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3월호 (통권 676호)
고즈넉하고 담장 높은 주택가, 정치인이 사는 동네, 취향 좋은 카페나 맛집이 많은 골목상권. 세대마다 또 관심사에 따라 연희동 하면 떠올리는 인상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연희동의 풍경과 변화는 서울의 여러 동네들이 뜨고 지는 가운데서도 흥미롭다. 특히 오래된 주택의 리노베이션이 주목받고 도시 건축 유형의 다양성이 아쉬운 지금, 대중과 호흡하며 자생적으로 변화하는 동네의 풍경은 도시・건축계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에 연희동에서 여러 작업을 한 김종석(쿠움파트너스 대표)과 홍주석(어반플레이 대표), 더불어 연희동에서 오래 거주하며 일하고 있는 윤승현(중앙대학교 교수), 이진오(건축사사무소 더사이 대표), 연희동과 직접적 관계는 없지만 다세대・다가구 주택이나 근린생활시설 등 소규모 상업 건물 작업을 해온 전상규(보편적인건축사사무소 대표)와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Kim Yongsoon
「SPACE(공간)」 × 김종석 쿠움파트너스 대표 × 윤승현 중앙대학교 교수 × 이진오 건축사사무소 더사이 대표 × 전상규 보편적인건축사사무소 대표 × 홍주석 어반플레이 대표
연희동의 풍경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김정은: 연희동은 1960년대 후반 시작된 연희 토지구획 정리사업지구의 단독주택지로 조성된 동네다. 블록 내부로 들어갈수록 1970년대 지어진 소위 ‘불란서식 주택’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어 연희동만의 고유한 풍경을 유지하는 가운데, 지난 10여 년간 이러한 주택들이 상업 공간으로 리노베이션되면서 변화하고 있다. 연희동의 풍경에 대한 각자의 인상이 궁금하다.
전상규: 깍쟁이 같은 동네 위주로 작업하다가 (웃음) 오랜만에 연희동을 방문해 보니 아기자기하고 사람 냄새나는 유연한 변화가 점진적으로 퍼져나가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 사무소에서 주로 작업하고 있는, 1970년대 개발된 주택지인 역삼동이나 논현동, 세곡동과 비교하면 연희동은 대체로 평지에 가까운 완만한 경사지 지형과 교행을 편안히 할 수 있는 도로폭들이어서 자생적인 개발을 잘 수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윤승현: 분지라는 지형적 특성의 영향도 클 거라 본다. 동쪽 한편으로는 연세대학교로 닫혀 있고, 이어서 인왕산, 서북쪽에는 작은 안산과 궁동산으로 말려 올라간다. 그래서 하나의 정체성이 계속 유지될 수 있었을 거다.
김종석: 연희동 일대는 용도지역상 제1종 전용주거지역과 제1종 일반주거지역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나지막한 건물 위주의 마을로 지금의 고즈넉한 모습을 유지해왔다. 오래된 주택과 신축 건물이 공존하면서 더 재미있는 도시 건축 풍경이 만들어진다.
홍주석: ‘건폐율 50% 이하, 용적률 100% 이하’라는 제1종 전용주거지역의 조건이 일반적인 시행사나 개발사들이 수익성을 올리기 어렵게 하기 때문에 연희동의 변화를 느리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인 듯싶다.
윤승현: 또 다른 특징은 필지 크기다. 동교동, 서교동, 연남동, 합정동, 망원동 등은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신도시로 조성된 동네들이다. 당시 대부분 작으면 40평, 크면 60평 정도로 필지를 구획해서 분양했다. 워낙 교통도 좋고 신촌과 가깝기도 해서 시내로 출퇴근하는 고소득 직장인들에게 인기 있는 지역이었다. 1970년대 들어서 연희동을 개발할 때는 필지를 100평 단위로 구획하기 시작한다. 나는 어렸을 때 동교동과 서교동에서 살았는데, 초・중・고등학교 친구들은 상당수 강남으로 이사를 했다. 경제가 성장하며 생활이 풍족해지고 원하는 거주 면적도 점점 커지는데, 필지가 작았던 서교동과 동교동에서는 해결이 어렵지 않나. 그래서 강남의 압구정동, 논현동, 방배동 등이 만들어지면서 그쪽으로 넘어간 거다. 반면 연희동에 사는 사람들은 넘어갈 이유가 없다. 그래서 연희동 주민들의 절반 이상이 40년 가까이 살고 있는 게 아니겠나.

