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건축의 1세대 건축가, 낯설게 돌아오다
김수근과 함께 한국 현대건축의 1세대 건축가로 알려진 김중업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지만, 생애에 관한 신화적 이미지와 건축에 관한 피상적인 수사에 가려 그의 다양한 건축적 맥락이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 등록되어 있는 김수근 관련 학위논문이 약 90건, 국내 학술지 논문이 약 500건에 달하는 것에 반해, 김중업을 다루는 학위논문은 약 30건, 국내 학술지 논문이 약 35건에 불과하다. 특히 그의 건축론에 대한 연구서적은 정인하(한양대학교 교수)의 『김중업 건축론: 시적 울림의 세계』와 『집은 노래 불러야 한다』가 전부다. 불행 중 다행으로 김중업 건축 관련 자료들은 유족들이 개인적으로 관리하다 안양시청에 기증하면서, 2014년 개관한 김중업건축박물관을 통해 접할 수 있다. 그리고 지난 3월 김중업건축박물관에서 열린 <김중업,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다: 파리 세브르가 35번지의 기억>에서 김중업이 남긴 흔적들의 일부가 공개됐다. 하지만 이 전시 또한 르 코르뷔지에라는 프레임을 통해 김중업의 건축관을 정의하고, 초기 작품을 중점으로 다뤄 전반적인 그의 생애와 정체성, 건축적 흐름을 통찰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김중업 다이얼로그>는 그의 유산을 통해 그가 지녔던 다양한 면모를 조명하고, 한국 건축가 연구의 단초를 마련하고자 기획된 대규모 전시다.
이러한 기획 의지는 전시장의 도입부에서부터 발현된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검은색 얇은 기둥 사이사이에 걸쳐진 김중업의 건축물 사진들이 매트릭스로 구성되어 있다. 건축물이 완공됐을 당시 김중업건축연구소에서 남긴 흑백 사진들이 앞면에, 현재 새롭게 촬영한 동일한 건물의 컬러 사진이 뒷면에 붙어 있고, 뒤쪽의 거울이 이를 비추면서 시각적인 이미지를 확장한다. 주목할 것은 이 매트릭스가 김중업의 후기 작업부터 초기 작업까지 역순으로 배치되었다는 점과 개별 캡션이 달려있지 않아 관객들이 작품에 대한 정보를 즉시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김중업 작업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를 전복하고 그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기 위한 의도적인 불친절로 보인다. 정보 전달보다는 시각적인 연출을 통해 우리가 그의 작업들을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 우리 주변에 그의 건축이 얼마나 많이 도사리고 있었는지를 매트릭스 사이를 미로처럼 걸으며 감각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듯 김중업을 낯설게 하기를 통해 이 전시는 시작한다.
서랍 밖으로 나온 김중업의 새로운 면모들
매트릭스를 통과하여 전시장 중앙으로 들어오게 되면 국립현대미술관 아카이브, 김중업건축박물관의 소장품을 포함해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된 사진과 영상 등 3,000여 점의 작품과 자료가 펼쳐진다.
