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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라는 하나의 세계: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와 케이 모던 시리즈

자료제공
도서출판 마티
진행
유진 기자

최근 아파트 설계에 국내외 유명 건축가들이 참여한다는 소식들이 들려온다. 2005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주택 유형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긴 이후 그 수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주거 경험이 이뤄지는 아파트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마침, 건설부터 재건축까지 한 아파트의 생애를 다룬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가 출간되었다. 한국의 모더니티를 새로운 관점에서 보려는 케이 모던 시리즈에 속한 책이다. 이 책을 담당한 도서출판 마티의 서성진 편집장과 케이 모던 시리즈를 기획한 박정현 건축평론가(도서출판 마티 전 편집장)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 서성진 도서출판 마티 편집장, 박정현 건축평론가 × 「SPACE(공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본 둔촌주공아파트의 생애


SPACE: 지난 6월, 케이 모던 시리즈로 기획한 두 번째 단행본,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를 먼저 출간했어요. 책 소개를 부탁드려요.

서성진(서): 2010년대 초반에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이인규 저자의 석사 학위 논문을 단행본으로 만든 책이에요. 하나의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40년의 궤적을 쫓아가는 책은 없었다는 점에서 신선했어요. 한국에서 처음 나오는 유형의 연구서가 아닐까 싶어요. 아파트에서 나고 자라서 아파트가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본 세대가 이제 연구자나 창작자가 되어 무언가를 생산할 수 있는 시기가 된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아파트가 점점 투기의 대상과 욕망의 상징이 되어온 현상을 성인이 되어 목도한 기존의 연구자들에게는 아파트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더 익숙하다면,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세대는 애정과 추억이 앞서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러다 보니 기본적으로 한 아파트를 다루는 데에도 거부감이 덜한 것 같고요. 주거 형식에 대한 새로운 연구의 출발을 보여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SPACE: 『안녕, 둔촌주공아파트』(2013~2016) 시리즈를 비롯해 영화 ‘집의 시간들’(2018), ‘고양이들의 아파트’(출연, 2022)로 본인이 거주했던 아파트 단지 내 사람들과 고양이들에 주목했던 저자가 이 책에서는 개인사로부터 사회, 건축, 정치, 경제적 맥락으로 시선이 넓어진 것을 볼 수 있어서 독자로서 흥미로웠어요.

서: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를 하면서는 저자가 나고 자란 아파트가 사라지는 게 아쉬운 감정과 소회를 최대한 풀어냈던 것 같아요.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에서는 한 발 떨어져서 연구자로 탈바꿈하는 각고의 노력이 원고에서 느껴졌어요. 반짝반짝하고 예쁜 이미지들을 보여주려 했던 예전 프로젝트와는 달리, 한 아파트가 건설되었던 시절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결정들, 처음 시도되었던 도시계획과 설계를 객관적인 언어로 하나씩 정리해가면서 감정을 덜어내는 작업이었어요. 행복하고 좋았던 장소에 대한 기억은 한편으로 밀어 두고, 둔촌주공아파트를 집요하게 파고든 석사 학위 논문은 그래서 아주 건조했어요. 단행본을 만들 때 오히려 저자 자신의 경험을 더 드러내는 과정을 거쳐야 했어요.

 

 

둔촌주공아파트에서의 일상적인 풍경을 엿볼 수 있는 저자 가족의 사진 (사진 ⓒ이인규)

 

SPACE: 그때 편집자 입장에서 개입하며 조율하는 과정이 중요했을 것 같아요.

서: 『안녕, 둔촌주공아파트』와 한참 달라진 톤 때문에 작가 나름대로 고민이 깊었던 터라 크게 두 번의 개고를 거쳤어요. 작년 4월에 논문의 틀을 벗어 던진 개고가 한 번 있었고, 다시 ‘나’라는 사람이 겪은 둔촌과 논문을 쓰기 위해 연구해 왔던 둔촌을 적절히 결합하는 개고를 또 반년 정도 했어요. 작년 4월 개고본을 보고 제일 먼저 말씀드렸던 게 논문에서는 차마 ‘그랬던 것 같다’라고 쓸 수 없었던 것들도 단행본에서는 적극적으로 썼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저자가 겪은 경험이나 감상, 주변 사람들이 둔촌을 두고 하는 이야기, 혹은 둔촌에 떠돌던 소문들 같은 것들을요. 그러면 더 저자다운 글이 나올 것 같다고 해서 두 번째 개고를 진행했어요.

