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7월호 (통권 680호)

두 번째 베케 전경. 건축물은 왼쪽부터 C동, B동, 별동, A동
인터뷰 김봉찬 더가든 대표, 이창규, 강정윤 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 최정화 × 박지윤 기자
‘서귀포 카페’, ‘정원 카페’로 알려진 베케가 최근 변화를 맞이했다. 첫 번째 베케에서 조경을 설계한 더가든(대표 김봉찬), 기획과 자문을 맡은 작가 최정화가 다시 뭉쳤고, 건축 설계와 감리 역할의 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공동대표 이창규, 강정윤)가 새로이 합류해 건물 네 동을 신축하고 그 주변의 조경을 손본 것이다. 이 변화는 공간의 중심을 카페에서 정원으로 한발 더 옮기고, 조경과 건축이 조화되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 그들의 의지를 기반으로 한다. 자연과 인간, 조경과 건축은 하나의 세계를 공유해왔고, 그 관계 또한 무수히 고찰되어왔다. 두 번째 베케의 조경가, 예술가, 건축가는 이 긴밀한 관계를 어떻게 조정하고 구축했을까?

B동과 C동 사이의 노각나무정원 ©Kim Heejoong
박지윤(박): 2018년 첫 번째 베케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조경가와 작가가 공간을 함께 기획하게 된 연유를 알려달라.
김봉찬(김): 조경가나 건축가들은 대부분 클라이언트의 요청으로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면서 소유자가 중간에 바뀌기도 하고 한 조경가가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없게 되기도 하는데, 특히 조경은 조성 이후의 관리 또한 중요하다. 제주 핀크스 비오토피아(2007)의 경우 중간에 소유자가 바뀌며 식물 대부분이 변경됐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내가 직접 클라이언트가 되어 오랜 기간 유지되고 지속해서 관리할 수 있는 정원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최정화와의 인연은 15년 정도 됐다. 설치 예술 작업부터 거제 아그네스 파크(2021)까지 규모를 넘나들며 협업하면서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예술 분야를 어깨 너머로 배울 수 있었고, 베케를 구상하고 있던 차에 기획을 최정화가 맡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시작 당시 베케의 중요한 콘셉트 중 하나는 ‘엉성하게 치밀하게’였는데, 이는 ‘한국의 아름다움은 무엇인가’라는 나의 질문에 대한 최정화의 답변이었다. 기존 대지에 베케(쟁기로 농사 짓던 시절 밭을 일구다 나온 돌을 쌓아 놓은 돌무더기를 뜻하는 제주어)가 있었는데 최정화의 말을 듣고 나니, 엉성하게 널브러진 돌담을 내가 치밀하게 조율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더해 블랙 콘크리트라는 건축물의 재료, 시퀀스와 디테일 같은 부분 등 베케는 최정화와 전반적으로, 그리고 유기적으로 함께 논의하며 진행됐다.
박: 두 번째 베케의 기획은 무엇이었고, 이는 어떻게 구현됐나?
김: 250평에 달하는 규모의 건축을 신축하면서 정원에 어떻게 어울리게 할지 고민했고 최정화가 매스를 길게 얹는, ‘길의 건축’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나는 제주를 기반으로 오랫동안 활동해왔고, 두 번째 베케를 계획하던 무렵에는 칠곡 시호재(2023) 등 함몰된 지형을 만드는 작업들을 많이 하다 보니, 제주 땅을 어느 깊이까지 파낼 수 있을지 어림잡을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을 기반으로 C동과 그 주변의 조경은 지하 레벨에 새로운 경관을 만들고, 그 위에 건축을 얹히는 형태로 계획했다. 분화구 위에 집이 얹힌 것과 같은 형상은 빛과 그림자의 변화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경험하도록 하고, 시점에 따라 경관을 다르게 한다.
최정화(최): 나는 우리가 조경, 건축을 디자인했다기보다는 ‘공기’를 디자인했다고 생각한다. 지고 뜰 때의 해, 풀이 머금은 빛과 그림자, 바람 등 공기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하고, 멋진 수형의 나무 한 그루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소박한 풀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주고자 했다. 김봉찬과는 ‘통생명체’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는데, 통생명체란 우리의 몸과 몸속 미생물을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개념으로 ‘네가 없으면 나도 없고, 내가 없으면 너도 없다’로 풀이할 수 있다. 자연과 사람, 베케에 대입하자면 조경과 건축 또한 이러한 관계에 있다고 본다.
결국 두 번째 베케는 자연을 어떻게 존경할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길의 건축이라는 콘셉트는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방법을 통합적으로 계획해보자는 기획에서 출발했다. 단순히 방을 만드는 게 아닌 자연을 알아보고, 들여다보고 관찰할 수 있게 하고자 했다. 작가로서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울림, 떨림, 끌림을 품은 것이라고 답변해오곤 했는데, 이와 연관해 베케는 스밈과 섬김을 품은 것이라 설명하고 싶다.
이창규, 강정윤(이&강): 김봉찬과 최정화가 처음 구상한 스케치에는 비슷한 규모의 매스가 크게 네 개로 나눠져 있었고 정원을 바라보기 위한 길이 건물의 동쪽에 붙어 있었다. 이 구상안을 처음에 봤을 때 첫 번째 베케와의 관계가 단편적이고 ‘길’과 ‘건축’이 너무 강하게 자기 주장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회의를 진행하며 길의 건축이라는 콘셉트에는 건물이 드러나지 않는 건축, 배경이 되는 건축과 같은 의미가 함유돼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고, 그래서 우리는 보다 배경이 되는 건축에 초점을 맞췄다. 긴 형상의 대지였기에 걸어다니며 조경을 보는 것은 적합했지만 길과 건물을 명확히 구분하기보다는 주차장에서부터 제주 올레길처럼 부드럽게 감아 건물에 진입하게 만들고 이 동선이 각 동들의 중심에 자리 잡은 길로 이어지게 만들어 편안히 산책하며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계획했다. 김봉찬, 최정화가 길의 건축이라는 키워드를 주었다면 우리는 그것을 조금 더 다듬어나간 것이다.

