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3년 12월호 (통권 673호)

디지털은 물리적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자취를 감췄다고 생각했던 빈대가 최근 전국에서 출몰하면서 사람들이 놀라고 있다. 빈대에 관한 각종 기사들 중에 흥미로웠던 부분은, 국외 일부에서는 빈대가 여전히 흔한 벌레 가운데 하나라는 자료의 출처인 「Bugs Without Borders survey(국경 없는 벌레 연구)」(NPMA, 2018)였다. ‘국경없는의사회’나 ‘국경없는기자회’는 들어봤어도, 국경 없는 벌레 연구라니…. 세계화의 산물이기도 한 (여행과 물자의 이동이 빈번해지면서) 국경 없이 돌아다니는 벌레에 관한 보고서는 다시금 국가의 경계를 떠올리게 한다.
디지털 데이터 역시 대표적으로 국경 없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추상적 물자의 이동은 오늘날 사람들에게 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만, 최근 데이터 주권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경계 없이 확장될 것만 같았던 (디지털)세계를 이루는 물리적 토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데이터 주권이란 소수의 기업에 독점되던 데이터에 대한 소유권을 국가와 개인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이슈화된 용어다. 한편으로는 4차산업 시대에 핵심 자원으로 부상한 데이터를 국가안보나 경쟁력 차원에서 바라보며 데이터의 개발과 축적, 이전, 유통, 현지화 문제로 구체화되고 있다. 우리가 비물질적이라고 생각했던 데이터 혹은 기술 미디어는 사실 지정학적 경계와 얽혀 있고, 물리적 공간을 점유한다.
서버가 주인인, 사람과 로봇이 공존하는, 자율주행 자동차로 운영되는, 하이퍼스케일 건축물. 지난 11월 운영을 시작한 네이버의 두 번째 데이터센터 ‘각 세종’을 묘사하는 말들이다. 하지만 이런 말만으로는 그 건축적 이미지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경험해보지 못한 공간, 만들어보지 않은 유형의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SPACE(공간)」 12월호에서는 데이터센터라는 새로운 건축물의 탄생에 참여한 여러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복잡다단했던 여정의 의미와 한계, 미래를 위한 과제를 짚는다. 예정은(네이버 2nDC TF 건축 총괄 디렉터)과 김성열(네이버 2nDC TF 브랜딩 디렉터)의 에세이는 데이터센터가 들어서기 전 원시림에 가까운 부지의 이미지로부터 시작하는데, 이어지는 도시적 스케일의 토목공사와 건축물 시공 과정은 거대한 물리적 실체로서 데이터(센터)를 실감하게 한다. 안정택(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프로젝트 아키텍트)은 환경 이슈뿐만 아니라 데이터센터의 다학제적 복잡성과 특수한 기능 때문에 각 세종의 설계 과정은 여러 전문가들과의 조율의 연속이었다고 회고한다. 숙소동을 설계했던 조민석(매스스터디스 대표)은 단지의 거대한 볼륨들과 조화를 이루는 메가폼으로 인지되면서도 지면에서는 경사에 순응하는 마을로 다가오는 모습을 제안했다. 김환(프론트 프로젝트 디렉터)은 기능이 집약된 데이터센터 전반의 파사드를 설계하면서 하이테크와 로테크 사이에서 적정 기술을 찾아가는 과정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설계공모의 심사위원으로 시작해 각 세종의 완성까지 지켜봤던 조항만(서울대학교 교수)은 ‘표면 아래’ 작동하던 디지털 기술을 건축에 담을 때 분야별 전문성의 조합이 어떤 양태로 드러나는지 살피며, ‘새로운’ 건축의 현재를 짚는다. 발주처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기능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는 형식으로 빚어진 이 건축물은 건축가들이 넘어서야 할 한계와 미래를 향한 가능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새로운 디지털기술이 부상할 때마다 사회는 기술이 제시하는 미래에 열광하는 한편 관련 제도를 서둘러 마련하며 기술을 따라잡으려 애쓰는 형국이다. 데이터센터 역시 이제 제반 제도를 만들어가는 단계이니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은 건축물 유형과 관련해 법제도를 만들어가는 데 주요 참고사례가 될 것이다. 한편 최근에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의 급부상으로 AI 활용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 문제가 각 분야에서 불거지고 있다. 건축 분야 역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란 예측이 있지만, 실은 물리적 세계의 저작권 문제도 타 분야에 비해 정립되지 않은 상태다. 이번 호에서는 건축물의 저작권 침해 두 가지 사례를 다룬다. 각 사례는 공공기관의 저작권 침해와 절차적 정당성 확보 문제(‘서울링 제로 졸속 추진에 제동 걸릴까’ 본지 8쪽 참고)와 민간 건축물의 표절 문제(‘웨이브온 건축저작권 침해 소송, 철거 명령이 남긴 것’ 본지 116 ~ 121쪽 참고)를 보여주는데, 건축계 내부의 노력을 통해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공통의 과제를 남긴다.
