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3년 11월호 (통권 672호)

Concept diagram of site axis
[ESSAY] 건축과 도시, 살아있는 생명체
에스케이엠 건축사사무소(이하 SKM)는 건축과 도시가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생각하며, 생명력을 가진 유기적인 도시와 건축, 인테리어를 디자인하고 이를 실현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렇다면 유기적으로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이며, 그렇지 않은 것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는 언뜻 단순한 질문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건축에서 이루고자 하는 핵심 가치는 ‘활기찬 생명력을 가진 건축’이다. 이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우리가 탐구하는 중요한 가치와 아이디어를 소개하고자 한다.
엘리먼트와 컴포넌트
엘리먼트와 컴포넌트는 우리가 건축에 대해 사고하는 방식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것은 건축의 뿌리를 이루는 가장 단순하고 기초적인 실체이자 건축물의 특성을 구성하는 요소다. 단어가 모여서 문장을 이루듯 엘리먼트가 모여서 컴포넌트를 형성한다. 이때 엘리먼트는 성격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물리적인 엘리먼트다. 대지가 가진 지역적, 환경적 특성을 비롯해 기둥, 보, 벽, 바닥, 창문, 천장, 외장재, 지붕재, 냉난방, 배관, 수전, 난간 등 오랜 기간에 걸쳐서 건축적으로 발전된 요소들을 포함한다. 이들은 반복 또는 변형이 가능하며 재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건축물은 이런 물리적인 요소들의 구성과 조합으로 구축되고 완성된다. 둘째는 개념적인 엘리먼트다. 도시 문화적 맥락, 대지에 부여된 법규, 건축물의 프로그램, 프로젝트에 담아야 하는 가치와 상징성 등과 같은 요소들은 건축의 시작과 발전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 역시 오랜 기간에 걸쳐 발전되고 다듬어져왔다. SKM의 건축은 이렇듯 엘리먼트와 컴포넌트가 다양한 메커니즘에 의해 작동되고 진화해왔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두 개념을 고찰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며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빌라쥬 드 아난티의 객실 유닛은 엘리먼트와 컴포넌트의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빌라쥬 드 아난티를 구성하는 392개의 객실은 독특하고 개성 있는 형태의 주거 유닛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게는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타워형 호텔과 콘도미니엄, 연립형 맨션, 저층 단독형 빌라의 세 유형으로 나뉜다. 세부적으로는 단층과 복층, 중정의 유무, 수영장의 유무, 실내 온천탕의 유무에 따라 타워형은 여섯 개 타입, 연립형은 세 개 타입, 저층 단독형 빌라는 여섯 개 타입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리조트를 찾는 방문객들의 다양한 취향을 수용할 수 있는 복합적인 주거 형태를 구현하기 위해, 정형화되고 일률적인 객실 유닛을 단순하게 반복하지 않고 인테리어의 컬러 조합과 마감재를 다양하고 조화롭게 구성하여 다이내믹하고 활력 있는 주거 유닛의 조합을 만들었다.
개별 유닛 내에서도 다양한 공간 경험을 위해 천장과 지붕에 변화를 주었다. 우리나라의 전통가옥인 초가와 한옥은 본래 안방과 거실의 천장이 입체적이라 공간적 비례가 아름답다. 이러한 공간감은 외관에서도 유려한 곡선의 지붕과 직선의 경사지붕 형태로 나타난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아파트가 대중화되면서 낮고 높낮이가 없는 천장과 지붕에 사람들이 익숙해지게 되었다. 빌라쥬 드 아난티의 단독형 빌라와 아난티 앳 강남의 거실은 높고 넓은 직선과 곡선 형태의 경사지붕을 갖추고 있어 아파트와 차별화된 특별한 공간감을 선사한다. 또한 빌라쥬 드 아난티의 경우 전통마을의 배치와 같이 열 개의 조경 중정을 중심으로 8~12채의 단독형 빌라들이 모여 클러스터를 이루도록 하였다. 지형에 순응하는 단독형 빌라 단지는 전정, 후정 등 외부 공간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내외부의 경계를 허무는 흥미로운 공간을 형성한다. 또한 다양한 방향을 바라보는 경사지붕과 평지붕의 조합이 입면의 경쾌한 색상과 어우러져 활기차고 다채로운 바닷가 마을의 풍경을 만들어준다.
유전자와 메커니즘
빌라쥬 드 아난티에서 호텔과 콘도미니엄 타워동의 매스가 가진 유려한 곡면과 아난티 앳 강남의 유선형 계단과 입체적 곡선들이 조합된 욕실은 SKM만의 유전자가 발현된 부분이다. 곡선은 평면을 구성한 뒤 외피를 덧댄 것이 아니라 초기 마스터플랜부터 기능과 형태를 총체적으로 고려한 결과다. 특히 타워동의 경우, 기능적으로 바다를 바라보는 전면에 객실을 배치하고 엘리베이터와 계단실, 설비실 등 코어 부분을 후면에 ㄱ자로 계획해 단순한 박스 형태의 매스를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단지 전체에서 느낄 수 있는 배면부의 경직성과 위압감을 줄이기 위해 직선이 아닌 곡선 매스와 입면을 디자인했다. 이렇듯 엘리먼트와 컴포넌트를 총체적으로 고려한 메커니즘을 통해 만들어진 형태는 건물에 고유성을 부여한다.
