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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sit SPACE] 1970년대 한국 미술과 이우환 ‘효과’

글
신정훈 (서울대학교 교수)
진행
김정은 편집장

 

「SPACE」 32호(1969년 7월호) ▶ e-매거진​

 

「SPACE(공간)」 2022년 8월호 (통권 657호)​​

 

20세기 후반 한국 미술 생산과 수용에 있어서 「SPACE(공간)」의 역할은 지대하다. 1966년 종합예술지로 창간되어, 전환기였던 2000년대에 초점을 온전히 건축에 맞추기까지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 영향력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한국 미술에서 「SPACE」의 황금기는 창간 직후부터 1970년대 후반 「계간미술」(1976)과 같은 여러 미술잡지가 창간되기 전까지였다. 당시는 도시화와 산업화를 배경으로 국립현대미술관(1969), 명동화랑(1970), 현대화랑(1970) 등 국립기관과 상업화랑이 들어서면서 관객과 애호가, 수집가가 양산되었고 미술 정보와 담론의 요구가 점증하던 때였다. 「SPACE」는 구미와 일본, 한국 미술의 현안과 쟁점을 즉각적이면서 깊이 있게 다뤄낸 유일한 매체였다. 게다가 아직 한국의 미술시장이 팽창되기 전이기에, 미술 관련 특집이나 리뷰는 상업적 고려나 광고주의 이해와 거리를 두고 깊이를 갖고 지속될 수 있었다. 건축가에 의해 발간되는 유일한 미술잡지이기에, 미술인들은 자연스레 건축과 도시의 의제와 현안에 노출되었다. 그리고 벽화나 조형물에서부터 ‘야외조각’ 내지 ‘환경미술’, 그리고 ‘공공미술’로 이어지는 미술과 건축이 교차하는 지점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한국 미술에 있어서「SPACE」의 역할은 보다 넓고 깊었다. 이 잡지는 전통, 구상, 추상, 테크놀로지, 민화, 민족, 민중 등 근본적인 수준에서 한국 미술의 장 속에 의미심장한 쟁점들을 던져놓았고 논쟁을 촉발시켰다. 그 독점적 영향력이 절정이던 당시에 편집장이나 편집위원으로 오광수(1967~1973)와 박용숙(1973~1978) 두 미술인이 공간과 함께했음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의 기획과 제안은 공간을 한국 미술의 의제를 설정하고 방향을 지시하는 한국 미술 생산과 수용의 핵심적인 형성력으로 만들었다.


「SPACE」 32호 78쪽.​

 

「SPACE」 32호(1969년 7월호)에 게재된 이우환(1936~)의 ‘일본현대미술의 동향: 현대 일본 미술전을 중심으로’는 1970년대 한국 미술 전반에서 확인되는 ‘이우환 효과’를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1969년 5월 도쿄에서 열린 <제9회 현대일본미술전>에 대한 리뷰 형식의 이 글은 급변하는 일본 미술의 현황을 생생하게 전한다. 이에 따르면 현재 일본에는 제도비판적 태도가 팽배하고(“전람회라는 것의 의의에 대한 의문 … 본질적으로는 현대미술을 넘어서서 미술 그 자체의 존재가치 여부에 대한 문제에까지 논쟁”) 회화와 조각, 그 관습적인 형식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3차원의 구조물이 우세하다[“유화, 일본화, 입체 A(조각)이 쇠퇴하고 입체 B(입체)가 압도적”]. 그런데 이 같은 반예술적 태도들은 그리 새롭거나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그런 거부나 저항의 제스처를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입체 B’에 출품된 작품 대부분은 천, 철판, 스폰지, 종이, 풍선, 물, 흙, 나무 등과 같이 날것의 인공물이나 자연물로서, 별다른 조작 없이 제시된다. 다카마츠 지로(高松次郎)는 바닥에 거대한 광목보를 주름진 상태로 깔아놓고, 세키네 노부오(關根伸夫)는 검은색 철판으로 된 장방형과 원통형의 통에 물을 가득 채워놓는다. 다른 전시에서 그는 거대한 원통형 스폰지 위에 크고 두꺼운 철판을 올려놓기도 했다. 이케미즈 케이치(池水慶一)는 스테인리스스틸로 둘러싸인 방을 거대한 폴리에스테르 알들로 채우고 전구를 켜놓았다. 노다 테츠야(野田哲也)는 검은 융단 위에 의자를 하나 놓아두었다.

