉해서 한 달 정도 상영했고, 극장 상영이 끝나도 IPTV 등으로 보실 수 있다는 점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웃음)
오: 도시 생성의 역사부터 문화도시, 생태도시, 통일을 준비하는 파주 등 100분 남짓한 시간에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출판인, 건축인 등 인터뷰 대상도 많고, 건물만 집중해서 찍어도 영화 한 편이 나왔을 것 같은데요. 수많은 이야기들의 중심을 어떻게 잡고 정리해 가셨나요?
정: ‘좋은 공간에서 더 좋은 책을 만들고, 좋은 도시를 만들어서 다음 세대에게 전하자’는 그 가치, 저희가 감동을 받은 지점을 잘 전달하기 위해 역사를 꼭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역사 파트를 어떻게 편집할까 고민을 정말 많이 했죠. 순서를 바꾸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해봤는데, 어떤 정신 아래서 만들어졌는지 먼저 보여주지 않는 한 기초가 흔들리는 느낌이 들어서 역시 역사에서 시작하기로 했어요.
김: 저희가 처음에 의도했던 건 두 가지예요. 우선 한국 현대사를 다룰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출판도시 건설 당시의 상황들, 예를 들어 출판계에서는 금서, 건축계에서는 난개발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더라고요. 지금 젊은 세대들이 그런 내용을 보면 놀라는데 자연스럽게 담게 됐어요.
두 번째는 꼭 파주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공공의 영역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쭉 하고 있었어요. ‘이타미 준의 바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감독님이 생각하는 좋은 집은 어떤 집인가요?” 이런 질문을 받았는데요. “좋은 집이 어떤 집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두가 좋은 건축가를 만나서 좋은 집을 짓고 살 수는 없으니까 공공건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요지의 대답을 했어요. 특히 요즘 젊은 세대들이 주거에 대한 박탈감이 되게 크잖아요. 그래서 도서관, 박물관, 공원 등 같이 향유할 수 있는 공공건축이 많아지고 좋아지는 것이 도시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부분을 말하고 싶었죠.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스틸 컷 / 자료제공_영화사 진진
오: 영화 끝부분에 새로 입주하는 업체들은 기존의 건축방침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소송을 했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변화하는 파주의 미래에 대한 감독님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김: 파주 출판도시가 법적으로는 산업단지예요. 저희가 처음 촬영할 때 ‘출판도시에 약국이 생겼습니다’ 이런 플래카드가 걸린 걸 봤어요. 생활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것 중 없는 것이 많았죠. 그런데 반대의 경우, 소위 베드타운이라고 불리는 아파트만 가득한 곳이 과연 좋은 도시인지 도시로서 잘 작동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비록 파주 출판도시가 주거에 취약한 부분이 있더라도 문화도시, 생태도시로서의 가능성이 있고 앞으로도 계속 좋아질 거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정: 지금 입주기업협의회에서 일종의 자치권, 단지를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권리를 허가 받았다고 해요. 원래 산업단지는 국가에서 관리하는데 이제 파주는 구성원들이 직접 도시를 어떤 식으로 운영하고 관리할지 정할 수 있는 거예요.
김: 예를 들어 창문에 부딪혀 죽는 새가 많다고 하거든요. 사계절출판사 강맑실 대표님이 생태에 굉장히 관심이 많으신데, 새들이 볼 때는 막혀 있는 면으로 보일 수 있는 장치를 건물 유리에 했다고 해요. 도시 차원에서 건의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생태도시로서 함께 가는 공동체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더 나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고, 그리고 우리가 어떤 도시를 원하는지 고민하는 움직임이 끊임없이 있다는 게 인상적이에요. 도시를 만들었던 공동성 외에도 여전히 그 안에서 자생을 위한 움직임들이 있는 거죠.
오: 건축영상 전문가로서 건축물에 집중해서 찍고 욕심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파주 전체가 사실 건축 전시장 같은 곳이니까.
정: 굉장히 힘든 부분이었어요. 출판인들이 씨앗을 발화시키고 건축가들과 함께 물을 주고 키워서 이렇게 꽃 피운 거니까 건축만을 위한 다큐멘터리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두 그룹, 나아가 조경가들까지 그들이 같이 만든 협업이라는 게 너무 중요해서요. 그리고 파주 출판도시의 건축지침도 건물 간 조화와 배려를 강조하고 있어요. 아시아 출판문화정보센터가 커다랗게 있긴 하지만 뭐 하나가 랜드마크가 되기보다는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가 있는 조화로운 도시라는 콘셉트로 접근했어요.
