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2년 8월호 (통권 657호)
‘오늘의 건축가’는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저마다의 건축을 모색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기 위해 기획됐다. 그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탐색하고, 고민하고 있을까? 「SPACE(공간)」는 젊은 건축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보다는 각자의 개별적인 특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인터뷰는 대화에 참여한 건축가가 다음 순서의 건축가를 지목하면서 이어진다.
인터뷰 김샛별, 윤성영 아에아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 × 박지윤 기자
서울~파리~진주
박지윤(박): 릴레이 인터뷰가 대구를 거쳐, 진주까지 오게 되었어요. 소장님들은 서울의 배병길 도시건축연구소, 파리 라 빌레트 국립건축학교(이하 라 빌레트)를 거쳐 진주에 자리 잡으셨잖아요. 그 과정 중 언제 연을 맺으신 건가요? (웃음)
윤성영(윤): 제가 배병길 선생님 사무실에 있을 때 김샛별 소장이 1년 후배로 들어왔어요. 그러다 선생님 모르게 연애했고요. (웃음) 선생님 사무실을 나와야겠다는 시점이 있었는데, 그때 서로 유학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결혼은 유학 후 한국에 들어와서 했고요.
박: 어느 학교에 들어갈지는 두 분이 상의해서 결정했나요?
김샛별(김): 당시 라 빌레트 아니면 파리 벨빌 국립건축학교(이하 벨빌), 두 학교를 고려하고 있었는데 둘 다 라 빌레트를 들어가게 됐죠. 윤 소장이 먼저 입학했고, 저는 디자인 학교 크레아폴(CREAPOLE)을 1년 다니다 들어갔어요.
박: 크레아폴에서는 상업 디자인을 공부했다고 들었어요. 건축이 아닌 다른 영역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건가요?
김: 상업 디자인에 관심이 있어 공부했는데, 제 기준에서는 건축보다 깊이가 없다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다시 건축으로 전향했고,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었죠.
박: 깊이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김: 유학을 선택할 당시에는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으니, ‘내가 과연 책임의식을 가지고 평생 건축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었죠. 그래서 상업 디자인 분야로 가려고 했는데, 공부하다 보니 건축하고는 또 다른 깊이가 있었지만, 저는 이미 건축적 사고에 물들어 있었던 것 같아요. 건축이 더 재미있더라고요.
박: 책임감과 같은 부분은 아무래도 한국에서 실무를 하며 길러졌을 것 같아요.
윤: 배병길 도시건축연구소에서의 경험은 도제 생활과 가까웠어요.
김: 건축가의 태도나 사고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건축은 절대 너만을 위한 게 아니고 네가 누군가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책임감과 무게를 느끼며 작업해야 한다고요. 도면도 한 장의 화폭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으셔서, 여백과 같은 부분도 신경 쓰셨어요. 젊은 저희에게는 어렵고 무겁게 다가왔었죠. 소위 4.3그룹을 형성했던, 그 연배에 계시는 선생님들의 아틀리에 대부분이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박: 유학 이야기도 궁금해요. 라 빌레트가 벨빌에 비해 수업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다고 들었거든요.
윤: 벨빌에서는 우노그룹을 중심으로 상당히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건축을 가르쳐요. 우노그룹은 같은 건축 언어를 사용하는 건축가 그룹을 말하는데요. 학년별로 커리큘럼이 딱 짜여 있어 그에 맞춰 건축가를 양성해요. 처음에는 라 빌레트에 들어가 도시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배우다 보니, 도시라는 큰 주제를 내가 석사 2년의 기간 동안 다 배울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시 공간에 초점을 맞추었고, 라 빌레트에서 활동하면서 우노그룹의 멤버이기도 한 건축가 파스칼 호프스테인을 지도교수로 택했죠.
박: 라 빌레트에 들어가 벨빌의 교육을 받은 셈이네요.
윤: 우노그룹의 스타일이 굉장히 강하거든요.
저는 우노그룹의 스타일과 방법론을 습득했을
때,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다양성이
확보될 거라 생각했죠. 그런 시간이 축적되어
아에아건축사사무소다운 게 어느 정도
표현되고 있지 않나 싶어요. 면과 면 사이,
볼륨과 볼륨 사이를 뜻하는 ‘공간의 두께’를
포함한 디자인 언어적인 측면에서요.
H1115-7 ©Kim Yongkwan
(지역) 건축가
박: 유학을 떠날 때는 처음부터 한국에 돌아와 사무소를 차릴 계획이셨나요?