 


「SPACE」 32호 80쪽.​

 

기성품의 사용이나 단순한 형태로 인해 미국의 팝이나 미니멀리즘의 영향으로 이해되는 세간의 평을 겨냥한 듯, 이우환은 이들이 팝아트처럼 즉물적이지도 미니멀리즘처럼 자기완결적이지도 않다고 말한다. 대신 그들은 “그 자체보다도 더 큰 총체적인 것을 인식시키려는 구조에의 지각을 가능케 하는 작품”이라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이들은 하나의 상(像)이나 물(物)을 하나 더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언제나 이미 인간화, 대상화되어버린 그것들이 중지되면서 비로소 드러나는 세계 자체를 마주하게 만든다. 그 세계에서는 창조자로서의 주체, 대상화된 물체, 그리고 그것이 일어나는 공간 사이의 구분이 사라진다. 실제로 이들 작품에 대한 현상학적 경험은 작가의 의도나 계획으로 환원되지 않고 여러 힘들의 작용을 따른다. 광목포의 물리적 성질과 중력이 만나고, 원통에 가득한 물은 모습을 달리하는 하늘을 비춘다. 시시각각 움직이는 폴리에스테르 알 구조물이 스테인리스스틸에 반사된다. 의자에 앉으려 오가는 사람들은 융단에 발자국을 남긴다. 그리고 이 글에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이 전시에 출품된 얼음 작업은 시간이 흐르며 녹아내린다. 누가 작품의 창조자인가? 작가인가, 재료인가, 중력인가, 관객인가, 온도인가? 이우환은 자신이 출품한 작품을 이렇게 소개한다. “커다란 화선지를 석장(2.1m×2.7m×3) 겹치지 않게 아무런 조작도 없이 그대로 전시장 바닥에 살짝 깔아 놓았는데 어떤 느낌이 들 것인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아마도 말려 올라간 화선지의 끝이 관객의 움직임과 공기의 흐름에 따라 계속해서 미묘하게 움직일 것이다. 이들 작품에 대한 경험은 작가의 통제를 벗어나고 외부성을 허용한다. 이렇게 작품은 언제나 항상 그 자체 이상의 세계를 드러낸다. 이처럼 “‘세계를 밝히는 매개체인 동시에 세계 자체인 법신’으로서 미술의 부상은 우연한 유행은 아니다. 그것은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생산이 자동화되고 ‘우주시대의 도래’”로 지구의 왜소함을 새삼 깨닫게 된, 따라서 인간이 더 이상 ‘만물의 척도’도 ‘세계의 중심’도 아니게 된 현재, 인간의 죽음 이후의 미학이다. 앞서 그의 출품작의 제목은 ‘사물과 말’이었다. 이를 통해 그는 인간의 죽음을 상술한 반인간주의자 미셀 푸코의『말과 사물(Les Mots et les choses)』(1966)의 제목을 약간 비틀어 그에게 헌사를 보낸다.

 


「SPACE」 23호 74~75쪽.​​

 

정제된 개념, 명료한 논리, 확고한 주장으로 구성된 이 글은 단순한 전시평은 아니다. 오히려 그 전시는 저자 자신의 내러티브를 재확인하는 데 활용된다. 실제로 이우환은 같은 해 3월 일본의 미술출판사(美術出版社) 예술평론 공모에 ‘사물에서 존재로’를 통해 입선, 일본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평론가로 부상하고 있었다. 여기서 그는 나무, 돌, 종이 등 가공되지 않은 물질들을 원상태 그대로 설치하는 당시 일본 미술의 경향에 대해, ‘사물’을 내놓지만 작가의 관념의 대리물일 뿐인 기존 미술과 달리, 세계 속에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시도는 주체와 객체를 구분 짓고 타자를 인간의 관념이나 필요에 따라 대상화하는 식민주의적 근대성을 넘어서는 것이라 말한다. ‘모노하(物派)’로 불리게 되는 이 경향의 미학적, 철학적 의미를 정리해낸 그의 글은 일본 미술이 이제 서구 미술의 변종이 아니라 오히려 그 미술의 철학적 기반을 비판하고 문명의 전환을 촉구한다고 말한다. 이우환이 곧 「SPACE」의 지면을 얻게 된 일은 일본에서의 성공담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김수근의 추천인지 오광수의 기획인지는 알려진 바 없지만, 「SPACE」는 기민하게 당대 일본의 최고의 평론가로 떠오르던 이우환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했다. 이는 이후 그의 ‘만남의 현상학적 서설’을 한국아방가르드협회의 기관지 「AG」 4호(1971)에, ‘오브제 사상의 정체와 그 방향’을 「홍익미술」 창간호(1972)에 실으며 검증된 명성을 확인하는 경우와 구분된다.▼1

 


「SPACE」 25호 71~72쪽.​​

 

 