편집장 김정은

「SPACE(공간)」 2023년 12월호 (통권 673호) 목차
006 EDITORIAL
008 NEWS
022 PROJECT
루나 하우스 ‐ 페소 본 에릭사우센
Luna House ‒ Pezo von Ellrichshausen
034 PROJECT
청수 목월재 ‐ 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Cheongsu Mokwoljae ‒ a root architecture
042 PROJECT
이루재 ‐ 진교진
Iruje House ‒ Jin Keojin
050 PROJECT
벤트 ‐ 유아이에이 건축사사무소
VENT ‒ UIA
060 PROJECT
KB 골드 앤드 와이즈 더 퍼스트 ‐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
GOLD&WISE THE FIRST ‒ SPACE GROUP
066 PROJECT
남산 XR 스튜디오 ‐ 국형걸 + 요즈음건축
Namsan XR Studio ‒ Kook Hyoung-gul + YZA
074 FEATURE
데이터센터: 새로운 유형의 건축, 그 도전과 한계
Data Center: New Architectural Typology Faced with Challenges and Limitations
076 FEATURE: ESSAY
데이터센터 각 세종의 건축_ 예정은, 김성렬
The Architecture of Data Center GAK Sejong_ Ye Jungeun, Kim Sungyeol
082 FEATURE: TIME LINE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 타임라인
NAVER Data Center GAK Sejong: Time Line
086 FEATURE: PROJECT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 서버동, 운영동 ‐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NAVER Data Center GAK Sejong Sever Building & Operation Building ‒ Junglim Architecture
096 FEATURE: PROJECT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 숙소동 ‐ 매스스터디스
NAVER Data Center GAK Sejong Staff Accommodation Building ‒ MASS STUDIES
104 FEATURE: PROJECT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 파사드 ‐ 프론트
NAVER Data Center GAK Sejong Faҫade ‒ FRONT
110 FEATURE: REVIEW
태도가 건축이 될 때_ 조항만
When Attitude Becomes Architecture_ Zo Hangman
116 REPORT
웨이브온 건축저작권 침해 소송, 철거 명령이 남긴 것_ 곽희수 × 박지윤
What Remains Following Waveon’s Architecture Copyright Infringement Lawsuit and Order of Demolition_ Kwak Heesoo × Park Jiyoun
122 REPORT
땅과의 오랜 대화로부터: 『BCHO 파트너스』_ 조병수 × 박세미
From a Prolonged Conversation with the Earth: BCHO Partners_ Cho Byoungsoo × Park Semi
126 RELAY INTERVIEW: I AM AN ARCHITECT
열린 결말을 짓는_ 김명재, 최여진 × 윤예림
Leaving Stories with an Open Ending_ Kim Myoungjae, Choi Yeojin × Youn Yaelim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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