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건축을 공부할수록 설계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경험하고, 설계 프로세스를 밟으면서 설계 역시 건축이라는 커다란 세계를 이루는 역사, 공학, 예술과 같은 요소 중 하나임을 깨닫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본 ‘탈건’이라는 용어는 앞선 건축의 복잡다양한 영역은 흐리고 단순히 설계를 관두면 건축을 떠난다는, 설계 중심의 이해를 공공연히 드러낸다. 이번 기사는 이 설계 중심의 이해에서 벗어나고자 박유나(DL이앤씨 법무지원팀), 윤준환(어반레코드 대표), 이지회(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데이비드 바술토(아크데일리 창립자)를 만나 건축의 다른 매력을 발견하여 설계를 떠난 ‘탈설계’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서스펜스의 도시, 워치 앤 칠 3.0> 전시 전경/ Image courtesy of MMCA
이지회(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 18기 SPACE 학생기자(김보경, 박민정, 박재아, 조범희)
학생기자: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과거 3개년 프로젝트 ‘워치 앤 칠’ 스트리밍 플랫폼 및 국제 순회전, 삼성미술관 플라토의 <매스스터디스 건축하기 전/후> 등 다년간 현대미술과 건축을 아우르는 전시를 기획해 왔다. 전시 기획을 꿈꾸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이지회(이): 인생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 현대미술 비평을 공부했고 이 학과는 스튜디오 수업과 비평 논문을 같이 진행했다. 포스트 마르크시즘과 같은 정치색이 짙고 개념적인 커리큘럼을 중요시하는 부분 등, 그런 학풍이 좋아서 진학했지만, 3년 정도 있다 보니 실제 현상과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담론 간의 괴리가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다. 예를 들면 자본으로 굴러가는 예술 시장과 전시 안에서 모든 담론이 일어나는데 이런 현상들을 적대시하는 등의 모습들이 솔직하지 못하다는 단순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예술에 대한 복합적인 생각들과 동시에, 워낙 건축이나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던 학생이었기에 무작정 건축사무소에 지원해 인턴십도 했었다. 하지만 사무소에서 일하면서 캐드, 모델링 등과 같은 설계에 개입하는 것보다 말을 하거나 개념적으로 건축 콘셉트에 관하여 이야기를 한다거나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 더 능력을 잘 발휘했던 것 같다. 그때 잘하는 것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건축 잡지사에서 에디터로도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기획을 접하게 됐다. 전시라는 것은 항상 나와 맞닿아 있는 것이었고 건축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이 전환 속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찾다 보니 전시 기획 또는 텍스트를 통해 개념적으로 건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 대해 관심이 생겼고, 그걸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다.
학생기자: 예술에서 건축으로 넘어가게 됐던 계기는 무엇인가?
이: 건축은 예술과 비교하였을 때 조금 더 실천적이고, 실질적으로 사람들의 삶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예술은 사회적인 내용에 관해 이야기하긴 해도, 그 결과에 대해 작가의 개인적인 서사를 빼두고서는 얘기할 수가 없는 것 같다. 건축 역시 개인적인 서사가 있을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용자와 작업 사이의 접점, 자본의 역사와 맥락, 그 공간의 맥락, 사회적인 맥락, 정치적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이 실천이라면 실천일 수도 있겠다. 또한, 일반 대중의 삶과 사회에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 더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학부가 미술 관련이다 보니, 건축 관련 석사를 통해 건축을 더 깊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미국의 ‘CCCP(The Masters of Science in Critical, Curatorial, and Conceptual Practices in Architecture)’를 알게 되었다. 직역하면 ‘비평적이고 개념적이고 큐레이토리얼한 건축 실천’이다. 즉 설계를 제외하고 건축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배운다고 보면 된다. 나를 제외한 다른 학생들은 모두 건축학과 출신이었지만 분위기가 매우 열려 있어 이곳으로 최종 진학을 하게 됐다.
