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8월호 (통권 681호)

(왼쪽) Structural diagram of Seolhaeone Clubhouse Extension, (오른쪽) Site plan of Seolhaeone
건축가에게 주어지는 프로젝트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대지의 용도와 쓰임새가 정해져 그 용적의 범위에 맞게 디자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애초에 설정된 용적의 범위와 용도가 없어 관련 규칙을 만들면서 발전시켜야 하는 경우다. 전자의 경우처럼 용도와 용적이 결정된 필지만을 접한 건축가에게 스스로 대지의 규칙을 만들어 계획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영역의 도전이 될 수 있다. 대규모 단지 개발에서 거쳐야 하는 도시계획의 과정은 일반적인 건축과는 달리 상당히 까다로운 절차를 수반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복잡한 과정을 통해 건축가는 땅의 잠재적인 가치를 읽어내고 단지 전체를 새롭게 해석하는 안목을 갖출 수 있다. 아직 대지로 정의 내려지지 않은 땅의 가능성을 파악하고 이를 건축 영역으로 구현하는 전 과정을 고민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땅을 개발하는 전 과정에 대한 이해는 건축가에게 또 다른 도전이기도 하지만 개발의 모든 프로세스를 경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통해 단일 건축뿐 아니라 단지 계획상 필요로 하는 각종 인프라, 건축물 간의 관계성, 단계별 확장 가능성 등 사업 개발의 전반적인 과정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설해원의 의미를 묻는다면, 대지의 잠재성과 발전 가능성을 단지 개발적 차원에서 경험하게 해준 프로젝트라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기존에 접해왔던 단일 대지의 건축적 개발을 넘어 좀 더 광의의 단지 개발 차원에서 건축을 바라보는 계기가 됐음을 의미한다. 나는 2009년 용인의 한 주차장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개인 사무소를 시작했다. 이후 남해 처마하우스 리모델링(2011), 곡선이 있는 집(2012),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2016), 클럽나인브릿지 파고라(2017), 울산 KTX 복합시설(2019), 과천 선유재(2019) 등 다양한 스케일과 프로그램의 건축 작업을 진행했다. 사무소 개설 후 초창기에는 한정된 예산 안에서 구현할 수 있는 재료의 조합에 관한 실험들이 주를 이루었다면,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를 계기로 좀 더 도시적 스케일의 작업은 물론, 다양한 구조 설비적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위에 모든 프로젝트는 주어진 대지의 조건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 작업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서두에 언급한 첫 번째 건축 유형인 ‘주어진 대지의 용적이 결정된 프로젝트’가 대다수였던 것이다. 2019년부터 시작된 설해원 프로젝트는 대지의 성격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새롭게 대지의 성격을 규정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건축가로서 대규모 단지 개발의 방향성과 정체성, 그리고 세부적인 건축적 발전 계획까지 모든 과정을 짚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Sectional perspectives of Seolhaeone Clubhouse Extension
설해원 클럽하우스 증축
설해원 프로젝트는 내가 지금까지 작업했던 모든 종류의 프로젝트들을 압축한 총 집합체인 것 같다. 설해원 클럽하우스 증축(2022)의 경우, 형식은 리모델링이지만 실제 작업 과정은 신축과 다름없었다. 추가로 요구되는 수직, 수평 증축 부분에 관련된 합리적인 구조 방식을 찾다 보니 철근콘크리트조(RC), 철골철근콘크리트조(SRC), 철골조, 목구조 등 가용 가능한 다양한 공법이 적용됐다. 가령 2층 여성 사우나와 로커 공간은 1층 남성 사우나와 로커 위에 수직으로 증축되는 바, 기존 구조체 보강을 최소화하고 장스팬 및 진동하중에 충분한 강성을 가지는 SRC를 사용했다. 이를 위해 기존 지하 피트 하부에 그라우팅 공법으로 지반을 보강하고 구조적으로 필요한 기둥 강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 클럽하우스의 기둥 단면을 보강해야 했다. 수평 증축의 경우 스타트하우스 및 단독 다이닝룸 확장을 위해서 신축 동이 필요했고 기존 건물과의 연계성을 고려해 RC로 계획하게 되었다. 골프장을 바라보고 있는 동측 면과 달리, 클럽하우스로 진입하는 북측 면은 사뭇 다른 제스처가 필요했다. 기존 설해온천과의 연결과 새로운 클럽하우스의 정체성을 위해 기존 구조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이미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따라서 콘크리트나 철골과는 다른 목재가 지닌 형태적 역동성과 재료적 온화함을 통해 설해원이 지향하는 공간의 이미지를 대변하고자 했다.
