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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학생기자] No. 678 2024년 5월호 리뷰

글
SPACE 19기 학생기자
진행
방유경 기자


변화하는 일관성

글 김가연(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

​

‘옳은 건축’은 없지만 ‘숭배 받는 건축’은 있다. 김진휴와 남호진(건축사사무소 김남 공동대표, 이하 김남)은 2021년 젊은 건축가상 지원 에세이에서 건축의 일관성과 완전함, 균형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 고유한 작가성과 물성을 추앙하는 태도를 당연시해온 동시대 젊은 건축계에서 남다른 목소리를 낸 것이다.

김남은 “우리는 하나의 건축적 주제를 두고 몇십 년씩 정진할 생각이 없다. 몇 차례의 변신을 거듭하며 지속적으로 의미 있는 작업을 만든 이들도 있지 않던가”라고 말하며 작품 세계를 끊임없이 변주해 나간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들의 ‘변화에 대한 욕망’은 이용자의 구체적인 요구와 일상을 담아내는 작업과도 깊은 관계를 가진다. 김남은 개인 건축주의 건물을 주로 설계하며 그들의 삶을 분석하고 향후 그것이 어떻게 달라질지를 이야기해왔다. 주택은 근린 생활시설이나 대규모 프로젝트와는 달리 건축주의 사적인 지향점을 우선하기 때문에 건축가의 가치관이 개입될 여지가 많고 형태와 질감, 구조와 구성에서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 따라서 어떠한 공식에 매이지 않고 ‘지금 여기 필요한 것’을 고민할 수 있다.

호숫가의 집(2023)은 ‘지금 여기 필요한 것’들의 집합소이다. 오롯이 건축주 부부의 노년을 위해 지은 이 집은 은퇴 이후의 낭만을 현실에서 실현 가능케 하고 새로운 시골 생활의 길잡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냈다. 시골 생활의 추상적 낭만에 그치지 않고 실제 삶을 영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건축적 장치들을 곳곳에 마련했다. 첫째는 자연과 실내를 유연하고 쾌적하게 오갈 수 있도록 하는 반외부 공간이다. 여름에는 뜨거운 볕을 덜어내고 겨울에는 신발을 망치지 않으면서 설원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중간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두 겹의 루버-거터와 단을 두었다. 둘째는 건축주 부부를 상시 연결하는 방의 구성이다. 서로 다른 공간에 있어도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방과 방사이 벽과 천장을 비워내 시선과 소리가 통하게 했다.

김남의 작업은 잊고 있던 일상의 즐거움을 상기시킨다. 건축이 양질의 경험을 이끌어낼 때, 또 그 경험이 이용자의 구체적이고 주체적인 감각에서 비롯된 것일 때, 사람들은 공간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제자리에 두고 감상하는 오브제와 달리 건축물은 사람 간의 관계를 매개하고 주변 환경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능이야말로 변화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김남이 고민해온 ‘지금 여기 필요한 것’이야말로 실은 스스로 포기했다고 말하는 건축적 일관성이 아닐까.

 

 

오늘의 필요, 내일의 조형

글 유효상(국민대학교 건축학과)

 

건축이 ‘building’이 아닌 ‘architecture’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설계 수업에서 개념이나 디자인보다 건물의 조형을 위해 사라진 누군가의 창문, 유쾌하지 않은 화장실 크기에 더욱 마음이 쓰이는 학생이었다. 뚜렷한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나는 고민한 결과가 아닌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는 이상 조형과 실용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결정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건축사사무소 김남은) 우리의 척박한 현실을 뛰어넘는 ’더 나은 것‘ 혹은 현실을 계도하는 ’더 옳은 것‘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필요한 것‘을 제시한다.”(서재원, ‘대답, 대화, 화답’ 중에서)