나는 기존에 전시 경험도 있어서 자연스럽게 전시 기획을 선택했다. 내가 그 학과의 세 번째 졸업생이었던 것을 보면, 신생이고 굉장히 실험적인 과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때 마침 정다영(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이 건축 큐레이터로 국립현대미술관에 채용이 됐고, 한국에도 건축 큐레이터라는 직업과 함께 건축 아카이브도 생기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나만의 자신감이 생기면서 이 분야를 만들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상황과 나의 배경이 좋은 타이밍으로 융화된 게 아닐까?
학생기자: 예술 비평과 건축 비평을 둘 다 공부해 본 결과, 둘의 차이가 있다고 느끼는가?
이: 아예 분야가 다르다 보니 참고해야 하는 부분들 또한 다른 건 확실한 것 같다. 미술은 전반적으로 전시장 자체에서 작업이 완전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건축은 조금 다르다. 건축은 외부에 진짜 건물이 있는 공간이 주 무대이다. 파빌리온과 같이 전시장으로 가져온 건축은 그 주 무대가 전시장이 되겠지만, 일반적으론 전시장 밖이 주 무대가 맞다. 따라서 예술 작품과 건축물을 읽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큐레이터로서 그 작품들을 봤을 때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만들었을지를 궁금해하는 건 공통점인 것 같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제작 의도이기 때문이다. 책임감의 측면에서도, 건축가에게 지어지는 책임감이 더 무거운 것도 하나의 차이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학생기자: 기획은 아직 한국에서 전공으로서 깊게 다루어지지 않는 분야다. 특히 건축 기획은 더욱이 생소한데, 건축 기획을 전공하면 어떤 부분이 좀 상세하게 다뤄지는지 궁금하다.
이: 미술관에서 미술을 전공하는 큐레이터가 건축 전시를 하거나 혹은 전시에 대해 전문적 지식이 없는 건축가가 건축 전시 기획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건축 큐레이팅을 전문적으로 하는 인물을 양성하자는 것이 CCCP가 주창하는 바였다. 이론가 마크 위글리 가 이끄는 건축학교였기 때문에, 건물을 짓는다는 실무적인 측면 외에도 더 다양한 실천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확장된 건축이라는 개념과 행위들을 통해 말하고자 했다. 실제 커리큘럼도 건축 기획뿐만 아니라 건축 보존, 도시 설계, 도시 디자인 등 건축적으로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이를테면 도시 디자인을 할 때 마스터 플랜이 생겨서 인근 주민들과 협의해야 하는 상황일 때, 실제 현장에 투입되어 직접 공동체와 소통을 해보는 수업도 있었다. 실무적인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이것을 전시라는 결과물로 만들 수 있는 문 역시 열려있는 편이었다.
이 학과에서 배웠던 또 다른 한 가지는, 건축 전시라는, 어쩌면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뼈대를 학과 내에서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19세기 말에 있었던 크리스탈 팰리스 전시 부터 시작해서 MoMA에서 했던 인터내셔널 스타일 건축 전시 까지 진행되었던 논리들의 흐름을 배우다 보니 건축 전시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또 다른 차원의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들과 함께 전시 행위 자체가 건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학생기자: 한국에서도 건축 전시 기획 분야가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건축 전시의 흐름을 보았을 때, 한국에서도 건축 전시의 뼈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느끼는가?