연희동 130-13은 쿠움파트너스가 기획, 시공 혹은 설계한 76채 가운데 초기 프로젝트다. 현재 연희로11가길의 카페거리를 중심으로 도보로 10분 정도 걸리는 반경 500m 내외를 상업시설이 적절하게 분포된 상권으로 개발했다. ©Kim Yongsoon

©Lee Hanul

연희동 124-31. 하나의 건물에도 옛 마을의 형태를 담으려고 했다. 건물 내 골목길 같은 동선도 만들고, 여러 집이 공유하며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마당을 배치했다. ©Lee Hanul

연희동 124-31. 심리적인 장애물을 없애기 위해 대문이나 담장은 되도록 없애고, 도로에서 사용자의 접근성을 높였다. 테라스나 계단, 브리지 등을 통해 내외부의 시선을 열어두면, 길을 걷던 사람 누구나 편하게 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 ©Lee Hanul
거주민의 라이프스타일과 낮은 부동산적 가치가 만든 기회
김정은: 연희동의 주민 평균 나이를 서울의 다른 지역과 비교해보면 20대와 70대 이상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이들의 라이프스타일도 영향이 있었을 것 같다.
홍주석: 1970년대부터 연희동 100~150평 대지의 단독주택에 살았던 주민들은 경제력이 탄탄한 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한국적 현실에서] 지금까지 단독주택을 유지한다는 것은 고유한 라이프스타일이 있다는 말이다. ‘나는 아파트에 못 산다’는 창작자나 예술가들도 꽤 있는 것 같다. 이런 라이프스타일이 결국은 상권의 특색을 형성했다고 본다. 프랜차이즈보다 로컬 브랜드를 선호하고, 대형마트 대신 사러가마트(1975년 개점)에서 장을 본다. 이런 문화가 연희동에서 좋은 로컬 브랜드가 계속 탄생하는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진오: 연희동은 옛 기억이 도시 구조 안에 남아 있는 긍정적인 특수성이 있는 것 같다. 아마 주거지와 상업지가 균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오랫동안 부동산적인 호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윤승현: 그 얘기는 달리 말하면, 투자적 가치로만 연희동에 집을 마련한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는 의미가 된다. 아직도 부동산 가치로 연희동을 평가하지 않는다. 그게 오히려 기회를 만든 거다. 몇 년 전 바르트 리유저(넥스트 아키텍츠 설립 파트너)라는 건축가가 서울시립대학교에 방문교수로 왔다가 홍익대학교 일대(이하 홍대)를 경험하고 『PLANNING SEOULUTIONS FROM HONGDAE』라는 짧은 책을 냈던 게 생각난다. 유럽의 도시는 10~20년이 지나도 비슷해서 생동감을 잃었다고 느꼈는데, 매일매일 변화하는 홍대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거다. 그는 “한국의 계획 시스템은 건물 소유주를 예상치 못한 변화에 대비해 보호해야 하는 거주자가 아닌, 부동산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기업가로 인식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혹자는 건축적 응집력이 부족해 엉망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기업가적 사고방식을 가진 주민들이 새로운 수요에 맞게 점진적으로 건물을 개조하면서 “다양한 재료가 사용되었고, 세밀한 결을 지닌 다채롭고 걷기 좋은 거리로 변모했다”고 홍대 변화의 매력을 설명한다. 연희동 역시 그러한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진오: 연희동은 필지가 크고 처음 건물을 지을 당시 용적률을 모두 채우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치열한 용적률 게임을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수직증축뿐 아니라 별동을 만들며 연결이 가능한 거다. 또 약간 구릉지이기 때문에 개발을 덜한 지하나 지층들이 남아 있다. 그 여지 안에서 적정한 증축과 주택의 변형 그리고 프로그램의 이전을 통해 도시 구조의 기억이 남아 있는 상태로 주거와 상업이 복합된 마을을 유지하는 데 쿠움파트너스나 어반플레이가 지속적인 역할을 해온 셈이다. 그런 면에서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볼 지점이 있는 것 같다.
