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3년 11월호 (통권 672호)
[ROUNDTABLE] 공공건축 발주제도로서 설계공모는 최선인가?
「SPACE(공간)」 × 김정임 서로아키텍츠 대표 × 윤승현 중앙대학교 교수 × 임유경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위원 × 조윤희 구보건축 대표
제도가 견인한 지난 10년의 변화와 성과
SPACE: 1995년부터 만들어진 설계공모 관련 제도는 2013년을 기점으로 더욱 촘촘해졌다. 그간 우리가 겪은 변화와 거둔 성과가 무엇인지 짚어보고자 한다.
임유경(임): 2013년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이 개정되면서 고시금액(약 2억 원) 이상의 발주인 경우 공모 방식을 우선적으로 적용하게 됐다. 2019년 시행령 개정에는 공모 방식 적용 대상을 설계비 1억 원 이상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고 2020년 초부터 시행됐다. 2013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실시된 설계공모 수가 총 6,000건 정도인데 2020년 이후의 설계공모 수만 연간 1,000건 이상이다. 공모를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설계비의 기준이 낮아지면서 설계공모의 수가 늘어난 것이다.
김정임(김): 예전에는 직원들이 인맥 같은 배경이 없으면 독립할 생각을 못했는데 이제는 소규모 공공건축물의 설계공모에서 3, 4등 안에 들면 3백만 원가량 받을 수 있으니, 공모를 발판으로 삼아 사무소를 조금씩 일구어간다. 설계공모가 건축가를 일찍 독립시키는 데 분명한 영향을 미쳤다.
조윤희(조): 나는 2013년의 설계공모 제도가 3~4년 무르익은 시점인 2016년에 개소했다. 개소 당시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자마자 서울시 공공건축가를 맡은 덕분에 실적이 없었는데도 소규모 공공건축물 지명공모에 참여할 수 있었다. 독립 초반에는 공모전 상금과 대학교 강연료로 버티면서 포트폴리오를 쌓았다. 우리 세대가 지금의 공모 제도를 통해 얻은 것은 공공의 DNA라고 생각한다. 기성 건축가들은 민간 작업으로 성공한 이후 ‘좋은 일도 해볼까’하는 마음으로 공공 작업을 했다면 우리는 공공건축으로 건축 실무를 시작한다. 그래서 민간 작업을 하든, 공공 작업을 하든 그 안에 공공성이 내재돼 있다고 느낀다.
윤승현(윤): 공공건축가 지명공모 제도는 서울시에서 시작됐는데 특혜 시비에 휘말려 의회 감사에 지적돼 불행히도 지속되지 못했다.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에서는 제도가 사라져 아쉬움을 느낀다고 한다. 잠재력과 열정 있는 건축가들이 어떤 결과물을 내는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좋은 공공건축물을 만들어가고 있는 영주시에 자극을 받아 옆 동네인 예천시에서 새건축사협의회(이하 새건협)에 공모운영을 위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공모 이후, 당선된 건축가가 시키는 대로 설계하는 이전 사람들과 달리 자신들의 요구를 따르지 않으니, 용납을 못했다더라. 결국 안 좋게 마무리가 됐는데 몇 년 지난 후 예천시에서 새건협에게 다시 함께 공모를 진행해보자고 요청이 왔단다. 공공건축물을 만들고, 또 결과를 지켜보는 경험이 쌓인 덕분이다. 건축은 순환 사이클이 길다. 소규모의 건축물도 완공하기까지 2~3년 걸리는데다가 좋은 건축을 완성할 확률도 낮다. 여러 번의 성공 사례가 나와야 선례가 쌓이는데 이제 10년이 됐다. 소규모 작업을 세 번 정도 하는 순환을 겪은 셈인데 횟수에 비해 획기적인 인식과 제도 변화를 얻었다고 본다.
