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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적 비엔날레의 가능성을 보다: 양림골목비엔날레

조경진
진행
김정은 편집장

「SPACE(공간)」 2023년 7월호(통권 668호​)​ 

 

양림골목비엔날레는 동네 구석구석에서 예술을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Image courtesy of 10Y_GROUND​ 


대안적 비엔날레의 가능성을 보다: 양림골목비엔날레

베니스비엔날레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비엔날레가 한창이다. 국내에서는 글로벌한 위상을 인정받은 광주비엔날레가 올해 4월에 막을 올려 7월까지 이어진다. 비슷한 시기 광주에서는 또 하나의 비엔날레가 열렸다. 마을의 기획자와 지역 예술가들이 만들어가는 축제 양림골목비엔날레다. 조경진(서울대학교 교수)은 전 세계의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대형 비엔날레와 지역의 예술가들이 삶의 터전을 중심으로 기획한 작은 비엔날레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예술이 지역에, 또 도시가 예술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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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 과잉 시대

2021년 가을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연기되었던 행사들이 한꺼번에 재개되는 바람에 전국에서 10여 개의 비엔날레가 동시에 열렸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청주공예비엔날레, 대구사진비엔날레,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등 전국 여러 도시가 비엔날레로 경합했다. 비엔날레 과잉의 시대다. 도시가 비엔날레를 여는 목적은 다양하다. 도시의 문화적 역량을 결집해 정체성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다. 또 이를 통해서 관광객을 모으고 관련 산업을 진흥시키기도 한다. 예술, 디자인, 공예, 건축 비엔날레가 그러한 기획 의도를 지닌다. 행사 주관 도시는 자연히 관람객 수를 의식하기에 내적 완성도보다 외적 성과에 치중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러나 비엔날레는 본래 아트 페어와는 다르게 기획 주제와 장소의 서사에 보다 진지하게 접근한다. 이를 통해 공동체가 직면한 과제를 함께 마주하기도 한다. 이렇게 비엔날레는 그 도시의 유산으로 축적되면서 지역의 잠재적 역량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비엔날레는 도시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에 많은 도시들이 공을 들여 준비한다. 과연 비엔날레는 미학적 담론 생산을 넘어 도시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관광객 유치를 넘어서 관람객이나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이나 인식을 제공할 수 있을까? 세계 여러 도시에서 벌어지는 비엔날레에 관한 비판도 존재한다. 유사한 형식의 예술 문법 반복이나 일반 대중과 소통이 어려운 관념적 기획, 시간과 장소의 맥락과 타자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한계 역시 존재한다. 어쩌면 지금은 비엔날레라는 형식에 근원적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나아가 도시와의 관계 속에서 비엔날레의 의미를 되짚어보아야 한다. 예술이 어떻게 도시에 개입할 수 있는가? 일상 곳곳에 산재하는 도시문제를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이를 통해 소외된 대상과 영역을 발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천적 차원에서 예술의 가능성을 찾아볼 때다.

 

비엔날레와 도시

비엔날레는 1895년 베니스에서 시작했다. 베니스비엔날레는 여전히 가장 대표적인 비엔날레로 2022년에는 약 80만 관람객이 방문했다고 한다. 서구에서 시작된 비엔날레는 1990년대 이후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어 하나의 문화 현상이자 도시문화 마케팅의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비엔날레재단 리스트에 의하면 전 세계에 270여 개의 비엔날레가 활발히 진행 중이라 하니 ‘비엔날레 붐’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비엔날레는 국경을 넘어서 예술가들이 경합하거나 드림 프로젝트가 실현되는 네트워크의 중심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광주시가 1995년 국내 최초로 비엔날레를 시작했다. 예향이자 광주 민주화운동의 성지라는 고유한 장소적 조건은 많은 예술적 상상력을 배태해왔다. 광주비엔날레 뿐만 아니라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광주폴리 축제로 확장됐다. 2018년에는 옛 국군광주병원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면서 민주화운동의 기억을 환기하며 관람객과 소통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해외 미술 기관들과 협력하는 파빌리온 프로젝트도 시작해 도시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전시가 이루어졌다. 2021년에도 이러한 방식이 유지되면서 관람객들은 도시 곳곳을 탐험하며 비엔날레를 경험할 수 있었다. 2023년 광주비엔날레에서도 도시 여러 공간을 국가관 파빌리온으로 활용하면서 전 세계 여러 도시나 기관과 협력하는 연대를 이루어냈다. 미술관, 사찰, 공원, 복합문화공간 등 다양한 공간에서 마주하는 전시는 세계와 동네가 마주하고 충돌하는 경험을 제공해준다. 

