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5월호 (통권 678호)
2024년 2월, 강릉에 솔올 미술관이 개관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리처드 마이어가 설계했다고 하기도 하고,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철학을 이어받은 마이어 파트너스의 첫 작품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그 소식들 사이에 리처드 마이어가 자신의 회사에서 근무한 여러 여성을 성추행한 사실이 폭로돼 일선에서 물러났다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왜 국내 건축계는 유독 직장 내 성폭력 문제에 무관심할까? 이제는 건축가의 작업과 그의 가해 사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SPACE(공간)」 477호(2007년 8월호)에 실린 리처드 마이어의 사진 ©Lee Joo-yeon (covered in SPACE No. 477)
성폭력 문제에 관한 국내 건축계의 무관심
국내 건축 매체가 여성 건축가와 페미니즘에 주목한 기사를 여럿 낸 것과는 달리, 일터에서 권력을 남용해 저지른 성폭력에 관해서는 특별한 논의가 없었다. 국내 문학계, 영화계 등 여타 문화예술 분야에서 전 세계적 미투운동의 흐름과 함께 내부의 목소리가 터져나왔고, 각 분야의 매체가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과 관련한 담론을 형성해나갔던 것과는 확실히 대조적이다. 계간지인 「문학동네」는 2016년 겨울호에서 특별좌담 ‘어떻게 할 것인가 - 문단 내 성폭력과 한국의 남성성’을 실었다.▼1 주간지 「씨네21」은 영화계 내 성폭력에 관한 열한 번의 대담을 마련했고, 한국여성민우회와 함께 토론회를 개최했다.▼2 한국영화감독조합은 조합 내 성평등 예방교육 및 성평등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할 것이며, 성폭력을 행한 사실이 밝혀진 조합원을 자격 박탈 및 제명하겠다는 입장문을 내기도 했다.▼3
해외 건축계의 미투운동에도 잠잠했던 국내 건축 매체
리처드 마이어의 성추행은 2018년 3월 13일 「뉴욕 타임스」의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4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여성 다섯 명은 모두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리처드 마이어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다. 그중 네 명이 리처드 마이어 앤드 파트너스의 직원이었다. 여성 두 명은 리처드 마이어의 집에서 그가 자신의 성기를 노출했다고 설명했고, 한 여성은 연말 파티에서 자신의 속옷을 움켜쥐었다고, 다른 한 명은 그가 자신의 집에서 사진을 찍게 옷을 다 벗을 것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가구 디자이너인 한 여성은 게티 센터 개관 20주년 기념 행사 후 리처드 마이어가 자신을 강제로 침대 위로 끌어 올리려 해 그의 집에서 도망쳤던 사건을 밝혔다.
리처드 마이어는 “서로의 기억은 다를 수 있겠지만, 내 행동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2018년 3월 이후 6개월간 휴직했다. 그런데 2018년 10월 9일 「뉴욕 타임스」에서 그는 돌연 고소 때문이 아니라 건강상의 이유로 휴가를 낸 것이라며 자신은 아직 한창이니 은퇴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5 이후 3년이 지난 2021년 6월 23일에야 리처드 마이어 앤드 파트너스는 리처드 마이어의 은퇴 소식을 전했고, 사명을 마이어 파트너스(디자인 파트너 연덕호)로 변경했다. 그러나 리처드 마이어는 여전히 고객이 요청할 경우 상담을 진행할 수 있다고 한다.
「디진」, 「아크데일리」 등의 해외 건축 매체는 「뉴욕 타임스」의 보도 사실을 빠르게 전했다. 국내 언론도 뒤이어 미국 건축계에도 미투운동이 확산됐다며, 리처드 마이어의 성추문 소식을 알렸다. 현재 확인 가능한 국내 건축 매체의 반응은 「뉴욕 타임스」의 최초 보도 기사 일부를 인용한 「SPACE(공간)」 624호 특집이 전부다.