 

SPACE: 에필로그를 보면 둔촌주공아파트 재개발 절차에 차질이 생기면서 출간 일정도 영향을 받았다는 내용이 등장해요.

서: 수정 작업이 길어지면서 재건축 사업 상황이 계속 바뀌었는데, 발생하는 사건들이 결코 무시해도 될 만한 수준이 아니었어요. 계속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살을 붙이다가 3교 끝나기 직전까지 일반분양 현황 등 최신 정보를 추가했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분양 시점부터는 둔촌주공아파트, 또는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사업 조합의 손을 떠난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둔촌주공아파트의 생애에서 떠난 문제니까 지금 수준에서 책을 끝내도 괜찮다고, 모집공고가 뜬 시점까지만 정리해서 마무리하면 어떻겠냐고 저자에게 제안했어요. 하지만 10여 년 넘게 둔촌만 보았던 저자 입장에서는 둔촌주공아파트가 어떻게 될지 조마조마했던 것 같아요. 이 아파트가 결국 무엇이 되고 사람들에게 무엇으로 기억될지, 계속 지켜보고 끊임없이 기사를 스크랩하고 추적하면서, 2023년 6월 상황까지 업데이트해 책을 마무리했어요.

 

올림픽파크레온 공사 중지 기간에 내걸린 ‘유치권 행사 중’ 현수막 (사진 ⓒ류준열)

 

SPACE: 그만큼 재건축에 얽힌 이해관계가 너무 치밀해서 더뎌진 거잖아요. 재건축 단계로 넘어온 이후 일련의 사건들을 자세히 다룬 3부가 이 책의 백미라고 했어요.

서: 한국에서 ‘재건축’을 건드리는 책은 많지 않아요. 이 책 역시 재건축이라고 하는 한국만의 독특한 시스템 자체를 건드리지는 않아요. 건조하게 시간을 따라가죠. 조합원과 시공사, 이들 사이에서 정책적 중재를 담당했던 서울시의 이해가 너무나 날카롭게 대립했고, 그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할 수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재건축 사업이라는 게 얼마나 복잡다단한지, 얼마나 정보가 편재되어 있으며 한편으로는 숨겨져 있고, 일반 조합원들이 접근하기에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를 충분히 알 수 있어요. 저자가 처음에 원고를 가지고 왔을 때 ‘하지만’이라는 접속사가 정말 많이 등장했어요. 역접이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스토리인 거죠. 재건축을 멀리서 볼 때는 다 욕심이라고 생각했어요. 시공사도 욕심이고, 조합원들도 욕심이다. 바깥에서 보면 이상한 것 투성이지만, 각자 입장에서는 그게 사실인 거예요. 그래도 건조하게 서술된 덕에 어느 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재건축 사업 자체를 이해할 수 있었어요. 재건축 사업의 기간, 절차, 당사자 간 협상, 그것을 뒷받침하는 정책과 법률 등을 촘촘하게 알게 되는 것 또한 3부의 강점이에요.

 

 

건축과 아파트, 복잡미묘한 관계

 

SPACE: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에 이어 케이 모던 시리즈로 계속 책을 발간할 예정이라고 했는데, 어떤 의도에서 이 시리즈를 기획했나요?

