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2023년 1월호 (통권 662호)
예술과 건축: 협업과 횡단을 위한 대화
대담_ 김장언 아트선재센터 관장 × 최춘웅 서울대학교 교수 × 김정은 편집장

금성배수장에 설치된 소행성 G 설치 전경
소행성 G
김정은: 건축계 전반적으로 과거의 것을 복원, 리모델링하거나 신축할 때에도 오래된 것처럼 표현하는 경향이 확대되고 있다. 공공에서도 근과거의 건축물이나 기반시설을 활용해 문화공간으로 전환하는 시도들이 꽤 오래 지속돼왔다. 최춘웅이 최근 선보인 노량진 지하배수로와 마곡문화관 프로젝트 역시 공공의 기반시설을 리모델링한 사례로 그 연장선에 있다. 그가 선보인 작업을 보면 다양한 협업의 관계망 속에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건축가의 모습이 보인다. 오늘은 최춘웅이 공공미술의 영역에서 협업했던 초창기 작업인 소행성 G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어떨까 싶다. 미술가, 건축가, 구조 전문가가 협업한 프로젝트의 기획자로서 먼저 어떤 구상을 했는지 짚어주면 좋겠다.
김장언: 소행성 G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의 공공미술 시범사업인 ‘ARKO 도시공원 예술로’ 공모에 당선된 프로젝트다. 미술가를 중심에 두고 건축가 등 다른 협업자들과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게 프로젝트를 기획한 큰 목적이었다. 작가에게 집중했다고 생각될 수 있는데, 예술 현장에서 작품을 작가만의 결과물이 아니라 협업의 결과물로 완성하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다. 큐레이터로서 작가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이를 구체화하는 과정에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서 아이디어를 풍성하게 만들고 이를 실현해가는 과정에 도전한다는 마음으로 소행성 G를 시작하게 됐다. 우리 팀은 김소라 작가의 주도 아래 공주 금성배수장을 대상지로 삼아 흥미로운 안을 제출해 공모에 당선됐다.
김정은: 여섯 번의 수정 과정을 거쳤다고 들었는데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됐나?
김장언: 당선안은 배수장 안에 공주시의 지형 일부를 본뜬 구조물을 등고선 형태로 삽입하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실현 과정에서 공주시는 당선작을 구현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했다. 배수장이 법적으로 재난시설이라 최대 저수 용량이 정해져 있는데, 시에서 이 저수 용량을 건드리면 안 된다고 제동을 건 것이다. 원안을 유지하려면, 삽입된 구조물의 체적만큼 저수 용량이 줄어도 재난을 방지하는 데 문제가 없음을 우리가 증명해야 했다. 원안을 폐기하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팀 전체가 패닉에 빠졌다. 선정은 됐으니까 새로운 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계속 스터디를 해도 답이 나오지 않더라. 그러던 중 김소라가 갑자기 돌을 만들자고 제안하면서 프로젝트에 시동이 걸렸다. 조형물로 구현될 돌을 찾기 위해 배수장 근처와 근교 산을 돌아다니다가 김소라가 돌멩이 하나를 발견했다. 이 돌의 모습을 본뜬 조형물을 만들겠다고 시에 보고하자 모두 화들짝 놀라며 표정이 굳더라. 직감적으로 이 프로젝트의 진행이 쉽지 않으리라 느낀 김 작가는 아예 마음을 접고 이제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보자고 했다. (웃음)
최춘웅: 김소라가 주워왔던 그 돌을 아직 보관하고 있다. (웃음) 그때도 궁금했는데 왜 하필 돌을 만들게 된 것인가?
김장언: 작가에게 물어봤을 때, 아무 이유 없이 돌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당시는 미술계 거장들이 돌에 대해서 다시 사유하던 시기였다. 돌과 대화를 나누거나 돌을 재료로 사용하는 식이었다. 우리 팀도 진짜 돌을 만들겠다는 생각에 스페인 건축가 안톤 가르시아 아브릴(앙상블 스튜디오 공동대표)이 만든 사례도 찾아보면서 스터디했는데 이를 실행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소행성 G의 브리지 설치 전경
김정은: 소행성 G는 돌에서 출발한 큐빅 모듈러 구조물 외에 철제 다리도 함께 설치했다. 이는 어떤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것인가?