김: 저는 원래 박사를 하려고 했고 윤 소장은 프랑스에서 실무를 하려고 했는데, 한국에서 작업 의뢰가 들어왔어요. 친구 아버지의 주택이었죠. 당시 비행기를 타고 왔다 갔다 하면서 완성을 했어요. 그쯤 많은 사람의 의뢰 요청이 있어 한국에 들어오게 된 거죠.
박: 물 들어올 때 노 저은 경우네요.
윤: 네, 지금은 많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웃음)
박: 후회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지만, 굳이 여쭤볼게요. (웃음)
김: 조금 더 탄탄하게 시작했으면 어땠을까싶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직접 부딪혀서 경험하다 보니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거든요.
박: 힘들 것을 알았다면 시작을 할 수 있었을까요?
김: 그래도, 알고 시작하는 게 나았을 것 같아요. (웃음) 건축 외적인 부분에서 힘들었거든요. 한국에서 실무를 한 경험은 있었지만, 독립하니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직업이라는 걸 새삼 다시 느끼게 되었고 거기서 오는 괴리감이 컸어요.
박: 지역에 자리를 잡은 것도 한몫했을 것 같아요.
김: 첫 작업을 지역에 한 터라, 대부분의 의뢰가 지역에서 들어왔어요. 지역에서는 건축 문화 자체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해 더 힘든 상황이었죠. 건축주분들이 당연하게 가도면을 요청하기도 하고, 저희가 아직 젊으니 쉽게 보는 분도 있었고, 이런 부분들이 많이 부딪혔죠. 그래서인지 서울에서 활동하는 건축가분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개소하는 걸 굉장히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저희에게 많이들 물어보시거든요.
박: 건축주의 건축에 대한 인식, 시공의 질을 높이기 힘든 환경을, 지역에서 건축하기 힘든 여건으로 많이 꼽더라고요. 다른 건축가가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에 대해 물어오면 긍정적으로 답변해주시나요?
김: 현실적인 부분은 정확하게 말씀드리고, 마지막에는 그래도 해 볼 만하다고 용기를 드리죠. (웃음)
박: 다른 지역 건축가와 함께 활동하는 커뮤니티는 있나요?
윤: 커뮤니티를 만드는 걸 저희도 생각을 하긴 했는데, 심리적으로 진주라는 도시가 한 다리만 건너서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두세 다리를 건너야 하거든요. 서울과 대도시의 차이가 있고, 또 대도시와 지역의 차이가 있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박: 지금의 지역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활동할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아요.
김: 처음 한국에 들어올 때부터 어디에 뿌리를 내려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한 10년 정도가 지나면 다른 곳에서 작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지금도 순리대로, 계기가 생기면 큰 곳으로 갈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처음 자리 잡던 그때가 참 순수했던 것 같아요. 지역이라는 것이 저희의 발목을 잡을 거라는 생각은 못 했거든요. (웃음)
윤: 이 도시가 좋다, 나쁘다라는 걸 떠나서 다른 건축가와 공유할 수 있는 접점을 많이 만들고 싶은데 물리적으로 어렵다 보니, 조금 더 큰 도시에 가서 소통에 대한 갈증을 채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죠.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머리가 조금이라도 말랑할 때요.
박: 서울에서 활동하는 건축가를 인터뷰할 때는 건축가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지역 건축가를 인터뷰할 때는 지역에 초점이 맞춰지더라고요. 그런 부분들이 아쉽기도 했는데요. 소장님들은 지역 건축가이기 때문에 자주 듣는 질문이 있나요?
김: 아에아건축사사무소에서 하고자 하는 지역성은 무엇인가. (웃음) 젊은건축가상 심사에서도 지역 건축가들에게 하는 단골 질문이에요.
윤: 답변드리기 곤란한 질문이기도 하죠. 생각을 만들어가고 있는 단계인데 단지 지역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역성을 이야기해야 하니까요.
김: 저희가 요즘 공공 건축 비중을 늘리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공공 건축물 설계를 하다 보면, 지역사회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는 건 사실인 것 같아요. 고민을 해야만 하는 단계와 과제를 찾아나가는 과정에 와 있는 거죠.
H1115-7 모형
A358-2 렌더링 이미지
공공으로 눈을 돌려
박: 공공 건축은 남해 도서관 증축 프로젝트인 ‘A358-2’(2022)를 말씀하시는 거죠?
윤: 맞아요. 저희가 독립 초반에는 앞서 말씀드린 ‘공간의 두께’에 집중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 공간이 사용자와 주변과의 관계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낸다고 생각해서요. 요즘 공공 프로젝트를 하면서는 표현 방식이 조금 더 단순해지고 있어요. 본질은 같지만요.