박정현(이하 박): 우리나라가 20세기를 겪으면서 만든 온갖 유무형의 것들이 서양의 이론으로 다 설명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케이팝을 설명할 때 제이팝이나 서구의 대중음악 이론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잖아요. 우리 스스로 그 실체를 규정하는 담론이나 이론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서구와 일본에서 받은 영향이 굉장히 크고 너무 압도적이라고 생각했던 이전 세대 연구자, 예술가, 창작자들은 그런 시도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반면 요즘 젊은 세대들은 유럽이나 일본과의 격차를 크게 못 느끼고 있고요. 우리처럼 그 중간에 끼어 있는 세대가 접근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개인적으로는 한국성 논쟁이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작년에 ‘지금, 한국성’을 주제로 진행된 정림건축문화재단의 정림학생건축상을 심사했는데, 한국성을 질문하면 왜 늘 조선시대로 돌아가는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20세기에 우리가 만든 게 훨씬 많이 남아 있고, 한반도에 사람이 산 이래로 지금이 제일 무언가를 잘 만들고 있는데, 이걸 다 괄호치고 조선시대로 건너가서 마치 원형이 거기에 있는 것처럼 뭔가를 찾는 것이 의아했어요. 지금은 20세기와 달라진 세상에 하루하루 접어들고 있는데, 더 늦기 전에 그 시절을 추수해서 뭔가 만들어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둔촌주공아파트 단지 하나가 행정동 대부분을 차지했음을 보여주는 둔촌1동 관내도 (출처: 둔촌1동 주민센터 제공)

 

SPACE: 케이 모던의 기획 안에서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박: 건축적 형태로 보면 철근콘크리트조에 같은 평면을 무한 반복하고 똑같은 동간 간격으로 아파트를 건설하는 사례는 전 세계에 다 있어요. 하지만 주택 공급 정책 면에서 한국은 대단히 예외적이죠. 세계 어디에도 아파트를 30년마다 부수고, 갈아엎기 위해서 일부러 방치하고 망가뜨리고, 자기 아파트가 불안전하고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현수막을 내거는 현상은 없잖아요. 하나의 행정 구역을 이루는 만 세대가 넘는 엄청난 단지를 나중에 공공의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는 방식으로 땅과 건축 모두를 분양해버리는 도시계획이 있을까요? 이런 주택 공급의 원형이 마포주공아파트(1962)예요. 정부가 처음에는 임대를 했다가 결국 분양을 하잖아요. 분양 시스템이 정착되고 난 다음에는 도시계획을 할 때, 국가가 간선도로를 제외한 어떤 인프라 조성에도 관여하지 않아요. 그 안에 들어가는 놀이터부터 내부 도로까지 다 입주자들의 돈으로 만드는 건데, 그 시스템이 잘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정부에서는 지금까지도 이 이상한 방식을 유지하고 있어요. 전 세계에 이렇게까지 사유화된 단지가 집적되어 있는 도시가 있을까요? 이런 배경 속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게이티드 커뮤니티, 서열화 같은 사회문제로 이어졌다고 봐요. 다른 단지 아이들한테 ‘우리 아파트에서 놀지 마라’ 한다던가, 단지를 통과하면 금방 가는데 빙 둘러가게 하는 문제가 발생했잖아요. 도시의 사유화가 점점 가속화되고 있죠. 그런 점에서 저는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가 건축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소위 ‘작품’으로 분류되는 좁은 의미의 건축 영역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거죠. 실제로 문헌 분류 번호(ISBN)도 사회학 서적으로 신청했어요. ‘아파트단지’는 한국만의 현상이니까 ‘아파트’ 책이죠. 이 정도로 독특한 사물 체계가 아파트단지 말고 있을까요? 둔촌주공아파트는 한국의 현대성이라는 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판단했어요.

 

SPACE: 둔촌주공아파트와 동시대에 지어진 1세대 아파트들의 재건축에 유명 건축가가 참여하는 프로젝트 소식도 들려오고 있어요. 한국의 20세기가 만든 아파트를 허물고 그 자리에 다시 새 아파트를 세우는 시점에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와 케이 모던 시리즈는 건축가에게 줄 수 있는 시사점이 있을까요?