임: 2013년부터 지금까지 6,000건 정도의 설계공모를 진행했고, 그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경험을 10년 동안 했다는 것 자체도 큰 의미다. 건축가에게도 그렇지만 발주처 입장에서도 그렇다. 30선의 건축가 인터뷰에서도 좋은 결과물을 완성할 수 있었던 이유로 발주처의 노력과 신뢰를 언급하더라. 모두에게 경험이 쌓여 좋은 공공건축물에 대한 인식이 생긴 덕분이다. 이에 더해 어떻게 지금의 제도를 보완할지에 대해서도 꾸준히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공공건축 관리자 제도는 행정 조직상의 순환근무 등으로 인해 담당자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고, 사전 공사비 검토 또한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궈낸 제도다.
현 설계공모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과 개선 방향
조: 공공건축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많이 얻었지만 덜 숙련된 건축가일 때 공공건축이라는 시스템에 던져지다 보니 날것의 경험도 많이 했다. 건축가 협회, 단체, 네트워크 같은 보호망 없이 건축을 존중하지 않는 주무관을 포함한 행정 시스템과 맞대응하는 부분이 힘들었다. 긍정적으로는 좋은 건축가로 성장하기 위한 과정이라 말할 수 있지만 이 단계에서 좋은 건축가가 되는 길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설계안 선정을 위한 공정성은 주요한 논의로 다뤄지는데 선정 이후 건축가와 설계안을 보호하는 장치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지금의 공공건축 시스템은 건축가 개인이 해결하기에는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들고, 힘을 들인다고 해도 극복할 수 없다. 여기에는 사회가 도와줄 부분이 있을 것이다.
윤: 사실 공공건축 시스템의 더 심각한 문제는 공모 이후의 단계에 있다. 설계를 진행해 마무리하고 공사 과정을 거쳐 입주하기까지 지뢰가 적어도 수백 개는 되고 제 아무리 훌륭한 건축가라 하더라도 상당수는 극복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기에, 이 과정 속에서 리스크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 이는 혼자서는 가능하지 않고 누군가 힘을 덧대 주어야만 한다. 공모 이후의 시스템을 정교하게 세워야 가능한 일이며, 그 일련의 과정 안에서 무엇이 정말 문제인지 공무원과 함께 확인하는 일도 꼭 거쳐야 한다.
김: 건축가에게 제일 안 좋은 작업 환경은 민간 작업에서 안 맞는 건축주를 만나는 것, 제일 좋은 경우는 민간 작업에서 잘 맞는 건축주를 만나는 것이다. 공공 작업은 이도저도 아닌 환경에 처해 있다. 공공 작업에서도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명확한 대상이 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한다.
윤: 그래서 공공건축 건축기획 업무가 의무화됐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작업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지속적으로 균형을 잡아줄 전문가가 필요한데 1년에 1,000건의 공모가 있으면, 적어도 1,000여 명의 전문가는 있어야 하기에 인력 면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민간 전문가가 아닌 행정 시스템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공공건축 관리자 제도는 규모와 상관없이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10%의 작업에 해당하기 때문에 나머지 90% 작업에서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별도의 중재조정위원회 같은 제도를 제안할 수 있겠다. 심의에서 심의위원이 이상한 변경을 요구해 의결이 나지 않고 이 부분을 건축가가 납득할 수 없다면 중재조정위원회에 재심의를 요청하는 방식일 수 있다.
김: 과정의 단계, 단계마다 지뢰를 피할 수 있는 그물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제도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일 뿐이고, 좋은 사람을 만나는 운이 따라주어야 같은 제도 안에서도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 당선 이후의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지만, 사실 갈수록 제도를 신뢰하지 못하겠다. 김정임이 말한 것처럼 구제하는 장치도 제도가 되면 운으로 작동한다. 총괄건축가는 우리를 도와주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제도인데도 한 공공 작업에서는 우리와 총괄건축가 간 갈등이 많았다. 좋은 의도로 만든 제도라도 그 자리에 어떤 사람이 있냐에 따라 건축가의 운명이 달라진다. 이에 더해 우리나라 제도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지 않는다. 미국과 한국에서의 실무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제도는 건축가에게 전문가로서의 자율성을 주지 않는 것 같다. 설계에 수반되는 심의와 인허가 과정을 경험하다 보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거나 혹은 할 예정인 사람처럼 취급 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윤: 그럼에도 여전히 제도는 필요하다. 다만 촘촘한 제도가 아니라 정교한 제도가 필요하다. BF 인증제도가 없었다면 장애인이 공간에서 어떤 상황에 봉착하는지 고민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장애인 편의를 위한 제도는 있어야 마땅한데, 문제는 그 제도를 BF ‘인증’으로 만든 것이다. 행정에 편리한 시스템으로 윤색하면서 계속 계량화하고 정량화하는 순간 제도의 본질은 사라진다.
