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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학생기자] No.664 2023년 3월호 리뷰

글
18기 SPACE 학생기자
진행
윤예림 기자


정교한 순수함

글 김수진(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건축설계를 배우면 배울수록 오히려 순수함을 잊어버리는 때가 온다. 애매하게 아는 것이 많아지며 평면이나 콘셉트 같은 것들에 지나치게 사로잡히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내가 조금 쌓아온 것으로 충분히 ‘좋은 건축’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쉽게 착각하게 된다. 결국 내가 어떤 건축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방황하는 때가 오고야 마는데, 그제서야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되찾아야 할 건축의 순수함이 무엇인지 곱씹고는 한다.

순수는 원형에 첨가가 없는 ‘본질’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건축의 순수는 어떤 본질의 이미지를 띄고 있을까? 건축을 이루는 모든 본질 즉 도시, 사용자, 대지, 역사를 모두 품어야 하기에 건축의 순수는 무엇보다 정교하다. 건축을 잘 모르는 사용자가 경험할 때도 다채롭고 좋은 것. 그 건축의 형식이 도시를 이루게 되는 것. 대지의 매력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 이러한 것들이 건축의 순수를 가리킨다. 「SPACE(공간)」 3월호에 소개된 정수진의 작업은 건축의 순수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정수진은 다채로운 공간 구성은 물론 섬세한 시공을 통해 장소의 매력을 끌어올린다. 하나뿐인 대지와 하나뿐인 클라이언트의 만남에서 건축이 시작됨을 알고 설계를 시작하는 듯했다. 순수라는 단어가 가진 명랑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건축의 순수함은 정교하게, 또 치열하게 완성된다. 복잡하고 정교해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건축의 순수를, 정수진의 건축에서 엿볼 수 있었다.​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글 류예승(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일까. 형상뿐만 아니라 생각까지 철로 만들어내는 시대, 인간들은 한계란 없다는 듯이 내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인간에게도 자신의 속에 있는 마음을 그대로 꺼내어 타인에게 보여주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고, 상대방은 그가 어떤 마음인지 알고 싶어도 추측할 뿐이다. 때로는 질문하고 집요하게 의도를 예상해보며 마음을 확인하려 한다.

건축가도 같은 고민을 한다. 사용자가 바라는 공간은 무엇이며, 어떻게 활용될 것인지부터 시작해 인지하지 못할 만한 작은 공간의 틈에서까지 질문과 대답을 이어 나간다. 3월호에서는 건축물이 만들어지기까지 순수한 인간으로서의 경험과 그로부터 도출된 해답들이 소개된다. 특히 건축을 통해 말하는 건축가의 입장에서, 타인과 의견을 나누고 그의 속의 것을 끄집어내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빚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정인지 알 수 있었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어린아이 같아질 필요가 있다. 아마 대부분의 성인은 순수하고 때로는 말랑거리는 마음으로, 고정된 생각을 버리고 이야기해 본 마지막 경험이 언제인지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실수할까 두려워 경험을 쌓고, 점차 견고해진 이야기들은 마치 자동응답기계처럼 사과를 빨간색이라고만 말한다. 하지만 어린아이라면 어떨까. 모든 생각을 벗어버리고 말도 안 되는 그림과 노래로 내가 살고 싶은 공간을 표현해 보자. 그러면 비로소 자연과 건물의 경계가 사라지고 나무가 집 안에서 숨을 쉬는, 꿈으로만 꾸던 공간을 말하게 될 것이다. 공간의 이야기는 건축가에게 전달돼 그의 손에서 덩어리로 만들어지고 또 깎여가며 마침내 완성되어 갈 것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순수하게 어떤 공간을 원하는가?​

 

 


영화를 보듯 건축을 본다

글 정영주(단국대학교 영미인문학과)

 

정수진의 건축은 영화다. 공간과 공간을 어떻게 연결하면 좋을지, 거주자에게 바깥 풍경이 어떻게 보일지 고민하는 행위가 자꾸만 그를 영화감독으로 보게 했다. 그가 드넓은 대지에 만들어 놓은 작품은 백 퍼센트 흥행이 보장되어 있다. 철저히 거주자의 입장에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건축주에게는 믿고 보는 정수진의 영화, 아니 건축이다.