박: 아파트는 한국 건축의 실패 현장이죠. 이렇게 수명이 짧은 현대건축물이 또 있을까요. 어떤 의미에서는 의도된 실패일 수 있는 거죠. 또 지어야 하니까. 건축과 아파트의 관계가 굉장히 복잡하고 미묘하다고 생각합니다. 설계사무소에서 아파트를 작업 목록에 넣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죠. 수익모델이긴 하지만 자랑거리는 아닌 건물이죠. 「SPACE(공간)」를 보면 1970년대에는 아파트뿐만 아니라 고층 빌딩에 거의 눈길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말한 사례에서도 개인 건축가의 이름이 아파트를 바꾸는 데에는 질적 차이를 못 낸다고 생각해요. 평면이 좀 달라질 수는 있는데, 건축적 가치가 사회문제를 바꾸는 데 기여하는 건 별개의 이슈이니까요. 아무리 유명한 외국 건축가를 데려와도, 건축가의 이름이 위계와 구별을 더 강화하는 데 동원되는 거죠. 단지 설계가 혁신적으로 달라져야 하는데, 그건 건축가가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저는 비관적입니다.

 

 

Y자형 6개 주거동 450세대로 1차 준공한 마포아파트의 항공사진 (출처: 국가기록원)

 

SPACE: 故박철수 교수님 유작 『마포주공아파트: 단지 신화의 시작』을 케이 모던 시리즈의 1권으로 남겨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한국주택 유전자』에서 가지 친, 속편 성격의 ‘아파트’ 시리즈가 계속 이어질까요?

박: 20세기 한국 건축이 생산해낸 최고의 문제작은 마포주공아파트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케이 모던 시리즈 1권으로 하자고 했어요. 박철수 교수님께서 직접 『한국주택 유전자』의 한 챕터를 단행본으로 확장해야 한다면 마포주공아파트여야 한다고 봤습니다. 그 뒤에 모든 아파트들은 마포주공아파트의 변주인 거예요. 시스템이 구축되고 난 다음에 약간씩 필요와 시대상에 따라서 변형된 거니까 궁극적으로 새로운 내용은 없다고 봐요. 사회과학 전문가가 한국의 아파트 현상을 새롭게 조명하는 시각이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겠죠. 한국의 아파트를 푸코의 생명정치나 통치성 같은 시선으로 누군가가 연구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새로운 시선이 있으면 모르겠으나, 짧은 기간 내에 이렇게 하나의 단지를 중심으로 새로운 단행본이 나오기는 힘들지 싶어요.

서: 저는 박 교수님이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인규 저자와 사제 지간이기도 하지만, 박 교수님이 『거주 박물지』, 『경성의 아파트』, 『한국주택 유전자』 같이 한국의 주거사와 문화를 다루는 책을 꾸준히 내면서 그 수요를 창출했고, 출판 시장 안에서 확실한 한 분야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책을 출판사가 관심을 가지고 낼 수 있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었던 바탕이 됐던 거죠.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를 케이 모던 시리즈에 넣을지 결정할 때 고민이 많았어요. 말씀하셨듯이 마포주공아파트가 원형이고 나머지는 변주에 속할 테니까요. 그러던 차에 한 아파트의 생애주기를 다 담은 책은 앞으로 나오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저자도 쉽게 도전하지는 않을 것이고요. 

 

물질 문화로 보는 한국의 모더니티

 

SPACE: 케이 모던 시리즈로 예정되어 있는 네 권의 책 중 한 권이 디자인 분야를, 세 권이 건축 분야를 다루고 있어요.

