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것
19세기, 고트프리트 젬퍼가 건축에 생활 개념을 도입하고 카를 마르크스가 일상을 혁명의 진원으로 정의한 이후 건축에서 삶은 논쟁적 주제가 되어왔다. 인류 역사상 현대는 가장 빠르고 복잡하고 파편화되고 불투명하다. 따라서 건축가가 현대적 삶을 주제로 작업한다면 불완전하고 임시적이더라도 설득력 있는 제안을 끊임없이 생산하는 방법밖에 없다. 삶을 모토로 내세운 양수인(삶것 대표)의 작업은 반복 속에서 자기 긍정과 성취를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프로메테우스와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거대하고 무거운 과업이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니체와 알베르 카뮈가 지적했듯 끝없는 반복은 인간을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 영웅으로 만든다. 주어진 조건과 상황을 분석해 문제를 발견하고 개념화한 후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현실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양수인의 작업 방식은 철저히 미시 서사에 의존하고 있다. 어떤 추상적 관념이나 사상이 전체를 지배하지 않고 하나의 해결책을 다른 프로젝트에 적용할 수도 없다. 자연스럽게 작업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양수인은 문제의 내용과 범위를 명확히 정의해 프로젝트를 통제하는 전략가적 면모로 넓게 펼쳐진 삶의 양태를 기민하게 오갔다. 이는 건축가 개인의 재기와 끈질김 덕분이지만 한편으로는 임기응변에 능해야 하는 한국적 상황이 양수인의 건축을 진화시키는 것 같다. 건축에서 사물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강가에 놓인 다리를 사방(Geviert: 하늘, 땅, 인간, 신성)을 모으는 사물로 설명하며 실존의 근거로 제시하고, 현상학에서는 사물의 물성이나 구축의 시학에 집중하고,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다양한 의미 생성을 위한 해석학적 모호함에 방점을 찍는다. 하지만 양수인의 사물, 것(thing)은 실재(real)에 가깝다. 사물을 뜻하는 ‘thing’의 어원은 ‘assembly’다. 이는 사물의 근본이 부분 혹은 조각들의 모음에 있음을 뜻한다. 양수인은 실재하는 사물과 사물, 사물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조율하고 부분들의 구성을 재구조화하면서 건축을 타협된 현실에 저항하는 일종의 준-자율적 놀이로 이해하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이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나 건축의 자율성을 뜻하지 않는다. 주어진 상황에서 작은 혁명을 반복하고 세계 곳곳을 유랑하며 자유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노마드의 존재 방식이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사회 주변부, 비주류, 대안시설 등 하위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왼쪽) 존 포트만의 하얏트 리젠시 애틀랜타(1967) / Screenshot from Portman Architects Website (오른쪽) 양수인의 컬쳐랜드 오피스(2020)
대중적 모더니즘의 유산
컬쳐랜드 오피스는 민간 기업의 업무시설이지만 문화사업을 영위하는 기업 성격에 맞춰 저층부에 공연장, 임대형 문화시설, 카페와 편의시설 등을 배치하고 업무 공간은 상층부에 조밀하게 구성했다. 업무 공간에 임직원을 위한 옥외 발코니를 만들면서 남은 용적률은 옥상정원 위로 올려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우주선 모양의 전망 좋은 연회 공간을 만들었다. 프로그램 구성은 사전 기획된 것이 아니라 건축가의 제안을 의뢰인이 수용해 실현됐다. 건축가는 규모는 작지만 이 건물이 단순 업무시설이 아니라 도심 속 복합문화공간으로 기능하도록 의도했다. 이러한 시도는 1960~1970년대 미국의 기업가형 건축가 존 포트만이 설계한 하얏트 리젠시 애틀랜타, 샌프란시스코, 휴스턴 등을 떠올리게 한다. 이 건물들은 공통적으로 저층부에 문화, 레저, 컨벤션, 상층부에 객실, 옥상에 우주선 모양의 전망 카페를 가지고 있다. 컬쳐랜드 오피스는 프로그램 구성, 도시적 맥락, 형태 조작 등에서 이와 유사한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여기서 건축가는 단순히 의뢰받은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조직해 건물이라는 제한된 외피 안에 담는 컨설턴트이자 다양한 인적 관계와 요구를 조율하고 독려하는 퍼실리테이터, 사회적 엔지니어다. 