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5월호 (통권 678호)
건축에서 말하지 않은 것들
이번 호 원고를 검토하다 “우리 건축계의 순결한 형태 욕망에 대해 조용히 반기를 드는”이라는 문구에서 시선이 멈췄다. 「SPACE(공간)」 5월호 프레임의 주인공 건축사사무소 김남(이하 김남)의 작업에 대한 서재원(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대표)의 비평 중 일부다. 그 앞뒤 구절을 거칠게 꿰매 보면 대략 이런 의미다. 미학(순수한 추상성)을 중시하는 건축가에게는 사소할 수 있는, 유지관리와 같은 요소들을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사용자를 계몽하기보단) 현재와 미래의 실질적인 필요에 부응한다. 그러한 태도는 작가성과 물성을 숭배하는 현재 건축계 주류의 흐름과는 결을 달리한다는, 혹은 주류가 놓치고 있는 가치에 주목한다는 의미다. ‘조용한 반기’는 마치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모순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겸손함과 경청을 기본 태도로 장착한 김진휴, 남호진 두 건축가의 성품과 건축적 성향을 볼 때 일견 수긍이 간다. 다수가 말하지 않는 것들을 수면 위로 올리는 데는 큰 목소리보다 조용한 뚝심이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김남은 그간의 작업을 꿰뚫는 일관된 주제가 있다기보다는 주어진 조건을 바탕으로 더 나은 것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진행해왔다며, 미래에 대해서도 섣부른 예상은 피한다. 다만, 지난 몇 년간 자주 입에 올렸던 시간ㆍ영역ㆍ기술이라는 키워드 아래, 건축주의 일상, 서로 다른 속도로 낡아가는 외장재, 건물 주변의 영역, 고민을 실현하는 강력한 도구로써 구조 등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러한 생각은 서재원이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 말하는 특징적 태도로 수렴될 수 있을 게다. 서재원은 김남의 작지만 통쾌함을 풍기는 초기작에서 출발해, 이번 호에 소개하는 일원동 다세대주택 웜 앤 쿨(2021), 성북동 단독주택 썸 클리어 스토리즈(2022), 흑석동 이 도시의 유치원(2022), 제천의 단독주택 호숫가의 집(2023)을 따라가며 이들의 변화를 추적한다. 그리고 타인을 배려한 나머지 화답할 여유를 잃어버리고 대답에 급급해질 수 있음을 염려하며 용기를 낼 것을 독려한다.
5월호에 수록된 조경가 정영선(조경설계 서안 대표)과의 인터뷰 역시 말해지지 않았던 것들을 다룬다. 조경은 건축의 대표적인 협업 분야이지만 흔히 건축 설계의 사후 단계에서 부수적인 부분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조경가의 관점으로 건축을 넘어 경관과 국토를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지난해 세계조경가협회(IFLA)에서 매년 세계적 수준의 활동을 보인 조경가에게 수여하는 제프리 젤리코 상을 받은 정영선은 한국 조경 분야를 개척해온 1세대 조경가다. 올해 4월에는 감독 정다운의 다큐멘터리 ‘땅에 쓰는 시’가 개봉했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는 9월까지 전시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를 개최하는 등 조경가 정영선 개인에게 하이라이트를 비추는 듯 보인다. 하지만 국내 조경사와 건축사의 굵직한 작업들을 관통하고 있으며, 주요 학자와 조경가들을 배출해온 조경설계 서안의 수장이기도 한 정영선의 이력을 감안한다면, 조경이라는 분야 자체가 건축계를 비롯한 대중에게 주목받는 계기이기도 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서 다시 봄으로 이어지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정영선의 작업을 조명한 다큐멘터리는 자생식물로 채워진 아름다운 정원에서 출발하는 듯하지만 자연스럽게 오늘날 한국적 경관, 생태적 가치 등으로 확장되며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시야를 넓힌다.
이번 호에서는 리처드 마이어의 솔올 미술관 보도 태도를 통해 수면 아래 잠겨 있는 성범죄자의 건축 작품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를 끌어올린다. 덧붙여 백운동천 일대 땅과 물의 역사를 회복하자는 허서구(허서구건축사사무소 대표)의 목소리와 리노베이션을 앞둔 미술관에 대한 이야기도 담았다.
편집장 김정은
「SPACE(공간)」 2024년 5월호 (통권 678호) 목차
006 EDITORIAL
008 NEWS
028 PROJECT
최양업 신부 탄생기념경당 - 우연히 프로젝트 건축사사무소
Thomas Choi Birth Memorial Chapel - Woo-projects Architects
036 PROJECT
상동 갤러리-주택 - 정진국 + 건축사사무소 스튜디오 뮤트
Sangdong Gallery-House - Jeong Jinkouk + Studio M.U.Te.
044 FRAME
지금 여기 필요한 것: 건축사사무소 김남
Necessary for the Here and Now: KimNam Architects
046 FRAME: ESSAY
시간, 영역, 기술_ 김진휴, 남호진
Time, Territory, Technology_ Kim Jinhyu, Nam Hojin
052 FRAME: PROJECT
호숫가의 집
A House by a Lake
060 FRAME: PROJECT
썸 클리어 스토리즈
Some Clear Stories
064 FRAME: PROJECT
웜 앤 쿨
Warm and Cool
070 FRAME: PROJECT
이 도시의 유치원
The Kindergarten of the City
076 FRAME: CRITIQUE
대답, 대화, 화답_ 서재원
Answer, Conversation, Response_ Suh Jaewon
082 LIFE
1세대 현직 조경가가 걷는 길: 정영선_ 정영선 × 박지윤
The Road Taken by a First Generation Landscape Architect: Jung Youngsun_ Jung Youngsun × Park Jiyoun
092 LIFE
공간의 고유한 시간을 꺼내어 보편으로: 한 & 모나_ 한 & 모나 × 박세미
Extracting the Unique Time of Space into Universality: Han & Mona_ Han & Mona × Park Semi
100 REPORT
예술과 삶이 교차하는 자리, 리노베이션을 앞둔 미술관_ 박지윤, 김지아
The Intersection of Art and Life at an Upcoming Art Museum Renovation_ Park Jiyoun, Kim Jia
116 REPORT
서울의 땅과 물, 이야기를 잃지 않으려면: 백운동천 물길공원 계획안_ 허서구 × 윤예림
Preserving the Land, Water, and Stories of Seoul: The Baegundongcheon WaterWay Park Masterplan_ Heo Seogoo × Youn Yaelim
122 REPORT
성범죄를 저지른 건축가의 작품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_ 김보경, 송률, 여성건축인모임 SOFA
How to Engage with the Work of an Architect Who Has Committed a Sexual Offence_ Kim Bokyoung, Ryul Song, Society Of Feminist Architects
126 RELAY INTERVIEW: I AM AN ARCHITECT
적절함의 묘를 찾아_ 신주영, 황현혜 × 김지아
Discovering the Germane: Shin Juyoung, Hwang Hyunhye_ Shin Juyoung, Hwang Hyunhye × Kim Jia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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