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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건축가] 사사롭고 유익한: 서준혁, 최세진

사진
윤현기(별도표기 외)
진행
김지아 기자

「SPACE(공간)」 2024년 4월호 (통권 677호) 

 

오늘의 건축가

‘오늘의 건축가’는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저마다의 건축을 모색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기 위해 기획됐다. 그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탐색하고, 고민하고 있을까? 「SPACE(공간)」는 젊은 건축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보다는 각자의 개별적인 특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인터뷰는 대화에 참여한 건축가가 다음 순서의 건축가를 지목하면서 이어진다.

 

우화상점(2022)​ ©mhgh architects

 

인터뷰 서준혁, 최세진 건축사사무소 만화기획 공동대표 × 김지아 기자​​

 

홍제천을 따라


김지아(김): 홍제천이 내려다보이는 사무실이네요. 자주 지나다니는 길인데 2층에 사무소가 있는 줄은 몰랐어요.

서준혁(서): 어쩌다 보니 이 동네에 자리 잡게 됐어요. 집도 사무실에서 5분 거리에 있어요. (웃음) 둘 다 학교를 부산에서 다니고 직장 생활 하면서 서울로 올라왔어요. 서울에 오면서 결혼을 했는데 처음에는 신촌에 살다가 경기도 화정동에 있는 아파트로 가게 됐죠. 그때 저는 지랩에서 근무 중이었고, 최 소장은 건축사사무소 사무소효자를 다니고 있었는데 둘 다 직장이 서촌이라 출퇴근이 만만치 않더라고요.

최세진(최): 화정동도 살기 좋은 동네였는데 아무래도 직장에서 거리가 있어 다시 서울로 돌아왔어요. 서울에서는 어느 정도 자연과 가까웠으면 싶었죠. 예산과 조건을 고려했을 때 홍제천 주변 동네가 적합하다고 판단해 이 동네에 있는 구옥을 얻었어요. 그러다 이사하고 얼마 안 돼 집 근처에 좋은 조건으로 사무실 자리가 난 거예요. 뭘 하게 될진 모르지만 일단 얻고 보자 해서 지금은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죠.

 

김: 구옥을 손수 고쳐 살고 있다면서요. 아파트에 살다가 구옥을 리모델링하기로 결심한 이유가 뭐예요?

서: 공간을 만드는 게 우리 업이니 이번에는 직접 고쳐 살아보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렇게 일 년 정도 구옥을 찾아다녔어요. 마지막으로 찾은 집이 지금 살고 있는 뻐꾸기 빌라(2020)인데요. 열다섯 평 남짓한 작은 집이지만 요즘 보기 드문 직사각형 평면에 경사지붕을 가지고 있어 조금만 손보면 제법 쓸 만한 공간이 될 것 같았어요. 

최: 무엇보다 꼭대기 층 집이라 천장을 터서 높은 천장고를 확보할 수 있었어요. 또한 1980~1990년대에 지어진 다세대주택의 유형을 따라, 새 부리처럼 돌출된 창을 가지고 있는데 그 점도 마음에 들었죠. 단열 보수를 하고 창호를 보강한 후에는 우리 취향대로 공간을 꾸몄어요. 천장에 숨어 있던 물탱크 공간을 수납 창고로 만들고, 바닥은 한식마루로, 빛이 통하는 거실 문은 한지문으로 계획했어요. 이렇게 세세한 리모델링 과정을 인스타그램에 아카이브 겸 업로드했는데 흥미롭게도 그 계정을 보고 우리에게 작업을 맡기는 분들이 생겼어요. 동네 이웃을 비롯해 젊은 클라이언트들이 소규모 사업장이나 주거 공간 인테리어를 의뢰해왔죠. 

 

 

 

동네에서 만나는

 

김: 연남동에 위치한 우화상점(2022)은 식음료와 생활용품을 취급하는 브랜드의 쇼룸이에요. 옛 다세대주택을 근린생활시설로 리노베이션한 건물 2층에 자리한 일곱 평짜리 공간이고요. 작은 규모 안에서 디자인할 여지가 많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떤 공간을 만들고자 했나요?