SPACE: 선정 이후인 실행의 단계에서는 잦은 설계변경, 설계의도구현 제도 등에 문제 제기가 많다.
김: 설계변경은 할 수 있지만 한다면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 나는 인허가 후의 요청을 설계변경으로 보는데 건축가마다 어디서부터의 변경을 설계변경이라 볼지 그 기준도 달라 용어 정의도 필요하다.
윤: 건축설계 대가요율에 설계변경에 대한 기준이 없다. 표준계약서에서도 마찬가지다. 설계비가 20억 원이었던 등촌동 어울림플라자에서는 연면적이 10% 이상 늘어나면 비용을 정산한다고 표준계약서에 명기됐었는데 주차장 영역을 변경하면서 연면적이 13%로 증가됐다. 그런데 명확한 지급 기준이 없으니 도서에서 변경되는 부분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확인해 3천만 원을 주고 마무리했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국가계약법)」 상 설계변경이라는 용어가 나오기는 하는데 이는 공사상의 설계변경에 의거해 준용된 내용이어서 건축설계에 적절히 준용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더해 면적이 동일하지만 변경을 한 경우, 면적을 줄이는 방향으로 변경한 경우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조: 비용도 문제지만 공공건축에 대한 생각 차이도 문제다. 발주처는 건물의 주인이 자신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내가 빨간색으로 설계를 해왔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파란색으로 바꾸라고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변경을 요구하는 걸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럴 때 나는 지금 당신이 살 단독주택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득하곤 한다.
임: 건축, 특히 공공건축은 굉장히 복잡한 생산과정의 결과물인데 책임 소재가 모호하다. 설계변경의 경우에도 주무관, 사무관, 시장의 이야기가 다르니 계속 변경하게 된다. 이에 따른 합당한 책임과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가 정교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설계공모를 공고하기 전 사업에 얽힌 담당자들끼리 의견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부담을 줄 필요가 있다. 설계변경에 대한 비용 기준이 있다면 사전에 공모를 잘 기획할 것이다.
윤: 결국 건축은 얼마의 기간 동안에, 얼마의 비용을 들여서, 누가 하느냐의 문제다. 공공건축은 이 세 가지가 모두 문제다. 기간은 지자체장의 정치 일정과 빈번하게 연계되고, 비용은 5~7년 전 예산 기준에서 계량화되고 표준화된 것이고, 설계자가 프로젝트를 주도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북촌 홍현은 총 사업비가 12억 원이었는데 10억 원에 발주됐었다. 2억 원은 입주와 인테리어 몫으로 남긴 것이다. 골조를 막 시작하려던 와중에 담당 과장이 인테리어 진행을 걱정하길래 2억 원을 쓸 권한을 나에게 주면 책임지고 완성하겠다고 했다. 10억 원의 20%에 달하는 예비 예산이 주어진 셈인데 극단적으로 말하면 건물을 짓다가 하자가 생기면 뜯거나, 덧댈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좋은 품질의 공공건축이 나오기 힘든 이유 중 하나가 수많은 변수에 맞닥뜨리기 때문인데, 예비비로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공공기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예산을 유연하게 실행하기 쉽지 않겠지만, 건축의 생리를 고려하면 예비비는 중요한 항목이다.