박: 초기작인 상가주택 ‘H1115-7’(2015)과 비교하면 볼륨이 확실히 단순화되었네요.
윤: H1115-7 같은 경우는 앞에 남해가 있는 대지였거든요. 뒤편에 있는 공간은 기본적으로 바다를 볼 수 없는 환경이었죠. 그래서 저희가 공간의 볼륨을 벌리고 창을 두어, 공간의 두께를 만든 거예요. 안방에서도 남해 앞바다를 볼 수 있게요. 개인 작업을 할 때는 저희가 해석하고 표현한 부분에 대해서만 건축주와 이야기하게 되고, 또 저희가 설명해드리면 건축주가 그 공간의 가치를 느끼게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 해석과 표현의 한계가 생기게 되는 것 같기도 했어요.
박: 그래서 공공 프로젝트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신 걸까요?
김: 맞아요, 반성의 의미로요. (웃음) 기대보다 훨씬 재미있더라고요. 당선되고, 그걸 또 만들어나가고, 주민들과 협의하고, 이런 과정에서 저희의 언어가 조금 더 겸손해지는 듯해요.
박: 사실 공공 프로젝트를 지양하는 건축가도 많잖아요. 관공서가 개입되다 보면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가 어려우니까요.
김: 저희가 운이 좋았던 게, 남해가 공공 건축 문화가 잘 형성이 되어 있는 편이에요. 남해는 기획 단계부터 공공건축가들이 컨설팅을 하고, 당선 이후 공공건축가와 발주처, 건축가 간의 소통도 잘 이루어져서 결과적으로 건축가의 의도가 잘 구현되도록 돕거든요. 다른 지역에서 남해 공공 건축 시스템을 사례 답사로 오시기도 해요.
부부의 합의로
박: 이 질문도 부부 건축가로서 많이 들었을 질문이긴 한데, 두 분의 작업 영역이 어느 정도 구분이 되어 있는지 궁금해요.
윤: 실무적인 부분에서 말씀드리면, 볼륨이나 공간에 대한 해석, 풀이 같은 경우는 제가 주로 하는 편이에요. 진행하면서 중간에 막힐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김 소장에게 가서 물어보죠. 항상 그 지점에서 충돌이 일어나요. (웃음) 재료적인 부분이나 내부 공간을 어떻게 표현할 건지는 김 소장이 하고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답도 질문에 의한 답변이기는 해요. 사실 같이 고민하고, 같이 싸우고, 모든 걸 같이 가지고 가요.
박: 일하다 생긴 안 좋은 감정이 생활에까지 연장되기도 하나요?
김: 생활도 업무의 연장선이에요. 워낙 결정할 것이 많잖아요. 그때그때 기억이 나는 순간 이야기를 해야 잊어버리지 않기 때문에 업무 시간 이후에도 일이 계속 이어지는 거죠. 그래서 싸움도 연장선에 있고요. (웃음)
박: 직원들의 중간 역할도 꽤 중요할 것 같아요.
김: 지금 카페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요. 윤 소장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폭을 공간의 맛을 위해 1500mm로 하겠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저는 트레이를 들고 왔다 갔다 하기에는 좁다고 안 된다고 했죠. 둘이 엄청 싸웠는데 직원과 윤 소장이 시뮬레이션한다고 트레이를 들고 이리저리 걸어 다니는 거예요.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언성이 낮아졌죠. 제3자가 있으니 조금 더 원만하게 해결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해결이 안 될 때는 차를 마시고요. 그래서 우리 사무소에 차가 많아요. (웃음)
윤: 저희는 진짜 치열하게 싸우는 것 같아요. 10년 전이나 초반만 해도 이렇게까지 의견이 달랐던 것 같지는 않은데 점점 각자의 생각이 쌓이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박: 신기하네요. 의견이 점점 맞아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김: 저희는 읽는 책도 다르고, 듣는 음악도 다르거든요.
윤: 김 소장이 읽은 책을 제가 그 다음에 읽는 경우가 있는데, 밑줄 그어 논 걸 보고, ‘도대체 여기에 왜?’ 할 때도 있어요. (웃음) 우스갯소리로 말했지만, 건축할 때는 둘이 의견이 다르면 계속 싸우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 과정을 거쳐 합의된 결과가 항상 좋았거든요.
박: 부부 건축가라 가능한 합의 도출 과정이네요. (웃음)
김샛별(왼쪽)과 윤성영(오른쪽)
김샛별, 윤성영은 2022년 9월호에서 이지영(건축사사무소 도리건축 대표)의 오늘을 듣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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