「SPACE」 678호 프레임의 주인공인 건축사사무소 김남(이하 김남)의 작업에 대한 서재원의 비평 중 일부이다. 김남은 작업을 관통하는 건축적 주제에 집착하기보다 당장의 현실에 반응하는 작업이 더욱 흥미롭다고 말한다. 스위스 르 클루(Le Clou, 2014~) 작업에 대해 김남은 “콘크리트 벽체에 만들어진 창들은 서로 다른 높이에 작은 크기로 만들어서 스키를 타다가 들어온 손님들이 장갑을 벗어놓을 수 있게 했다”(김남 웹사이트)고 말한다. 이 문장이 길지 않은 작업 설명의 절반을 차지한 것을 보면 사용자의 편리와 기쁨이 김남 작업의 기저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호숫가의 집(2023)에서 햇볕에 무언가를 말리거나, 흙 묻은 신발을 벗어둘 수 있는 중간적인 공간, 썸 클리어 스토리즈(2022)에서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뙤약볕이 아닌 그늘에서 노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 모두 사용자의 편의와 기쁨에 기반한 것이리라. 미래에 대한 섣부른 예상은 하지 않으면서 주어진 룰에 충실한 결과인 것이다. 글을 쓰면서 이상 조형과 실용성이 동등한 가치인지, 조형과 실용성 사이의 균형을 같은 저울에 올리는 것이 옳은지 오히려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호의 제목인 ‘지금 여기 필요한 것’은 나에게 일종의 해답처럼 다가왔다. 김남은 좁은 대지에서 조금이라도 편한 집을 만들기 위해 복잡한 구조를 시도하고,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플래싱과 물끊기를 죄책감 없이 드러냈다. 또한 청량리역 프로젝트에서는 기존의 타일과 새 타일을 잇기 위해 이색 패널을 사용하고 이를 고정하는 볼트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오늘날 건축이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 것이다. 김남은 이상적인 조형미와 실용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현실의 필요를 충실히 반영하는 작업을 통해 사용자에게 진정한 편의와 기쁨을 제공하고자 했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건축이 ‘building’이 아닌 ‘architecture’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 답을 ‘예술적 탐구와 실용적 해결’, ‘이상과 현실’ 사이의 대립이나 취사 선택이 아닌 공존의 관점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건축을 건축이게 하는

글 오도윤(홍익대학교 실내건축학과)​

 

장소와 애착의 관계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외할머니 집의 엄마방에는 따스한 촉감의 고동색 밤나무 문이 있었다. 낡은 서재의 향과 레이스 달린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은 먼지를 비추었고, 청동색으로 녹슨 재봉틀은 나를 페달 위로 이끌었다. 페달에 올라타 체중을 실으면 세월이 무색하게 재봉틀은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러다 식사 때가 되면 좁은 나무 계단을 내려가다 벽에 걸린 각 나라의 기념품 모자를 쓰고 뛰어다니곤 했다. 이제는 철거되어 사라진 외할머니 댁 앞을 지날 때면 그립지만 돌아갈 수 없는 노스탤지어를 느낀다.

“건축을 건축이게 하는 건축의 특수성은 무엇일까?” 이번호를 보다가 ‘상동 갤러리-주택’에서 언급된 이 질문을 읽는 내내 떠올렸다. 건축은 회화나 조각이 될 수 없다. 내부로 들어가 공간을 느끼고 점유하는 경험은 건축에서만 일어난다. 건물은 사용자와 함께하며 수년간 무의식의 기저에서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푸 투안이 말했듯 ‘공간’에 인간이 가치를 부여하고, 경험과 삶의 애착을 불어넣을 때 그곳은 비로소 ‘장소’가 된다. 그 장소에서만 성립하는 체험을 제공한다는 의미인 장소특정성은 5월호를 관통하며 느슨하게 엮는다.

한 & 모나에게 장소는 비물질로 형성된다. 기억되지 못한 채 잊힌 건물의 시간은 소리, 냄새, 빛, 진동, 먼지와 온도로 조명된다. 디지털에 중독된 시각에서 벗어나 예민해진 감각은 털을 곤두세운다. 촉감, 청각과 후각으로 전달되는 언어는 시각적인 텍스트를 넘어 얕고 길게 잔향처럼 퍼진다. 그리하여 비물질은 짧은 시간의 전시 공간을 장소로 만들어 노스탤지어를 남긴다. 반면, 건축사사무소 김남에게 장소는 일상과 관계 맺는다. 사용자와 함께 나이드는 공간은 일상의 일부가 되고 장소가 된다. 외장재가 낡을 것을 고려해 목재와 석재의 위치를 다르게 잡고, 아이가 자라며 벽의 위치를 바꿀 수 있게 고려한 작업이 이를 뒷받침한다. 비평을 맡은 서재원(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대표)의 말처럼 호숫가 집의 루버-거터나 화이트 온 화이트의 왕관 모양 지붕은 쓸모없음의 유용함, 낭만을 낳는다. 하지만 낭만은 공간이 장소로 인식되도록 강하게 이끈다. 일상 아래에서 낭만이 행한 물밑 작업이 건축사사무소 김남의 프로젝트를 이어주고 있기 때문에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 아닐까? 의사는 사람을 살리고, 건축가는 사람을 살게 한다. 사람들은 애정을 쏟을 공간이 필요하다. 반면 미디어의 발달은 공간의 경험을 관광(핫플레이스)과 공유(소셜미디어)를 통해 가볍고 얄팍한 것으로 대체하고 있다. 건축은 애착이 생길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고, 짧은 시간의 강렬한 기억으로도 장소가 되기도 한다. 이제 건축을 건축이게 하는 특수성에 대해 보다 깊은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다.