전 세계적으로 광주비엔날레는 그 위상과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정작 광주 시민들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는 현대예술의 고유한 속성에서 기인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형식적 측면의 한계도 존재한다. 비엔날레가 일상적 삶과 거리가 있다는 불만도 있다. 혹은 비엔날레 전시 역시 일상생활의 스펙터클화 현상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예술에는 고유한 어젠다를 다루는 영역이 존재하지만 도시가 지닌 문제를 해결하거나 치유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기 때문이다. 비엔날레라는 거대한 기획과 시스템이 지닌 속성이 한계일 수 있다. 굳이 비엔날레라는 틀을 활용하지 않더라도 추상적 담론보다는 구체적 일상, 근사한 전략보다는 즉각적 변화에 주목하면서 사람과 호흡하는 예술의 힘이 더 클 수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특정 장소를 기반으로 하는 마을 예술축제인 양림골목비엔날레를 살펴보고자 한다.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스위스 파빌리온으로 활용되는 이이남스튜디오. 그가 정성스럽게 가꾸는 정원은 전시 관람 중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다. ⓒKim Jeoungeun​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는 무각사. 관람객들이 도시에 숨어 있는 공간을 발견하게 한다. ⓒKim Jeoungeun​


역사문화마을 양림동

양림동은 광주의 오래된 마을이다. 이곳에 위치한 지역 예술 공간인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은 올해 제14회 광주비엔날레의 전시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양림동은 사직산과 양림산을 배경으로 광주천이 흐르고 무등산을 조망할 수 있는 주거지다. 20 초반 선교사들이 교회와 학교, 병원을 세우며 정착했다. 이후 양림동은 선교 활동뿐 아니라 근대 교육과 의료 및 문화 활동의 중심 공간이었다. 또한 선교사들이 세운 서양식 주택과 미국과 캐나다에서 가져온 나무들을 심어서 이국적 풍경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이외에도 한옥 주거지 내에 전통가옥이 잘 보존되어 있어 광주를 대표하는 근대 유적지가 여러 곳 존재한다. 고유한 문화와 외래 문화가 겹치는 풍경을 형성하며 이색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건축 역사가 천득염(전남대학교 교수)은 양림동을 ‘광주의 근대성을 기억하는 상징적 공간’이라 부른다. 

양림동은 광복 후 많은 예술가가 거주하면서 시적 영감을 받았던 장소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여러 예술가와 문화기획자들이 자리 잡으면서 문화예술 마을 성격을 드러내게 되었다. 제약회사 창고, 주택, 유치원 건물을 예술가와 문화 관련 종사자들이 매입해 거주했다. 문화예술인과 문화기획자들이 이 동네에 거주하면서 동네를 문화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주체들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양림동은 현재 7천여 명이 사는 동네로, 한옥보존지구와 관광지 성격을 지닌 펭귄 마을이라는 주거보존지역, 선교사들이 머물던 호랑가시나무 언덕 일대, 일반 주거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양림동에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공간을 전시 공간, 모임 공간, 카페로 만들면서 동네에 활기가 생겼고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최근 몇 년간의 변화다. 예술가 스튜디오는 상시 전시 공간이 되어 동네의 고유한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때로는 예술가의 작업실이 정원이 있는 카페와 결합되면서 양림동 관광의 필수 코스가 되고 있다. 양림동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카페와 베이커리, 식당 등이 생겨나고 있다. 자연히 동네 전체에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위험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곳의 토지는 교육기관이나 교회 등 공공기관이 소유한 곳이 많고, 적지 않은 예술가들이 임대보다는 소유주인 경우가 많아서 상대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에 견디는 힘이 존재한다고 한다. 예술마을로 입소문나면서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으로 이주해오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양림동 빈집을 활용한 기획전시 공간, 양림동 165-3. 생명성을 주제로 한 작가 윤세영의 작품 ‘생성지점’. ©Zoh Kyungjin

 

윤세영의 작품 전시공간과 마주한 한 옥상 텃밭. 마을의 일상도 전시의 맥락 속에서 서사를 만들어낸다. ©Zoh Kyungjin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비비안 수터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Horanggasy Artpolygon

 

한희원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Kim Jeoungeun

 

양림동 165-3의 기획전시. 방치된 공간이 작가 김설아의 작품 ‘목숨 소리 / 문지방을 넘어서는’을 색다른 방식으로 주목하게 한다. ⓒKim Seola

 

