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4월호 (통권 677호)
2011년 세계 경제위기 직후 포르투갈 포르투에 자리 잡고 건축 활동을 시작한 팔라. 위기에 직면한 도시는 주로 관광 산업에 의존해 낡은 주택들을 개조하기 시작했고, 리스본과 포르투의 역사적 중심지에서 에어비앤비 숙소는 활황을 누렸다. 그렇게 클라이언트가 거주자가 아닌 익명의 투자자나 중개자가 주를 이루는 상황에서 팔라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주택 유형을 탐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건축 요소에 집중해 고유의 어휘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지금, 팔라가 지은 건물 54개와 지어지지 않은 150개 프로젝트는 하나의 군도를 이룬다. 벽, 바닥, 천장, 기둥, 창 등의 요소들이 이질적인 방식으로 배열된 팔라의 공간에는 치밀하고도 유쾌한 탐구가 담겨 있다. 팔라의 작업 세계를 만나보자.

후아 두 파라이주 주택(2017). 19세기에 지어진 단독주택을 리노베이션했다. 건물 후면을 흰색, 녹색, 검은색 패턴의 대리석으로 마감한 것이 특징이다. ©Giulietta Margot
인터뷰 레라 사모비치 팔라 파트너 × 김지아 기자
김지아(김): 팔라는 2013년 도쿄 나카긴 캡슐타워에서 시작됐다. 공동 창립자인 세 멤버는 일본을 비롯해 스위스, 뉴욕 등 여러 지역에서 공부하거나 실무를 했다고 들었다. 어떤 계기로 모여 사무소를 설립하게 됐나?
레라 사모비치(사모비치): 팔라를 설립한 필리프와 아나 루이사는 포르투대학교 건축학부에서 함께 공부했다. 이후 스위스 바젤의 건축 회사인 해리 구거 스튜디오에서 일하다가 아흐메드를 만났는데 점심식사 중 유럽의 디자인, 연구 플랫폼인 오피스(OFFICE)와 메이드 인(Made In)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금세 친해졌다고 한다. 그러다 셋은 모두 일본으로 떠났다. 아나 루이사는 도요 이토 & 어소시에이츠(대표 이토 도요)에서, 필리프는 사나(공동대표 세지마 가즈요, 니시자와 류에)에서, 아흐메드는 아틀리에 바우와우(공동대표 츠카모토 요시하루, 카이지마 모모요)에서 근무했다. 세 멤버가 일본에서 일하던 당시 딱히 접점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건축과 작업에 대한 생각을 줄곧 나눠왔다고 들었다. 필리프와 아나 루이사는 도쿄 나카긴 캡슐타워에 거주하며 팔라 웹사이트를 개설했고, 2013년 포르투로 돌아가 사무소를 차렸다. 나는 2014년에 입사했고, 스위스 로잔 출신인 아흐메드도 그즈음 포르투로 이주했다. 그 이후로 우리 넷은 작은 팀을 꾸려 함께 일하고 있다.
김: 주로 포르투의 소규모 주택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포르투라는 전통적인 도시 맥락 안에서 변주를 꾀하는 작업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사모비치: 2014년부터 몇 년간 꾸준히 소규모 주택 작업을 해왔다. 기존의 상업시설이나 차고를 거실로 개조하고, 건물 후면을 전면보다 강조하고, 표면과 건축 요소에 집중했다. 맥락이 무엇이 됐든, 다시 말해 포르투든 리스본이든 특징이 뚜렷하지 않은 교외지역이든 우리는 그 맥락을 따르기보다 저항하는 편을 택했다. 시의 법규 안에서 모종의 틈과 가능성을 찾아내 복잡한 볼륨, 대담한 패턴, 집처럼 보이지 않는 집을 계획했다.
김: 프로젝트의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요소들로 어떤 것들이 있는가? 팔라가 작업을 설명하는 방식은 ‘4인 가족을 위한 주택’이 아니라, “가식적인 주방, 의심스러운 난간, 가벼운 마음의 도로, 자랑스러운 배수관” 등이다.
사모비치: 프로젝트를 전개할 때 건물의 유형, 기능, 사용자보다 건축 요소나 건물 그 자체에 집중한다. 굴곡 있는 벽, 떠 있는 기둥, 문, 거울 등이 건물의 주인공이 된다. 지금까지 비교적 작은 규모의 개인 주택에서 그러한 요소에 주목해왔다면, 향후 몇 년간 진행하게 될 더 큰 규모의 공동주택에서는 우리의 내러티브가 본격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말하자면 더 이상 하나의 떠 있는 기둥이 아니라, 반복되는 요소, 방, 평면과의 씨름인 거다. 그러면서 프로젝트는 기계와 같은 시스템이 될 텐데, 우리는 표준적인 것과 예외적인 것 사이의 균형을 찾아 그 시스템을 조율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매달린 집(2017). 기둥이 땅에서 몇 센티미터 떨어져 있다. ©Frederico Martinho