김정은: 쿠움파트너스는 연희동에서만 76채가량의 기존 주택 변화에 관여해왔다.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김종석: 쿠움파트너스가 기획, 시공 혹은 설계한 76채 가운데 현재 연희로11가길의 카페거리를 중심으로 약 50여 채가 몰려 있다. 2009년 사람들이 연희동으로 유입되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중심 상권에 빠르게 변화를 주기 위해서, 지역 주민이 가지고 있던 건물을 10년간 임대해 우리가 직접 고치고 관리하며 작가나 임차인, 좋은 로컬 브랜드에게 다시 임대하는 방식을 취했다. 1년 반 정도 외부에서 투자를 유치해 연희동에서만 10채가량의 집을 리모델링하고 운영까지 하다 보니 동네가 확연하게 변한 것처럼 느껴졌다. 2년이 넘어가자 언론에서 연희동에 카페거리가 생겼다며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를 본 다른 주민들도 점차 본인들의 주택을 개조하려는 의지가 생겼고, 이제는 직접 의뢰를 한다. 30년 가까이 주민들과 교류하며 동네 반장처럼 여러 일들을 해오며 소통한 덕분이다. 그 과정에서 대학가와 인접한 고즈넉한 단독주택가라는 연희동의 특수성을 고려해 도보로 10분 정도 걸리는 반경 500m 내외를 상업시설이 적절하게 분포된 상권으로 기획했다.
윤승현: 초기에 쿠움파트너스가 투자 유치를 한 이유는 사업의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그 불확실성이 사라지고 나니, 수십 년 동안 이곳을 점유하고 있던 주민들 입장에서는 커다란 투자적 가치로 리모델링을 한다기보다, 그야말로 부가적인 가치가 형성된다는 매력에 김종석에게 의지했다고 볼 수 있겠다.
쿠움파트너스는 연희동에 약 70여 채의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쿠움파트너스의 즉물적 건축
김정은: 연희동에서 오랫동안 주민들과 소통하며 다양한 역할을 도맡는 동네 반장을 자처한다는 점에서 김종석이 이끄는 쿠움파트너스는 상당히 독특한 방식으로 일한다. 일종의 시행사이자 시공사라고 볼 수 있는데, 여러 건축사나 어반플레이와 같은 콘텐츠 관련 회사와 협업해가며 일을 해왔다. 그렇다면 오래된 주택들을 어떤 방향으로 고치고자 했나?
이진오: 연희동을 돌아보면 쿠움파트너스가 관여한 건물들의 일관된 특징이 보인다. 걷기 좋은 동네의 골목길을 건물 안으로 연장하는 방식 같은 것 말이다.
김종석: 심리적인 장애물을 없애기 위해 대문이나 담장은 되도록 허물고, 도로에서 접근성을 높였다. 테라스나 계단, 브리지 등을 통해 내외부의 시선을 열어두면, 길을 걷던 사람 중 누구나 편하게 공간을 경험하고자 할 것 같았다. 사람들은 자투리 공간에 화분 하나만 있어도 내 정원처럼 느끼더라. 어린 시절 시골 개울가 징검다리에서 놀던 기억 때문에 브리지를 만들고 작은 동산에서 옥상정원의 모티브를 얻었다, 무엇보다 하나의 건물에도 그 안에 옛 마을의 형태를 담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건물 내에 골목길 같은 동선도 만들고, 큰 마당이 있으면 가운데 건물을 넣으며 뒷마당, 앞마당을 만들고 이집 저집에서 공유하며 유기적으로 연결하게 됐다. 마당은 중정이나 선큰, 옥상정원 등의 형태로 다양하게 만드는데, 연면적 손실이 좀 있더라도 공용부에 열린 공간이 있으면 상업적 가치가 증폭되는 경험을 많이 했다.
전상규: 보통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면 그 대지경계선 안에서 좋은 결과물을 상상하면서 작업하기 마련이다. 나도 작업을 하다 보니 어느새 같은 골목에 몇 채의 집을 설계하게 됐는데, 처음부터 이렇게 작업을 하게 될 줄 알았다면 그 골목의 성격을 달리 부여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하더라. 어느 시점부터 골목이나 마을을 만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김종석: 기본적으로 시각적 소통이 잘 되면 공간의 가치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알았지만, ‘골목’에 대한 명확한 개념은 없었다. 그러다 연남동 세모길 마을 주민들에게 자문을 하며 담장을 모두 없앴다. 한 1년쯤 후에 그곳에 다시 가 보니 베이커리나 향수숍, 햄버거 가게 등이 엄청 들어오더라. 그런데 경의선 숲길 공원 길가에 있는 카페보다 오히려 골목 안쪽 건물이 인기가 있어 임대료가 높게 형성되는 것을 발견하고, 담장이 없는 풍경이나 마을에 대한 생각이 확장된 것 같다.