김장언: 당시 우리 팀이 공감했던 건 이 땅이 버려진 장소였다는 점이다. 배수장 전체가 펜스로 가로막혀 있어 사람들이 길을 빙 둘러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펜스를 걷어내고 사이트를 열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사람들이 이 땅에 접근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고민하다 배수장을 가로지르는 보행로를 제안했다. 마침 공주에 일제시대에 축조된 교량인 금강철교가 남아 있어 이를 모티브로 삼았다. 철교의 아치형 구조를 본뜬 단순한 구조물을 설계해 보여주자 거창한 조형물을 기대했던 시에서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나중에는 공무원들이 보행로가 생긴 것에 만족한다고 했는데 아마도 프로젝트가 끝난 후 자신들이 여기에 뭔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웃음) 어쩌다 보니 다리를 만드는 프로젝트가 됐는데, 닫혀 있던 공간을 개방하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열린 마당을 깔아주는 방향으로 정리된 셈이다.
최춘웅: 당시 펜스 주변으로 보신탕 집들이 있고 개를 파는 트럭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그런 풍경이 사라지기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리는 그 자체로 구조적 역할을 하도록 설계돼 효율적이다. 전라남도 영광에 굴비 다리를 만들듯, 특산품 형태를 본뜬 지역의 시설물들에 비하면 군더더기 없는 구조물이 세워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했다.
김장언: 개장하고 몇 년 뒤에 우연히 찾아갔더니 사람들이 잘 이용하는 진짜 다리가 됐더라. 펜스에 막혀 돌아가던 길을 가로지르는 지름길이 된 거다. 2년쯤 지나 다시 찾아갔을 때는 사랑의 다리가 된 것을 목격했다. 누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사랑의 자물쇠를 거는 장소가 됐다. 밤에 가면 조명이 켜져 나름 운치도 있다.
김정은: 다리의 시공은 어떻게 했나? 의도한 대로 완성된 것인가?
김장언: 공주시가 직접 시공하겠다고 나서서 어쩔 수 없이 수용했다. 우리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자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는 쪽으로 입장을 정했다. 시공사에도 우리가 제출한 설계 도면 외에 다른 어떤 것도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막판에 시에서 커뮤니티 아트를 해야 한다고 종용하는 바람에 파트타임스위트를 초청해 11월 말 하루 종일 야외 공연을 했다. 배수장에 무대를 설치하고 멋진 공연이 펼쳐졌는데 정작 주민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웃음) 돌을 실현할 수 없게 된 순간을 기점으로, 어떤 것도 하지 않은 상태로 끝까지 프로젝트를 완성시키겠다는 일종의 의지가 생긴 것 같다. 돌이 되지 못하고 멈춘 구조체처럼,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상황 자체를 그대로 관철시킨 것이다. 시에서 다리에 꽃화분을 놓자고 해도, 조형물을 만들어 달라고 해도 전부 거절했다. 막판에는 다리의 데크 바닥을 오렌지색으로 칠하고 싶다고 요청하길래 프로젝트가 끝나면 그때 하라고 했다. ‘어떤 것도 안 했다’는 데 자부심을 느꼈던 프로젝트였다.
김정은: ‘어떤 것도 안 했다’는 말이 이 특집 전체를 꿰뚫는 표현이 아닌가 싶다.
김장언: 소행성 G와 함께 선정된 타 지역의 프로젝트들을 보면 커뮤니티 아트 작업도 있었는데 우리 프로젝트에서는 처음부터 이 부분을 배제했다. 참여한 작가와 전문가들이 협업하는 과정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공공예술이라는 이유로 지역주민과 교류하고 환원하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작품을 구현해나가는 예술의 창의적 성취에 집중하고 싶었다.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지역성을 파괴했다고 평가받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건축가가 자신의 방식을 밀고 나가면서 비전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공간이 실현됨으로써 우리에게 주는 영감과 경험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공미술을 만드는 과정에 공공이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의 방법이 잘못됐다고 판단하지는 않았다.