물론 직장 내 성폭력 문제는 내부 고발자가 나서지 않으면 알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SPACE」 624호 특집
‘Women ( ) Architecture’에 실린 여성 건축가들의 좌담에서 김정임(서로아키텍츠 대표)은 국내 건축계에 미투운동이 없었던 것을 짚으며 “건축계가 여성에 대한 차별이 적어서일 수도 있고, 반대로 문제가 밖으로 표출되었을 때 그 사람이 배제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많아서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고 내부 고발의 어려움을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국내 건축계의 문제를 다루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해외 건축계의 미투운동 소식에도 아무런 논의가 없었다는 사실은 비관적이다. 이 문제에 관해 침묵함으로써 결국 피해자는 더 숨게 되고, 가해자는 여전히 당당하게 활동하는 분위기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완공이 가까운 솔올 미술관의 외관, 2024년 1월. Image courtesy of Meier Partners / ©Yongbaek Lee
성범죄자의 건축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이미 밝혀진 사안에 대해서도 성폭력 사실에 대한 아무런 비판적 태도 없이 유명인의 이름만을 강조하며 홍보하는 지금의 태도는 분명 문제다. 대부분의 국내 매체는 마이어 파트너스가 설계한 솔올 미술관(2024)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리처드 마이어가 설계’했다거나 ‘백색의 거장 리처드 마이어의 철학을 담은’ 미술관이라며 개관 소식을 전했다. 리처드 마이어의 성추행 사실을 언급한 매체는 아주 소수였는데, 그마저도 건축 매체가 아닌 일간지와 디자인 매거진이었다. 미투운동 당시 건축가의 성폭력이라는 첨예한 문제를 빼놓고 건축계의 페미니즘을 논했던 영향이 분명 있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가해자의 건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논의해보고자 한다.
작품과 작가의 윤리성을 따질 때마다 가장 먼저 호출되는 논점부터 살펴보자. 작가와 작품이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작가와 작품을 분리하는 것은 20세기 신비평의 문학비평 방식이기도 하고, 칸트의 무관심성 이론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관점이다. 작품이 만들어진 역사적 현실, 작가의 윤리성 등을 제외하고 바라보아야 그 작품을 통해 순수한 미적 체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건축적 질서와 형태미를 판단하고 배우고자 하는 상황에서는 일견 필요한 관점이다.
이와는 반대로 작품도 작가도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에,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 장소,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는 관점이 있다. 실생활 속에서 순수한 미적 판단이 가능하거나 필요한 경우는 아주 드물다. 특히 건축물은 건축가 단독이 아닌 의뢰를 받아 여러 사람의 협력을 거쳐 만들어지고, 다양한 주체가 사용하며 사회 속에서 그 쓸모를 이어가는 존재인 만큼 작품 이면의 배경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후자의 관점을 견지한다면 ‘작품과 작가를 분리할 수 있는가?’보다도 ‘비평가와 매체가 윤리적으로 문제 있는 작가의 작품을 다룰 것인가?’가 더 중요한 논점이 된다. 일례로 2018년에는 성범죄 사실을 고발당한 시인 고은, 연극연출가 이윤택, 오태석의 작품을 교과서에 실어야 하는가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가해자의 작품은 아예 비평하지 않겠다고 선택할 수 있다. 비평가와 매체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므로 당연히 작품을 선별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여기에 윤리적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디진」은 2021년, 마이어 파트너스로의 사명 변경 소식 이후 리처드 마이어와 그의 회사에 관한 어떤 작업도 다루지 않고 있다. 반대로 그들의 작품을 비평에서 제외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이 저지른 범죄의 심각성을 잊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입장이 있다. 현실은 무결하지 않으므로 부끄럽고 실패한 역사를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비평가가 그들의 작품을 다루기로 결정했다면 비판적인 관점을 가지고, 성범죄 사실을 언급해야 한다. 그러나 「아크데일리」는 2024년에 솔올 미술관을 프로젝트 섹션에 게시했는데, 본문에도 연관 게시물에도 그의 성추문을 보도한 포스팅을 연결하지 않았다. 국내 건축 매체 또한 리처드 마이어의 성추문에 대한 언급 없이 솔올 미술관의 개관 소식을 홍보했다.