이진오: 쿠움파트너스는 대부분 콘크리트를 활용해 증축이나 리모델링을 한다. 보통 증축에서는 하중이나 정확성 때문에 철골을 더 선호하는 편인데, 쿠움파트너스는 콘크리트의 물성을 활용해 스타일과 조형성을 계속 만들어가는 것 같다. 또 상황에 따라서 콘크리트를 노출하면, 단열선이 안쪽에 있기 때문에 중요한 상황에서 면적 손해도 어느 정도 감수하게 된다. 노출콘크리트를 계속 사용하는 이유가 있나?
김종석: 철골구조를 한번 했는데 신축부와 구축부가 연결이 잘 안 되더라. 연결 부위에서 결로나 방수 문제가 많이 발생했다. 그러나 연결부에 콘크리트를 타설하니 접착력이 좋고 방수를 하더라도 오래가더라. 또 노출콘크리트의 나이 들어가는 물성을 좋아해서 자주 쓰기도 한다. 그리고 많은 색을 사용하는 단독주택에 덧붙이는 부분이 조화를 이뤘으면 좋겠다 싶어서 회색을 많이 쓰게 되는데, 벽돌도 회색 시멘트 벽돌을 쓴다. 또 세입자들이 들어와서 인테리어를 하면, 멀리서 봐도 그 내부가 예쁘게 잘 보이는 것이 좋다. 세입자들을 돋보이게 해주는 건축재료는 노출콘크리트만한 게 없다.
이진오: 콘크리트라는 게 어떤 사람들의 활동의 배경이 되는 중성적인 재료라는 데 일정 부분 공감한다. 결국 건축이 드러나는 게 아니라 삶의 배경으로서 존재하고, 그 안에서 프로그램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윤승현: 나는 재료보다는 공간을 조직하는 방식, 거친 자유로움이랄까, 그런 부분이 훨씬 흥미롭게 보인다. 김종석이 현장에서 많은 것들을 소화하고 있지만 제도권 안에서 건축 전문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경계를 넘나드는 부분이 많다. 그것이 단점일 수도 있고 장점일 수도 있다는 거다. 특히 증축이나 리노베이션의 경우 까다로운 제약이 많기 마련인데, 사용자의 입장에서 생기는 욕구를 즉물적으로 분출한다. 예를 들어 개울을 건너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고, 길을 가다가 자연스럽게 건물로 흘러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사용자 입장에서의 욕구를 직설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오히려 사람들 간의 소통에 일정 부분 유효한 기회를 만드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하는 면에서 흥미로움을 느꼈다.