이: 과거에 비해 관심이 모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건축 기획에 종사하는가의 비율 차이일지도 모르지만, 이를 차치하고도 여전히 건물이 아니면 건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다. 예를 들면 자주 협업하는 바래(공동대표 전진홍, 최윤희)처럼, 실제 건물이 아닌 건축 행위들을 분투하며 진행하는 실무자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행위들이 결국 ‘왜 건물은 안 짓는가?’로 귀결되면서, 자신의 길을 계속 영위해 나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게 된다. 나는 일반적인 특정 의뢰인과 그들이 영위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의뢰인, 그리고 그들이 요구하는 무언가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술관이기 때문에 가능한 특별한 의뢰들이 건축가들을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게 할 수 있는 중요한 메커니즘이 될 수 있다고 보며, 특히 내가 소속된 국립 미술관이기에 할 수 있는 차원의 전시 큐레이팅 또한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많은 기업에서 국립현대미술관과의 협업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이런 고무적인 상황들을 보면, 조금씩 지금의 분투들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기자: 방금 언급한 것처럼 ‘건물만이 건축은 아니다’라는 개념이 매우 흥미롭다. 이는 어쩌면 기존의 건축 전시가 2차 창작물(모형, 도면)만을 전시장에 들여오게 되었던 한계점을 타개할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이: 미술관이 하나의 실험적인 의뢰인이 된다는 것은 분명히 중요한 지점이지만, 분명 미술관 전시에는 그 외의 가치들도 존재한다. 특정 자료를 기록하고 기념하는 것 또한 필수적이라고 보기 때문에 이 두 가지가 같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경가 정영선의 전시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가 4월 5일 식목일에 개막했다. 이 전시는 지금 내가 받은 이 질문과 비슷한 크리틱을 나에게 안겨준다. 건축 도면에는 건축 이외의 것들이 많이 생략된다. 사실 건축 주변의 조경과 식생은 굉장히 다양하다. 전시의 매체 자체는 어떻게 보면 상상 가능한 범주 안의 것들이다. 사진, 도면, 스케치, 책, 그리고 영상과 같은 것들인데, 나는 이 요소들이 더욱 다차원적으로 보이길 원하고 또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 사이에 유의미한 접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경은 심어진 직후보단 시간이 입혀져 10년 정도 지나 땅에 자리를 잡아야 비로소 조경가가 원했던 그림이 나온다. 그 때문에 그런 조경의 면모들을 전시에 녹여내고자 노력했다. 정영선은 80이 넘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과거보다 미래를 더 중요시해 그의 미래관을 담을 수 있는 전시를 기획했다. 전시에서는 서울관의 종친부 마당과 전시마당에 정원을 커미션으로 계획하기도 했다.
학생기자: 미술관의 역할은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변해왔던 것 같다. 미술관의 정체성을 이끌어가는 학예사로서 현재 미술관 혹은 전시의 역할과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전시가 만화영화 심슨과 같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심슨은 관람자의 웃음 포인트가 각각 다르다. 어린이들이 웃을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와 함께 정치·사회적인 맥락을 매우 세심하게 아는 사람만이 웃을 수 있는 고도의 정치적인 풍자도 공존한다.
전시 역시 이처럼 다양한 레이어들이 함께 존재해야 한다고 본다.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한 이미지와 함께 큐레이터로서 전시를 통해서 전달하려는 메시지 또한 보여야 한다. 하지만 이 다층의 레이어를 모두가 이해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이 우리에게 주는 양면성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훨씬 소통이 쉬워졌다는 점이고, 이 흐름을 그냥 무시할 수는 없다. 워치앤칠 시리즈는 나에게 이런 흐름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기존의 전시, 기존의 ‘관’의 색깔을 조금 내려놓는 시도였다.

<서스펜스의 도시, 워치 앤 칠 3.0> 전시 전경/ Image courtesy of MMCA
학생기자: ‘워치 앤 칠’ 시리즈는 팬데믹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지리적 경계를 허물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시리즈를 기획할 때 가장 우선시했던 요소가 궁금하다.
이: 앞선 답변에서의 기존 ‘관’의 색깔이 근엄한 상아탑과 같은, 주어진 길 위에 곱게 올려져 있는 고상한 미술관이라고 비유하면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관의 색깔과 미술관의 굴레를 전시가 좀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의 성격을 없애기 위해 조금은 앙증맞은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은 그저 나의 기조다. 그래서 트렌디한 디자이너들과 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워치앤칠 시리즈는 세 번이나 진행했던 시리즈였다. 워치앤칠에서 가장 중요했던 점은 미술관의 역할과 온, 오프라인 전시의 위계였다. 첫 번째 워치앤칠을 기획할 당시는 팬데믹으로 미술관에 관객이 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의 자원을 어떻게 더 공유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고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방식이 매우 건축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국립현대미술관뿐만 아니라 다른 기관의 소장품들까지 협업을 통해 모두 온라인에 공유했다. 팬데믹이 끝난 이후에도 여전히 워치앤칠 시리즈의 중심은 온라인이 차지하고 있기를 희망했고, 이때 미술관을 하나의 팝업스토어로 사용해 보려는 시도를 처음 하게 됐다. 실제로 워치앤칠 시리즈의 마지막을 보면 전시장 안에 정보가 많다기보단 오히려 애플 스토어처럼 아이패드가 많고, 관람객에게 ‘구독하세요’와 같은 권유형의 행동 지시를 계속해서 한다. 오프라인을 팝업스토어와 같이 조금 가볍게 유지하고, 작품의 다양한 정보들은 온라인에서 감상할 수 있게끔 위계를 바꾸는 것이 매우 중요한 지점이었다. 그렇게 미술관의 문턱을 조금 낮출 수 있었고, 그럼에도 미술관의 가치는 절감되지 않았다.