 

 

 

다층적 경험으로서의 미술관

글 정구범(명지대학교 공간디자인전공)

 

2023년 1월. 베를린으로 여행을 떠났을 당시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을 들렀던 적이 있다. 지하 공간의 전시까지 다 보고 난 후 다시 올라와 1층에 있는 카페 의자에 잠시 몸을 기댔을 때, (이날이 바르셀로나 체어와의 첫 대면이었다) 내 앞에는 이제 막 뛰어놀기 시작한 아들을 데리고 온 부부와 할아버지 가족이 있었다. 그 아이는 카페 카운터 앞에 엎드려 있기도 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간식통에서 간식을 받아먹기도 했으며, 할아버지에게 안겨서 어리광을 피우기도 했다. 편한 옷차림의 부부와 그 앞에서 앉고 뛰며 노는 아이, 그리고 그 광경을 행복하게 바라보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SPACE」 678호에서는 리노베이션을 앞둔 오래된 미술관들이 취해야 할 태도와 서구의 사례들을 살펴보았다. 시대 변화의 흐름 속에서 미술관의 양적 팽창과 함께 질적 성장의 중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미술관 건축은 대처 방안으로 방문객들이 전시 이외에 즐길 수 있는 서비스 시설을 배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카페, 서점, 기념품 숍 등은 미술관 건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성요소가 되었다. 더 나아가 스마트폰 촬영과 소셜 미디어를 통한 사진 및 동영상의 공유가 확산되면서 작품 형식도 춤과 같은 이벤트적 장르로 변화하였다. 이렇듯 미술관 건축의 질적 성장을 위한 서비스 시설 배치와 전시 형식의 변화는 방문객들이 미술관을 경험하는 방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국내 미술관 역시 다층적 경험의 공간으로 작동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이번 호에서는 2023년 8월 리노베이션을 마친 아르코미술관과 현재 리노베이션 중인 부산시립미술관을 예로 들고 있다. 아르코미술관은 전시장을 개보수하는 동시에 프론트스페이스 및 라운지 공간을 리노베이션 했다. 리노베이션을 맡은 소수건축사사무소는 기존의 평면 위 유닛 가구들의 배치로 관람객들의 휴식은 물론이고 전시, 강연 등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용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을 구성했다. 부산시립미술관은 설계 공모에서 시설 개보수, 전시 공간 및 수장고 확충과 더불어 외부로의 개방감 확보, 지하 선큰과 연결되는 주 출입구 계획과 입구, 로비, 카페테리아를 잇는 서비스 공간 증설을 요청했다. 이는 다양한 형식의 전시 작품을 수용하는 공간을 확보하고, 미술관 내, 외부 간 관계를 유연하게 만들어 전이 공간에 대한 경험을 확대하기 위함이다. 늘어나는 프로그램과 다양한 전시 형식, 관람객 수 등을 수용할 수 있는 유동적인 공간에 초점을 맞춘 리노베이션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건축적 가치가 있는 오래된 미술관을 어떻게 리노베이션할지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은 1920년대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옛 대법원 건물의 파사드를 유지하기 위해 지상층 대신 지하층에 전시장, 수장고, 편의시설을 증축할 계획이다. 2016년과 2022년 두 차례에 걸친 로비 개선, 계단 확장, 옥상정원 조성을 마친 아트선재센터와 현재 외형적인 증축 없이 일부 오래된 시설을 순차적으로 리노베이션 하고 있는 환기미술관 역시 기존의 건축 틀 안에서 오래된 미술관이 가진 건축적 가치를 보존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미술관의 과거와 현재를 끊임없이 재고하며, 기존 건축의 기억 위로 새로운 변모를 꾀한다.

건물의 노후화와 시대의 흐름에 따른 큐레토리얼의 변화 등 다양한 요구 사항들을 수용해야 하는 이 시점에서, 오래된 국내 미술관들은 앞으로 어떤 변화의 과정을 거치며 방문객들의 경험 속에 자리 잡게 될까. 기존 건축의 외형은 유지한 채 새롭게 등장하는 프로그램과 전시를 수용한 미술관 속 방문객들은 오래된 미술관에 대한 기억과 새로운 경험들   사이에서 본인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내가 경험한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에 대한 기억도 전시 관람으로 시작해 1층 카페 의자에서 끝이 나며, 그날 내가 미술관에서 본 전시, 방문객들, 카페에 앉아 지켜본 한 가족에 대한 기억은 층층이 쌓여 한 미술관에 대한 총체적인 경험으로 묶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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