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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고 보편적인, 모두를 위한 환경: 모두예술극장

사진
진효숙
자료제공
디자인그룹오즈건축사사무소

「SPACE(공간)」 2024년 3월호 (통권 676호) 

 

2023년 10월, 서대문구 충정로의 구세군빌딩 1~3층 공간에서 재단장을 마친 모두예술극장이 개관했다. 국내 최초의 장애예술인 표준공연장이라는 희망찬 소개와 함께였다. 모두예술극장의 이름은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향유할 수 있고, 모든 형태의 예술이 모이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모두를 위한 표준은 어떻게 존재할까? 건축가 최태산(디자인그룹오즈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이 풀어낸 특별하지만 보편적인 공간 속에서 ‘모두’를 위한 건물 환경이 추구할 ‘표준’의 실마리를 찾아본다.  

 

공연에 따라 무대와 객석의 형태를 다양하게 구현할 수 있는 가변형 블랙박스 공연장. 전체 공간이 무단차로 조성돼 이동에 불편함이 있는 사용자의 활동에 제약이 없으며, 수납식 객석을 통해 휠체어 좌석 수를 가변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윤예림(윤): 지난해 10월 구세군빌딩 내 공연시설을 리모델링한 모두예술극장이 문을 열었다. ‘장애예술 공연장 리모델링 제안공모’(2021)를 통해 추진된 사업이다. 공모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주요 과제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최태산(최): 2018년 평창 동계패럴림픽 접근성 개선사업(「SPACE(공간)」 605호 참고)에 참여하면서 유니버설 디자인을 관심 있게 연구하기 시작했다. 패럴림픽 개최를 앞두고 평창, 정선, 강릉 지역의 음식점, 숙박시설 등 민간시설 200여 곳을 대상으로 진입부와 화장실 등의 접근성을 개선하는 사업이었다. 작게는 5cm부터 30cm가량의 단차를 경사로로 대체하고 출입문을 자동문으로 변경하는 등 크지 않은 개선이었지만, 각 사업장마다 한 분 한 분 시각 자료를 보여주고 설득해가면서 건물 하나를 짓는 것만큼이나 많은 품을 들였던 기억이 있다. ‘장애예술 공연장 리모델링 제안공모’는 문화체육관광부 유관 기관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실시한 공모다. 구세군빌딩 1층부터 3층까지 공연장과 오피스 공간을 리모델링해, 장애예술 및 장애예술인에 특화된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충청로역 인근에 자리한 구세군빌딩은 입지적인 접근성은 훌륭했지만 내부는 이동 약자가 이용하기에 불편함이 많았다. 공연장은 공연장대로, 오피스는 오피스대로 분절된 프로그램과 공간들이 마치 섬처럼 분포했고 공용부는 폐쇄적인 느낌이 강해 열린 공간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공연장은 대부분의 국내 공연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프로시니엄 극장 구조로, 1.2m 높이의 무대가 설치돼 있었다. 평창에서 5cm 단차를 넘었다면 이번에는 1.2m 단차를 만난 셈이다. 공모에서는 이같이 기존 공간의 분절과 단절을 극복하는 ‘모두의 공연장’을 제안했다.

 

윤: 개관 당시 ‘국내 첫 장애예술인 표준공연장’이라는 타이틀에 언론과 예술계의 이목이 쏠렸다. 특히 바닥의 높낮이 차가 전혀 없는 ‘무단차 평면’이 화두였다. 장애예술인 특화 공연장으로서 모두예술극장이 주안점으로 삼은 공간 개념은 무엇이었나?

최: 먼저 기존 무대와 객석 계획으로 인해 발생한 단차를 제거해 모든 사용자가 물리적 제약 없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계획했다. 공연을 위한 공간뿐만 아니라 공연장 바깥까지 시각적・공간적으로 개방되고 순환하는 ‘경험 공간’을 만들고자 했고, 이를 위해 기존 건물에서 확장 가능한 공용부의 면적을 더 많이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미션 중 하나였다. 경험 공간이란 사용자들이 머무르며 여러 장면의 시퀀스를 만들고, 상황을 인지할 수 있도록 시야가 열려 있으며, 다음 장면을 예측할 수 있는 힌트가 곳곳에 존재하는 공간이라 생각했다.

사실 표준공연장이라는 타이틀은 완공을 앞둔 시점에서 문화체육관광부의 언론 보도로 떠오르기 시작한 키워드였다. 그전까지 한번도 어떠한 표준을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솔직히 조금 놀랐다. ‘모두의 공연장’은 말 그대로 모든 신체와 예술이 모이고 만나며, 서로의 동기부여가 되는 공간이다. 하나의 공간이 모두의 표준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편의를 고려한 요소가 누군가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 않나. 다만 ‘모두의 공연장’에서 ‘모두’는 누구일까를 상상하며 그림을 그렸다.