앞서 말한 인스타그램의 유행에 관련된 내용을 다시 언급하고 싶다. 현재 팝업스토어 형태의 마케팅이 매우 많아졌음에도 이를 무시하는 건 매우 쉬운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왜 사람들이 요즘 팝업스토어에 열광하고, 기업들이 왜 계속해서 팝업스토어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서 해야 한다. 나는 미술관이 팝업스토어가 되어 일시적 경험을 선사하면 관객들은 귀가 후에 침대에서 작업을 관람하길 희망했고, 이런 생각을 구현하기 위해 매 시즌 다른 건축가들과 협업을 통해 각 시리즈마다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예를 들어 가장 마지막 워치앤칠은 서스펜스가 중요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서늘한 공간 연출을 위해 노력했다. 감각에 관한 이야기들이 시리즈 내내 계속됐고, 이런 것들에 대해 전시장이 너무 체험장 같다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목표하는 바였기에 만족스러웠다.
학생기자:
이: 작가 양혜규 전시의 경우, 기존에 없는 작업을 만들기를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양혜규도 내가 건축 베이스라는 걸 알아서 서로의 합이 어떨지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시의 공간 구성에 구축적인 요소가 많았고, 전시 도록에도 그리드와 같은 요소들이 등장한다. 글 내용 또한 공간을 재는 방식, 예컨대 몸으로 재기, 자로 재기, 물로 재기 등의 다양한 방식에 대해서 언급한다. 이런 모든 부분이 구축적인 느낌을 많이 보여주는 것 같다.
양혜규의 작업에는 다양한 형태의 사물들을 증식시켜 특정 형태를 만드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전시 공간 디자인 자체는 이 작업을 넣었을 때 좀 충돌되도록 접근했다. 전시장 안에 문들이 굉장히 많이 나열되어 있던 걸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그건 전시가 진행됐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5전시실의 모든 문들을 재서 일렬로 나열해 놓았던 것이다. 크고 작은 문들을 지날 때마다 관람객을 둘러싸는 공간이 연속적으로 변화하고 관람객도 이를 느끼길 바랐다. 나는 건축가가 아니라 큐레이터이고 현대미술 작가와의 협업이었기 때문에, 작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무언가를 제안하면 나의 감각들을 섞어서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협업했다.
학생기자: 전시를 기획하는 데 있어서 건축 역사 이론, 건축 디지털 교육, 건축 디자인 교육, 건축법 등 어떤 학문이,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가?
이: 건축 기획 전공과 설계 경험은 모두 다방면으로 나에게 도움을 주었다.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동료들은 내 전시가 굉장히 공간적이라고 한다. 나는 이를 나의 특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카이브 자체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경험 자체를 최우선으로 보는 게 있는 것 같다. 건축 역사나 이론 역시 건축 전시를 기획하거나 글을 쓸 때 늘 언급하게 된다. 건축이 미술관에서 너무 비주류다 보니 왜 계속 건축을 전시 글에서 언급하냐고 질문을 받기도 한다. 예컨대 마르셸 뒤샹 전시 때에는 프레데릭 키슬러(Frederick Kiesler)와의 접점에 관한 얘기를 어떻게든 넣으려고 했다. 나의 근간이 조금 특별하여 보다 확장된 시야에서 전시 기획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라고 본다.


전시 전경/ Image courtesy of MM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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