「SPACE(공간)」 3월호에서는 에스아이 건축사사무소의 정수진 건축가와 그가 설계한 건축물에 관해 다뤘다. “일상적 공간은 다채로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는 건물을 바라보게 될 거주자를 따라가며 철저히 설계했다. 시선이 닿는 곳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내부를 향하는 시선과 외부로 향하는 시선. 어떤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게 할지 정하는 데에는 이용자의 동선과 함께 내부를 향하는 시선에 대한 그의 고찰이 담겨있다. “한눈에 모든 공간이 파악되도록 하지 않고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조합해 시퀀스를 만든 것이다”라는 그의 말에는 영화의 플롯을 구성하는 방식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각 장면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모든 장면이 감독의 입맛에 따라 나열되어 총체적인 하나의 의미를 이루는 것. 그것이 정수진이 공간을 구성하는 방법이다. 개방된 공간 이전에 폐쇄된 공간을 배치해 작게 열린 공간에서도 상당한 개방감을 느끼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 거주자가 창문이나 문을 통해 외부를 바라보는 시선도 공간을 설계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정수진 은 그의 건축물 ‘자연’에서 거주자들이 계절과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곳곳에 배치된 창문 너머로 다양한 장면들을 포착하고자 한 것이다. 이상해(국민대학교 교수)는 “건축가는 건축을 가능케 하는 주변의 현상을 생명 없는 사물로 보지 않고, 초사물적 본질로 파악하여 그것을 건축의 영역으로 불러들여 인간이 누리는 삶의 행복과 기쁨을 구가하도록 환원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정수진은 자연을 그저 하나의 대상으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삶과 공간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여겼다. 건물 바깥을 에워싸는 자연이 변화하면서 거주자는 시간을 감각하고, 비로소 살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영화를 보며 등장인물의 삶 너머에 존재하는 나의 삶을 떠올린다. 감독이 짜 놓은 플롯에 따라 촉발되는 감정이 나의 과거나 현재를 되감고 미래를 형상하기 때문이다. 거주자들도 건물 내부를 거닐며 공간 너머의 일상을 본다. 정수진이 설계해 놓은 건축의 장면 앞에 설 때마다 그들은 어떠한 모습의 일상을 그릴 테다. 그 모습은 거주자에게 익숙할지도, 혹은 완전히 낯설지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한 폭에 담긴 그들의 나날이 건축가의 의도대로 오색 빛을 띠고 있을 거라는 것이다.​

 

 

 


상연 중

글 장하린(한양대학교 실내건축디자인학과)

 

연극은 독립된 다양한 종류의 예술이 무대 위에 올려진 종합 예술이다. 그리고 매번 달라지는 배우나 시간, 분위기 등은 각 회차마다의 고유함을 부여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휘발성 있는 연극을 반복해서 볼만한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또한 연극은 각자의 관점으로 과거의 작품에서 현재의 사람들에게 유효한 이야기를 가져와 재해석한 콘텐츠이다. 이는 비단 연극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며 건축을 포함한 모든 예술이 그러하다. 건축가 역시 다양한 예술의 영역에서 영감을 받아 공간을 연출해 내고, 연출된 공간은 그곳을 거니는 사람의 특성, 방문 빈도, 시간대, 동행자의 여부 등에 따라 고유한 분위기를 나타낸다. 그렇기에 한 공간을 ‘N회차’ 방문하는 경우가 생기고, 그 공간에 대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거리가 제공되는 것이다. 현대의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역할은 새로운 무언가의 끊임없는 창조가 아닌, 기존의 것을 어떤 식으로 재해석하고 편집해 함께 이야기할 거리를 만들어 낼 것인가 고민하는 일 아닐까?

「SPACE(공간)」 3월호를 읽고 예술과 건축의 경계에서 어떤 식의 개입이 있을 수 있는지 다시금 고민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모든 예술을 관통하는 오래된 질문이 하나 떠올랐다. 과연 레퍼런스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주는 도구일까? 혹은 창작의 출발점일까? 카펫뉴스의 내부 공간을 디자인한 조준우(워크먼트 대표), 송승엽, 조유환(말프 공동대표)은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미술 분야의 생산방식을 어떻게 건축에 가져와 사용할 수 있을지 스터디 한다. 카펫뉴스는 영국의 조각가 레이철 화이트리드의 ‘집’(1993)에서 출발해, 그의 작업방식을 참조해 재맥락화 했다고 한다. 그들의 공간은 대단한 철학을 바탕으로 계획된 ‘공간’이 아니라 적절한 참조를 통해 편집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제안’으로 느껴졌다. 철저하게 의도된 그들의 목적 아래에서 사용자는 입체적인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건축가가 해야 할 일이자 하고자 하는 일은 과거의 레퍼런스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연극을 하듯 한정된 공간 내에 ‘재연’하는 것이라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각자의 아카이브 속에서 함께 이야기할 과거의 맥락을 끄집어내고, 새롭게 편집하며 재해석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재연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건축, 예술, 공학, 문학의 어떤 분야이든 간에, 현재 우리의 사회가 지닌 구멍을 함께 힘으로 메워나가기 위해 과거의 다양한 영역을 성실히 아카이브 해야 하며 이를 적절히 활용할 방법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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