김: 건축물에 건축가와 건축주 이름을 같이 넣은 게 신기하다는 반응도 많았어요.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표기를 그렇게 한 것이 출판계와 건축계가 함께 손잡고 갔던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키워드 중의 하나였어요.
오: 조경가를 언급하셨는데, 정영선 조경가 다큐멘터리를 찍으신다고 들었어요.
정: 맞아요. 출판도시 인터뷰 때문에 뵈었는데, 캐릭터가 워낙 멋져서 저희가 반해버렸어요. 어렵사리 허락을 받고 지금 작업을 하고 있죠
오: 요즘 조경 관련 전시도 많아지고, 플랜테리어 등 관련 분야에 관심이 커져서 많은 분들이 기다리실 것 같아요.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김: 올해 8월 31일 세계조경가대회가 광주광역시에서 열립니다. 한 2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거라고 하는데요. 그때 한 60분 분량으로 편집해서 선공개할 예정이에요.

기린그림이 오픈하우스 서울과 함께 작업한 '고쳐쓰는 집' 영상 시리즈 / 유튜브 화면 캡처
오: 팬데믹으로 인해 답사 프로그램을 온라인으로 대체한 ‘오픈하우스 서울’과 함께 건축영상 작업을 하셨어요. 평소 작업보다는 훨씬 빠른 속도로 여러 건물을 기록하고, 유튜브를 통해 공개하는 것이 새로운 자극이 되셨을 것 같아요.
정: 확장성 측면에서 확실히 의미가 있었고요. 사람들의 건축과 공간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가 대중에게 건축에 대해 생각할 것을 조금이라도 줄 수 있고, 좋은 공간에서 같이 잘 살 수 있도록 관심을 갖는 데 자극이 됐으면 좋겠어요.
김: 기린그림 채널도 있는데, 아무래도 오픈하우스 서울을 통해 훨씬 많이 보신 것 같아요. 유튜브에 댓글을 달거나, 이메일로 작업에 대해 좋은 말씀 해주시는 분도 있고요. 최근에는 힐튼호텔 관련 작업을 해달라는 메일도 받았어요. 어떤 단체가 아니라 개인이 정말 아쉬운 마음에서 ‘기록을 꼭 남기는 게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해줄 수 없냐’고 진심을 담아서 메일을 보내셔서 저도 답장을 정성스럽게 보냈죠.
오픈하우스 서울은 앞으로 코로나 상황이 잦아들어도 현장 방문과 영상을 병행한다고 합니다. 대중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영상 작업도 하고, 저희가 기획하는 장편 다큐멘터리도 계속하고 있는데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오: 정영선 조경가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요. 그밖에 어떤 작품을 계획 중이신지 궁금합니다.
김: 매스스터디스와 정림건축이 같이 작업한 네이버 데이터센터 시공 과정을 기록하고 있어요.
저희 자체적으로 기획하는 다큐멘터리 외에 이렇게 제안받아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들, 작년에는 덕수궁의 정원 전시의 설치 과정을 기록했고, 평창동에 지금 짓고 있는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시공 과정 전체를 기록해 달라는 의뢰를 받아서 작업하고 있어요.
정: 꼭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충무로에 서울시네마테크(가칭)가 생겨요. 상암동의 영상자료원은 아무래도 접근성이 떨어지니까 시내 한복판에 영화를 상징하는 장소를 새로 만드는 거죠. 지명설계공모에 여섯 팀이 참여했고 매스스터디스가 당선됐어요. 저희가 영화를 하는 사람으로서 이 장소, 그리고 그게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기대가 매우 커요. 영화의 집을 건축하는 이야기니까 그걸 영화로 남기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죠.
김: 며칠 전에 네이버 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하는 분이 저희가 무슨 작업을 하는지 궁금해하셨어요. 네이버에서 여기 참여하신 분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공 과정 전체를 기록하는 영상을 제작하고 있다고 하니, 그분이 “건축의 돌 사진을 찍는 거네”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아요. 저희는 건축의 돌사진을 찍는 사람들인 거죠. 초음파 사진부터 쭉. (웃음)

기린그림 김종신, 정다운 감독 / 자료제공_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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