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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경유해 다다를 그곳: 제14회 광주비엔날레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글
방유경 기자
사진
방유경(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광주비엔날레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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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공간)」 2023년 6월호(통권 667호​)​

마타아호 콜렉티브, ‘투아키리키리’, 폴리에스테르 직조, 가변설치,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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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광주비엔날레가 4월 7일 개막했다. ‘아시아 최대 미술축제’라는 규모에 맞게 국내외 79팀 예술가들의 작업이 광주 시내 곳곳을 채웠다. 총감독 이숙경의 지휘 아래 꾸려진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도덕경』의 ‘유약어수(柔弱於水)’에서 차용한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다. 전시는 도시 차원의 빅 이벤트나 스펙터클 전시를 지양하며, 예술이 ‘전환과 회복의 가능성’을 상징하는 물처럼 포용하며 천천히 스며드는 방식을 택한다. 팬데믹을 통과하며 인류가 경험한 행성적 차원의 위기의식이 다시금 예술의 힘을 호명하는 이때,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세계를 경유하는 저항과 연대의 외침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아홉 개 국가관이 갖춰지면서 보다 다양한 갈래로 뻗어나가는 이번 비엔날레의 기획과 전략, 방향성을 되짚어보았다. 

 

팡록 술랍, ‘광주 꽃피우다’ 연작, 천에 목판 인쇄, 2023,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션

 

알리자 니센바움, ‘신명’ 설치 전경, 2023,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션 / 사진제공 광주비엔날레재단​​​

 

다시 광주

광주를 찾은 것은 5월 초였다. 개막 직후의 열기와는 또 다른 꿈틀거림이 느껴지던 5월의 광주는 40여 년 전 역사적 사건을 끊임없이 복기해내고 있었다. 전시관 입구에서는 ‘박서보예술상 폐지’를 촉구하는 1인 시위가 눈에 띄었다. ‘실험적 담론의 장’이라는 비엔날레 본령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주제 및 작가 선정에 대한 총체적 비판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또다시 광주’란 어떤 의미일까? 민중의 저항에 뿌리를 둔 ‘광주 정신’이 도시 브랜드와 정치적 이미지로 간편하게 소비되는 태생적 한계 안에서 그 바깥을 상상하기 위한 경로는 무엇일까? 총감독 이숙경은 이 복잡다단한 상황과 문제의식을 포섭하는 전략으로 ‘인류를 하나의 생물종이자 지구 공동체’로 보는 ‘행성적 관점’을 제안한다. 테이트모던의 국제미술 수석 큐레이터로 근무하며 제3세계 미술가들을 연구해온 그의 경험은 비서구권의 시각을 담은 ‘탈국가적 큐레이팅’으로 압축된다. 그는 ‘광주 정신’의 근원을 다원성으로 파악하고 “세계를 중심과 주변이라는 이분법적 구조에서 벗어나, 시공간에 걸쳐 분산된 교차와 연계의 지점”에서 바라보고자 시도한다. 분열과 차이를 포용하는 ‘물’과 같은 예술의 힘을 빌어 “지구를 저항, 공존, 연대와 돌봄의 장소로 상상하겠다”는 의도다. 