조: 법원, 경찰서 같은 건물이 속한 국유재산 건축물을 심사한 적이 있는데, 국유재산에는 안 그래도 부족한 일반 공공건축의 공사비보다도 더 적은 예산이 책정된다. 현장 심사를 위해 방문한 한 건물은 수십억 원가량의 예산을 들였는데도 데코 타일로 로비 마감을 했더라. 당선된 건축가들 대부분이 당선된 후 조감도와 건축물은 같아야 하니 외장을 우선으로 설계하고 이후 돈이 부족해 인테리어에 투자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모든 심사위원들이 공사비를 더 줘야 한다고 말하는데, 예산을 배분하는 부처는 지금도 배정된 예산으로 잘 만들어지고 있기에 증액은 예산 낭비라는 입장이다.
윤: 설계를 다 끝내고 내역을 뽑으면 기준 공사비의 130~140%가 되어 있는 경우가 다반사고 이러한 경우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 구조 배근, 구조 사이즈는 줄일 수 없으니 마감을 걷어낸다. 그간 각종 에너지, 구조, 소방, BF에 대한 설계 기준이 강화됐고, 여기에 쓰는 비용도 대폭 상승했을 것이다. 그런데 강화 기준은 인증이라는 강력한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생략할 수 없는 단계다. 이러한 이유들로 결국 저렴한 마감 자재를 택해 공사비를 절약한다.
임: 실제 결과물들의 공사비 현황을 분석하면 연면적은 같아도 공사 면적이 추가됐다, 어떤 디테일을 구현했다 등의 증액이 필요한 사례가 모일 것이고, 이 사례를 바탕으로 예산 증액을 위한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비용이 더 들어간 결과물에서도 실제 이용자의 만족도, 내구성 등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등의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산의 유연성을 위해 근거를 마련하는 일은 기획재정부에서도 해오고 있다. 실마리는 있으니 여기에 경험과 사례를 계속 덧붙여 제도화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김: ‘꿈을 담은 교실’ 사업은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공사비가 더 필요한 경우 원로 건축가로 구성된 심의위원회에 안건으로 올릴 수 있었다. 교육청에서 예비 예산을 편성해놓은 것이다. 심의에서 필요성을 확인받으면 감사에서 인정받기도 수월하기 때문에 괜찮은 방법이었던 것 같다. 수의계약의 경우에는 공무원과 신뢰관계가 있다 보니 낙찰 차액을 공사비에 쓰기에 원활하기도 하더라.
윤: 민간건축의 중심에는 건축가가 있다. 건축주도, 공사자도 설계자를 통해 무언가를 구현하고, 모든 이야기와 내용들이 건축가에 의해 수렴된다. 반면 공공건축에서는 건축가가 중심에서 엇나가 있다. ‘너는 건축만 하고, 너는 전기만 해’와 같이 계속 역할 분담을 한다. 실행의 단계에서 건축가를 배제하기 때문에 공공건축의 질이 낮아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축가가 공사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설계의도구현 제도가 생겼지만 이 제도도 결국 건축가에게 책임을 씌우는 형태가 됐고 비용과 같은 대가도, 결정 권한도 없다. 건설사업 관리자가 건축가의 제안에 동의하지 않으면 진행할 수 없다. 말로만 설계의도구현이 아니라 일련의 건축 과정에서 설계자의 결정 권한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김: 건축가에게 책임을 지우려면 그 역할에 대한 비용도 지불해야 한다. 건축가가 시공 전문 감리까지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협업을 위한 비용이 있어야 한다. 공사감리자가 훨씬 많은 용역비를 받는데, 대부분의 일을 설계의도구현에서 처리하라는 식의 태도를 취하기도 해 괴로워하는 건축가가 많다.
윤: 건축물은 기성품이 아니다. 항상 새로운 길을 가는데 100%의 안전과 품질로 완성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회가 건축의 본질과 맞지 않는 요구를 하는 것이다. 자동차는 건축과 달리 찍어 내는 제품인데도 사고가 발생하고, 발생한다고 해도 설계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건축가도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최선의 노력은 다하겠지만 신이 아닌 이상 문제는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험 의무화가 필요하다.