이처럼 리모델링은 구조적, 공간적 복잡성을 기반으로 한다. 기존 구조를 활용한 합리적인 증축 시스템은 물론이고 고객 동선과 관리 동선의 새로운 관계 설정, 기존 기계설비 시스템의 개량 및 재보수 및 추후 발생하게 될 공간 확장에 대한 고려까지 수없이 많은 행정적, 기술적 사항을 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본 프로젝트에서는 클럽하우스의 기능적 증축 이외에 기존 숙박시설과의 연계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서측에 면한 설해온천, 골프텔과의 관계는 클럽하우스가 전체 마스터플랜상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맥을 같이한다. 즉 내방객의 유용한 접근성을 고려하되 골프를 즐기지 않는 기타 고객을 배려하는 동선 계획이 필요했던 것이다. 또한 향후 개발될 설해별담, 설해수림, 더 코어와의 관계를 기반으로 전체 프로젝트의 중심축으로서 클럽하우스의 역할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 프로젝트였다.

(왼쪽) Access circulation to the Seolhaeone Clubhouse (before), (오른쪽) Access circulation to the Seolhaeone Clubhouse (after)
설해별담
클럽하우스가 시스템적 복잡성에 기반한 프로젝트였다면 설해별담은 다소 주택단지에 가까운 접근법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일반적인 주택단지가 각기 다른 소유주들에 의해 다양한 패턴으로 발전되는데 반해 설해별담은 일정한 건축적 형식의 틀을 유도하고 이를 기반으로 통일성 있는 단지 풍경을 만드는 게 중요했다. 발주처 입장에서는 골프 코스에 면한 단지 계획이 대지 소유자들의 각기 다른 취향과 예산으로 말미암아 중구난방으로 흐르는 난립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다수의 골프장에 면한 주택단지 개발이 개별 필지 소유자의 상황에 따라 원칙 없이 지어져 골프장의 풍광 자체가 망가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면에서 설해별담 A, B, C 타입은 이번에 개발하는 20채 중 15채에 해당하는 다수의 작업이었기에 전체 단지의 규칙과 원칙을 세우는 단지 마스터플랜에 가까운 프로젝트였다. 문제는 최초 분할된 개별 필지들이 현재의 용적과 마스터플랜을 기준으로 나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는 최초 단지를 계획할 때와 신규 골프 코스가 신설되는 시점의 시장 상황이 상당 부분 변화했음을 시사한다. 동시에 설해원이 지향하는 단지 계획의 변경된 기준을 충족하고 한정된 대지 안에서 최적의 대안을 찾아야 함을 뜻하기도 했다. 즉 시간차를 두고 개발되는 대규모 단지 개발에서 발생하는 시장의 변화를 이해하고, 이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건축적 대안 제시가 중요했다.