Section of the site
발전과 진화의 프로세스
기획설계 단계 시 제시된 기능과 면적, 배치 다이어그램 등으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은 개념적인 숫자에 불과하지만, 이것을 재해석해 어떻게 배치하고 공간화할지 정의하는 것은 건축가의 역할이다. 프로젝트의 규모가 클수록 건축가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재해석할 수 있으며, 이상과 사유를 건축으로 실체화하기 위해 전체 단지의 배치를 계획하는 마스터플랜을 필요로 한다. 빌라쥬 드 아난티의 마스터플랜 단계에서 우리는 대지 앞부분의 레벨을 높여 광장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대로변에 인접한 마을을 넘어 바다를 조망할 수 있도록 조정하였다. 또한 대로변과 레벨 차이를 두고 충분한 완충녹지를 조성해 단지를 도로의 소음과 시선으로부터 분리시키는 한편, 대지 전면에 타워형 호텔/콘도미니엄을 배치해 대로변에서 단지의 상징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모든 객실에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각 타워동의 저층부에는 도심에서처럼 상업시설을 두었다. 타워형 호텔/콘도미니엄과 단독형 빌라 단지 사이 중심부에는 복합문화시설과 연립형 맨션을 배치해 스케일의 전이 공간을 만들었고, 호텔/콘도미니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북쪽 언덕 위로 자연림에 둘러싸인 단독형 빌라 단지를 조성해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 오래된 마을의 편안함과 새로운 경험을 주는 도시의 복합성이 공존하도록 계획하였다.
Section of the site and pavilion
휴머니즘
SKM의 건축에서 ‘휴머니즘’은 모든 결정의 중심에 자리한다. 이는 당대의 시대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며 공간, 건물, 환경을 사용하거나 상호작용할 사람들의 필요, 편안함, 웰빙을 고려해 디자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기능적이고 심미적이며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도 포함된다. 인체공학, 접근성, 문화적 감수성 등 인간 중심의 디자인 원칙은 건축에서 휴머니즘을 구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궁극적으로 휴머니즘을 구현하는 SKM의 건축은 건축 환경 내에서 삶의 질과 인간 경험을 폭넓게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빌라쥬 드 아난티에서는 마스터플랜에 맞춰 타워형 호텔/콘도미니엄 영역과 단독형 빌라 단지의 축이 교차하는 지점에 대지의 고저 차를 극복하며 두 영역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위해 두 동의 건물을 배치했다. 엘.피.크리스탈로 명명된 복합문화시설과 보행자를 위한 엘리베이터 타워와 계단으로 이루어진 코르텐스틸 파빌리온이다. 이는 대지 북쪽의 단독형 빌라 단지 내를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산책로를 조성하기 위해 대지 레벨을 조정한 결과다. 특히 코르텐스틸 파빌리온은 타워형 호텔/콘도미니엄 영역에서 단독형 빌라 단지, 즉 도시에서 마을로 넘어가는 관문으로써 영역이 전환되는 느낌을 주기 위해 육중한 무게감, 거친 질감과 독특한 색상을 가진 코르텐스틸을 정교한 디테일로 마감하였다. 하나의 오브제로서 작지만 존재감이 있는 구심점 역할을 하도록 디자인한 것이다.
아난티 앳 강남에서는 전면의 교통량이 많은 강남의 대로와 후면의 좁은 골목을 녹지와 중정으로 연결했다. 또한 건물의 매스를 분리하여 경쾌하고 세련된 느낌의 재료로 마감된 고층 매스를 대로변에, 벽돌로 마감한 저층 매스를 골목 쪽에 배치해 건물이 주변 도시 조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하였다. 포용성과 접근성을 고려하여 정신 건강, 편안함, 행복을 증진하도록 설계된 공간은 개인과 사회 전체의 심리적 웰빙 수준을 폭넓게 증진시킨다.
자연-인간-건축
자연은 인간의 삶을 수용하고 건축은 인간의 일상과 행위를 담는다. 건축은 물리적, 개념적 유전자와 메커니즘에 기초한다. 이를 바탕으로 건축가들은 고유의 사고와 유전 체계를 형성하며, 그것들은 체계화된 결정과 프로세스에 의해 끊임없이 선택되고 진화한다. 건축을 이끌어가는 이 결정 방식의 중심에는 휴머니즘이 자리한다. 모든 것은 개별적 또는 집단적으로 변화하며, 건축 또한 변화하는 인간의 삶을 수용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과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끊임없이 발전하고 진화한다.
건축은 꿈과 이상, 사유와 같은 정신세계를 시대성을 반영해 현실로 구체화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인류 문명의 흔적은 건축과 함께 보존된다. 이는 우리 삶에 본질적이고 직접적으로 깊은 영향을 미친다. 건축은 우리가 살펴본 엘리먼트와 컴포넌트, 유전자와 메커니즘, 프로세스와 휴머니즘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이 상호작용의 끊임없는 발전은 건축이 생성되고 진화하는 방식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준다. (글 민성진 / 진행 방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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