그렇다면 기존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보였던 건축가 아카이브 전과는 접근 방식에서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정다영(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은 “이번 전시는 앞선 전시들과 마찬가지로 도면, 모형, 사진 등 건축을 재현하는 과정물을 토대로 만들었다. 하지만 작가의 시각으로 김중업 건축을 새롭게 이미지화한 김태동, 김익현 작가들의 신작들을 보여주는 구성은 앞선 정기용이나 이타미 준 전시와 다른 접근법이다. 그가 남긴 사진들과 새로운 사진을 통해 건물이 가지고 있는 장소성, 시간성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이러한 자료들과 작품을 바탕으로 전시는 ‘세계성과 지역성’, ‘예술적 사유와 실천’, ‘도시와 욕망’, ‘기억과 재생’이라는 네 개의 주제로 그의 작품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
주한프랑스대사관 사진, 1960년 설계, 김중업건축박물관 소장
주한프랑스대사관 신축 및 리노베이션 조감도, 설계: 사티+매스스터디스, 2017
첫 번째 섹션인 ‘세계성과 지역성’에서는 그의 작업 세계 안에 공존하는 두 가지 맥락을 보여준다. 요코하마 고등공업학교의 나카무라 준페이 교수 아래서 받은 프랑스 에콜 데 보자르 식의 교육이 그가 후에 르 코르뷔지에의 사무실에서 일하게 된 배경으로 작용한다는 사실과 1956년 파리에서 돌아와 김중업건축연구소를 개소한 후 작업했던 부산대학교 본관(현 부산대학교 인문관), 서강대학교 본관, 건국대학교 도서관 등을 살펴볼 수 있다. 한편 서구의 모더니즘 건축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한국의 고건축 관련 서적들을 읽으며 문화재 보존위원회 위원을 맡거나 석굴암 전실 연구를 진행했던 흔적들에서 그에게 지역성도 중요한 관심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특히 두 번째 섹션인 ‘예술적 사유와 실천’에서는 예술가와 협업하는 건축가 김중업, 예술가로서의 김중업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필립 존슨이나 알바 알토가 그랬듯이 김중업 또한 김환기, 이중섭 같은 화가들이나 시인 오상순 등 많은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전시나 작품을 후원하기도 했다. 이러한 흔적들을 통해 당대의 문화 지평도 가늠할 수 있다. “현대의 서구에서는 이러한 ‘생활하는 모티브’가 중요시되고 있어요. 그래서 의의 있는 건축물은 물론,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건축인 경우에도 화가나 조각가들의 협력에서 큰 성과를 올리고 있지요”라고 김중업은 말했다. 프랑스대사관에서는 벽화 작업으로 화가 윤명로와, 올림픽 세계평화의문에서 그래픽 디자이너인 백금남, 미술작가 이승택과 함께한 협업 작업들은 건축을 매개로 총체적인 예술에 가닿고자 했던 김중업의 삶을 짐작하게 한다. 김중업건축연구소의 직원 명단에서 지금은 유명해진 작가들의 이름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당시 인테리어 스태프로 일했던 화가 박서보의 이력서 또한 남아 있다. 김형미(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김중업건축연구소가 예술 작가의 인큐베이터라고 할 정도로 현재의 대가 작가들이 그곳을 통과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중업이 예술가들의 협업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 사유와 실천을 모색해왔음은 1957년 한국 건축가로서 최초로 개최한 <김중업 건축 작품전>과 1971년 프랑스 영화감독과 함께 주한프랑스대사관과 삼일빌딩, 도큐호텔 등을 배경으로 만든 건축영화 ‘건축가 김중업’에서 크게 부각된다.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제작된 영상 ‘김중업 다이얼로그’에 등장하는 과거 방송 인터뷰 영상에서 김중업은 “제작하고 있을 때는 즐거워요. 열심히 뭔가 하려고 애써요. 그런데 지어놓고 나면 그 허탈감이라는 것이 보통 큰 것이 아니에요. 그런 점으로 볼 적에 작가라는 것은 언제까지나, 말하자면 부끄러운 것이죠. 건축가라는 것은 내일에 건 생명이거든요”라고 말한다. 자신을 작가라고 지칭하는 그는 늘 예술가의 위치에서 발화한다.