그런데 일본 미술계의 인정이 아니더라도 그는 이미 한국 미술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었다. 1965년 외교 정상화 이후 일본에서 열린 첫 번째 대규모 한국미술전시 <한국현대회화전>(도쿄국립근대미술관, 1968)에 그는 유영국, 이세득, 전성우, 박서보, 윤명로 등 한국에서 온 작가들과 함께 참여한다. 그런데 그를 널리 알린 것은 작품보다는 말이었다. 전시 관련 좌담회에서 이우환은 한국 작품에는 ‘오프’적인 경향이 짙으나 그것이 논리적으로 포착되지 않고 단순히 색을 좋아한다는 민족적인 취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언급하며, 감각적인 요소는 논리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1956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입학 직후 도일한, 대부분에겐 무명인 재일교포 젊은 미술인의 갑작스런 조언이 한국 작가들을 적잖이 당황케 했으리라. 이에 유영국(1916~2002)은 논리가 앞선다는 것이 작가적 태도는 아니라고 응수하며 그런 경우 작품이 약한 경우라고 쏘아붙였다. 이 공방은 그 좌담회, 아니 그 전시의 하이라이트였던 것으로 보인다. 1968년 9월 「SPACE」 23호의 혼마 마사요시(本間正義)의 ‘한국현대회화전을 보고’, 그리고 같은 해 12월 「SPACE」 25호 오광수의 ‘미술 1968년·세 개의 유형’은 모두 이 일화에 주목한다.▼2 젊은 미술가의 당돌한 지적과 미술계 어른의 훈계조 응수는 그 자체로 볼거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그 공방이 ‘뚜렷한 세대차’, ‘현대를 대하는 관념의 차’를 가리킨다는 오광수의 지적은 정확한 것이다. 

 

「SPACE」 100호 36~37쪽.​​

 

 

실제로 1970년대로 이행하며 한국 미술에서 선진적인 작업이란 몸에 익은 조형 감각에 기대기보다 머리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했다. 1970년대 ‘이우환 효과’는 여러 수위에서 확인된다. 1970년대 초 한국 미술에서 나무, 흙, 천 등이 등장하게 되는 일은 직접적인 것이다. 보다 원리적으로는 1970년대 중반으로 이행하며 작품이 반복적인 그리기에 기대거나 성긴 올의 마대 뒤에서 밀려나온 물감의 흔적으로, 혹은 작가 자신의 신체의 길이에 따른 드로잉의 궤적이 되는 일이다. ‘모노크롬’이든 ‘이벤트’든 이처럼 최종의 시각적 사건에서 작가의 자의적인 의사결정은 최소화되고 표현, 주관성, 작가, 창조 같은 관념은 문제시된다. 그러면 “나는 그리지 않는다”는 역설적인 표현이 가능해진다. 이제 미술은 그 자체의 미학적 자극을 제공하는 이상으로 논리적으로 설명되고 납득될 수 있어야 했다. 1975년 9월 「SPACE」 100호는 이우환 특집을 통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회고를 실은 박서보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면으로 예술론을 펴서 노여움을 사게” 된 그가 의미심장한 작가가 되었음을 알린다.▼3 동료로서 혹은 동창으로서 개인적인 관계를 회고하거나 한국 미술에서 그의 역할을 분석하는 그 글들은 그가 사적으로 공적으로 가까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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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100호 38~39쪽.​​

 

다음 호에는 김현섭이 「SPACE」 236호(1987년 4월호)에 게재된 ‘한국의 현대건축가론 6: 건축가 윤승중’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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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우환, ‘만남의 현상학적 서설’, 「AG」 4호(1971년), 5~14쪽; 이우환, ‘오브제 사상의 정체와 그 방향’, 「홍익미술」 창간호(1972년), 86~96쪽.

2 혼마 마사요시(本間正義), ‘한국현대회화전을 보고’, 「SPACE」 23호(1968년 9월호), 74~75쪽; 오광수, ‘미술 1968년·세개의 유형’, 「SPACE」 25호(1968년 12월호), 71~73쪽.

3 「SPACE」 100호(1975년 9월호) 이우환 특집에는 박서보의 ‘이우환에 관한 일’, 박용숙의 ‘우리들에게 있어서 이우환’, 김종학의 ‘동창생으로서의 이우환’, 그리고 이우환의 ‘만남의 현상학적 서설: 새로운 예술론의 준비를 위하여’ 등의 글이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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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훈
신정훈은 미국 빙엄턴 뉴욕주립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1960년대 이후 서울의 변화와 미술의 전환이 교차하는 지점들을 조명하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협동과정 미술경영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묵, 김수근, 김구림, 현실과 발언, 최정화, 박찬경, 성남프로젝트, 플라잉시티에 대한 논문과 에세이가 있다. 공저로 『한국미술 1900-2020』(국립현대미술관, 2021), 논문으로는 ‘기계, 우주, 전자: 1960년대 말 한국미술과 과학기술’(「미술사와 시각문화」, 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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