비평적 판단은 아니지만 소비자들이 작품을 소비하지 않겠다고 선택하기도 한다. 문학과지성사는 불매 운동을 수습하기 위해 문단 내 성추문이 일었던 시인의 사안을 가려 출판 관계를 정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으며, 제주도립미술관은 논란이 일자 성추행 사진작가의 작품을 철수하기도 했다. 건축계에서는 RIBA, AIA 골드 메달을 수상했으나 성추문이 일었던 데이비드 아자예가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가 다수 중단되거나 계약 파기됐다.
문화예술계 내에서의 성폭력 사건은 유명세에 따른 권력을 바탕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대다수다. 스타 건축가의 명성은 더 많은 건축물을 세워 돈을 버는 수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더라도, 회사는 이익을 위해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덮어버리려 한다. 오히려 피해자가 회사를 떠나게 만들어 경력을 단절시키는 것이다. 성범죄를 당하더라도 고발하겠다는 결심을 하기 힘든 이유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이 범죄를 저지른 건축가의 작품을 소비하지 않는다는 결정은 피해자와 연대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 될 수 있다.
글을 마치며
한국에서 리처드 마이어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라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 용이한 수식어를 달고, 적극적인 홍보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솔올 미술관 이전에는 ‘리처드 마이어의 인생 역작’이라는 더팰리스 73(2027년 완공 예정)이 있었다. 리처드 마이어의 이름이 이렇게까지 많이 언급되는 상황에서 그에 관한 소식을 다루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그래도 괜찮다’는 건축계의 분위기에 동조하는 것 아닐까? 해외 한 건축가의 사례일 뿐이지만, 이를 짚고 넘어감으로써 직장 내 성폭력 문제에 관한 논의를 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글 김보경

2018년 3월 13일 공개된 「뉴욕 타임스」의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다섯 명의 여자들에게서 성희롱으로 고발당하다’ 기사와 2018년 3월 14일 발행된 「뉴욕 타임스」의 제1면 기사 ©Kim Bokyoung
부록: 여성 건축인들의 의견
사실 건축계 구성원 모두가 직장 내 성범죄에 관한 문제에 무관심하지는 않다. 단지 그들의 목소리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이번 기사를 계기로 국내 건축계에 직장 내 성폭력에 관한 논의를 촉발시킴과 더불어, 이미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건축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했다.
이 논의의 핵심에는 ‘작품과 작가를 따로 분리할 수 있는가?’라는 오래전부터 논쟁이 되고 있는 질문을 다시 제기할 수 있다. ‘분리할 수 있다’ 또는 ‘분리할 수 없다’는 두 가지 견해 모두 타당한 논거가 있지만, 최근에 발견되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보면 건축사의 재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윤리적 틀이 변화함에 따라 ‘건축물의 건축적 가치를 건축물이 존재하게 된 상황–건축 사무소의 착취에 가까운 노동 조건, 권력 남용, 건설 현장의 인권 침해, 억압적인 정권이 있는 국가에서의 일감 수락 등–과 분리할 수 있는가?’라는 또 다른 질문이 제기된다. ‘스타 건축가’ 메커니즘은 건물 자체가 아니라 스타 건축가의 브랜드와 건축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불가분의 관계에 놓으며 이러한 질문을 더욱 중요하게 만들었다. 스타 건축은 물리적 현실과 단절된 마케팅 도구가 되어 작품과 저자는 하나가 되었다. 스타 건축가 시스템 안에서 그 사람의 행위는 더 이상 브랜드나 브랜드가 만들어내는 건축물과 분리될 수 없으며, 그 사람 자체가 실제 건축가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리처드 마이어의 한 건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는 것은 건축계에서의 윤리적 반성을 근본적으로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하여 언급하려면, 르 코르뷔지에, 아돌프 로스, 찰스 임스, 알바 알토 등 역사적인 남성 거장 건축가들에 대한 재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사고방식, 어떤 계층을 차별하는 정신과 태도는 작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글 송률