유리 물결과 금속 구름(2021). 세로 축은 두 겹의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리 물결과 금속 구름 내부. 두 개의 곡선 유리 블록 벽이 두 층을 가로지르며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을 분리한다.
김: 팔라의 작업에는 직선, 삼각형, 사각형, 원형 등 기하학과 더불어 분홍색, 파란색, 초록색 등 조형적 요소가 두드러진다. 이러한 요소는 무엇과 관계하며, 공간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가?
사모비치: 이 요소들은 ‘복잡한 통일체’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성을 행사하면서 프로젝트 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공간 안에서 기준이라 여겨졌던 것들과는 다른 새로운 기준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들은 구조적 필요성, 현장에서 발생하는 실수, 기존에 남아 있던 기둥 등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긴장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하고 가벼운 유머를 선사하기도 한다. 대체로 기능과 관계하기보다는 비이성적이고, 비현실적이고, 의문을 자아내는 공간을 구상하게 하는 픽션과 연관된다.
김: 조형성과 더불어 재료를 사용하는 방식 또한 이목을 끈다. 콘크리트, 나무, 돌, 유리 등을 건축 요소나 가구에 사용해 여러 재료가 병치된 장면을 만들어낸다.
사모비치: 우리가 사용하는 재료 팔레트는 꽤 단순하다. 현지 회사와 공급 업체와의 협력을 기본으로 한다. 프로젝트마다 정해진 예산 안에서 해법을 찾는데, 결정 과정이 매우 간결하다. 두꺼운 샘플 카탈로그에서 적절한 색상, 형태, 재료의 종류를 고르거나 기존의 돌, 나무 판자 및 패널을 조합해 패턴을 만든다. 그 과정에서 노란색 창틀이나 녹색 또는 파란색 덧문이 탄생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각 요소와 표면을 위장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려 한다.
김: 여러 작업에서 아무것도 지지하지 않는 기둥, 즉 비구조적 기둥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 기둥을 통해 일종의 실험을 이어가고 있는 듯하다. 기둥은 상징적인 조각이 되기도 하고, 공간을 구획하는 작은 벽이 되기도 한다. 기둥이라는 건축 요소를 어떻게 해석하고자 하는가?
사모비치: 다른 요소와 마찬가지로 기둥 역시 다양한 측면과 무수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얇은 금속 기둥부터 두꺼운 콘크리트 기둥까지, 형태와 표현에 따라 기둥은 프로젝트에서 여러 역할과 의미를 갖는다. 하중을 지지할 수도 있고, 천장에 매달릴 수도 있다. 뒤틀리거나 기울어지거나 절단될 수도 있다. 기둥의 변주 가능성과 잠재적 내러티브는 무궁무진하다. 이렇게 각 요소가 지닌 가능성을 인식하는 것은 프로젝트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며, 파편적이면서도 일관성을 갖는, 합리적이면서도 때로는 의문을 품게 하는 건물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