두 번째 베케

A동에서 B동으로 가는 길

C동에서 바라본 노각나무정원과 B동
박: ‘빛과 어둠’이 베케의 조경과 건축을 관통하는 키워드라고 들었다.
김: 조경과 건축은 사실 본질은 같고, 사용하는 소재만 다르다고 생각하기에 콘셉트를 공유할 수 있었다. 7년 전쯤 뉴욕 9.11 메모리얼 파크에 갔을 때 연못 중앙에 빛의 방향과 상관없이 항상 검은 공간이 있고 그곳으로 모든 물이 빨려 들어가고 있는 걸 보았다. 자연스레 옷깃을 여미게 되었는데, 그때 어둠이 조경에서 중요한 디자인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이후로 조경에 어둠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왔다. 첫 번째 베케에서는 경사로 된 이끼·빗물정원을 조성하면서 다른 땅보다 낮은 곳은 어둠을 품고, 비가 오면 자연스레 물이 흐르는 정원을 완성했다. 돌담이 쌓인 곳에는 빛이 들어오면 그림자로 인해 어두워졌는데, 빛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쪽은 꽃이나 좋은 나무가 아니라 고사리, 강아지풀, 민들레 같은 식물이 있어도 어둠과 대비되면서 실제로, 그리고 시적으로도 빛났다. 두 번째 베케에서는 거멀창(검게 보이는 깊은 바닥을 일컫는 제주어)을 조성한 사초·이끼정원, 엉(낭떠러지 비슷이 된 암석을 일컫는 제주어)을 조성한 베리(절벽을 일컫는 제주어)정원을 완성했다. 식물은 서로 중첩되면서 그림자와 깊이감을 만들어내고, 식물과 식물 사이의 틈은 그림자를 품기도 한다. 이처럼 식물들을 투과하며 빛은 순화되고 이를 통해 땅에 떨어진 빛은 예술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강: 건축가로서 우리는 ‘빛과 어둠’을 기분 좋은 어둠으로 풀이했다. 2014년 처음 제주도로 내려왔을 때 제주 돌집이나 민가 건물을 많이 답사했다. 제주 민가에는 상방이라고 불리는 한옥의 대청과 같은 기능을 하는 거실이 있다. 밖은 굉장히 밝으나 내부는 어스름한 상방에 앉아 있으니 기분이 좋아지더라. 어쩌면 상방의 어둠이 제주 건축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경험을 ‘기분 좋은 어둠’이라 나름대로 정리했고, 우리의 첫 작업인 제주 어머니집(2015)에 적용했다. 이후 김봉찬이 빛과 어둠이라는 키워드를 꺼내 들었을 때 우리가 시도하고 있는 기분 좋은 어둠에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베케에서는 내부 공간뿐 아니라 공간 내 전이 공간을 걸으면서도 기분 좋은 어둠을 느낄 수 있도록 구현했다. 무작정 어두운 공간, 무작정 밝은 공간이 아니라,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조율해서 어스름한데 밝고 발그스름한데 어두운 기분 좋은 공간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다.