 

공연에 따라 무대와 객석의 형태를 다양하게 구현할 수 있는 가변형 블랙박스 공연장. 전체 공간이 무단차로 조성돼 이동에 불편함이 있는 사용자의 활동에 제약이 없으며, 수납식 객석을 통해 휠체어 좌석 수를 가변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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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상상한 ‘모두’는 어떤 모습이었나.

최: 어렸을 때 기억을 떠올려보면, 알고 지내던 시각장애 피아니스트가 있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그만큼 뛰어난 부분도 있는 그의 면면을 보면서 장애 여부가 사람과 사람을 구분하는 조건이 되지 않는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이처럼 모두예술극장도 장애예술과 장애예술인을 위한 공간에 한정되지 않길 바랐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대상은 어린이, 노인, 그리고 주변의 모든 이들이 될 수 있다. 그들이 모두 ‘모두’가 되는 것이 모두예술극장이다. 설계를 하면서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이하 BF 인증)을 위한 기준보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가이드라인을 중심에 둔 이유이기도 하다. BF 인증 기준에 지나치게 매몰됐다간 자칫 ‘장애인 전용’ 공간으로 인식이 될 수도 있고, 이는 또 다른 소외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윤: ‘모두’라는 대상을 끊임없이 추정하고 들여다보는 과정이 필요했겠다. 장애예술인에 특화된 공간이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과 예술을 포용하는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 어떻게 접근했나? 

최: 공모안에서는 단절된 공간을 연결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실현 과정에서는 모두예술극장이 그 자체로 보편적 환경의 개념과 예술의 경험을 확장하는 ‘보편적 문화 인프라’의 역할을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따라서 특정 약자나 장애 유형을 일일이 고려하기보다 우리의 계획 내에서 이동 등에 불편이 생길 만한 요소를 제거하는 식으로 접근했다. 이를 위한 골자가 단의 제거였다. 단차는 누구에게나 위험 요소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평평한 지면은 모두 기존의 1.2m 무대 높이에 맞춰 높이를 조정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접근 가능한 무대부터 분장실, 연습실, 라운지, 심지어 무대 조종실과 샤워실처럼 단차가 불가피한 공간까지 전부 레벨 0에서 만난다. 또한 리모델링 전 580석이었던 두 개 층의 객석이 절반 가까이 축소되는 것을 감수하면서도 가변형 블랙박스 극장을 도입했다. 블랙박스 극장은 예술인, 관객, 스태프 등의 다양한 사용자들이 가장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구조다. 무대와 객석을 임의로 배치할 수 있고, 둘 사이에 뚜렷한 구분이 없기 때문에 예술가와 관객이 밀접하게 호흡하는 환경을 만든다. 뿐만 아니라 그때그때 필요한 유틸리티나 장비를 걸고 해체하는 데에도 매우 효율적이다. 객석을 모두 수납했을 때는 다양한 이벤트와 소통이 일어나는 열린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윤: 프로젝트 후 “어떤 사용자의 눈에는 띄지 않을지도 모를 일상적인 개선을 통해 더 많은 기회와 보편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모두예술극장에서 일상을 개선하는 요소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최: 화장실 앞이나 공용 공간 그리고 실과 실 사이 등에 유아차나 휠체어 이용자가 잠시 머물 수 있는 포켓 공간을 배치한 것, 방음문이 필요한 연습실 등의 공간에는 다양한 눈높이를 위한 시창을 만든 것, 시각 약자를 위한 바닥 페이빙과 공간 안내도를 마련한 것 등이 있겠다. 바닥의 재질도 아이가 뛰거나 길 수 있으면서도 휠체어가 다니기에 너무 무르지 않고 미끄럽지 않은 자재를 고민했다. 벽면의 핸드레일은 두 개 높이로 설치해 어린이와 성인이 함께 사용할 수도 있고, 때에 따라 기대거나 앉아 쉴 수도 있는 또 하나의 복합적 공간으로 계획했지만 실현 과정에서 다소 소극적인 형태로 변경이 됐다. 리모델링 작업인 만큼 변수가 많았고, 당시 부실 구조로 인한 대형 건설 사고가 발생해 심의가 강화됐던 시기가 겹치면서 공사 기간과 비용이 대폭 늘어나는 바람에 많은 디테일이 실현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작아 보이는 요소들이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다른 환경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윤: 보건복지부와 국토교통부에서는 BF 인증 의무시설을 제정하고, 이를 위한 평가 항목을 제시하고 있다. 앞서 유니버설 디자인의 가이드라인을 언급하기도 했다. 디자인 과정에서 BF 인증 기준과 유니버설 디자인 가이드라인은 어떤 역할을 했나?