전시는 지구적 차원의 위기에 대응하는 예술가들의 실천을 네 개 소주제 아래 그러모은다. 민주화운동과 차별, 불평등에 대한 저항과 연대의 메시지를 담은 ‘은은한 광륜’, 원(선)주민과 전통을 통해 서구적 근대성에 도전하는 ‘조상의 목소리’, 디아스포라와 탈식민주의적 사고를 개진하는 예술적 실천으로서 ‘일시적 주권’, 환경과 생태 위기 앞에서 공존을 촉구하는 ‘행성의 시간들’. 이 주제들은 자본주의와 근대주의가 외면했던 타자들을 시간과 공간, 국경과 문화를 초월해 한데 엮는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참여 작가들의 스펙트럼은 이를 반증한다. 30개국에서 온 80여 명의 작가는 세대, 젠더, 인종, 원주민 등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이들 사이에 공통점은 하나다. 오랜 시간 자신이 속한 문화적 전통과 역사에 깊이 천착해왔다는 점이다. 비서구권 전통문화를 다룬 기존 전시들이 우리의 현실과 공명하지 못한 한계를 커미션의 형태로 극복하는 시도도 주목할 만하다. 이런 기획력이 돋보인 ‘조상의 목소리’에서는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다양한 문화권의 전통이 엮이는 교차점을 전달한다. 야자수 잎으로 엮은 직물, 향과 같이 전통 공예에 천착한 대만의 차이쟈웨이는 『반야심경』의 문구가 새겨진 나선형 향을 태워 연기와 재로 변하는 순간을 전시장 안에 재현하며 동양적 정신의 실체를 드러낸다. 카자흐스탄의 바킷 부비카노바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전통 세밀화 기법과 동양적 모티브를 탐구하며 그림의 핵심적 부분을 삭제함으로써 전통에 대한 도전과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과테말라 선주민인 카치켈 부족 신 에드가 칼렐의 설치 작업 역시 부족의 신화와 토테미즘 등 전통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는다. 전시실을 조상에게 감사를 표하는 제례의 현장으로 탈바꿈한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2023)는 ‘제례 의식’을 통해 우리 문화와 원주민 토착 문화를 연결한다. 미개한 것으로 치부되었던 원(선)주민의 역사와 전통을 창조적 씨앗으로 삼아 서구 근대성에 잠식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확장해나가는 이들의 모습은 전통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한층 넓힌다.

 

에드가 칼렐,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 바닥에 혼합재료 설치, 가변크기, 2023,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션; ‘여기 당신이 우리 마음에 심어 놓은 요정들이 있어요’, 벽에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3,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션 / 사진제공 광주비엔날레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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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킷 부비카노바, ‘피르다우시의 시’ 연작, 캔버스에 아크릴, 110×70cm, 2019​​

 

비엔날레의 현장성과 물질성 

한스 울리히 올브리스트는 비엔날레의 증가 속에서 전시의 과제는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시간성을 제공하는 것”이라 지적한 바 있다. 지난 2008년 광주비엔날레의 총감독을 맡았던 오쿠위 엔위저 역시 “전시라는 매체는 일정한 시간을 갖고 관람하는 하나의 서사적인 구조”라 설명했다. 이는 장소특정적 작업뿐 아니라 전시 기획에서 작품과 작품 사이 연결과 흐름이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비엔날레가 전시장 동선과 구성에 변화를 준 점은 눈여겨볼 부분이다. 기존의 출구에서 시작해 입구로 퇴장하도록 동선이 역으로 바뀌면서 비엔날레는 층고가 낮은 1전시실로 진입하게 됐다. 총감독의 의도적 결정이었는지 모르지만, 낮고 긴 공간에 불레베즈웨 시와니의 ‘바침’(2023)이 설치되면서 ‘물의 심상’을 주제로 삼은 비엔날레의 첫인상을 적절히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태생의 작가는 전시장을 흙, 나무기둥, 매듭이 어우러진 숲으로 탈바꿈하는 한편, 전시장 안쪽에 거대한 수조를 설치한 뒤 수면 위로 영상을 투사했다. 자연이 지닌 치유, 회복의 에너지를 믿었던 고유의 전통문화(모계사회)와 신앙을 암시한 설치 작업은 이어지는 네 개 소주제를 아우르며 전시의 서문을 이룬다.  