설해별담은 사용자의 요구를 수용하는 여느 주택 설계와는 달리 이곳에 방문하게 될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설정하고 그들을 보편적으로 만족시킬 만한 숙박시설로 계획됐다. 주거의 형식을 갖춘 보편적 상품인 동시에 골프장의 주요한 풍광으로서 기준점이 되어야 했다. 이러한 기준을 바탕으로 각 타입의 형식과 방향성이 결정됐다. 설해원의 전체 풍광을 좌우할 건축적 형식은 박공지붕이었다. 설정된 최고 높이 내에 일정한 각도로 스카이라인을 유도함으로써 통일성을 갖는 단지 개발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또한 일정한 형태 규칙을 기반으로 타입별로 다양성을 부과함으로써 단지 내 다채로운 조화를 유도하고자 했다. 가령 A타입은 RC에 삼각박공과 평지붕이 결합된 형태인 반면, B타입은 중목구조를 바탕으로 구조 자체가 형태를 이루도록 계획했다. C타입에는 RC와 중목구조를 혼용한 하이브리드 구조를 적용했다. 타입의 다양성과 더불어 중요했던 것은 어떤 타입의 조합을 연속해서 개발해야 단지 전체적인 맥락상 시너지가 생기는지에 대한 스터디였다. 설해원이 보유하고 있는 필지군 중 타입별로 연속해서 개발할 경우 전체 단지의 흐름을 잡아줄 조합에 대한 연구가 프로젝트의 전체 풍경을 결정하는 중요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A타입의 경우 작은 평형 타입으로 별동으로 지어도 무관한 반면, B타입의 경우는 두 필지를 연속해서 지을 경우 목구조의 리듬감이 더 돋보이게 된다. 즉 타입별 조합에 따라 단지 내 풍광이 더 돋보이는 방식으로 타입들을 배치하는 것이다. 이런 규칙을 바탕으로 C타입은 필지 두 개를 합쳐 지었다. 기존 대지가 워낙 작게 분할되어 개별 필지로는 실질적인 용적을 채우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두 필지를 합쳐 큰 평형의 워케이션 공간으로 개발했다.
이렇듯 설해별담은 전체 단지의 70개 필지 중 설해원이 보유하고 있는 20여 개 필지를 대상으로 각 타입의 장점과 조합 가능성을 최적화하고자 한 프로젝트다. 건축가에게 요구된 상황은 각 필지 내 개별 건축물의 완성도는 물론 기존 필지의 단점을 극복하고 이를 전체 단지 내에서 가장 적합한 조합으로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것이었다. 골프 코스와의 관계에서도 전체 단지의 풍광의 기준을 설정하고 앞으로 지어지게 될 기타 필지의 기준점을 설정하는 첫 단추를 꿰는 작업이었다.
Sectional diagram (Seolhae Byuldam Type A), Sectional diagram (Seolhae Byuldam Type B), Sectional diagram (Seolhae Byuldam Type C)
스케일과 관점의 확장
건축가는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해야 한다. 실무를 처음 시작할 때는 단일한 공간을 완성도 있게 만들기 위해 치밀한 디테일과 공간의 관계에 집중했다. 점차 다양한 영역과 스케일의 건축으로 실무가 확대되면서 도시계획상 필지의 구분 방식, 법적인 용적을 결정하는 지구 단위의 구성 방식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결국 건축가란 개별 건축이 모여 하나의 단지를 완성하고 이것들의 집합체인 도시라는 공간을 이해하는 업이 아닐까? 이는 우리가 만들어온 도시 공간을 대상으로 ‘어떠한 공간을 비워내고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대한 물음과 맥을 같이한다. 달리 말하면 밀도를 어떻게 재분배하고,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 사이의 관계성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설해원 프로젝트는 전체 대지의 맥락상 거점이 되는 클럽하우스와 이를 중심으로 확대될 미래 프로젝트들에 대한 배려를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또한 관광단지 내 주어진 용적 안에서 개발할 수 있는 영역의 대지를 확장하고 구축 가능한 영역의 밀도를 재분배하며 이를 상업적 맥락에서 해석하는 과정으로 확대되었다. 지난 4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설해원 안의 개발 가능한 모든 대지의 가능성을 검토해본 것 같다. 검토한 모든 프로젝트를 나의 의지대로 계획할 수는 없었지만 구축의 관계성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공간의 잠재성과 가능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설해원 프로젝트는 나에게 건축적 스케일을 넘어선 단지 계획의 새로운 관점과 시선을 경험하게 해준 작업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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