정북일조 사선제한, 지구단위계획, 지형의 단차, 용도와 성격, 공사비와 사업성 등과 같은 물리적 제약 조건에서부터 세세한 의뢰인의 요구 조건, 사용자 편의성과 쾌적성, 건물의 향후 활용 방안까지 건축가는 건물에 관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사항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공간은 사람들을 위한 상자가 아니라 이벤트가 됩니다. 어떤 건물이든 사람들이 그곳에 가서 사용하기 전까지는 그냥 물건일 뿐입니다. 저는 뭘 만들던 총체적으로 접근합니다. 그림에서부터 조각, 가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요. 당신은 사람들을 위한 환경을 만들고 있습니다. 휴먼 인터페이스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결국 그것은 삶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이 삶입니다.”- 존 포트만▼1
존 포트만은 낙후된 도심을 재생해 삶의 조건과 복리를 증진시킨 위대한 건축가라는 칭호와 인기에 영합한 상업적 디벨로퍼라는 불명예를 동시에 갖고 있는 양면적 인물이다. 그에 앞선 선례로는 록펠러 센터를 설계한 건축가 레이몬드 후드가 있다. 렘 콜하스는 『광기의 뉴욕』에서 르 코르뷔지에를 유토피아주의자로, 레이몬드 후드를 현실에 기반한 대안적 모더니스트로 평가한다. 20세기 초 정부 주도의 공공 건축과 시민사회가 공동체의 이상을 이끌었던 유럽 모더니즘과 달리 미국은 코니 아일랜드와 맨해튼이 상징하는 대중문화, 시장경제, 자유주의, 실용주의 등이 모더니즘을 주도했는데 68혁명 이후 근대의 모순이 폭발하던 시절 콜하스는 피터 아이젠만의 자율적 건축과 로버트 벤투리의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다른 방식으로, 즉 미국의 대중적 모더니즘을 선택적으로 복원함으로써 파편화된 현대사회와 도시에 대응하려 했다. 러시아 구성주의, 미스 반 데어 로에, 코르뷔지에 등 초기 모더니즘의 선례를 참조한 프로젝트에서 그는 대도시의 밀집과 혼돈, 익명화된 비장소를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포용하며 기술, 자본, 개발, 거대 구조물, 불확정성 등을 통해 근대의 기획을 연장시켰다. 그가 모더니즘에서 제거한 것은 계몽주의적 거대 담론과 이데올로기다. 미국의 대중적 모더니즘을 환기시키는 컬쳐랜드 오피스는 어떤 선험적 범주나 도덕, 추상적 관념에 기대지 않고 실재에 기반한 합리적 분석과 문제 설정을 통해 적절하고 가용한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현대사회의 모순과 위험을 창작의 기회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콜하스와 닮았다. 여기에는 아키그램, 아키줌, 슈퍼스튜디오 같은 순진하고 낙관적인 유토피아도, 피터 스미슨과 앨리슨 스미슨, 제인 제이콥스의 제안 같은 인류학적 호소도 없다. 단순 명쾌한 개념과 현실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이성, 의심할 수 없는 실재가 빛나고 있을 뿐이다. 건축가는 논리적으로 정의되지 않은 모호함과 미지의 신화적 세계를 회피한다. 콜하스는 건물의 내외부를 분리해 별개의 세계로 봤지만 컬쳐랜드 오피스는 전면도로 방향으로 각 층마다 옥외 발코니를 만들고 식재를 계획해 내외부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만들었다. 영동대로 측 건물 전면은 저층부 모퉁이를 유리 커튼월로 마감하고 투명 엘리베이터와 보이드, 엇갈린 발코니와 브리지 등을 활용해 수직성과 역동성을 강조했다. 반면 정북일조 사선제한을 받은 탄천 측 건물 후면에는 단순한 상자형의 공연장 매스와 지형을 활용한 수평적 정원을 배치해 도시적 맥락에 대응했다. 독특한 형상의 실크 스크린 유리 외피 역시 순수하게 자율적 형태를 추구한 듯 보이지만 사실 이 파사드 디자인은 도회적 유리 커튼월을 선호하는 의뢰인의 취향, 에너지 효율, 유지 관리비용, 향에 따른 일조 차폐, 조망의 조절, 인접 대지와의 관계, 공사비 절감 등 건물의 내외부를 아우르는 다양한 맥락과 제약 조건에 반응한 상호 텍스트적 결과물이다. (하략)
▼1 Richard L. Eldredge, ‘No architect ever loved Atlanta like John Portman’, Atlanta Magazine, Jan. 2018.
월간 「SPACE(공간)」 6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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