서: 침구류 같은 패브릭을 전시하는 쇼룸이자, 커피나 차를 시음하고 클래스가 종종 열리기도 하는 곳이라 여러 활동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가구를 만들었어요. 규모는 원체 작았지만, 담아야 하는 프로그램은 많았기에 가구를 통해 공간을 가변적으로 사용하도록 했죠. 긴 주방가구는 평상시에는 응대 공간으로, 휴무일에는 작업대로 활용할 수 있어요. 창가 쪽 벽을 따라 설치한 곡선의 긴 선반대는 작은 공간에 깊이감을 더하면서 그 위로 제품들을 올려둘 수 있고요.

최: 좁은 공간일수록 가구와 동선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어요. 또 공간의 첫인상을 만드는 현관에는 장지문을 설치해 가벽처럼 기능하게 하고 동선을 유도했죠. 재료로는 구로철판, 합판, 원목마루, 테라코타 등을 사용했는데 인위적으로 매끈하게 마감하기보다는 질감을 그대로 살리려 했어요. 우화라는 브랜드가 천연 재료를 사용한 패브릭 제품을 선보이기 때문에 공간에서도 자연스러운 느낌을 경험하길 바랐어요. 

김: 경희궁 근처에 둥지를 튼 고호 바버숍(2022)도 비슷한 시기에 진행한 작업이에요. 여느 바버숍보다 절제된 인상을 주는 점이 흥미로워요.

서: 개인적으로 바버숍을 다니다가 알게 된 바버 두 분이 새롭게 숍을 차리면서 공간을 의뢰했어요. 바버숍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올드스쿨풍의 물건이나 액자로 채워진 화려한 공간 같은 거요. 그런 작업을 해야 했다면 아마 고사했을 거예요. 그런데 이 두 분은 정갈하고 단아한 공간을 원했어요. 고즈넉한 동네인 경희궁 근처에 자리 잡은 만큼 편안한 분위기를 주는 바버숍이면 좋겠다고 했죠.

최: 기존에 네일숍으로 사용하던 여섯 평 규모의 공간을 개조하는 프로젝트였는데, 외부에 다소 지저분해 보이는 어닝과 창호를 정리하는 것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했어요. 안에서나 밖에서나 머리를 만지는 행위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간결한 외관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기존 에어컨 실외기 가리개나 포켓 공간의 바닥 마감을 걷어내고, 배관과 환풍기를 가릴 수 있는 솔리드한 면을 추가하면서 환풍기는 타공판 뒤로 가려줬어요. 내부 공간은 시술대 두 대를 넣고, 샴푸 공간을 안쪽에 숨기는 배치로 구성했고요. 파마 기계나 수건 등을 수납할 공간이 부족할까 걱정했는데, 이사하던 날 파마 기계가 마지막에 딱 들어가는 걸 보고 다 같이 환호성을 질렀어요. (웃음)

 

김: 동네 미용실에 이어 동네 빵집까지 작업했더라고요. (웃음) 홍제동 에브리코너바이트(2022)는 근처에 하천이 있는 데다 대형 교회를 마주한 길목이라 꽤나 재미있는 사이트였을 것 같아요.

서: 맞아요. 클라이언트가 현장 사진을 보여주는데 대지나 건물이나 우리가 너무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바로 하겠다고 했어요. 작업하기 전에 현장 근처에서 한 시간 정도 앉아 지켜봤는데 목이 정말 좋은 곳이더라고요. 말 그대로 동네지만 홍제천과 교회 덕에 유동인구가 많아 빵집이 들어오기에 적합하다 싶었어요. 