소행성 G의 브리지
협업의 의미와 태도
김정은: 이 프로젝트의 건축가로 최춘웅을 초청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김장언: 서로 처음 만난 계기는 제7회 광주비엔날레(2008)였다. 당시 <제안전>의 큐레이터로 참여했는데 전체 전시에 대한 공간 디자인을 최춘웅이 담당했다. 전시 공간 콘셉트를 상의하는 회의에서 최춘웅이 모형을 가지고 발표했는데, 전시의 공간을 맡은 건축가가 자기 건축을 하는 게 아니라 전시 콘셉트를 파악하고 해석에 개입하려는 태도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김정은: 해석에 개입을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김장언: 건축가가 전시 공간 디자이너로 들어오면 큐레이터가 전시 콘셉트를 얘기해도 자기 건축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상징적인 건축 어휘를 전시장 곳곳에 삽입하는 식이다. 그런데 예술감독이 제안한 개념을 해석해 자신의 건축에 적용하고 건축 언어에 대입하면서 이를 조정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당시 해외에서도 건축가가 예술감독의 콘셉트를 완벽하게 존중하면서 자신의 건축 어휘를 삽입하는 사례는 드물었다. 최춘웅의 발표에서는 전시의 개념을 파악하고 그걸 자신의 어휘로 시도하려는 점이 크게 다가왔다. 당시 비엔날레 전시장 벽의 그리드들이 리드미컬하게 달라지는 개념을 제안했는데, 그 그리드가 자신의 시그니처 표현이 아니라 작품과 전시 개념을 반영하면서 만든 리듬이었다. 한국에 이런 건축가가 있다는 점이 반갑고 놀라웠다. 이 계획이 구현된 전시 공간을 현장에서 보자 리듬이 읽히더라. 최춘웅에게서작가와 협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고 할까.
김정은: 건축가들과의 협업이 어렵다고 느꼈던 이유는 무엇인가?
김장언: 개인적인 경험을 비춰볼 때 협업하기 가장 불편한 상대가 건축가다. 건축가들은 나름대로 아이디어나 감각을 비롯해 표현 능력, 시공 능력을 가지고 있어 본인이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때문에 건축가들과는 조율하면서 타협점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힘들다. 심지어 자신이 설계한 전시 공간에 어울리는 작업은 어떤 거라고 지정하는 경우도 봤다.
김정은: 예상은 했지만 적중해서 깜짝 놀랐다. (웃음) 건축가의 생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김장언: 나중에 최춘웅을 만났을 때 다른 건축가들과 결이 다른 것 같다고 얘기를 했더니 자신이 무대 디자인을 공부했었다고 하더라. 그래서 더 유연할 수 있었구나 싶었다.
최춘웅: 비엔날레 때 열심히 도왔는데 결과적으로는 별로 한 게 없는 듯 보였나 보다. 광주비엔날레재단에서 내 작업을 보고 건축가 없이 전시 공간을 디자인할 수 있다고 판단했는지, 다음 비엔날레부터는 직접 공간 디자인을 하더라. (웃음)
김장언: 슬프지만 그게 한국 예술계의 한계인 것 같다. 공간을 조율하는 미묘한 텐션과 리듬감을 인지해야 되는데, 아마추어가 볼 때는 ‘내가 해도 되겠네’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뭔가 특징적인 게 눈에 쉽게 띄지 않다 보니 전문가들 또한 잘못 판단하는 상황 같다.

소행성 G의 브리지
공공예술과 공공건축의 경계
김장언: 최춘웅의 경우 제로그라운드에서 시작하는 신축 프로젝트보다 개입하고 조율해야 하는 프로젝트에 많이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유의 작업을 보통의 건축가들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나?
최춘웅: 김광수와 함께 나눴던 대화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왜 그런 작업을 선호하는지, 왜 그런 곳에 가면 더 편하다고 느끼는지 말이다. 스스로 어딘가 기대고 숨을 수 있는 장소라서, 나를 굳이 강하게 내세우지 않아도 되는 상황, 있는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상황에 안도하는 것 같다.