최: BF 인증과 관련된 기준은 단지 인증을 위해 참조했다. (웃음) 인증기관에서 정말 자를 들고 와서 측정하는 BF 인증 기준과 달리 유니버설 디자인 가이드라인은 구체적으로 어떤 환경을 조성할 것인가에 따라 치수에 한정되지 않은 폭넓은 범위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법적 규제를 통해 달성되는 공간과 달리, 저마다 다른 환경에 놓인 프로젝트들에 최선인 방향을 창의적으로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유니버설 디자인이 말하는 환경의 범주는 다양하고 통합적이다. 예를 들어 문고리 하나도 환경의 일부분이다. 늘 우리 손에 닿는 기물 중 하나기 때문이다. 너무 차갑거나 뾰족하지 않고, 누구나 인지하기 쉬운 모양과 크기로, 잡기 쉬운 위치에 달린 문고리에 대한 이야기를 유니버설 디자인 가이드라인에서는 찾아볼 수 있다. 물론 공공건축물의 환경을 적정 수준으로 조성하기 위한 기준으로서 BF 인증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제도는 오로지 인증 기준 준수 자체에 과도하게 집중된 것 같다. 기준을 하나하나 따르다 보면 경직된 공간을 만들게 될 때가 많다. 가령 높이 차이가 있는데 인증 기준에 부합하는 각도의 완만한 경사로는 설치가 불가능한 공간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이동 약자를 다른 길로 돌아가게 하기보다 다소 가파르더라도 경사로가 있는 것이 낫다. 대신 직원이 와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벨을 설치하는 등의 타협점을 찾을 수도 있다. 현재의 인증 제도는 이러한 가능성이 있는 공간들을 오히려 외면하게 만든다.

 

공용 공간의 곳곳에는 유아차나 휠체어 사용자가 잠시 머물 수 있는 포켓 공간을 마련했다. 

 

윤: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기준이 되려 더 큰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최: 보다 유연하게 협의 가능한 범위 안에서 판단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모두예술극장이 표준공연장이라 불리는 데 마음을 졸이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자칫 모든 공공 문화시설은 무단차로 설계해야 한다는 식의 경직된 기준으로 전달될까 우려된다. 지방의 많은 문화시설들이 노후화돼 개선이 필요한 시기가 올 텐데, 존재하는 모든 단차를 제거하는 일은 비용적인 장벽이 매우 높다. 기준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발주처는 애초에 사업 자체를 무산시킬 여지가 있다. 그렇게 되면 처음 의도와 달리 ‘모두를 위한’ 공간이 더욱더 소극적으로 변질되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허들을 낮춰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저마다의 모두를 위한 공간을 시도할 수 있길 바란다.

 

윤: 모두예술극장이 개관한 지 4개월이 지났다. 극복한 것은 더 큰 단차만이 아닐 것이다. 소회를 듣고 싶다.

최: 어쩐지 아직 프로젝트가 끝나지 않은 듯한 기분이 든다. 운영이 시작된 후 첫 공연이 열렸을 때 직접 공연을 보러 오기도 했다. 수납형 객석이 잘 작동할지, 안전할지 걱정돼서 잠이 안 오더라. (웃음) 발주처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을 통해 종종 피드백을 받고 있는데, 다행히 사용자들이 공연 관람 전후의 경험 모두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고 들었다. 특히 공용부가 널찍하니 다칠 위험이 없어 좋아한다고 한다. 긴 기간 동안 과업 범위에서 벗어나는 부분까지 설계를 자처하면서 열정을 쏟았다. 2018년의 개선사업에서도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때로는 기계적으로 기준을 따르고 있을 때가 많았고 그러다 보면 내가 그렸던 그림에서 남는 게 무엇인가 싶어 허탈할 때도 있었다. 여전히 표준공연장이라는 지칭에는 의문이 들지만, 그 이름을 통해 모두예술극장이 대중에게 쉽게 다가서고 공간의 의미가 잘 전달된다면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모두에게 보편적인 공간을 위한 표준은 어떻게 존재해야 할지 고민이 남는다. 모두예술극장이 앞으로 나올 두 번째, 세 번째 표준을 위한 하나의 발판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분장실 내에는 장애인 화장실, 샤워실 등의 편의 시설이 마련돼 있으며 2층 무대로 연결되는 별도의 엘리베이터가 있어 배우들의 이동에 제약이 없다. 

월간 「SPACE(공간)」 676호(2024년 03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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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산
최태산은 (주)디자인그룹오즈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 더워크숍 디자인스튜디오 대표, 아주대학교와 충북대학교 건축설계 겸임교수이다. 네덜란드 베를라헤 건축대학원에서 대도시화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평창 동계패럴림픽 접근성 개선사업(2018) 위촉연구원으로서 유니버설 디자인에 관한 연구와 환경개선 사업 기획을 시작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 ‘공공임대주택 유니버설 디자인 기반구축 및 설계지침 수립 연구’(2020), 서울특별시 유니버설디자인센터 자문위원(2020~2021)을 맡았으며 일상생활, 이동접근성, 도시적 환경과 같은 다양한 스케일에서의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고찰을 이어가고 있다. 모두예술극장 건축에 참여,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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