최: 외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도록 전면에 통창을 내고, 코너에 위치한 점을 살려 코너형으로 둥그런 매대를 만들었어요. 무엇보다 빵집이니 만큼 빵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가구를 디자인했죠. 내부에서 제빵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유 있는 공간은 아니었어요. 매대 옆으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아늑한 좌석과 테이블 정도를 마련했죠. 매장 밖에는 주민들이 앉았다 갈 수 있는 작은 벤치를 설치했어요. 굳이 빵을 사러 들어가지 않아도 일상적으로 지나다니는 길이니 동네 쉼터처럼 이용할 수 있도록요. 클라이언트도 좋은 생각이라며 공감해주었고, 준공사진 찍을 때 동네 어르신들이 자연스럽게 왔다 갔다 하시는 모습을 보고는 만족스러워했어요. 

 

 

고쳐 사는 경험으로부터

 

김: 일상에서 접하는 다양한 상업 공간 작업에 이어, 최근에는 주거 공간 인테리어를 했죠. 오두막 주택(2023)은 뻐꾸기 빌라에 이은 두 번째 주거 프로젝트인데, 그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서: 오두막 주택은 홍제동 이웃으로 맺은 인연이 의뢰한 프로젝트예요. 홍제천변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젊은 부부인데, 오며가며 들르다 이웃이 됐죠. 그렇게 알게 된 동네 이웃들을 집에 한번 초대한 적이 있는데 그분들이 뻐꾸기 빌라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어요. (웃음) 주거 형태는 아파트였는데 저희 집처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더군요. 요구 사항이 많지는 않았어요. 욕실 두 개 중 하나는 건식 화장실로 만들고, 다른 하나는 작은 욕조를 두되 목욕탕처럼 앉아서 씻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죠. 그 외에는 주로 뻐꾸기 빌라를 경험하며 보완이 필요하다고 느낀 지점들을 구현하려 했어요. 주방 수납공간이라든지, 설비 배관 시공이라든지 하는 부분이었죠. 카페를 직접 디자인해 운영하는 분들이라 감이 있었고, 취향도 확고했어요. 무언가를 제안하면 맞다, 아니다를 빠르게 피드백해주어 작업하기 수월했어요.

 

김: 내 집을 가꿀 때와 타인의 집을 디자인할 때의 태도와 마음가짐은 어떻게 다른가요?

최: 아무래도 우리가 살 집을 디자인할 때는 객관성을 잃게 돼요. 마찬가지로 예산은 정해져 있는데 포기가 안 되니까 자꾸 결정을 미루는 거예요. ‘우리가 이렇게 선택을 못 했나?’ 싶을 정도로 쉽지 않은 과정이었어요. 다만 그러면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걸 몸소 경험했고, 거주하면서 부족한 부분들을 배워나가기도 했죠. 그 과정을 거치니, 타인의 집을 디자인할 때는 무엇이 최선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됐어요.

 

김: 주거와 상업 공간 프로젝트의 경험을 살려 최근 경주의 한옥 숙소인 스테이 꼬리(2023)를 완공했어요. 반려견을 동반할 수 있는 숙소로 계획했다고요.

서: 대지는 관광객이 활발한 황리단길이나 그 주변 골목들에서 다소 떨어져 이제 막 개발되기 시작하는 단지에 위치해요. 그러다 보니 입지로 스테이의 매력을 어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죠. 한옥단지로 개발되는 땅이라 한옥은 선택이 아닌 조건이었고, 그 외에 사람들을 불러 모을 다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반려견을 동반할 수 있는 숙소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는데, 알아보니 경주에는 아직까지 많지 않더라고요.

최: 대지면적은 300평 정도였고, 세 개 동을 구성했어요. 한옥단지 특성상 구조는 정해져 있었기에, 그 안에서 반려견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면 어떤 공간을 만들어야 할지에 대해 주요하게 고민했어요. 외부에는 반려견이 뛰어놀거나 땅파기 놀이를 할 수 있는 콩자갈 마당을 만들고, 내부에는 반려견의 시선을 고려한 낮은 눈높이의 창호와 마루, 반려견 전용 출입문 등을 계획했죠. 이외에는 한옥 내부를 구성하는 마감재의 경우 반려견이 머무르더라도 유지, 관리에 어려움이 없도록 일정 높이까지는 석재와 마이크로토핑으로 마감했어요.