김정은: 스스로 ‘청소하는 마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무언가를 더하거나 덜어내는 적극적인 액션을 취하기보다 청소하듯 정리하는 태도를 가지게 됐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김장언: 공공 사이트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젝트에서 기존의 어떤 역사적 건물이나 공간에 개입하는 논리를 만들어갈 때 복원에 대한 작가들의 비판적 태도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리모델링을 하는 경우에도 적당히 사진이 잘 나오게 설계하는 일들이 반복되는 것 같다. 건축가든 예술가든 기존에 사용되던 공적 공간의 용도를 바꾸는 시도를 할 때는 공간의 의미를 재규정한 뒤 이를 건축 언어나 디자인 언어로 변형시켜 결과물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공간을 새롭게 인식하는 과정과 대화가 필요한데 이 프로세스가 ‘일’처럼 추진되면서 시간적 여유와 그 과정을 거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최춘웅: 비단 건축가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사회와 제도가 전혀 기다려주지 않는 상황이지 않나. 이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사람들이 동시대 예술가들이라 생각한다.
김장언: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요즘 예술가조차 이런 상황에 안주하고 적응해가는 것 같다. 공공미술에 관련된 프로젝트의 심의나 자문을 맡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공공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들이 시설물과 결합되거나 구체적인 구조체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런 프로젝트에 젊은 건축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사실이다. 최종 심사에 오르거나 당선되는 사례도 많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나는 건축과 미술계 모두에게 비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건축가들이 일거리가 없어서 여기에 참여하는 것 같고, 건축가들 스스로도 프로젝트에서 어떤 비전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최춘웅: 혹시 그중에 정말 하고 싶은 게 있어서 참여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김장언: 그런 경우가 많지는 않은 것 같다. 한번은 공공 프로젝트의 결과를 보고하는 최종 평가 자리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 나름 알려진 젊은 건축가가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과정 전체를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최초에 제안했던 안과 최종안을 비교하니 처음 제안했던 핵심 개념은 사라지고 무던한 디자인만 남아있더라. 지역 주민의 이야기를 반영하며 수차례 변형을 거쳐 완성된 최종안을 놓고 그곳에 있던 전문가들은 대체로 만족하는 것 같았다. 답답한 마음에 당선팀에 “내가 볼 때 프로젝트의 핵심 개념은 사라지고, 조율과 타협의 과정에서 다른 결과물이 만들어진 것 같다”고 직접 질문했다. 이러한 타협 과정에서 건축가로서 억울한 부분은 없었는지도 물었다. 그러자 공공미술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주민들이 원치 않는 안을 고집하지 않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 이 작업이 자신에게는 ‘일’이기 때문에 초기 개념을 포기하는 것이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고 하더라. 건축가가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춰줬다고 설명하는데 나도 할 말이 없어졌다. 건축 프로젝트에 비해 훨씬 가변적이고 유연한 공공예술 프로젝트가 도전하고 실험할 수 있는 기회가 돼야 하는데, 일로 접근하는 건축가들 사이에서 미술 작가들이 도전하고 경쟁하기 어려운 구도가 형성되는 것 같다. 미술 작가들보다 건축가들이 공공미술을 더 많이 수행하는 수준이 되자, 오히려 미술 작가들만 참여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들이 하나둘 등장하는 추세다.
김정은: 건축가들이 공공예술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현상을 예술계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나? 문제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김장언: 거대한 공공미술품을 하나 세우기보다 유휴 시설물을 개선하고 활용하는 사업이 공공의 자금을 투입하기에 용이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예술 분야에서도 사업의 대상자를 건축가로 확장하고 있는데, 근본적으로는 예술가와 건축가가 작업을 하는 프로세스와 일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따라서 시설과 구조물에 대한 이해나 이를 표현하고 언어화하는 능력에서 건축가들이 월등히 앞서는 형국이다. 공모 심사 때 보면 건축가들이 화려한 프리젠테이션을 앞세워 가시적인 그래픽을 제안하는데 나는 이것이 허구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시각을 그래픽으로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실제로 콘셉트 자체가 그래픽에서만 가능하고 현실에서 구현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콘셉트 이미지에 작업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사례가 나타나는 원인이기도 하다.