경사로를 따라 이동하다 보면 전시장 안의 밀도가 낮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작품 수를 줄이고 군데군데 의자를 배치해 편의성을 높였다. 물리적, 시각적으로 한층 여유가 생긴 내부는 관람객들이 작품 사이를 오가며 명상과 사색을 할 시간을 제공한다. 작품의 병치와 연결을 통해 메시지를 확장해나가는 서사적 흐름을 ‘은은한 광륜’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의 콜렉티브인 팡록 술랍이 5·18민주항쟁(이하 5·18) 당시 목판화 작가들의 활동을 연구한 뒤 시민군에 주먹밥을 나눠주던 어머니들의 모습을 걸개그림 형식으로 제작한 ‘광주 꽃피우다’(2023)는 이 작품 뒤에 놓인 민중미술가 오윤의 판화와 함께 읽히며 시각적으로 공명한다. 민족의 현실과 역사의 한 맺힘을 ‘신명’으로 풀고자 했던 오윤의 주제의식은 바로 옆에 배치된 알리자 니센바움의 ‘신명’(2023)으로 이어진다. 공동체와 교감한 긴 시간을 화면에 담아온 작가는 5·18 이후 광주에서 조직되어 40년 넘게 활동 중인 놀이패 ‘신명’의 마당극을 그림으로 옮겼다. 커미션으로 진행된 두 해외 작가의 작업은 ‘광주 정신’에 대한 재해석이자 오마주로, 관람객의 이해를 높이며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한편 2전시실 끝에 위치한 엄정순, 크리스틴 선 킴, 김순기의 작업은 관객에게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시각장애 학생들이 워크숍를 통해 직접 코끼리를 감각한 뒤 만든 조형물을 양모, 철 파이프, 철판 조각 등을 사용해 거대한 조각으로 제작한 엄정순의 ‘코 없는 코끼리’(2023). 언어가 작동하고 번역되는 방식을 탐구하며, 농인들이 사용하는 수어와 기보법이 나라마다 다르다는 점에 착안해 나라별 수어 동작을 벽과 바닥에 투사한 선 킴의 ‘모든 삶의 기표’(2022). 광주의 여고생들이 (당시 인정받지 못했던) 조선시대 여류 작가들의 시를 돌아가며 낭독하는 영상과 폭풍과 태풍 영상을 병치한 김순기의 ‘광주. 時’(2023). 세 작품은 각각 촉각, 시각, 청각에 의존해 작품에 접근하고 감각할 것을 권한다. 잠시 눈을 감거나 귀를 막고 이 작품들 사이를 걸어다니다 보면 관람객은 위치 감각을 잃고 누군가와 부딪히거나, 작은 소리에도 무척 예민해질 수 있다. 차별과 소외의 대상이었던 이들에 공감하는 관람 행위는 비엔날레라는 현장성 안에서 강한 설득력을 얻는다.

 

엄정순, ‘코 없는 코끼리’, 철판, 양모, 천, 300×274×307cm, 2023,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션 / 사진제공 광주비엔날레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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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니 보나조, ‘터치미텔’, 단채널 영상 설치, 24분 27초, 2019 / 사진제공 광주비엔날레재단​​

 