연희동 190-14. 기존 주택에서 증축하는 데 불리한 공간은 털어내 건축면적을 확보한 뒤, 일조권 제한이 적은 공간에 건물을 더 지어 올렸다. ©Kim Yongsoon

연희동 190-14 ©Kim Yongsoon
연희동의 자산을 앞으로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김정은: 지난 10여 년간 연희동의 단독주택들은 상당수 상업시설로 바뀌었다. 앞으로도 연희동이 지금의 방식대로 변화하는 게 적절할까? 또는 연희동의 사례가 다른 신도시나 오래된 동네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 연희동 사례의 보편성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전상규: 연희동에서 기존 주택들을 일부 남겨두고 어찌 보면 이종교배 같은 과격한 접합을 통해 미학적으로도 통용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고 본다. 하지만 연희동의 리노베이션 방식이 다른 지역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리노베이션의 공사비가 신축에 비해 크게 줄어드는 경우도 많지 않고, ‘옛것’ 혹은 ‘레트로’에 대한 유행을 품어줄 수 있는 기존의 건축자산이 있어야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홍주석: 이제는 연희동에도 새로운 활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래된 주택들을 모두 상업시설로 만들 수는 없지 않나. 주택도 노후화되었고, 자녀 세대들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데 연희동의 고유한 건축적 자산에 대한 부동산의 가치가 높아졌다. 주택이든 오피스텔의 형태든 새로운 방향에 관해 공공에서도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윤승현: 물론 노후화 문제도 해결해야겠지만, 연희동에는 아파트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삶의 풍요로움이 있다는 것을 지난 10년의 변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보여준 측면, 그래서 만들어진 기회가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건강한 마을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또 한 10년에 걸쳐서 칠십 몇 건을 하면 좋은 건가? 우려스러운 부분은, 신도시에 상가와 주택을 엮어 블록으로 만든 지구가 있는데 열이면 아홉은 임대가 거의 안 돼서 동네의 활기가 무척 떨어진다는 거다. 그러니까 저층부는 상가가 되고 상층부는 주택이 되는 방식이 어디까지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진오: 만약 1층은 모두 상업시설, 상층부는 주거라고 했으면 지루한 동네가 됐을 거다. 근데 연희동은 평면적으로도 이종교배 되면서 다양성을 주는 지점이 활력 있고,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 같다. 평면적으로도 다른 프로그램들이 엮이는 데에 기대감이 있다. 연희동 실험에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부분은 시간차를 두는 일종의 순환형 재개발 같은 것들이다. 최근 도시계획적으로는 다시 폐기되는 분위기지만, 연희동이 순환형 재개발의 성공적인 사례인 셈이다. 특히 관 주도의 지역재생이 아니라 민간에서 개별적인 클라이언트와의 소통을 통해 만들어진 중요한 사례로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른 도시재생 지역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김정은: 연희동을 보면서 공공에서 마스터플랜을 세워서 그대로 시행한다기보다, 현장의 자산과 반응을 보면서 조절해가는 유연성이 재생에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연희동이 변화의 속도를 조절했기 때문에 어떤 자생적 성취를 거뒀다면, 다른 곳에서도 그 지역만의 속도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윤승현: 두 분의 말씀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아무리 훌륭한 계획가도 한번에 모든 걸 계획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스터플랜이 코드화돼서 마을의 성장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쿠움파트너스는 연희동에서 계획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면서 한 거다. 물론 시간이 흘러 큰 틀에 대한 구상도 하게 되었지만, 애초에 마스터플랜을 구상하고 거기 맞춰 따라간 과정이 아니다 보니, 오히려 굉장히 흥미로운 것들이 나올 수 있었다. 심지어는 주체가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양성이 생길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상황에 맞춰 변해갔음에도 연속성이 생길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조심스럽게 해석해보자면, 김종석이라는 연희동의 동네 건축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시에서 마을 건축가라는 용어를 한 10년 전부터 썼다. 그런데 동네 건축가다운 역할을 주진 못했다. 연희동의 사례가 마을 건축가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단초를 주지 않나 싶다.
홍주석: 아까 속도를 언급했는데, 제일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때로는 공공의 정책이 자생적 움직임을 방해하기도 하는데, 민간이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환경적 토대를 만들어주는 게 공공의 역할이 아니겠나. 그렇게 되면 자발적으로 이런 형태의 동네들이 전국적으로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지역에는 건축자산뿐만 아니라 다양한 자원이 있기 때문에 지방 소멸 시대에 새로운 형태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동네 건축가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결국 동네 건축가란 건축가들이 생각하는 MP(master planner)의 역할이다. 동네 건축가의 진정한 의미는 동네 안에서 건축가의 영역을 넓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디벨로퍼도 됐다가 지역의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프로그래머도 됐다가 하는 식으로 건축가의 역할을 횡으로 넓히는 게 필요하단 생각이다.

©Kim Yongsoon

파크먼트 연희는 연희동 433-6(1970)과 433-8(1973)을 연결한 리모델링 증축 프로젝트다. 여기에 연희동 273-9(1973)와 433-10(1972)까지 연결해 공간 전문 운영사 어반플레이에서 ‘지역형 마당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운영 중이다. 연희동 433-8은 기존 주택의 앞마당에 지하 1층과 지상 2층을 증축해 근린생활시설을 추가했다. 기존 주택의 내부에 구조를 추가해 신축부가 구축부에 관입한 구조를 만들었다. ©Kim Yong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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