 

김: 개소 이후 첫 신축 프로젝트라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서: 오랜만에 평면을 배치하는 즐거움을 경험했죠. (웃음) 다만 서울에서 경주까지 서너 시간 걸리다 보니 감리할 때 어려움이 있었어요. 공들여 계획한 강아지 통로를 갑자기 막겠다고 할 때 정말 아찔했죠. 이전 작업들에 비해 규모도 크고, 스테이는 어쩌면 주거보다 섬세하게 다루어야 할 지점이 있어 가구디자인, 브랜딩 팀과 협업했는데 그 또한 좋은 경험이었어요.

 

스테이 꼬리(2023). 건축사사무소 만화기획과 or-s 스튜디오가 공동 설계했다. ©mhgh architects

뻐꾸기 빌라(2020)​ ©mhgh architects

일상 만물의 건축을 꿈꾸는

 

김: 작업 이야기를 쭉 듣다 보니, 만화기획이라는 사무소 이름이 퍽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 ‘수많은 일상을 기획하다’라는 의미를 담아 지었는데, 사실 저희가 만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만화책이 어떻게 보면 도면 같기도 해서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요. (웃음) 기획이라는 말을 쓴 건, 제가 근무한 시공사나 지랩 등의 사무소가 건물을 짓고 설계하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사업계획, 브랜딩, 운영까지 염두에 둔 작업 프로세스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에요. 그렇다고 우리 사무소에서 본격적으로 기획을 하는 건 아니고, 현재까지는 협업을 통해 아우르고 있어요. 

 

김: 사무소 소개글에 홍제천을 기반으로 활동한다고 적혀 있던데, 여전히 유효한가요? (웃음)

최: 여기가 서대문구청이랑 가까워요. 보통 구청 앞 건축사무소가 동네 건축사무소라던데 아직은 저희가 부족한가 봐요. (웃음) 소박한 바람이 있다면, 아프면 동네 의원에 가듯이 건축 일에 궁금한 게 생기면 만화기획의 문을 두드려주면 좋겠어요. 보통 그럴 때 부동산에 가는데 동네에서 건축사무소가 그 역할을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건축가 입장에서도 동네에서의 경험과 역량이 쌓이면 마을과 관련된 도시계획 등의 작업으로 확장할 수 있고요. 여러 현실적인 제약이 있을 테지만 이상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서: 동네에서의 역할을 어느 정도 하면서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전국 어디로든 뻗어나가야겠죠. 물론 최 소장의 생각은 다를 수 있어요. (웃음) 현재 진행 중인 작업으로 지랩과 협업하고 있는 역삼동 근린생활시설 대수선, 서서울미술관 공간 디자인 등이 있는데요. 그렇게 우리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크고 작은 작업들을 해나가고 싶어요.

 

김: 해야 하는 일 말고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도 들려주세요. 현실적인 제약과 조건을 잠시 제쳐둔다면, 어떤 프로젝트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최: 목욕탕이요. 대중 목욕탕을 설계해보고 싶어요. 최종적으로는 운영까지 하는 게 목표예요. 학생 때부터 목욕탕 주인이 제 꿈이었어요. (웃음) 

서: 도심에 있는 사찰이요. 교회나 성당은 도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사찰은 흔치 않잖아요. 종교가 있는 건 아니지만, 막연하게 도심 속 사찰을 디자인하는 일을 꿈꿔왔어요.

 

서준혁, 최세진은 2024년 5월호에서 신주영, 황현혜(건축사사무소 엠오씨 공동대표)의 오늘을 듣고 싶어 했다.​ 

 

월간 「SPACE(공간)」 677호(2024년 04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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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혁, 최세진
서준혁과 최세진은 국립부경대학교 건축학부를 졸업하고 각각 효창종합건설과 지랩, 소보건축사사무소와 건축사사무소 사무소효자에서 실무를 경험했다. 2022년부터 홍제천을 기반으로 건축사사무소 만화기획을 운영하고 있으며 점점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사용하는 이에 귀기울이고 주어진 환경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그것을 토대로 고유한 이야기가 담긴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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