​돌봄과 치유, 공존과 연대 

‘일시적 주권’은 식민지와 전쟁이 남긴 상흔을 개인과 집단 차원에서 직시하고, 예술적 실천을 통해 이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여덟 살의 나이에 난민이 되어 홀로 국경을 넘은 과달루페 마라비야는 이민자로서 겪은 개인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치유하고자 자신의 주술적 믿음을 담아 ‘질병투척기’(2023)를 제작한다. 한반도와 동남아시아 곳곳에 남겨진 태평양전쟁의 흔적을 추적한 콜렉티브 이끼바위쿠르르는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만든 활주로, 진지,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비와 묘지 등 역사적 상흔의 증거물들이 방치된 채 식물로 뒤덮인 현재 풍경을 드러낸다. 생태와 환경 위기를 다룬 ‘행성의 시간’은 인류의 관점을 다시금 지구적 시각으로 전환하고자 시도한다. 콘크리트 배수관이 30년째 방치된 강의 한 지류에서 이 환경에 적응해가는 야생 동물과 식물을 촬영한 싱가포르의 로버트 자오 런휘는 인간의 시선을 동물의 시선으로 옮겨 바라보게 한다. 인간이 지구에 행한 만행을 고발하는 증거물은 앨런 마이컬슨의 ‘패총’(2021)에서도 발견된다. 미국 뉴욕의 오랜 선주민 부족의 후예인 작가는 환경이 파괴되기 전 굴과 패각이 가득했던 뉴욕의 옛 모습을 떠올리며, 산업화에 의해 급격히 변해버린 강 유역 일대의 풍경을 패총 더미 위에 투사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 통영에서 제공받은 굴 패각은 비엔날레 이후 현지 재활용 프로그램에 사용될 예정이다. 자연과 인류의 옛 기억을 더듬으며, 새로운 상상력으로 행성의 치유를 실천하는 작업 과정은 기후위기 앞에서 인류와 예술의 역할을 다시 묻게 한다.

 

로버트 자오 런휘, ‘강을 기억하고자 함’, 4채널 영상 설치 및 오브제, 가변크기, 2023,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션​

 

앨런 마이컬슨, ‘패총’, 단채널 영상 설치​, 굴 패각, 가변설치, 2021​​

 

확장된 파빌리온 프로젝트 

2018년 처음 시작된 이후 올해 아홉 개 국가로 확장된 파빌리온 프로젝트 역시 행성적 위기 상황이라는 문제의식을 이어받는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네덜란드 파빌리온 〈세대 간 기후범죄 재판소: 멸종 전쟁〉은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보다 급진적으로 전개하며 재판 형식의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전시는 ‘세대 간 기후범죄법’을 제정하고 지난 500년간 멸종된 동물들을 피해자로 법정에 세운다. 또한 환경파괴의 주범이자 기후범죄자로 기소된 글로벌 기업에 대한 청문회를 열어 인간과 비인간의 시각에서 대등하게 죄를 묻는다. 동곡미술관에서 열린 이탈리아 파빌리온의 〈잠든 물은 무엇을 꿈꾸는가?〉에서 아그네스 퀘스천마크는 생명의 근원인 물을 주제로 수중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과학기술을 갖춘 인간이 언젠가 진화의 시작점으로 돌아가기 위해 물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리라 예언했던 독일 생물학자 막스 베스텐회퍼(1871~1957)의 ‘호모 아쿠아티쿠스’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태아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최소한의 생명 장치만 연결한 채 물이 채워진 수조 안으로 들어간 작가의 모습을 비춘다. 이강하미술관에서 열린 캐나다 파빌리온 〈신화, 현실이 되다〉는 캐나다 선주민인 이누이트가 고유의 전통과 신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회화를 선보인다. 동화 속 삽화를 보듯 의인화된 동물들의 친숙한 모습은 자연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는 선주민의 태도와 삶의 양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뉴이트 문화와 거주지를 보호하는 국가 차원의 지원 활동을 소개한 섹션은 선주민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게 한다. 그 밖에 고유의 정신과 전통문화를 상징하는 대나무를 주제로 삼은 중국 파빌리온, 인간을 사물로 보고 인간이 다른 사물,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탐구한 이스라엘 파빌리온 등 전통과 자연을 경유해 세계와의 연결점을 탐색하는 태도는 각국의 파빌리온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확장됐다.