김정은: 날카로운 지적이다. 업역의 확장을 활발하게 주장하고 있는 건축계가 귀담아 들어야 할 메시지라 생각한다.


소행성 G 초기 계획안 랜더링
김장언: 중견에서 신진까지 많은 건축가들이 공공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현상을 보면서 디자인의 좋고 나쁨을 논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건축 언어가 퇴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리모델링이나 재생 프로젝트들이 붐을 이루는 것도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10년 이상 이런 유행이 지속된 이후에 보니, 어느 순간 건축가들이 스페이스 매니저가 되어 있더라. 예를 들어 시장을 리모델링하기 위해 건축가와 회의를 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공간을 바꾸기 위해 크리티컬한 건축적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그에 맞춰 공간을 재구축하고 프로그래밍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은 그대로 두고 대화할 공간이 필요하면 여기에는 어떤 업체의 제품이 좋고, 액티비티가 필요하다고 하면 거기에 맞는 운영사를 소개하는 등 건축가가 프로그램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다. 프로그래밍을 통해 공간이 구축되는 것도 좋지만, 건축가로서의 어휘나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물으면 답하지 못하더라. 대신 트렌드나 상황을 가지고 자기 건축을 설명하는 식이다. 수많은 리모델링 프로젝트들도 이름을 지우고 보면 한 사람의 작업이라 할 만큼 비슷하다.
최춘웅: 리모델링의 경우는 실제로 작업하는 방법론도 비슷하다. 해외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국가별 특색도 사라진 듯하다.
김장언: 작업이 비슷해지는 경향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건축가가 에디터가 된 것 같은 상황이 문제라고 본다. 건축가가 공간을 편집해서 구성하는 에디터로 바뀐 것 같다.
최춘웅: 프로그램 기획에 과도하게 치중하는 경향은 건축대학에서 설계 수업을 할 때도 느낀다. 학생들이 열심히 분석하고 기획하는 데 시간을 많이 쓰면서 정작 해야 할 설계는 잊고 안 한다. 크리틱할 때 보면 자기 디자인이 없는 친구들이 많다.
김장언: 폐허를 너무 미학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건축적 작업의 비중이 줄어드는 현상인가?
최춘웅: 일종의 페티시(fetish)처럼 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보다 근본적인 부분을 지적한 것 같다. 작업을 하는 깊이가 얕아졌거나 작업의 기본, 즉 방향이나 목적을 상실한 상황을 설명한 것이다.
김장언: 오늘날 건축은 지속가능성, 환경문제 때문에 시스템화, 모듈화되는 상황이지 않나. 젊은 건축가들을 보면 작업을 설명하면서 3D 툴 속의 아이템을 갖다 놓듯 공간을 구축하고 설명한다. 공간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제품을 소개한다. 마치 건축 관련 자재와 모듈을 인지한 상태에서 클라이언트의 취향에 따라 큐레이션 해주고 결합해주는 상황이다.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등장했던 건물 카탈로그가 우리 시대에 맞게 진보된 것 같다. ‘에디터로서의 건축가’가 미래의 건축가 상(像)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내가 모더니스트적인 태도를 가진 걸 수 있지만 건축가가 그런 사람인가 하는 회의가 든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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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언
김장언은 미술이론과 문화이론을 전공했고, 제7회 광주비엔날레 〈제안전〉 큐레이터(2008), 계원예술대학교 겸임교수(2011~2014),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기획2팀장(2014~2016),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 디렉토리얼 콜렉티브(2018), 서울시 공공미술위원회위원(2017~2021) 등을 역임했다. 현재 아트선재센터 관장(2022~)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비평집 『미술과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2012)와 『불가능한 대화: 미술과 글쓰기』(2018)가 있다.
최춘웅
최춘웅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역사적 건축물의 재활용, 도시재생 그리고 건축의 영역을 독립된 문화 행위이자 지식 생산 분야로 확장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2018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공동 큐레이터 겸 작가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