조: 큰 사건은 어쩌다 한 번 일어나니 건축가를 위한 보험 제도를 만들어 사회적 비용을 들이는 대신, 건축가 개인에게 사건이 터지는 그때그때마다 비용을 치르라고 하는 격이다. 99%는 사고가 나지 않으니 사고가 나면 개인에게 “네가 부도덕하고, 네가 문제인 거야”라고 한다. 건축가는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런데 건축을 한 지 20년이 된 나도 이제서야 건물은 완벽한 게 아니고 관계자들이 최선을 다해도 부족할 수 있는 결과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일반 사람들은 이 논리를 이해하기 힘들 것 같다. 어떤 건축가는 자신이 설계한 건물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잠이 안 온다고 하더라.
김: 건축을 할 때는 법규, 하자의 리스크를 무의식 중에 항상 염두하기에 긴장하며 작업하는데, 인테리어를 하니 자유로운 느낌이 들면서 과감하게 디자인하게 되더라. 외국 공공건축물만큼 다양한 디자인 시도가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건축가 집단에게 과한 책임을 지우고 있어서라는 생각도 들었다.
SPACE: 제한, 지명, 제안 등 공모 방식 또한 다양해졌다.
김: 요즘에는 하나의 설계공모에 200팀 정도가 접수하는 등 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공모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법이 필요해 보인다. 1차로는 간단한 아이디어만 받는 것이다. 보통 A1 패널 2매, A3 보고서 20매 정도를 요구하는데 두 달 동안 직원 3명 정도를 투입한다고 보면, 한 공모에 2,000만 원 정도 투자하는 셈이다. 서류 접수만 200팀이고 실질적으로 70팀이 참여했다고 해도 사무소에서 공모 참여를 위해 들이는 비용의 총합은 여전히 과하다. 설계공모는 100% 발주처에게 유리한 방식이고 발주처에서는 소위 ‘흥행에 성공했다’는 표현도 쓰는데, 그 흥행은 많은 건축가들과 그 아래 젊은 직원들의 뼈를 갈아서 만들어진 것이다.
윤: 이미 3~4장의 자료만 요구하는 간이공모라는 형식이 있다. 공무원은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선례가 없으면 시도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굳이 간이공모라는 제도를 사용하지 않는데 그렇기에 국토교통부 같은 기관에서 이 제도가 왜 생겼는지, 장점이 무엇인지 알리는 홍보를 해야 한다. 서울시교육청도 간이공모 대신 설계비를 1억 원 내외로 줄여 어떻게든 입찰로 진행하려고 하는 실정이다. 가장 간편하게 사업 절차를 줄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과열 경쟁과 관련해서는 포트폴리오를 심사하는 방법도 있다.
김: 그럼 포트폴리오가 없는 신진 건축가들은 어떻게 하나?
윤: 모든 공모를 매번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라는 뜻이 아니다. 공모의 특성에 맞는 방식을 택하면 된다. 프랑스에는 나이로 구분해 지명하는 공모 방식도 있다. 50대 이상 기성 건축가, 40대 중견 건축가, 20~30대의 젊은 건축가 등의 층으로 나눠 지명하는 것이다. 젊은 건축가만 지명할 경우 경험 부족을 우려하는데 OMA와 경쟁해 조윤희가 당선됐다고 한다면 젊은 건축가의 실력을 믿어줄 만한 구실도 생긴다. 여러 공모 방식을 모아놓은 자료가 있으면 발주처가 다양한 방식을 고려하기 편리할 것이다. 하지만 발주처 입장에서는 어쨌든 국토교통부의 건축 설계공모 운영지침 기준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다른 공모 방식을 선택하는 데 한계는 있다.
임: 성격에 따라 다르게 적용할 만한 사업들이 있다. 리모델링 사업은 이전에 작업한 건축가에게 수의계약으로 맡길 수 있겠고, 오랜 기간 기획부터 참여해야 하는 사업 등은 프로젝트 안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설계안이 아닌 설계자를 선정하는 제안공모로 진행할 수도 있다.