이제 피해를 입은 여성이 왜 폭로하지 못했는지, 혹은 가해자와 가해자를 주축으로 한 작업을 어떻게 판단할지에 논의를 한정하면 안 된다고 본다. 어떤 구조가 젠더 기반 폭력을 가하는 건축가와 그 행위를 묵인하는 건축계를 만드는지까지를 입체적으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
리처드 마이어는 피해자의 직장 상사일 뿐 아니라 건축계의 선생, 널리 인정받은 작가, 국제적 유명인이었다. 그만큼의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자가 쥔 권력은 얼마나 크며, 그런 가해자에게 문제를 제기하려면 무엇을 감수해야 할까? 리처드 마이어를 고발한 여성들이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 나아가 침묵하는 자들이 얼마나 큰 용기를 내야 하는지 감히 말하자면,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가해자가 가진 권력이 무언의 압박 이상일 것이다. 성범죄로 인한 피해에 더해 고발 시 전문직으로서 받은 훈련, 그간 쌓은 경력과 미래의 경력, 건축계에서의 인간관계의 손실 등을 감수해야 한다. 건축계 특유의 문화도 무시할 수 없다. 학부부터 권장되는 밤샘 문화는 노동권 침해를 인내하게 한다. 학계, 매체, 업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제기를 어렵게 만든다. 그 결과가 ‘알면서 쉬쉬하는’ 것이고. 이런 맥락에서 한국 건축계에서 성범죄 피해 사실을 공적으로 밝히는 여성이 없었다는 점이 한국 건축계가 완전무결하다는 증거도 아니다.
그러니 불균형한 권력에 기반한 성범죄를 건축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결코 안 된다. 현대건축이 내면화한 남성중심주의적 관점을 근본적으로 비판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는 윤리적인 문제 제기이면서 건축을 지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일 것이다. 여성건축인모임 SOFA는 상기한 내용을 바탕으로 내부 토론을 진행할 예정이다.
글 여성건축인모임 SOFA

「문학동네」 89호(2016년 12월)와 「씨네21」 1079호(2016년 11월) ©Kim Bokyoung
1. 강지희·김신현경·오찬호·정세랑·문강형준, ‘어떻게 할 것인가-문단 내 성폭력과 한국의 남성성’, 「문학동네」 89(2016. 12.), 13~76쪽.
2. 이예지, ‘“촬영현장의 여성혐오, 영화 내용에도 반영된다”-이영진·김꽃비 배우, 안보영 PD, 남순아 감독’, 「씨네21」 1079(2016. 11.), 60~65쪽을 시작으로 이예지, ‘영화계 내 성폭력 열한 번째 대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학생들-강물결·곽소진·이지민·최하나’, 「씨네21」 1089(2017. 1.), 66~73쪽까지 열한 번의 대담을 진행했다.
3. 한국영화감독조합, ‘[포커스] 1079호 특집 ‘#영화계_내_성폭력’ 기사에 대한 한국영화감독조합의 입장문’, 「씨네21」, 2016년 11월 11일,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85624, 2024년 3월 26일 접근.
4.로빈 포그레빈,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다섯 명의 여자들에게서 성희롱으로 고발당하다’, 「뉴욕 타임스」, 2018년 3월 13일, https://www.nytimes.com/2018/03/13/arts/design/richard-meier-sexual-harassment-allegations.html, 2024년 3월 26일 접근.
5.로빈 포그레빈,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성희롱 의혹 후 물러나다’, 「뉴욕 타임스」, 2018년 10월 9일, https://www.nytimes.com/2018/10/09/arts/design/richard-meier-metoo-firm.html, 2024년 3월 26일 접근.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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