C동과 사초·이끼정원

C동 내부
박: 건축 계획에서 가장 많이 조정된 부분은 입구 공간인 A동이다. 여기서 주요하게 논의된 사항은 무엇이었나?
이&강: 우리가 우선적으로 한 것은 현황 측량이었다. 물탱크, 중요한 수목의 위치 등을 조사했고 이를 피하면서 설계를 해야 했는데, 길의 건축을 구현하기 위해 매스 사이사이를 정원에 내어주다 보니 진입 공간을 위한 자리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우리는 진입의 시퀀스를 중요하다 생각했고 김봉찬은 입구 쪽에 있는 폐허정원을 어떻게 바라보게 할 것인지를 중요하게 여겨, 작은 공간 안에서 모두를 어떻게 만족시킬지 수차례 스터디했다. 동시에 A동의 1층은 카페로, 2층은 더가든의 사무실로 사용될 예정이었기에 바리스타를 위한 공간, VIP를 위한 진입 공간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올레길을 닮은 동선을 지나 카페로 진입하는 열린 입구, 도로쪽 담장과 A동 사이로 사무실 출입을 위한 작은 길을 두어 동선을 분리했다. 동시에 카페에는 주방, 책장, 벤치 외 다른 가구를 두지 않음으로써 진입하면서부터 솔비나무가 있는 남쪽의 작은 중정과 동쪽의 폐허정원으로 시선이 닿을 수 있도록 했다.
박: 조경에서도 새롭게 지어질 건축물은 물론 첫 번째 베케에 있던 기존 조경과의 조화를 위해 고려한 지점이 있을 것이다.
김: 꽃꽂이를 한 꽃병을 실내에 놓으면 예술이 되지만 넓은 운동장에 갖다 놓으면 쓰레기에 불과한 것처럼 조화를 위해서는 식물과 공간의 관계, 그리고 스케일을 고려해야 한다. 대지 인근의 대로, 건축, 정원의 길, 정원을 연결선상에서 생각해야 하는데 넓은 대지에 꽃꽂이를 한 듯한 정원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아파트 단지에 특별한 수형의 장송 하나를 두는 것은 장송이 얼마나 왜소한지 증명하는 일이며, 대스케일을 고려하지 않은 계획이다. 여기서 대스케일이란 휴먼 스케일처럼 인간과 관련한 스케일이라기보다는, 땅과 하늘을 잇는 스케일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적합하다. 대지의 규모가 어떻든지 간에 건축과 조경, 주변 경관이 하나의 하늘을 공유하듯 조경을 설계하면 웅장함을 느끼도록 할 수 있다. 두 번째 베케에 추가된 정원은, 사초·이끼정원, 베리정원, 노각나무정원 총 세 가지로 이로써 베케에는 총 열 개의 정원이 자리하게 됐다. 사초·이끼정원은 C동의 남동쪽에 위치하면서 일부는 건물 아래까지 이어진다. 동측의 숙근초·그라스정원은 초원처럼 구성되어 있고, 이 초원들이 자연스레 사초·이끼정원으로 내려오면서 연결된다. 절벽과 같이 조성한 베리정원 또한 아래의 사초·이끼정원과 이어지면서 경관은 다채롭게 변화한다. 노각나무정원은 B동과 C동 사이의 경사지에 위치하고, 한쪽 면에는 주차장을 막는 벽이 있어 많은 것을 시도할 수는 없었다. 벽과 같은 면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비워두거나 혹은 약한 수형을 가진 식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자작나무, 대나무와 비슷한 야리야리한 노각나무를 심어 건축에 순응하는 디자인을 완성하고자 했다. 빛은 노각나무를 투과하면서 벽에 눈이 오는 것 같은 부드러운 점들을 만들어낸다. 만약 수형이 두드러진 나무를 심었다면 사자를 우리에 가둬놓는 형국이 됐을 것이다.

노각나무정원과 C동

사초·이끼정원 내 거멀창과 옴팡질

베리정원 내 엉과 사초·이끼정원 내 옴팡질 ©Kim Heejoong
박: 베케는 조경에 적합한 건축을 완성한 작업이다. 조경을 먼저 고려했기에 나타나는 베케만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강: ‘반응하는 건축’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김봉찬과 최정화가 건축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우리는 나름대로 이를 해석해서 제안하고 또 이에 반응해, 김봉찬과 최정화가 다른 이야기를 얹어주는 과정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각자의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건축과 조경이 각자 공간을 압도하려고 하지 않는 것, 서로 적정선에서 멈추는 것이 중요했다. 세부적으로는 건물의 기단과 흙이 만나는 부분을 어떻게 잘 문질러서 흐릿하게 만들 것인지, 땅과 데크 레벨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 등을 고려했다. 현장에서는 손으로 작업물과 도면을 수정하면서 ‘이 정도면 됐지’하면서 자연스레 만들어나가는 즉흥적인 결정이 수반되는데, 결과물로 명확히 꼽기는 힘들더라도 모든 결정 과정들이 서로 조화하기 위한 노력이자 반응이었을 것이다. 더가든과 우리는 모두 제주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기에 두 번째 베케의 작업 과정이 절약과 절제를 미덕으로 삼는 제주인의 정신을 뜻하는 ‘조냥정신’과 닿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김: 건축 덩어리, 꽃의 덩어리, 길의 덩어리를 어떻게 함께 들여오는가를 이야기하면서 만드는 게 당연시되어야 한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와 함께 조경가와 건축가가 계획부터 함께 시작하는 작업을 도모하거나, 이러한 경험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조직을 꾸려볼 계획이다.
박: 첫 번째 베케는 정원, 카페, 조경과 관련한 세미나 공간 등으로 구성되어 조경을 대중에게 알리고, 또 조경과 관련한 담론이 펼쳐지는 장이 되고자 했다. 두 번째 베케는 어떻게 운영할 계획인가?
김: 용도는 이전과 비슷하다. 다만, 첫 번째 베케에서는 조경만을 말해왔다면 이제는 건축도 함께 이야기하는 공간으로 꾸리려고 한다.

C동과 사초·이끼정원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