이미 진행한 사례도 있지만 발주처에서 여전히 시도하기를 겁내니 사례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
김: 양구백자박물관 도자역사문화실은 1차, 2차, 3차 리노베이션을 모두 수의계약으로 이진오(건축사사무소 더사이 대표)가 맡았다. 당시 미술관 관장이 감사에서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모두 책임지겠다고 말해서 진행될 수 있었다. 타당한 이유가 있고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데 최적의 방법이 있다고 인정되면 그 방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조: 최근 설계공모 중 한 유명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기고 싶은데 절차상의 문제가 있으니 그 사무소가 응모할 수 있는 조건에 맞춰 공고를 낸 경우가 있었다. 방법적인 측면에서 불공정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러한 제한된 방식으로 공모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가 훌륭한 건축가에게 공공건축 설계를 맡기고 싶어도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적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지금 공정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원칙에 사로잡혀 개인이 쌓아온 업적이나 전문성에 대한 가치평가 없이 모두를 같은 선상에 두고 있다. 냉정한 이야기이지만, 소위 유명하고 바쁜 건축가들은 작은 마을에 있는 소규모 공공건축물의 설계공모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포트폴리오 심사 등 공모 방식을 다양화한다면 지역의 소규모 공공건축물의 질이 더 좋아질 수도 있다. 물론 과정상 여러 가지 부작용과 논란이 있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공건축물의 질이 좋아질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가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윤: 원로 건축가에게 500평 규모 정도의 작업은 그냥 맡기면 어떨까? 예를 들어 조성룡(조성룡도시건축 대표)이 그간의 증빙된 경륜에 의지해 설계한 공공건축물을 남기는 것은 그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서울시에서 올해의 건축가를 뽑고 수상한 건축가에게 공공 작업을 할당하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함인선(한양대학교 특임교수)은 29세에 사무소를 차렸는데 이른 나이에 빠른 성장을 했고 1990년대에 서울시 건축상을 섭렵했다. 그가 말하길 자신이 젊은 건축가였을 시절에는 건축상을 받으면 공공 작업 한 건을 맡겼다고 한다. 이 제도는 서울시가 변호사를 통해 유권해석을 받았는데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지방계약법)」로 인해 지속되지 못했다.
김: 앞서 말한 과열 경쟁 문제는 심사위원 구성과 엮여 있다. 심사위원이 나쁘면 공모에 지원하지 않는다. 우리도 어떤 공모에 참여할지 고를 때 가장 먼저 심사위원 구성과 제출물의 양을 본다.
윤: 공공건축 시스템을 개혁한 대표적인 지자체라 평가받는 파주시에서 발주하는 공모의 평균 경쟁률은 27대 1이다. 이에 반해 조달청이 낸 공모의 경쟁률은 얼마나 될까? 파악할 수 있다면 함의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사실 과열 경쟁을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좋은 공모를 많이 만들면 된다. 지금 건축가들이 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프로젝트가 100개 미만일 텐데 1,000개로 늘어난다면 자연스럽게 분산될 수 있다.
임: 총량적 관점에서 봤을 때 1년에 공모가 1,000건이면 적어도 5,000명의 심사위원이 필요하다. 5,000명을 누구로 할 것인지도 문제다. 전국에 건축대학이 70개가량이고, 대학마다 교수가 약 10명 정도 있다면 많아야 700명이다.
조: 그러니 설계공모 자체를 줄여야 한다.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참여하는 입장에서도 손실이지 않나.
윤: 분명한 건 발주제도의 다양화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또 공정성이 발휘되려면 심사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심사의 전문성을 높이는 방법으로는 교수뿐 아니라 현업에 종사하는 건축가들이 심사위원 구성에 포함돼야 한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있어왔다.
김: 2단계 공모심사 자리에서는 1차에서 추린 다섯 개 안의 발표 심사가 진행된다. 그러면 심사위원들도 현장에 가서 열심히 일할 것 같고 좋은 결과물을 완성할 것을 아는 건축가에게 마음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윤: 발표심사는 자료의 내용과 함께 발표하는 능력 등을 포함해 건축가의 종합적인 능력을 함께 보겠다는 의도를 전제하는 심사이기에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물론 그 건축가의 훌륭한 실적에 현혹되어서는 안 되겠다.