예술비엔날레의 대안적 가능성: 2023 양림골목비엔날레

4월 14일부터 6월 25일까지 열린 2023 양림골목비엔날레는 올해로 2회째다. 순수 민간 주도로 동네의 문화예술가들이 모여서 기획하고 마을 주민과 상인들이 협력해 추진했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기본적인 경비를 마련했고, 공공기관 협찬도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 다양한 콘텐츠와 연계 이벤트를 마련했는데, 기획전시와 오픈스튜디오가 핵심 활동이다. 기획전시는 동네의 여러 빈집이나 유휴 공간을 활용해 지역의 젊은 작가들이 장소특정적인 작업을 생산해냈다. 빈집의 낡은 곰팡이와 동거하는 작품은 공간과 강한 대비를 이루고, 바로 나와서 마주하는 옥상 텃밭은 생명풍경이라는 관점에서 묘한 대조를 만들어낸다. 빈집이나 비어 있는 공간을 무상으로 행사 기간에 빌려주었으니 지역 주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셈이다. 오픈스튜디오는 작가들의 작업 공간을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의 전시다. 좁은 골목길에 들어가 마주한 한 예술가의 작업실에서 날것의 일상을 마주하기도 했다. 거점 공간인 카페를 통해서 작가들은 작품을 설명하는 아트 마켓에 참여하고 판매하기도 한다. 그 수익금의 일부를 행사에 기부해 선순환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유사한 기간에 열리는 제14회 광주비엔날레의 5개국 국가 파빌리온은 양림동의 문화예술 공간을 활용해 열리고 있다. 광주비엔날레가 지구적 어젠다를 중심으로 전 세계의 예술가들이 글로벌 차원으로 참여하는 이벤트라면, 양림골목비엔날레는 구체적인 삶의 공간에서 지역 예술가들이 개입한 작은 몸짓이다.

예술이론가 테리 스미스는 『컨템포러리 아트란 무엇인가』에서 현대미술의 세 가지 층위를 구분하고 있다. 첫째는 자본의 논리에 순응하는 유명 아티스트들의 작품이나 유명 화랑이나 아트 페어를 장식하는 예술 작품들이다. 둘째는 비엔날레에 자주 등장하는 작품들로서 탈식민주의적 관점을 견지하는 전 세계 곳곳 의식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다. 셋째는 보다 반문화적 성향을 지니며 지역과 동네 등의 로컬에서 실천 행위에 주목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이다. 광주비엔날레와 양림골목비엔날레는 두 번째와 세 번째의 흐름을 보여주면서 상호보완하며 긴장과 대립구도를 이룬다. 공공의 지원, 기획의 전문성, 예산의 규모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지만 양림골목비엔날레는 예술기획이 놓칠 수 있는 작은 것의 소중함과 지역 주민과 밀착된 진정성을 지니고 있다. 양림골목비엔날레는 지역 상인과 상생을 위해 식당과 카페들이 참여하는 양림스푼위크를 운영하고, 젊은 크리에이터들이 참여하는 양림한평숲 만들기 프로그램을 통해 작은 실천을 시작했다. 내년에는 양림동의 숲과 정원이 예술과 만나는 방식을 시도할 예정이다. 호랑가시나무, 멀구슬나무, 태산목, 은목서와 금목서 등 동네에서 만나는 특별한 식물들은 하나하나가 소중한 자원이다. 양림동에서 자라고 마을을 사랑했던 시인 김현승은 동네를 “산줄기에 올라 바라보면 언제나 꽃처럼 피어 있는 나의 도시”라 표현했다. 이는 녹지가 풍부했던 동네의 기억을 소환하며 예술숲 개념의 골목비엔날레 기획의 단초를 제시해준다. 

양림골목비엔날레는 ‘예술이 동네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고민에서 출발했다고 기획자 이한호(쥬스컴퍼니 대표)는 얘기한다. 이제 동네가 예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도 함께 고민할 것이라 한다. 광주비엔날레와 협력하면서 파빌리온 빌리지로서 마을과 세계가 만나는 고리 역할을 하고자 하는 의지도 표명한다. 양림골목비엔날레가 진정 비엔날레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은 비엔날레라는 예술 형식을 해체하고 주체와 방식의 재구성이 필요한 때다. 전 세계적으로 비엔날레는 도시의 여러 공간들로 확산하고 장소의 서사와 함께 호흡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골목비엔날레는 소소하지만 사람과 마을이 교차하는 힘을 골목이라는 현장에서 느끼게 하는 시도라서 의미 있다. 기획자는 이곳에 사는 주민들과 동네에서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고 한다. 2023년 양림동은 대안적 도시비엔날레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글 조경진 / 진행 김정은 편집장)

 

2023 양림골목비엔날레 프로그램 지도 Image courtesy of 10Y_GROUND​

 

월간 「SPACE(공간)」 668호(2023년 7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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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진
조경진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설계학과 교수이며, 한국조경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도시 및 지역계획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숲 공동 설계자이자 서울식물원 총괄계획가로 일했다. DMZ 관련 다수의 전시 기획에 참여했다. 『정원을 말하다』(2012)를 공동 번역했으며, 『오픈 스페이스로부터 도시만들기』(일본어, 2022), 『정원도시, 사람과 지구를 생각하는 생태문명으로의 전환』(2021) 등의 집필과 편집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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