 

네덜란드 파빌리온의 〈세대간 기후범죄 재판소: 멸종 전쟁〉 설치 전경​

 

이탈리아 파빌리온 〈잠이 든 물은 무엇을 꿈꾸는가?〉에 설치된 아그네스 퀘스천마크의 수중 퍼포먼스 ‘Drowned In Living Waters’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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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파빌리온〈Spaceless〉의 야외설치 전경​

 

비엔날레에 거는 기대

개막 후 진행된 한 인터뷰에서 이숙경은 “동시대를 반영하는 현대미술이 이 순간을 있게 한 역사, 전통과 연결”되듯 차별과 억압, 불평등을 경험한 다양한 문화권의 예술 작업이 광주의 역사와도 공명한다는 점을 부각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전 세계를 경유해 한 단계 진보하고 확장된 ‘광주 정신’을 보여주겠다던 총감독의 의지는 성공적으로 안착한 듯 보인다. 전시에 참여한 대부분의 해외 작가들이 한국에 거의 소개되지 않은 제3세계 비주류 작가였다는 점과 출품작의 반 이상이 커미션으로 진행되며 광주 정신과의 직접적인 교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렇다. 소위 말하는 ‘빅 네임’이 부재한 전시 안에서 작가들의 작업은 평등한 공간과 시간을 점유하며 주목받았다. 저항, 차별, 불평등, 식민주의, 전통, 연대, 기후위기 등의 화두가 더 이상 새로운 주제일 수 없는 현대미술에서, 새로운 전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섬세한 기획은 관람객들에게 경험의 감도를 높이는 수단이 된다. 이숙경이 ‘물의 심상’을 전면에 내세운 전략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전통 회화부터 영상, 설치, 참여형 전시까지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전시장의 밀도를 낮춰 사색적 공간을 형성한 것은 적절한 해법이었다. 강력한 대표작 없이도 전시의 주제를 시종일관 유지한 점은 작품들이 출발한 다양한 문화권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연대를 촉구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여전히 있다. 5월 10일, 광주비엔날레재단은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개막 이후 꾸준히 논란이 제기됐던 ‘박서보예술상’을 공식 폐지한다고 밝혔다. 민주항쟁과 관계없는 주류 작가의 이름을 딴 예술상이 광주 정신을 해친다는 지역 예술계의 거센 반발을 수용한 것이다. 예술상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과제가 여전히 산적해 있지만,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이 사건이 전시보다 화제를 모으며 또 하나의 정치적 스펙터클로 소비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비엔날레의 성패 혹은 당위성을 논할 때 꼬리표처럼 따라오는 ‘차별성, 규모, 명분’ 등의 명제와 ‘광주 정신’이라는 프레임이 되레 다양성과 실험성을 위협한 것은 아닌지 점검할 때가 아닐까. 

희망이 감지된 지점도 있었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은 본 전시에 앞서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GB 토크’를 진행했다. ‘전 지구적 위기 해결을 위한 공동체의 필요성’이란 주제 아래 기후위기와 인류세 문제가 화두에 올랐던 첫 행사에서, 참여자들은 예술의 서사가 재난이나 구원의 이분법이 아니라 제3의 길(이를테면 둘 사이의 희망)을 찾는 시도가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광주 정신의 근간인 ‘예향’에 대한 통시적·공시적 고찰과 광주 내 젊은 예술가들의 실천에 대한 논의가 오간 두 번째 행사에서는 ‘포스트 오월세대’가 전면에 등장했다. 5·18을 경험하지 않은 다음 세대가 기념의 주체가 된 현시점에서 5·18이 역사적 사건으로 박제되지 않고 부채감에서 벗어나 누구든 이에 대해 질문하고 재해석하기 위해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추모와 해석이 안전하게 분리될 수 있는 공간, 혹은 그 두 가지가 안전하게 공존할 수 있는 공간과 담론”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가와 기획자, 연구자, 행정가 등 실무자들이 참여한 토론에서 포착된 단서들이 비엔날레의 진화를 꾀하는 전략으로 어떻게 거듭날지 지켜볼 차례다. 7월 9일까지 역대 최장 기간(94일) 진행되는 이번 비엔날레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비판과 성찰을 위한 기회는 충분히 열려 있으니 말이다.​​ (글 방유경 기자)

 

블레베즈웨 시와니, ‘바침’,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3,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션

 

월간 「SPACE(공간)」 667호(2023년 6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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