세 가지 몸짓의 집(2021) 외관과 와이어프레임 드로잉. 포르투갈 교외에 위치한 주택으로, 지붕을 기울이고 벽을 구부리고 내부 구획을 무너뜨리는 등 세 가지 제스처를 취한다.
김: 작업에 동반되는 드로잉은 도면뿐 아니라 콜라주 이미지를 아우른다. “콜라주는 인상주의적 표현이고 드로잉은 정지된 수사학”이기에 두 매체는 상호보완적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콜라주는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사모비치: 건축물을 생산하고 표현하는 수단으로 디지털 콜라주를 실험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지를 해체하고, 원근법 중심에서 탈피하고, 렌더링보다 프로젝트 개념을 명확히 표현하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주안점을 둔다. 콜라주는 한 프로젝트의 다양한 측면과 공간을 묘사하는 시리즈로 구성된다. 이는 평평한 표면과 주요 요소에 초점을 맞춰 프로젝트의 내러티브를 이루는 일관된 이미지 체계를 제시한다.
김: 지난 십 년간의 작업을 갈무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건축을 건물의 집합이 아닌, 집합체의 연합으로 본다”고 이야기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줄 수 있나?
사모비치: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작업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며 하나의 연속되는 궤도 안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진행한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흥미롭고 선호하는 작업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답하지 못할 것이다. 모든 프로젝트가 동일한 주제와 요소, 질문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팔라의 작업을 수식하는 어휘로 ‘낙관주의’, ‘기쁨’, ‘즐거움’ 등이 있다. 팔라가 생각하는 건축 행위의 즐거움은 무엇이며, 그것이 작업에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보는가?
사모비치: 건축을 하며 경험하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지 않나. 이를테면 컴퓨터 화면에서 비로소 의미를 얻는 그리드, 어긋난 배열, 색감 등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것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공유하게 되는 어떤 종류의 흥분이다. 그 기쁨을 공간에 담아 프로젝트 안에서 계속해서 명랑한 분위기가 발산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역전된 지붕을 가진 집(2023) 외관과 내부. 역전된 지붕은 교외에 독특한 풍경을 선사한다.

역전된 지붕을 가진 집 콜라주 이미지
김: 팔라의 작업에 영향을 준 건축가가 있나?
사모비치: 우리는 주로 일본 건축에서 영향을 받았다. 특히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시기에 큰 매력을 느낀다. 대표적으로 하세가와 이츠코, 이토 도요, 시노하라 가즈오를 꼽을 수 있다. 일본 이외의 지역에서는 로버트 벤투리, 데니스 스콧 브라운, 뤼첸스 파드마나브한, 피터 메클리의 작업을 좋아한다.
김: 최근 한국 주택 여덟 채를 들여다보는 서재원(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대표)의 『잃어버린 한국의 주택들』에 추천사를 썼다. 건축환경과 도시 맥락이 다른 땅이지만 팔라가 천착해온 주택이라는 주제와 공명하는 지점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사모비치: 주택을 다루는 이 책은, 언뜻 평범해 보이는 서술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 내러티브와 복합성을 추적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제법 친숙하게 다가왔다. 동시에 매혹적인 발견이 되어주었는데, 책에 등장하는 한국 건축가나 프로젝트들은 생소했지만, 그것들이 바나 벤추리 하우스의 계단과 시노하라 가즈오의 엄브렐러 하우스처럼 익숙한 요소들의 새로운 변형이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김: 동시대 주택에 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사모비치: 주택은 어떤 식으로든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에서 분투한다. 따라서 주택 프로젝트는 그 경계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정의된다고 볼 수 있다. 경계선을 더 뚜렷하게 만들 수도 있고, 희미하게 할 수도 있다. 굴곡진 유리 블록 벽을 만들거나 구멍 난 창이 있는 단단한 흰색 표면을 구성할 수도 있다. 이러한 경계에 대한 실험이 곧 각 프로젝트의 고유한 논리를 발견하는 과정이 된다.
김: 설계 외에도 출판이나 강의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
사모비치: 강의나 저술, 인터뷰 활동은 최근 몇 년간 혹은 지난 시간 동안 생각해온 것들을 종이에 옮겨 정리하고 요약할 수 있는 유익한 기회다. 이는 설계나 현장 감리와 견줄 만한 가치를 지니는데, 또 다른 배움을 주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문제를 잠시 제쳐두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같은 선상에 둔 채 표현과 내러티브에 대해 묻고 비교하고 성찰하게 해준다.
김: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해 달라. 또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실험이 있는지 궁금하다.
사모비치: 최근 공모에 당선된 프로젝트 두 개를 진행하고 있는데, 둘 다 공동주택이다. 이전 작업들에 비해 규모가 월등히 크고, 프로젝트의 성격 역시 공공사업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이다. 이렇게 반복적이고 체계적인 프로젝트 안에서는 제약이 많아 실험할 여지가 거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금 즐거움을 발견하고, 정해진 시스템 안에서 불완전성을 위한 여지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하우스 오브 카드(2020). 2층 규모의 주택에 다섯 세대의 집이 숨어 있다.

세 가지 구조의 집(2021~) 시공 현장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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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르 알렉산더 브로드스키, 아세 아키텍처에서 실무를 하고 2014년부터 팔라에 합류했다. 현재 파리, 리스본, 베니스에서 객원교수로 활동 중이며, 포르투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박사 연구원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