설계공모 외 공공건축 생산방식은?
SPACE: 공공건축을 생산하는 다양한 발주 방식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언급된 것처럼 다양한 프로젝트를 각 성격에 맞는 형식으로 공모하는 방법도 있지만, 공모만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김: 공모 방식과 달리 수의계약은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잘 맞는 건축가를 찾는 방식이기 때문에 공무원과 건축가 사이에 신뢰가 있다.
윤: 다른 건축가들이 나도 잘할 수 있는데 왜 김정임한테만 맡기는지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조: 좋은 결과물이 나오면 된 것 아닌가? 건축가들이 공공 작업을 하는 이유는 좋은 공공건축물을 만들어 시민들이 잘 쓰고 더 좋은 삶을 누릴 수 있게 이바지하기 위해서다. 이제는 왜 전문성보다 공정성의 문제가 더 중요하게 논의되는지 의문을 가져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윤: 발주자가 믿는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겼는데 결과물이 안 좋을 경우, 무엇을 먼저 문제로 삼을까? 수의계약으로 하는 작업 또한 건축이기에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만들어낼 위험성을 가진다. 수의계약은 일반적으로 설계비 2천만 원 이내의 범위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2천만 원 정도로는 서로 간 이득을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을 것이라 추측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수의계약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발주처에게도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이렇게 공모를 많이 하지는 않는다. 지금이 공모의 과도기라 생각되는데 이 과도기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가격 입찰이 난발하고 있던 때에 어떻게든 대안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턴키도 없어지고 가격 입찰도 많이 희석됐다. 이제는 공공 작업을 어떻게 분배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임: 다양한 공모 방식의 선례를 만들기 위해 건축공간연구원(아우리)에서는 2013년 영주시의 노인종합복지관 제한공모(본지 97쪽 참고), 장애인 종합복지관 제한공모 및 제안공모를 대행했다. 더불어 제안공모 운영가이드도 만들고 홍보하는 역할도 했다. 수의계약과 관련해서는 지금도 「국가계약법」이나 「지방계약법」 시행령에 특정인의 기술이나 공법을 요하는 등의 경우에는 가능하도록 되어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수의계약은 특히 정교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기에 굉장히 제한적으로 사용될 것 같기는 하다. 그래서 사업 특성에 맞는 공모 방식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나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 사실 요즘 설계공모 참여에 회의를 느낀다. 건축은 시작과 더불어 100개의 지뢰를 밟고 입주하기까지의 긴 과정이라 생각하는데 설계공모는 맨 앞 단계에 그리는 그림으로 모든 걸 판단한다. 간이공모도 사실 반대하는 입장이다. 단 몇 장의 서류로 어떻게 건물을 지을 사람을 결정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건축가 개인을 끊임없이 테스트라는 단상 위에 세우는 것보다는 충실하게 설계 과정을 밟을 수 있도록 돕는 제도가 필요하다. 차라리 한 명씩 공공 작업을 나눠주면 설계공모용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 진짜로 지어질 건물을 어떻게 설계할지 고민할 수 있으니, 더 좋은 공공건축물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윤: 20, 30년 전 우체국에서 발주할 때 A, B, C, D 지역의 공모를 묶어서 냈다. A를 대지로 해서 공모를 내고 1, 2, 3, 4등을 뽑은 후 큰 규모 순으로 나눠줬다. 요즘에는 하나은행 어린이집 공모가 이 방법을 사용하는데 1등에게 가장 하고 싶은 대상 프로젝트를 고르라고 한단다. 사회적 비용도 줄이고, 승자 독식 제도도 손보는 방법이다. 사실 우체국은 3~4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편성받아 발주하니 이 방법이 가능하지만 지자체에서 발주하는 프로젝트는 용도도, 집행 기간도 다르니 어려운 측면이 있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비슷한 학생식당 증축 프로젝트가 계속해서 나오니 여기에는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진행 김정은 편집장, 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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