삼일빌딩 사진, 1969년 설계, 사진 김한용, 1970년대
반면 ‘도시와 욕망’ 섹션은 조형미학적 차원에서 평가되어왔던 그의 작품 세계를 탈주한다. 김중업 후기 작업들 중 삼일빌딩, 도큐호텔, 중소기업은행 본점, 갱생보호회관(현 안국빌딩) 등은 당대의 사회와 기술 발전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업들이다. 또한 산부인과나 쇼핑 센터 등 도시에서 필요로 하는 새로운 시설들과 개인 주택, 그리고 그가 남긴 도시 모습에 관한 메모들에서 건축 조형 언어에 천착했던 김중업만이 아니라, 이상적인 도시에 대한 김중업의 열망을 발견할 수 있다. 마지막 섹션인 ‘기억과 재생’에서는 지어진 지 대부분 50여 년이 된 김중업의 건축을 둘러싼 기억과 재생에 대한 작업들이 소개된다. 김중업 스스로도 소중한 작품이라 말하며 오래 남겨지길 바란다고 언급했던, 그러나 1996년 끝내 철거된 제주대학교 본관이나, 현재 김중업건축박물관과 안양박물관으로 리모델링된 유유제약 안양공장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62년 준공 후 수차례 증개축을 거쳤던 주한프랑스대사관의 경우 2016년 말 설계공모를 통해 선정된 프랑스 건축사사무소 사티와 한국의 매스스터디스 건축사사무소의 공동안 또한 원작과 비교해볼 수 있다. 김중업의 다양한 면모를 탐색하는 데 길잡이가 되어 주는 위의 네 가지 섹션은 주제로 구분되어 있긴 하지만, 전시장 안에서 순차적 관람을 강요하거나, 김중업의 작업들을 명료하게 가르고 있지는 않다. 이를테면, 주한프랑스대사관은 한국적 모더니즘을 실현한 작품으로 ‘세계성과 지역성’에 해당하는 작품이면서 동시에 현대의 우리에게 재생의 이슈를 던지고 있으므로 ‘기억과 재생’ 섹션에서도 만날 수 있는데, 이는 정다영이 말한 것처럼 “이미지를 넘나들며 작품을 조응하고, 건축물을 다른 맥락으로 사유할 수 있도록 여러 장치들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관람객은 전시장에 들어와 매트릭스와 네 개의 섹션, 전시장 밖의 김중업 살롱에 이르기까지 김중업의 작업과 사유를 여러 곳에서 여러 매체로 마주치게 된다. 여기에서 김중업을 얼마만큼의 넓이와 깊이로 읽어낼 것인지는 관객의 몫이다.
김중업이라는 장(場)의 가능성
베아트리체 꼴로미냐는 『프라이버시와 공공성: 대중매체로서의 근대건축』의 ‘문서고’라는 장에서 자신의 흔적을 모두 없앴던 아돌프 로스와 모든 흔적을 보존했던 르 코르뷔지에를 비교한다. “로스가 자신의 흔적을 제거했다는 점은 그에 대한 모든 연구에 영향을 미쳐왔다. 모든 저술들은 이러한 공백들의 안에, 위에, 그리고 그 주변에 머물고 있다”고 말하는 반면, 르 코르뷔지에에 관해서는 “흔적의 방대함은 연구를 끝없는 과정이 되게 하는데, 새로운 자취 혹은 오히려 이러한 자취를 바라보는 방식 또는 그것을 처음으로 자취라고 보는 방식조차도 항상 옛것을 대치하는 새로운 해석을 생성한다”고 적는다. 르 코르뷔지에 재단이 관리하는 자료의 양과 질에 견줄 수는 없겠지만, 정다영은 “이번 전시와 김중업건축박물관의 역할로 인해 10년 후면 김중업의 역사적 위상은 달라질 것”이라며, 이 전시가 연구의 초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전시와 연계되어 김중업의 주요 건축물을 직접 살펴보는 답사 프로그램과 큐레이터 토크가 마련되어 있으며, 김중업 생전 유일한 작품집이었던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와 연결된 별도 단행본이 10월 중 출판사 열화당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또한 11월에는 한국건축역사학회와의 공동 학술 심포지엄도 열린다. 이번 전시를 통해 마련된 김중업이라는 장(場)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김중업이 동원되고 환기되고 생성되기를 바란다. 그간 건축가에 대한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한 일련의 건축 전시들이 역사적 연구의 지평을 확장해왔음은 분명하다. 앞으로는 충분한 연구를 바탕으로 더욱 맥락이 섬세하게 조직된 건축 전시의 등장 또한 기대해볼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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