박: 이때까지 모더니티를 논할 때, 물질 문화를 비교적 소홀히 다룬 것 같아요. 예를 들어 1960년대 박정희 시대에 대해서도 경부고속도로나 포항제철소를 포괄적이고 비판적인 관점에서 논하는 시선은 드뭅니다. 독재의 억압과 이에 대항하는 문화의 구도에서, 통기타, 청년들의 하위문화, 미니스커트 같은 대중문화나 최인훈의 『광장』 등의 문학은 자주 언급되지만, 인프라스트럭처 같은 것들이 몰고온 사회와 사람들의 변화 등은 잘 다루지 않는 편입니다. 그게 일종의 공백처럼 느껴졌어요. 냉전과 발전 체제가 빚어낸 정치적 구조와 산업적인 측면이 있었고, 이들이 다시 문화에 스며든 측면들이 있습니다. 케이모던 시리즈 중 하나인 박해천 교수님의 『혁신과 풍요: 1990년대 디자인 문화의 구조변동』은 가전 제품을 다뤄요. 1990년대를 다룰 때 서태지와 장정일은 얘기하지만 가전 제품 이야기는 안 하잖아요. 이런 틈새를 찾고 싶었습니다.  건축과 디자인 분야에서 이 물질 문화를 다루는 데 능숙한 분들의 작업을 먼저 소개하려 합니다.

 

SPACE: 앞으로 출간될 케이 모던 시리즈의 다른 저자들 소개를 부탁드려요.

박: 『모더니스트, 김중업』의 저자인 류근수 건축가는 프랑스에서 공부했고 몇 년 동안 김중업을 연구했어요. 김중업 선생도 독특한 사람이잖아요. 일본에서 유학하며 유럽의 보자르 시스템 아래 설계를 배운 거의 유일한 한국인이자, 르 코르뷔지에를 만난 유일한 건축가니까요. 그런 독특한 지점에서 한국의 모더니스트로 얘기를 풀어갈 것 같아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경계: 1950~60년대 평양의 건축』의 저자 김수지는 미술사 전공자예요. (처음은 아니겠지만) 미국 도서관에서 이 시절에 발간된 북한 잡지를 대량으로 발견했다고 해요. 1950~1960년대 한국처럼 평양도 전후 재건 복구 사업이 막 일어났던 시기인데, 당시 북한에서 발간됐던 잡지들을 바탕으로 ‘북한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를 얘기해요.

 

도서출판 마티에서 지금까지 출간한 건축 관련 도서 ⓒ도서출판 마티

 

SPACE: 마티에서는 건축책 뿐만 아니라 인문, 철학, 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출간하고 있잖아요. 책의 어떻게 기획이 되는지, 두 분에게 특히 애정이 가는 책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해요. 마지막으로 SPACE  독자들에게 전하고픈 이야기가 있다면요?

서: 제가 입사했을 무렵에는 마티에서 건축책을 많이 내지는 않았어요. 집 짓기 관련한 실용서 위주의 책이었고요. 전 사회학 전공인데, 입사하고 처음 작업했던 건축책이 케네스 프램튼의 『현대 건축: 비판적 역사』(2017)였어요. 그즈음부터 마티에서 이론서를 내기 시작했는데, 건축 용어가 너무 생소하고 문장이 복잡해서 교정볼 때 정말 고생을 많이 했어요. 농담으로 저 책을 파서 제 납골함으로 쓸 거라고 얘기할 정도였죠. (웃음)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책은 『마이너 필링스』(2021), 『젊고 아픈 여자들』(2022)이에요. 평소 제 관심 분야여서 자연스럽게 기획으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편집자의 관심에서 출발해 책을 내게 되는 것 같아요.

박: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책이면 분야나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내려고 해요. 노시내 작가의 에세이도 그런 맥락에서 출간했어요. 건축책도 다 기획이 되었다기 보다는 저자가 저희 쪽으로 의뢰해서 시작하기도 해요. 『식민지 건축』(2022)은 번역자가 이미 책을 다 번역을 해서 원고를 보여줬고, 저희가 냈던 책들과 결이 잘 맞을 것 같아 출간하게 됐어요. 엄청난 정보가 담긴, 일본에서 나름 중요한 연구서지만 우리가 역자를 찾았다면 힘들었을 거에요. 끝으로 마티는 건축 전문 출판사가 아니라는 말씀 꼭 드리고 싶어요. (웃음) 편집자들이 스스로 읽고 싶어하는 책을 내는 곳으로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진행 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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